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73
“뭐야? 얼굴은 왜 붉히고 그래?”
“그, 그러는 너도 조금 빨개진 거 같은데.”
에이미는 확실히 깨달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었다.
계속 이런 분위기를 이어 가야 한다면 차라리 지옥에서 이부자리를 펴고 자는 편이 나을 듯했다.
“좋아! 우리 까놓고 말하자. 애들도 아니고 이럴 필요 없잖아? 현재 우리는 여관에서 함께 밤을 보내게 되었고 옆에서는 무언가 하는 소리가 들려. 게다가 공교롭게도 침대마저 하나야. 이건 아주 이상한 상황이지. 하지만 이제 됐어. 이상한 상황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더 이상은 이상한 상황이 아니라고. 인정? 자, 이제 피곤하니까 자자.”
시로네는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기도 했다.
감정이라는 것을 어떻게 무 자르듯 자를 수 있단 말인가?
“정말 괜찮겠어? 나도 남자란 말이야.”
“알아. 하지만 아무런 일도 없을 거잖아?”
물론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심 자존심이 상한 시로네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소심한 항변에 에이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리고 집에서 온갖 상상을 하고 있을 가족을 떠올렸다.
‘하여튼 아빠라는 사람이…….’
이런 절묘한 트랩이 설치된 여관에서 남자와 합방을 하도록 만들다니.
보통 귀족의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는 카르미스 가문은 연애에 있어서도 개방적인 가풍을 자랑했다.
물론 아무리 개방적이라도 평민을 받아들일지는 미지수였다.
그럼에도 이런 결단까지 내렸다는 것은 그만큼 시로네가 마음에 든다는 뜻이었다.
어쨌거나 시로네와의 관계에서 앞으로도 가문의 눈치를 볼 필요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자 조금은 긴장감이 풀렸다.
‘그러고 보면, 참 대단해.’
카르미스 가문의 홍안은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상대의 기질을 파악하는 데 뛰어나다.
하지만 그런 만큼 어지간한 재능은 눈에 차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시로네는 깐깐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을 만큼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비록 자신이 탈락한 대가이기도 하지만, 1년 전의 약속대로 졸업반이라는 같은 선상에 서게 되었다.
1년.
고작 1년 만에 그 거대한 격차를 따라잡은 것이다.
하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설령 시로네가 인생을 처음으로 되돌려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그는 결국 이 자리에 왔을 것이기에.
“솔직히…… 아까 너한테 화난 게 맞아. 단테가 물었을 때 내 편이 되어 주지 않아서 서운했어.”
시로네는 고개를 돌려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어. 조크레가 합격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도, 솔직히 너무 부러웠어. 차라리 나도 전학을 갔으면 어땠을까 하고. 실력도 없는 주제에 괜한 고집을 부렸나 싶기도 하고. 어쩌면 나는 명문 학교에 다닐 만한 재능이 아닌 건지도 몰라.”
“에이미,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알아. 부정적으로 생각하면 한도 끝도 없다는 걸. 그래서 너에게 더 발끈했던 것 같아. 내가 틀렸다는 걸 인정하는 게 무서웠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알게 됐잖아.”
“맞아. 단테의 분석은 정확하지. 그래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하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어. 스타일이 생긴다고 내가 졸업할 수 있을지.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어.”
‘에이미…….’
이래서 패배가 무서운 것이다.
졸업반은 마법학교의 최정상에 위치한 자리다.
정점에서 추락하는 기분은 고급반들이 진급 시험에 탈락했을 때의 기분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첫 번째 졸업 시험에 탈락한 사람이 두 번째 졸업 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평균보다 낮은 것도 이런 이유였다.
한겨울의 밤 (5)
시로네는 에이미의 손을 강하게 쥐었다.
“에이미, 넌 강해. 내가 아는 누구보다. 반드시 해법을 찾아낼 거야. 지금까지도 그래 왔으니까.”
에이미는 시로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시선이 충돌하는 순간 몸을 타고 전기가 흐르는 듯했다.
달빛의 풍경이, 벽을 타고 전해지는 소리가, 손을 통해 전해지는 시로네의 촉감이, 그녀의 심장을 뛰게 했다.
조금 전에 눈만 마주쳐도 몸서리를 쳤던 일들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뜨거운 용기가 샘솟았다.
‘시로네…….’
에이미는 선택을 해야 했다.
또다시 지옥과도 같은 1년이란 시간이 주어졌다.
이미 한 번의 패배를 경험한 그녀에게 신경 써야 할 것은 오직 마법의 성취뿐이었다.
하지만 태어나서 이토록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고, 기대고 싶은 적은 처음이었다.
혼자서 이겨 낼 힘도, 자신감도 없었다.
침묵이 흐르는 이 순간에도 시로네는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야 한다.
만약 여기서마저 시선을 외면하면 시로네는 자신의 곁을 떠나 버리고 말 터였다.
시로네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받아들여야 한다.
에이미는 각오를 끝마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주저함이 물밀듯이 차올랐다.
이기적인 생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차갑게 모르는 척해도, 예전처럼 옆에 남아 있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1년만…… 1년만 더 나에게 시간을 주면 안 돼? 내가 신중히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그때까지만 지금처럼 있어 주면 안 돼?’
에이미는 천천히 손을 빼냈다. 만약 이것으로 그가 실망한다면 결코 빼지 못했을 손이었다.
에이미는 마음속에 조소가 치밀었다.
‘뭐? 각오를 끝마쳤다고? 거짓말쟁이.’
사실은 알고 있었다.
시로네는 기다려 주리라는 것을.
이기적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었다. 졸업 시험과 시로네, 그 어느 것도 에이미는 포기할 수 없었다.
“고마워, 시로네.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말을 내뱉은 에이미는 어딘가로 숨고 싶었다.
고르고 고른 말이라는 게 이토록 성의 없는 대답이라니.
하지만 시로네는 에이미가 기대했던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정하게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우리 열심히 하자.”
시로네는 에이미의 어깨를 강하게 쥐어 주고는 자리로 돌아가 침낭을 바닥에 깔았다.
에이미는 안도했다. 마치 조금 전의 일이 벌어지지 않았던 과거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하지만 홍안에 담긴 조금 전 시로네의 눈빛은 엄연히 그것이 현실이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었다.
언제까지고 자신을 기다려 줄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경멸과 시로네를 향한 미안한 감정이, 에이미의 눈동자 안에서 헝클어지고 있었다.
***
자정이 넘은 시각.
조크레 일행은 얼큰하게 취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성에 차지 않아 상점에서 큰 술병과 주전부리를 사 가지고 성곽 주변의 공터에 자리를 잡았다.
조크레가 독한 위스키병을 따서 루드반스와 비비안의 앞에 놓인 잔에 따랐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잔을 가득 채운 그는 건배조차 하지 않고 꿀떡꿀떡 술을 넘겼다.
“크, 되게 독하네. 뭐 해? 안 마실 거야?”
루드반스가 걱정스럽게 물었다.
“너무 많이 마시는 거 아냐? 내일 어쩌려고 그래?”
“쳇, 속 쓰리면 숙소에나 처박혀 있지 뭐.”
술잔에 입술을 적신 비비안이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아, 막상 졸업해도 별거 없네. 졸업하기 전에는 진짜 엄청 재밌게 놀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남자도 안 꼬이고 말이야.”
조크레가 엄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우리도 남자잖아.”
“어이구, 아서라. 그런 얼굴로 나에게 들이대려고?”
“하하! 비비안, 너도 예쁜 편은 아니라고.”
루드반스가 동의했다.
“그래, 예쁘다는 건 아까 그 에이미 정도는 되어야지.”
조크레의 인상이 잔뜩 구겨졌다.
“젠장! 또 생각났어! 감히 우리를 무시해? 자기들은 아직 졸업도 못 한 주제에!”
“그런데 너, 에이미랑 무슨 일 있었던 거냐? 굳이 스케이트장까지 쫓아갈 필요는 없었잖아. 그런 사소한 행동들이 놈들에게 얕보이는 거라고.”
그러자 비비안도 궁금하다는 듯 대답을 기다렸다.
확실히 스케이트장에서의 조크레는 평소보다 흥분한 감이 있었다.
조크레는 열세 살 때의 일을 무덤까지 가져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술이 들어가자 입이 근질거렸다.
사실 남이 듣기에는 별것도 아닌 일이었지만 당사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아인스로 전학 가기 직전에 에이미에게 고백했어.”
예상치 못한 말에 비비안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진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싫대.”
“싫, 싫어?”
“그래! 내가 싫대! 마음은 고맙지만, 으로 시작하는 말도 아니고, 너는 좋은 아이지만, 도 아니었어. 심지어 따로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서, 라는 거짓말도 아니었다고! 그냥 싫대!”
“어머, 진짜 못됐다!”
“거만하군.”
비비안과 루드반스가 한마디씩 던졌다.
조크레는 당시를 회상하며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가장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 당시에 내가 이렇게 대답을 했다는 거야. ‘그래, 미안해.’라고 말이야. 그때의 굴욕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야.”
비비안이 혀를 끌끌 찼다.
“하여튼 얼굴 반반한 애들은 순 자기밖에 모른다니까? 야, 야! 차라리 잘됐어. 그까짓 애가 대수야? 우리는 마법사가 되었잖아. 조크레! 네가 이긴 거야! 자, 자! 마셔.”
비비안이 따라 주는 술을 조크레는 통째로 넘겼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듯하고 배 속에서는 불이 솟구쳤다.
하지만 기분은 괜찮았다. 그래도 역시나 의지할 사람은 친구들뿐인 모양이었다.
명문 학교가 아니면 어떠한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만났으니 후회도 회한도 없었다.
조크레 일행은 조크레의 처절했던 과거사를 안줏거리로 삼아 연거푸 술잔을 돌렸다.
그러자 이제는 세상이 돌기 시작했다.
겨울바람이 귀곡성을 내며 설원 위를 지나갔다.
어느새 아무도 말을 꺼내지 않았다.
모두 알고 있는 것이다, 어떤 위로를 건네도 결국 진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조크레는 에이미를 이길 수 없었다.
비비안은 허리를 젖히며 땅을 짚었다.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는 이미 풀려 있었다.
열기 가득한 숨이 토해졌다.
“사실 그렇지 뭐. 알페아스 마법학교라면 왕국 5대 명문이고, 졸업만 하면 최소한 공인 기관에는 취직할 수 있으니까.”
조크레와 루드반스는 침묵으로 동의했다.
마법사가 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직장을 구하는 건 아니다. 귀족의 서열이나 인맥도 무시할 수 없지만, 실력 본위의 사회인 만큼 출신에 따라 대우는 극명하다.
마법사회에서 일하는 누구라도 명문과 일반 학교의 경쟁력이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대우가 다른 건 당연한 일이었다.
루드반스가 말했다.
“어쨌든 우리는 마법학교를 졸업해서 마법사가 되었잖아. 그것도 대단한 거야. 학교도 졸업 못 하고 마법 하나 배웠다고 설치는 마법사들도 세상에 널리고 널렸어.”
학교를 졸업하든 길드에 가입하든 발급받는 자격증은 비공인이라 별다른 차이는 없다.
그럼에도 학생들이 학교에 목을 매는 이유는, 자격증의 출신 칸에 학교명 한 줄을 새기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출신 칸에 길드 이름이 새겨진 마법사들이라면 조크레 일행이 우습게 해 볼 수 있을 정도로 수준이 떨어졌다.
하지만 그런 사실이 위로가 되지는 않았다.
학교 출신의 위에는 명문 학교 출신이 있다. 그리고 그들의 지상 과제는 공인 마법사 자격증이었다.
길드의 마법사들도 마법으로 돈을 벌기에 프로로 취급해 주지만, 왕국에서 마법사로 인정하는 선은 어디까지나 공인 자격증의 취득 여부였다.
하지만 공인 마법사는 아무나 딸 수 있는 게 아니다.
왕국 5대 고시 중의 하나라 경쟁률이 어마어마할뿐더러, 전국의 실력 있는 마법사들은 전부 모이기 때문이다.
명문 마법학교에 입학, 1년마다 진급, 졸업 시험에 합격, 공인 마법사 시험 응시 그리고 합격. 이 정도 코스는 밟아 줘야 마법사회에서 엘리트 취급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니 출발 지점부터 다른 조크레 일행이 고작 길드 마법사보다 위라고 시시덕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조크레가 술을 병째로 들고 퍼마시며 소리쳤다.
“젠장! 남들이 길드에서 자격증을 따든 말든 우리가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직장에 들어가면 전부 마법사인데. 게다가 우리 상관은 명문 학교 출신일 거고. 단테를 봐. 왕립 마법학교에 다닐 때부터 프로 마법사들을 깨부수고 다녔다고.”
“하지만 그건 학술지 투고란에 적힌 가십일 뿐이잖아?”
조크레의 혀가 점차 꼬부라졌다.
“알 게 뭐야. 어차피 똑같아. 우린 왕국 5대 명문 애들하고 이력서 경쟁을 해야 해. 협회 주요 기관에서 우리를 뽑겠어? 게다가 우리는 최고 귀족도 아니잖아. 결국 다른 놈들 따까리나 하면서 9급이 되고, 개처럼 일해서 8급이 되고, 그렇게 10년 정도 지나면? 이미 명문 학교 출신들은 전부 6급이 돼서 관리자 자리에 앉아 있을걸.”
취중에 막 나오는 말이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결국 현실을 수긍한 비비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게다가 명문 학교도 끝이 아니야. 거기에서도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는 애들은 2~3년 안에 6급에 오르더라. 우리더러 대체 어쩌라는 거야?”
조크레가 연거푸 삿대질을 하며 말했다.
“더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 그런 천재들이 결국 교사가 돼서 명문 학교에 부임한다? 재능의 세습이지. 천재 교사가 가르치니까 천재가 찾아오고. 한마디로 우리는 거기에 끼어들 엄두조차 낼 수 없다고.”
조크레의 말에 조금씩 비약이 섞이기 시작했지만 전체적으로 틀린 말은 아니었다.
물론 일반 학교 출신 중에서도 마법사회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자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런 특이점들은 평균이라는 마법 앞에서 존재 의미를 잃고 마는 법이다.
일반 학교 출신은 명문 학교 출신보다 실력이 떨어진다.
이것만이 세상이 인정하는 정설이었다.
조크레 일행의 입에서 튀어나온 비관적인 이야기들은 바람결에도 떠나지 않고 계속해서 술자리 주위를 맴돌았다.
학창 시절에는 마법사만 되면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마법사가 되고 나자 간절했던 마음은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별을 바라보던 비비안이 문득 떠오른 생각을 말했다.
“혹시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어? 마치 이 세상이 한 편의 연극이 아닐까 하고 말이야. 우리는 인생을 살고, 그런 우리를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는 거야.”
조크레와 루드반스는 비비안을 돌아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나는 절대로 주인공은 아닐 거야. 관객들은 결코 내 성공을 바라지 않겠지. 아마 관심조차 없을 거야. 빨리 퇴장이나 해, 아니, 어쩌면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조크레는 비비안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어릴 때부터 감수성이 예민한 친구였다. 하지만 정말로 가슴이 아픈 것은, 지금의 발언이 단지 취기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말이 정답일지도 모른다.
“무슨 그런 고민을 해. 인생은 연극이 아니야. 아무도 모르는 거라고. 그리고 누구도 너를 함부로 생각하지 않아.”
“하지만 그렇잖아. 시로네, 단테, 에이미. 그런 애들은 우리가 얼마나 그들처럼 되고 싶었는지 알까? 모르겠지. 그냥 자기들끼리만 어울리잖아. 우리가 끼어들 자리는 애초부터 없었던 건지도 몰라. 마치 연극의 엑스트라처럼.”
술자리의 분위기가 극도로 우울해졌다.
특히나 조크레는 비비안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자신이 한심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젠장! 뭐야! 이거 졸업 축하 여행이잖아! 우린 합격했어! 마법사가 됐다고! 우리가 이긴 거란 말이야! 하필이면 재수 없는 자식들을 만나 가지고!”
조크레는 술병의 주둥아리를 입에 꽂고 나발을 불었다. 독한 술이 남김없이 목구멍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