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3
세리엘에게 전말을 들은 시로네는 황당했다.
블랙 매지셔라는 불량 서클이 존재한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에이미가 자신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것이 더 충격이었다.
“결국 나 때문에 갔다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요?”
“나도 몰라! 에이미가 기다리라고 했단 말이야! 도대체 왜 네가 여기 있는 거나고!”
시로네는 에이미의 생각을 읽었다.
‘혼자서 해결하려는 이유는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겠지. 1시간의 유예라는 건 일종의 보험.’
세리엘을 남겨 둔 건 탁월한 판단이었다.
“저도 가 봐야겠어요. 선배님은 에이미 선배님 말대로 약속 시간까지 기다려 주세요.”
시로네의 판단도 에이미와 같았다.
자신의 비밀이 밝혀지는 건 상관없지만, 남의 비밀을 걸고 도움을 요청할 수는 없었다.
약속 시간은 30분이나 남았으나 실전 훈련을 하는 14훈련장은 깊은 산속에 있었다.
쉬지 않고 뛰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그때 갑자기 몸이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세리엘이 시로네를 두 팔로 끌어안고 날고 있었다.
“달려서 언제 가려고 그래? 차라리 나도 같이 가.”
두 사람의 몸이 빛에 휩싸이고, 마법사의 기본인 단거리 순간 이동이 시전되었다.
펑! 펑! 펑! 펑!
10미터 간격으로 섬광이 점멸하며 파공음이 터지자 학생들이 위를 올려다보았다.
“뭐야? 누가…….”
충돌 사고가 일어날 수 있기에 교내 사용 금지였으나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5분도 지나지 않아 산의 초입에 도착한 두 사람은 그때부터 구보로 산을 탔다.
순간 이동은 빠른 속도만큼이나 위험도가 높아서, 경사가 심하고 엄폐물이 많은 산에서 급하게 운용하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헐레벌떡 산을 오른 두 사람은 6시가 되기 전에 14훈련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에이미는 없었고, 블랙 매지셔는커녕 인기척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에이미! 에이미! 어떻게 된 거야? 왜 여기 없지?”
“다른 곳으로 데려간 게 아닐까요? 쪽지에 장소가 노출되었으니 선생님에게 보고할 가능성을 배제하진 않았을 거예요. 우리가 속은 것일 수도 있어요.”
“그럼 어떡해, 에이미는?”
블랙 매지셔의 치밀함을 깨달은 시로네는 더 이상 상황을 따지지 않았다.
“지금 산을 내려가서 선생님에게 전부 말하세요. 제가 없으면 훨씬 빠를 거예요.”
“하, 하지만 에이미가 7시까지 무조건 기다리라고 했는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했어.”
“괜찮아요. 그 사정이 저 때문이니까. 제가 도와주면 아무 일도 없으니 빨리 가세요.”
세리엘의 얼굴이 멍해졌다.
에이미의 그 절박한 표정이 시로네 때문이었단 말인가?
“너희들 대체 무슨 사이야? 내가 모르는 게 뭐야? 정말로 사귀는 거야?”
공식적으로는 시로네가 차인 셈이지만 그것조차 연막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시간이 없어요. 더 늦으면 위험해져요.”
시로네의 말에 세리엘도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알았어. 금방 갔다 올 테니까, 너도 돌아다니지 말고 여기 있어.”
세리엘이 산을 내려가자 시로네는 지그시 눈을 감고 스피릿 존을 펼쳤다.
귀족과 달리 평생을 산에서 보낸 그였기에 울창한 숲은 오히려 친숙했다.
게다가 직경 40미터까지 감각이 확장되었으니 흔적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여기다.’
누군가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하지만 이게 전부야. 인간의 보폭이 10미터를 넘지는 않으니, 결국 하늘로 움직였다는 건데…….’
난감하게 주위를 느끼고 있는 그때 하늘 저편에서 파공음이 들렸다.
‘북쪽!’
시로네의 고개가 빠르게 돌아갔다.
차가운 소년과 뜨거운 소녀(4)
에이미의 얼굴에 시커먼 연기가 올라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녀의 피부에서 3센티미터 떨어진 공기층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였다.
대기를 압축시켜 순간적인 국소 장벽을 만드는 에어 실드라는 마법이었다.
“약속 장소를 바꾸는 순간 기습이라니. 치졸한 건 여전하네.”
착지한 자세 그대로 마법을 시전한 에이미가 천천히 무릎을 펴며 말했다.
후방에는 그녀에게 쪽지를 건넸던 남자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서 있었다.
“흐흐, 나름대로 너한테는 쌓인 게 많거든. 순순히 당해 줬으면 서로 좋았을 텐데 말이야.”
“생긴 것만큼 더러운 소리는 그만하고, 시로네 어디 있어?”
말이 끝나는 순간 에이미를 중심으로 하늘에서 5명의 인원이 착지했다.
그중 블랙 매지셔의 리더인 제이크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정말로 혼자 오다니, 이거 의외인데? 에이미에게도 정말 소중한 사람이 생긴 건가?”
“무슨 헛소리야? 너희들 따위는 나 혼자서도 충분해. 시로네 어디 있냐니까?”
“하하! 그 비실비실한 놈은 당연히 도서관에 가 있겠지. 자신을 구하러 온 여자가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말이야. 멍청한 놈.”
그제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나 에이미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질이 없다면 제이크와 수하들 정도는 자신의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다.
“날 불러냈다는 건 죽을 각오를 했다는 거겠지?”
“하하! 무서운데? 하지만 쉽게 될까? 우리가 골로 보낸 놈들도 처음에는 다 너 같았지. 학교 성적만 믿고 우리를 무시했지만 실전은…….”
에이미는 스피릿 존에 들어갔다.
“넌 학습 능력도 없냐?”
전날의 상황을 떠올린 제이크가 즉각 반응했으나 이번에도 선공을 놓친 대가는 컸다.
에이미는 제이크를 무시하고 후미를 지키고 있는 블랙 매지셔의 회원들을 노렸다.
그녀의 장기인 파이어 스트라이크의 연사에 한 남자의 옷에 불이 붙었다.
“으아아! 뜨, 뜨거워!”
회원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잃을 게 많은 고급반 1등이 실전 마법을 쓸 줄은 몰랐던 것이다.
‘진짜로 했어. 저 여자도 제정신이 아니군.’
마법 대응력이 있는 마법학교 학생이라도 불 계열은 굉장히 위험했다.
제이크가 소리쳤다.
“불을 꺼! 나머지는 움직인다!”
흩어지는 블랙 매지셔의 동선을 따라 에이미의 스피릿 존이 복잡하게 회전했다.
훈련과 달리 인간의 움직임은 예측 불가능이라 역회전이 걸릴 때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럼에도 정확도는 떨어지지 않았고 또다시 1명의 남자가 불에 휩싸였다.
“으아아아!”
제이크는 이를 악물었다.
‘확실히 고급반 1등답군. 하지만 타깃형은 다수를 상대로 불리해. 게다가…….’
정석적인 십자가 형태의 스피릿 존을 떠올린 제이크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직 회전에 약하지.’
같은 클래스 포에서 수업을 받고 있기에 서로의 장기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네가 불이면, 나는 바람이다.’
제이크가 팔을 휘두르자 공기가 날카롭게 압축되더니 지상으로 쇄도했다.
‘윈드 커터!’
에이미의 스피릿 존은 납작한 십자가 형태였기에 아직 접근조차 모를 터였다.
‘끝났다.’
그녀의 1미터 앞까지 마법이 도달했을 무렵 제이크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 그가 쾌재를 부르기 직전, 에이미의 상체가 엄청난 속도로 뒤틀렸다.
윈드 커터가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그녀의 붉은 머릿결을 살짝 잘라 냈다.
제이크는 경악했다.
“말도 안 돼! 어떻게 그 거리에서……!”
“스키마라는 거다, 자식아.”
여유를 되찾은 에이미는 십자가 형태의 스피릿 존을 완전히 수직으로 세웠다.
지대공의 각도로 변형된 스피릿 존을 느낀 제이크는 황급히 몸을 틀었다.
하지만 허공에서는 방향 전환이 느렸고, 에이미의 타기팅 속도는 고급반 최고였다.
‘플레임 스트라이크!’
포탄 크기의 불덩어리가 쏘아지자 제이크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제길!”
에어 계열의 상위 마법인 에어 슈트로 전신을 감싸는 순간 불덩어리가 직격했다.
펑! 하는 굉음을 내며 추락한 제이크가 곧바로 몸을 벌떡 일으켜 세웠다.
“으아아! 짜증 나는 계집애!”
농밀한 화염이 제이크의 전신을 감싸고 있는 공기층을 불태우고 있었다.
화상을 입기 직전 에어 슈트를 폭발시키자 펑 하고 불꽃이 떨어져 나갔다.
그의 몸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죽여 버리겠다.”
“흥! 고작 그 정도 실력으로 날 이기려고 했니? 졸업은커녕 낙제하기 딱 좋은 수준이네. 허튼 곳에 정신을 파니까 평생 그 모양 그 꼴인 거야.”
‘카르미스 가문.’
무엇을 하든 예술이 된다는 천재의 가문에서도 유독 그녀의 재능은 탁월했다.
‘흐흐, 그렇단 말이지.’
제이크가 가장 좋아하는 먹잇감이었다.
“과연 그럴까? 자신만만한 것도 여기까지다.”
단순히 허세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일원들이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윽!”
에이미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마치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스피릿 존이 깨졌다.
“……안티매직?”
“하하하! 놀랐나? 이게 바로 블랙 매지셔의 장기다. 여태까지 난다 긴다 하는 놈들도 전부 여기에 당해 집으로 돌아갔지. 너도 이제 끝장이야.”
“치졸한 자식.”
교칙으로 금지된 마법이지만 선을 넘기만 하면 학생 수준에서는 굉장히 위험했다.
‘버텨야 해.’
홍안을 불태우며 스피릿 존으로 들어갔으나 여지없이 안티매직이 정신을 강타했다.
마치 기계에 머리가 끼인 채로 정신없이 흔들리는 기분이었고, 그녀의 상태는 스피릿 존이 일그러지는 형태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흐윽!”
제이크가 승자의 미소를 지었다.
“역시 독하군. 하지만 오래 버틸수록 더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미쳐 버릴 수도 있어.”
폐인이 된다는 뜻이었다.
“시, 시끄러. 누가 너 같은 녀석한테…….”
여태까지 이런 식으로 학생을 협박했다는 것을 깨달은 에이미는 악착같이 버텼다.
“그래? 뭐, 상관없어. 오히려 미치는 게 더 좋지. 내가 누군지도 몰라볼 테니까.”
에이미가 고개를 쳐들었다.
“할 수 있으면 해 봐. 하지만 너희들이 무사할 것이란 생각은 절대로 하지 마라.”
“…….”
솔직히 이번에는 제이크도 살이 떨렸다. 여기까지 버틴 건 에이미가 처음이었다.
‘독한 년.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살짝 겁이 나다가도 얼마 전 도서관에서 당한 일을 떠올리면 피가 거꾸로 솟았다.
무엇보다 블랙 매지셔의 수장으로서 회원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좋아, 누가 이기나 해 보자. 얘들아! 부숴 버려!”
저마다 심경은 복잡했지만 함께한다는 생각이 죄책감을 떨어뜨렸다.
회원들이 이를 악물고 안티매직을 시전하려는 그때 숲에서 소리가 들렸다.
“기다려, 이 나쁜 자식들아!”
가뜩이나 긴장된 상황에 기습처럼 소리가 들리자 회원들은 화들짝 놀랐다.
“뭐야, 저 녀석은?”
시로네가 주먹을 쥐고 씩씩거리고 있었다.
“너……?”
에이미의 눈이 충격을 받은 듯 흔들리고, 이어서 제이크가 비웃음을 지었다.
“드디어 왕자님이 오셨군. 그런데 이걸 어쩌냐? 죽도록 얻어터지는 왕자가 될 텐데.”
“선배님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글쎄, 뭘 하려고 했을까? 직접 물어보는 게 어때?”
에이미가 소리쳤다.
“이 멍청아! 여길 혼자 오면 어떡해!”
그녀가 이 정도로 밀릴 줄은 시로네도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미 선생님에게 보고가 들어갔을 터, 시간을 끄는 게 관건이었다.
숲 쪽에 떨어져 있는 목검만 한 나뭇가지를 집어 든 시로네가 소리쳤다.
“선배님을 풀어 줘! 안 그러면 가만두지 않겠어!”
“푸하하하! 지금 들었냐? 가만두지 않겠다고? 너, 우리가 누군지 알아?”
조롱 섞인 웃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로네는 그들에게 돌진했다.
검술 대결에서 리안도 이겨 본 솜씨였으니 스피릿 존을 이용해서 시간을 끌다 보면 선생님이 도착하리라는 계산이었다.
“이야아아!”
제이크가 옆으로 몸을 틀며 말했다.
“얘들아, 온단다. 문 열어 드려라.”
분명 육탄 돌격에 취약할 텐데도 블랙 매지셔는 움직이지 않았다. 오히려 웃음살을 볼록이며 빨리 들어와 주기를 바라는 표정이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그때, 시로네는 망치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크윽!”
“바보야! 스피릿 존을 없애! 안티매직이란 말이야!”
‘안티매직?’
시로네는 비로소 깨달았다, 클래스 포의 1등인 그녀가 이런 놈들에게 붙잡힌 이유를.
“크으으으!”
5명이 동시에 일으키는 공명 파동이 정신을 잔혹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시로네는 이를 강하게 깨물었다.
‘의식을 잃으면 안 돼.’
자신마저 여기서 쓰러지면 이제 에이미를 지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