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88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시로네가 말을 이었다.
“그렇게 인연을 맺었잖아. 그러니 네가 재능이 있든 없든 이제는 상관없어. 네가 어떤 사람이라도, 마법을 포기한다 해도 난 네 곁에 있을 거야.”
“흑…….”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 위저드는 고개를 숙이며 시로네에게 안겼다.
“으아앙! 죄송해요, 스승님! 제가 잘못했어요! 다시는 건방지게 굴지 않을게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누구도 너를 탓하지 않아. 다들 함께 싸워 여기까지 온 거잖아.”
시로네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은 위저드는 비로소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역시 이 사람은…….’
너무 따듯하다.
***
바깥 세계, 라그랑주 문명.
-급속 윤회 3,987회차가 종료되었습니다.
캡슐형 장치의 유리창이 올라갔다. 동시에 흑발의 청년이 몸을 일으켰다.
단정한 머리는 땀에 젖었고, 미형의 얼굴 또한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카이! 괜찮아?”
“허억! 헉!”
숨을 내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카이의 모습에 소녀는 입술을 깨물었다.
‘익사였구나.’
평범한 공겁 시스템과 달리 급속 윤회는 한 생이 1분 안에 끝나게 된다.
“카이, 괜찮아? 말 좀 해 봐.”
카이 루트.
루트 가문의 비공인 혈육이자 시로네의 세계에서 하비츠로 살았던 인물이었다.
중년 여성이 다가왔다.
“물러서라, 에스카니아. 이건 형벌이야. 급속 윤회는 절반도 지나지 않았어.”
시로네의 세계에서 나타샤로 불렸던 그녀는 중년 여성을 밉게 노려보았다.
‘정말로 이걸 하다니.’
10년 전.
시로네의 우주가 독립할 당시 라그랑주 문명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생겼다.
카이를 포함해 5명의 비공인 아이들이 다중 우주에 접속한 사건이었다.
“카이, 나를 봐라.”
카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뒤편에는 구스타프 4기예로 불렸던 친구들이 똑같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카이, 너는 친구들을 선동해 다중 우주에 불법 접속했다. 또한 야훼 프로그램이 적용된 하나의 우주가 독립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했지.”
재판장은 콜로세움 형식이었고 외곽은 조명이 꺼져 신원을 식별할 수 없었다.
어둠 속에서 누군가 말했다.
“가장 큰 죄는 그게 아닐 텐데요. 카이는 당신의 아들이잖습니까, 스스야.”
루트 가문은 지도자 가문이다.
그들은 공겁 시스템을 창조했으며, 다른 가문과 달리 영생을 거부하고 때가 되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신성까지 갖추고 있었다.
“에오라 가문, 하고 싶은 말이 뭐죠?”
“루트 가문이라고 해도 생물학적 출산은 할 수 없습니다. 개체 수가 늘어나서는 안 된다, 이것이 라그랑주 헌법의 핵심 아닌가요? 어떻게 책임질 겁니까?”
“전부.”
스스야가 말했다.
“루트 가문이 책임질 것입니다. 우선 의장인 저는 모든 권한을 내려놓겠습니다.”
딱히 반응은 없었다.
오직 루트 가문만이 사망하고, 새로운 지도자도 결국 루트가문이 될 터였다.
스스야가 말을 이었다.
“또한 카이는 남은 4명의 아이들의 죄까지 물어 급속 윤회 1만 회의 형벌에 처합니다.”
“뭐, 뭐?”
이번에는 여파가 컸다.
중범죄자에게 가끔 내려지는 벌이지만 결국 사형의 다른 말이었기 때문이다.
한쪽 다리가 기형인 소년이 항변했다. 시로네의 세계에서 제타로로 살았던 아이였다.
“말도 안 돼요! 왜 카이가 모든 걸 책임지죠? 차라리 우리랑 나누어 주세요!”
“안 돼. 그것이 지도자 가문이다. 카이, 대답해라. 형벌을 기꺼이 받겠느냐?”
카이는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제타로도 스모도도, 나타샤와 발칸도 고개를 저었다.
천천히 고개를 되돌린 카이가 스스야를 올려다보더니 무심하게 대답했다.
“네.”
또다시 웅성거림이 일었다.
“진짜로 하겠다고? 뇌에 가해지는 대미지가 엄청날 텐데. 여태까지 절반을 버틴 사람도 없잖아? 버틴다고 해도 정신이 파괴될 거야.”
스스야가 말을 이었다.
“결정이 났습니다. 단, 성인이 아닌 자에게 벌을 내리는 경우는 헌법에 없습니다. 따라서 집행은 카이가 공식적으로 성인이 되는 18살에 합니다. 또한 그때까지 저에 대한 판결도 유예하겠습니다.”
영생을 기준으로 10년은 찰나였다.
반면에 카이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으니 이의를 제기하는 가문은 없었다.
“그럼 당분간 의장직을 잇겠습니다. 또한 그 자격으로 이 자리에서 공표합니다.”
스스야는 어둠 속에 가려진 가문들의 실루엣을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
“카이가 급속 윤회 1만 회를 성공시킨다면, 이번 사건을 일으킨 5명의 아이들을 라그랑주의 정식 주민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히든 코드 (1)
그렇게 된 상황이었다.
-급속 윤회 3,988회 차가 완료되었습니다.
“허억!”
카이는 발작을 일으켰다. 꿈에서 깨어난 뒤에도 초점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카이!”
에스카니아는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최후를 맞이했을까. 질병? 전쟁? 참수?
어차피 의미는 없다.
급속 윤회는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기에 모든 회 차의 죽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무려 1분에 한 번씩.
‘미쳤어. 이런 식으로 사용하다니.’
본래 윤회 프로그램은 육체가 아닌 정신적 영생을 위해 고안된 시스템이었다.
질병은 전부 정복되었고, 더 이상 우주에 생명이 누릴 만한 새로운 것도 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고여 갈 무렵 루트 가문이 제안한 것이, 미싱 링크를 통한 윤회 시스템이었다.
‘하지만 이건 달라. 오히려 정신을 파괴하는 거잖아. 그냥 고문일 뿐이야.’
에스카니아가 스스야에게 소리쳤다.
“그만둬요! 정식 주민 같은 거 필요 없으니까, 그만하라고요! 정말 이런 걸 원하신 거예요? 이러다가 진짜 카이가 죽는다고요!”
스스야가 말했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다.”
“우리가 뭘!”
울분이 차올랐다.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도 아니잖아! 개체로 인정도 안 해 주면서! 이렇게 죽일 거면 애초에 왜 우리를 낳은 거예요? 다들 비겁해!”
“에, 에스카.”
그녀의 애칭에 고개를 틀자 카이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 믿어.”
“카이.”
그녀도 알고 있다.
필멸을 받아들인 루트 가문의 정신력은 다른 가문과 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하지만 결국 목숨은 하나였다.
어차피 이렇게 죽을 거라면, 차라리 고통 없이 보내 주면 안 되는 것인가?
스스야가 말했다.
“카이, 버텨야 한다. 그게 우리 가문, 더 나아가 라그랑주 모두를 위한 길이야.”
에스카니아는 스스야의 주먹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정말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카이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캡슐 장치의 전면 유리가 닫히더니 불투명하게 변했다.
-급속 윤회 3,989회 차를 시작합니다.
몽롱한 정신 속에서 멀어지는 안내음을 들으며 카이는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위저드.”
꿈에서 만난 7살의 아이.
4천 번에 가까운 윤회를 했는데도 어째서 그녀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 것일까?
‘어디에도 너는 없구나.’
만날 수 없겠지.
‘한 번만이라도…….’
대략 1분의 시간 동안 카이는 78년을 살았고, 마족을 만나 두개골이 부서졌다.
***
위저드는 회의실로 돌아왔다.
우려했던 것과 달리 사람들은 그다지 화가 나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죄송합니다, 소란을 부려서. 앞으로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시이나가 부드럽게 말했다.
“무슨 소리야. 오히려 신경 써 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설마 그런 일을 겪었다니.”
테스가 밝게 웃으며 말했다.
“답답하면 그럴 수도 있지 뭐. 일단 앉자. 함께 생각하면 뭐든 되지 않겠어?”
위저드는 고개를 끄덕이고 걸어갔다. 도착한 곳은 알비노의 옆이었다.
그녀가 고개를 숙였다.
“정식으로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건방졌고, 이기적이었어요. 반성하고 있습니다.”
알비노는 위저드를 의문스럽게 바라보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투자한 것을 갚겠다고 했지. 우리가 무엇을 줬는지는 알고 있나?”
“……자유입니다.”
“그래. 그리고 그 자유에는 실패할 자유도 포함되어 있는 걸세. 화를 내든, 땡깡을 부리든, 여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든, 나는 괜찮아. 자네가 우리가 준 것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다면, 그런 행위조차 범인이 모르는 깊은 의미가 태동하고 있다는 뜻일 테니까.”
위저드는 가슴이 뜨거워졌다.
자유라는 것은 무한한 신뢰라는 뜻이었다.
“하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하게.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야. 자네가 무슨 짓을 하든, 설령 말도 안 되는 똥을 싸지른다고 해도 말이지…….”
알비노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그 뒷감당은 이 늙은이가 책임지고 할 테니까.”
위저드는 깨달았다.
‘자유.’
어쩌면 인류가 그녀에게 준 것은, 목숨을 걸 만한 가치가 있는지도 모른다.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위저드의 씩씩한 대답에 모두가 미소를 지었다. 알비노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이루키의 주도하에 회의가 진행되었다. 단테가 보고서를 들고 일어섰다.
“리퍼의 세력이 빠르게 남하하고 있습니다. 갱신된 정보에 의하면 최종 순위는 10억 5천만 번대. 즉, 인류 대부분이 낙인을 찍었다고 봐야겠죠.”
이루키가 말했다.
“처리할 문제는 크게 네 가지야. 첫째, 제르비스의 울티마를 약화시키는 것. 둘째, 제르비스와 싸우는 것. 셋째, 리퍼의 군대를 막는 것. 넷째, 제르비스의 본체를 찾는 것.”
플루가 말했다.
“첫 번째는 마야 씨를 활용하는 게 어떨까요? 최후의 전쟁에서도 울티마를 이끌었잖아요. 사람들도 그 순간의 느낌을 기억하고 있을 거예요.”
이루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인을 호위할 부대를 편성하죠. 그리고 제르비스 쪽은…… 위저드밖에 없겠군.”
시로네가 손을 들었다.
“내가 위저드랑 함께 싸울게.”
그녀의 정신 상태를 고려했을 때 시로네가 옆에 붙어 주는 게 베스트였다.
“좋아. 두 사람은 제르비스 전담. 다음으로 리퍼의 군대를 막는 것은 타국의 공조가 필요해. 정보부는 포니 국왕님께 이 부분을 각인시켜.”
“오케이.”
단테가 메모했다.
“마지막 네 번째, 제르비스의 본체를 찾는 것. 이건 무조건 성음 씨가 있어야겠지. 어차피 전쟁은 이틀 안에 판가름이 날 거야. 그 안에 전 세계를 뒤져서 제르비스의 본체를 찾아내야 해. 성음 씨, 괜찮겠어요?”
성음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야훼에게 도움이 된다면.”
다른 뜻은 없을 테지만, 에이미가 있는 자리였기에 분위기가 묘했다.
시로네는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서는 위험해. 바깥 세계에서 접속했다면 제르비스와 관련된 문제라는 거야. 몇 명인지, 어떤 능력인지 모르는 이상 1인 수행은 무리야.”
성음은 온화한 미소를 지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누구를 상대로 하든 나는 지지 않을 것이니. 알고 있지 않으냐.”
“내가 갈게.”
에이미가 손을 들었다.
“나 정도면 자격 있지? 파계가 가능한 인원은 굴종의 낙인에 대비해야 하니까.”
단테는 턱을 괴었다.
‘흠, 탐색에 1명을 더 붙인다? 에이미의 능력은 토르미아 전력의 몇 퍼센트를 차지할 정도야. 쉽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기는 한데…….’
보내는 게 맞다.
그의 직감에 결국 이 전투는 제르비스를 찾아야 끝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찬성. 에이미가 붙는 것도 나쁘지 않아. 성음 씨만 괜찮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