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4
시로네의 마법이 독자적이라는 게 좋았고, 그가 남의 아픔을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그들의 가식을 깨부수는 것만이 그녀가 살아가는 유일한 이유였으니까.
“곧 만나게 될 거야.”
마르샤는 기지개를 폈다.
팔찌가 강렬하게 빛나더니 그녀를 절벽 끝으로 날려 보냈다.
두 번째 만남(1)
계곡을 빠져나온 시로네 일행의 몰골은 엉망진창이었다.
물로 세안을 하기는 했지만 찢어진 옷에는 누군가의 것인지 모를 피가 묻어 있었다.
추가 병력이 없다는 건 다행이었다.
계곡에 세운 성이 전략적 요충지라는 것을 생각하면 조금 전 궤멸시킨 40명이 앵무 용병단의 정예일 확률이 높았다.
잔당이 있다고 한들 크게 위협은 되지 않을 터였다.
“이쪽이야.”
에이미는 정확히 방위를 지시했다.
자기상 기억에 의하면 현재 그들은 전투가 시작된 지점으로부터 대략 12킬로미터를 움직였다.
경사의 각도를 고려했을 때 직선으로 변환하면 지도상으로 7킬로미터를 전진한 셈이었다.
홍안을 나침반처럼 사용하는 모습에 테스는 감탄했다.
‘카르미스. 과연 만능이네.’
중턱을 넘자 처음으로 길이 나왔다.
테스가 선두로 나서서 흔적을 확인했다. 흐릿하기는 하지만 분명 마차가 지나간 자국이 남아 있었다.
“여기서부터 놈들의 생활권이야. 한마디로 외성은 뚫었다고 볼 수 있지.”
지친 그들에게는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으나 마음을 놓을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대부분의 병력을 소탕했어도 아직 간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지트는 이 길의 끝에 있을 거야. 유나도 거기에 있겠지. 선택의 여지가 없어.”
그때 테스의 눈썹이 꿈틀했다.
“피해!”
길 옆에 뻗은 울창한 숲속에서 화살보다 빠른 발사체가 날아들었다.
시로네 일행은 이미 자리를 피했으나 폭발의 충격까지 벗어나지는 못했다.
“크윽!”
충격파에 밀린 시로네가 나무둥치에 등을 처박자마자 몸을 날렸다.
수풀에 숨어 확인하니 발사체가 떨어진 자리가 괄하게 불타고 있었다.
“파이어볼?”
아니, 그렇다면 테스보다 빠르게 눈치챘을 터였다.
“시로네! 조심해!”
2차, 3차 공격이 날아들었다.
시로네가 몸을 날리는 것과 동시에 에이미의 시선이 빠르게 움직였다.
‘저곳이다.’
탄도를 계산한 그녀가 숲의 깊은 곳을 향해 플레임 스트라이크를 연달아 시전했다.
“…….”
적이 당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더 이상 추가 공격은 오지 않았다.
테스가 소리쳤다.
“나와! 비겁하게 기습이나 하고!”
수풀이 흔들리며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를 계산했을 때 굉장히 빠른 시점이었다.
“제법이군. 여기까지 온 것도 요행은 아니었어.”
‘누구지?’
키는 리안과 비슷했지만 근력보다 민첩함이 느껴지는 호리호리한 몸매였다. 눈썹이 없는데도 머리를 올백으로 넘긴 자신감, 창백한 인상이 뱀을 닮은 사내였다.
‘아니, 그보다 강하다.’
모두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서로의 눈치를 살핀 끝에 에이미가 물었다.
“정체가 뭐야?”
“앵무 용병단의 부단장. 아가도 프리먼.”
서열 2위의 등장에 시로네 일행은 긴장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목적지가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에이미가 말했다.
“여긴 내가 맡을게. 너희들은 유나를 구해.”
수적인 우위를 두는 것은 전술의 기본이지만 인질이 잡힌 상황에서는 예외였다.
설령 프리먼을 제압한다고 해도 동시적으로 작전을 수행하지 않으면 그들이 원하는 인질 구출은 이룰 수 없을 터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숲 안쪽을 살폈다.
10명의 병력이 은신해 있었다.
더 이상의 정예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계곡에서 만난 적과 비교해도 수준이 떨어지지 않는 듯했다.
‘애초에 두 부대를 운용했던 건가?’
정식 군대가 아닌 이상 용병단이 병과를 2개로 분리한다는 것 또한 대단한 일이었다.
실제로 숲에 있는 자들은 프리먼의 직속 부하들이었다.
전술 운용이 다른 이상 팔코아의 부하들과는 섞일 수 없는 것이다.
어쨌든 부단장과 직속 부하라면 그들에게도 이곳이 최종 관문이라는 뜻이었다.
‘이곳을 뚫는다고 해도 인질은 더 위험해질 거야. 누군가는 지금 빠져나가야 한다.’
시로네가 고민하는 그때 에이미가 프리먼의 손에 쥐인 무기를 가리켰다.
“시로네, 저걸 봐. 건이야. 은신한 놈들도 건을 사용할 테고. 저 남자보다 강하지는 않을 테지만…….”
시로네 또한 학교에서 배운 적이 있었다.
활로 쏘는 마정탄은 화살촉을 교체하지만 건은 온전히 마정탄만 사용하도록 특별 제작된 무기였다.
규격의 폭이 좁기에 화살용 마정탄보다 훨씬 가격이 셌으나 연사가 가능하다는 것은 전투에서 엄청난 차이였다.
디자인을 보아하니 실린더가 회전하는 리볼버 방식이었다.
시로네는 에이미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알았어. 너에게 맡길게.”
적들의 사정거리는 족히 수백 미터가 넘을 것이다.
시로네가 순간 이동으로 거리를 좁힌다고 해도 적들은 더욱 거리를 벌릴 터.
반면에 스나이퍼 모드를 전공한 사람이라면 같은 거리에서 맞불을 놓을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런 유형의 전술을 학습한 사람은 졸업반인 에이미가 유일했다.
“파이어 월로 적들의 길목을 막을 거야. 내가 신호하면, 그사이에 빠져나가.”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서자 리안과 테스도 기동 준비를 끝냈다.
프리먼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던 에이미의 눈에 갑자기 힘이 들어갔다.
“지금이야!”
에이미와 프리먼을 가두는 원형의 불꽃이 지면 위를 질주했다.
이어서 무언가를 시도할 겨를도 없이 화염의 벽이 수 미터나 솟구쳤다.
살이 익어 가는 온도 속에서도 프리먼은 차분하게 불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파이어 월은 화염 마법사의 전술 운용을 다양하게 하는 고등 마법이지만, 정신력 소모는 여타 액티브 마법보다 훨씬 심했다.
3초 이상 파이어 월을 최고 높이로 유지한 에이미가 마법을 해제하자 시로네와 리안, 테스는 어느새 전장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프리먼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3초라.’
짧은 시간이지만 전시에 아군을 대피시키는 용도로는 충분한 시간.
무엇보다 5미터 이상의 벽을 세운다는 건 프로들도 어려운 난이도였다.
“기특하구나, 동료를 위해 희생하다니.”
조금 전보다 창백해진 에이미의 얼굴빛이 그녀의 피로도를 말해 주고 있었다.
“흥, 희생 같은 소리 하네. 너 정도는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보낸 거야.”
“그런가? 꽤나 지친 거 같은데. 미안하지만 이쪽도 사정이 급해서 기다려 줄 수는 없겠군.”
프리먼이 왼쪽 팔을 늘어뜨리자 넓은 소매에서 또 한 자루의 건이 튀어나왔다.
‘더블 건. 역시 이 녀석, 거너야.’
스키마를 운용하는 방식에 따라 다양한 전투 직업군이 있지만 거너는 그중에서도 특이했다.
육체 능력의 대부분을 민첩과 속도에 치중하는 대신 부족한 화력을 마정탄으로 보강하는 퓨전형 전투 방식이었다.
프리먼이 양손에 건을 쥐자 숲의 저편에서도 딸깍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에이미의 눈매가 꿈틀했다.
“…….”
은신한 병사들이 장전하는 소리.
만약 프리먼과 같은 모델을 사용한다면 한 번에 장착되는 마정탄의 개수는 여섯 발, 더블 건을 가정했을 때 열두 발이다.
적의 숫자가 20명이라고 가정했을 때 화력 사이클은 마정탄 이백마흔 발이라는 뜻이었다.
‘심각한데, 이거.’
친구들을 다시 불러야 하나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농담도 받아 줄 사람이 없었다.
프리먼이 건을 겨누었다.
“너희들의 철없는 모험도 여기가 끝이다.”
차가운 살기는 분명 팔코아와 정반대였다.
허세도 쾌락도 아닌, 오직 적을 제거하기 위해 움직이는 거너.
에이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태까지 시로네의 역할이 중요한 실전 상황이 반복되었다면 이번에는 그녀가 가장 자신 있는 전투였다.
“나랑 타기팅을 하겠다고?”
홍안이 붉게 빛나더니 한 줄기의 화염이 에이미를 중심으로 휘감겼다.
“이번에는 상대를 잘못 골랐어.”
***
북쪽 끝의 절벽에서 팔코아는 바다를 바라보며 담배를 뻐끔뻐끔 피워 댔다.
등 뒤에는 머리에 붕대를 감은 부하가 침통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궤멸이라.”
흠칫 놀란 부하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지만 이상한 마법을 쓰는 바람에.”
마법진을 이용해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궤멸이라면 핑계는 아닐 터였다.
팔코아는 고개를 들었다.
“…….”
계곡을 통과했다면 남은 건 프리먼과 재수 없는 그의 부하들이었다.
실력은 인정하지만 지저분한 싸움을 피하는 성향 탓에 늘 자신의 부하들과 충돌하기 일쑤였다.
‘크크, 더러운 건 늘 내 몫이지.’
시켜서 하는 건 아니다.
프리먼이 앵무 용병단에 인생을 걸었다면 팔코아 또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일 뿐.
두 번째 만남(2)
담배를 끈 팔코아가 몸을 돌렸다.
“가서 치료해라.”
“아닙니다. 저도 형님과 함께 싸우겠습니다.”
“돌아가. 부상자 따위, 몇 명이 있든 짐만 될 뿐이야. 애들이나 잘 챙겨.”
부하는 걸음을 멈추었다.
설득이 통하는 리더가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여기서 더 낯간지러운 말을 해 봤자 두들겨 맞는 게 전부일 터.
물론 그런 인간이기에 수년째 그를 따르는 것이지만.
‘들개를 이끄는 건 가장 강한 들개뿐이다.’
부하의 배웅을 받으며 팔코아는 길을 나섰다.
절벽은 올라갈수록 길목이 좁아지고, 시로네 일행이 통과할 수 있는 루트는 그리 많지 않았다.
팔코아는 절벽보다 높은 숲에 세워진 작은 벽돌집을 무심히 쳐다보았다.
저곳에 앵무 용병단의 단장이 있었다.
‘왜 돌아온 거냐?’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다.
정치적 공작에 휘말려 앵무 용병단의 아성이 무너졌을 때 팔코아의 마음속에서도 무언가가 무너진 게 분명했다.
‘다시 해 보겠다고? 그렇게 밟혀 놓고?’
지옥에 떨어져도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가 길 잃은 들개들의 공터로 다시 돌아왔다.
한편으로는 기뻤지만, 또한 자신이 누구인지 더욱 선명해져서 수치심이 밀려들었다.
“우린 망했다고, 멍청한 여자야.”
절벽으로 향하는 요지를 점령한 팔코아는 전방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40명의 부하를 궤멸시킨 놈들이 오고 있다.
피, 피 냄새가 나는 듯했다.
‘빌어먹을.’
떨리는 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벌써 몇 시간째 루프를 씹지 못한 금단현상이 밀려들었다.
온전히 감각에 집중할 수 없었고, 이유 없이 초조했다.
‘어쩔 수 없어. 이 상태로는 못 싸운다.’
혹시나 몰라서 챙긴 루프가 주머니에 들어 있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뿌리 한 움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올라오는 냄새만으로도 정신이 핑 돌아 버릴 듯했다.
“으…….”
팔코아는 루프를 입으로 가져다 댔다. 입안에 고인 침이 넘쳐흐를 정도였다.
반쯤 눈이 돌아간 상태로 그것을 삼키려는 그때, 환청 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약 끊어.
클레이 마르샤.
타락한 모든 자들의 어머니.
“……염병.”
루프를 땅에 패대기친 팔코아는 발로 비벼서 완전히 짓뭉갰다.
그럼에도 정신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