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284
“나를 이긴다고 해서 테스가 너를 선택할 것 같아?”
“그런 건 상관없어. 네가 떠나는 것과 테스가 나를 선택하는 건 별개지. 나는 너의 각오를 묻고 있는 거야.”
리안은 대답을 미루고 테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레슬링은 고딤과 달랐다. 힘이 아닌 유연성과 균형으로 상대의 호흡을 흐트러뜨리고 있었다.
테스의 재능은 확실히 진짜였다. 반면에 자신은 재능도 없고 미래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어떤 존재인지를 고민하는 건 사치일 뿐이었다.
“사람의 마음을 내기에 걸지는 않아.”
“흥. 불리하니까 꼬리를 빼는 건가?”
“하지만 이렇게는 말해주지.”
바위어를 노려보는 리안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번 대결에서 네가 날 죽인다고 해도, 절대로 원망하지 않으마.”
리안의 전의는 진심이었다. 하지만 바위어도 타고난 강골인데다가 군인체질이라 두려움보다는 호전성이 먼저 들었다.
“하하! 큰소리치는데? 내가 못할 줄 알아?”
그때 훈련장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리안과 바위어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테스가 고딤의 팔을 붙잡은 채로 땅바닥에 매다 꽂은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고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얼굴을 붉히며 앉았다.
“내가 졌다. 좋은 승부였다.”
“후우. 너도 잘했어. 사실 마지막은 도박이었는데.”
상대가 밀고 들어오는 힘을 역이용해서 시도한 엎어치기. 판단을 잘못했다면 꼼짝없이 뒤를 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감각 계열의 스키마인 테스가 상대의 중심이동을 포착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고딤도 그녀의 말이 패자를 위한 배려라는 것을 알고 순순히 패배를 받아들였다.
리안에게 돌아온 테스가 양손으로 브이 자를 만들었다.
“헤헤. 나는 끝났다. 이제부터 휴가다.”
그런데 분위기가 사뭇 전과 달랐다. 리안의 표정은 더욱 차가웠고 바위어의 눈에도 살기가 이글거렸다. 자리를 비운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
“리안. 표정이 왜 그래? 바위어, 어떻게 된 거야?”
바위어가 어깨를 으쓱하며 능청을 떨었다.
“그걸 나에게 물어봐서 뭐해?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테스는 의심을 풀지 않은 눈초리로 바위어를 쳐다보다가 할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거짓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리안은 물어봐도 대답해주지 않을 터였다.
15조의 경기가 시작되자 17조인 리안이 몸을 풀기 위해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뒤를 따르는 척 하던 바위어가 테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테스. 이제 곧 알게 될 거야. 리안이 얼마나 엉터리인지. 그리고 내가 얼마나 멋진 남자인지도.”
“무슨 헛소리야? 네가 무슨 짓을 해도 내 눈에 멋있게 보일 날은 오지 않아.”
“너무 하는군. 그래도 친구인데. 그거 알아? 조금 전에 리안하고 내기를 했어.”
“내기? 무슨 내기?”
“이번 대결에서 진 쪽이 너를 포기하기로 했지. 미리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테스가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저었다.
“바위어, 리안은 절대로 내기에 다른 사람을 걸지 않아. 그게 너하고 리안이 다른 점이야.”
바위어는 테스의 맹목적인 신뢰가 못마땅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또한 이것이야말로 그가 사교계에서 숱한 염문을 뿌릴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과연 그럴까? 일단 지켜보기나 하라고.”
어쨌거나 대결이 성사되었으니 상관없었다.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리안이 비참하게 당하는 꼴을 본다면 테스도 부끄럽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런 점에서 레슬링 항목은 아주 좋았다. 시간을 들여 천천히 상대를 괴롭힐 수 있으니까.
17조의 차례가 돌아오자 리안과 바위어는 경기장에 마주섰다. 막상 벗은 몸으로 비교하자 체구의 차이가 거의 1.5배에 달했다. 리안 또한 또래에 비해 결코 체격이 작은 편이 아닌데도 바위어의 벌크 업은 정말이지 무시무시해서 어른과 아이의 대결처럼 보였다.
생도들은 두 사람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마치 야생에서만 볼 수 있는 잔인한 섭식을 기대하는 사람처럼.
리안은 잡아먹히게 될 것이다. 그만큼 스키마를 구사하지 못하는 단점은 모든 면에서 치명적이었다.
리안이 인정을 받는 이유는 육체능력만으로 진도를 따라오고 있기 때문이지 실력으로는 결코 최고가 아니었다.
바위어가 두꺼운 목을 꺾으며 말했다.
“그럼 시작해볼까? 각오는 됐겠지?”
“얼마든지. 기왕 이렇게 됐으니 좋은 대결을 펼치자.”
리안과 바위어가 레슬링 자세를 취하자 쿠안도 필기를 접어두고 그들의 대결에 주목했다.
시작 신호가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두 사람이 충돌했다.
몸이 닿은 이후부터는 무엇을 하든 자유. 하지만 바위어는 머리부터 밀고 들어가서 시작과 동시에 충격을 가했다.
빡 소리가 났다. 두개골이 부서졌을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게 하는 소리였다.
쿠안은 반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밀착을 위해 충돌이 일어나는 건 흔한 경우였다.
리안도 대비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머리끼리 부딪히는 순간 눈앞에 스파크가 터지면서 상체가 젖혀졌다.
이런 식의 충돌에서는 결국 중량이 전부다. 바위어가 필사적으로 벌크 업을 한 이유였다.
리안이 비틀거리자 바위어는 곧바로 따라붙어 리안의 뒷목을 움켜쥐었다. 리안도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같은 동작을 취했다. 마치 두 마리의 황소가 서로 뿔을 겨누고 서 있는 형세였다. 무호흡 상태에서 서로의 얼굴은 붉어졌다. 점차 리안의 다리가 땅을 끌며 밀려가기 시작했다. 이번에도 결정지은 건 중량이었다.
“흐으으으으…….”
바위어의 이빨 사이로 숨이 새어나왔다. 소문은 들었지만 막상 상대해보니 충격이었다. 리안은 스키마를 구사하지 못한다. 애초에 첫 번째 충돌에서 나가 떨어졌어야 정상이었다.
신적초월 (5)
‘건방진 자식……!’
바위어는 기술을 시도했다. 리안의 몸을 팔로 엮어서 중심을 흐트러뜨리려고 했다. 하지만 리안도 똑같이 팔을 휘둘러 기술을 방해했다.
짜증난 바위어는 리안을 밀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부딪혀왔다. 빡 하고 두 번째 박치기가 가해졌다. 이번에는 리안도 현기증이 일어났다.
마침내 태클의 기회가 생기자 바위어는 리안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돌진했다. 주춤주춤 물러서는 리안의 다리를 걸자 허리가 열렸다. 이대로 찍어 누르면 끝이었다.
“크윽!”
리안은 가까스로 몸을 뒤틀어 빠져나왔다. 아직도 정신이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바위어는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돌진했다. 두 번이나 낭패를 당한 리안은 본능적으로 머리를 먼저 내밀어 카운터를 날렸다. 머릿속이 번쩍했으나 첫 번째와 두 번째만큼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이마를 맞댄 상태에서 눈을 희번득 치켜떴다. 똑같이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바위어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중장보병을 지망하는 그에게 근력이란 검술만큼이나 중요하다. 여태까지 레슬링에서는 져본 역사가 없는 그를 여기까지 몰아붙인 것만으로도 리안의 가치는 올라갈 터였다.
‘흥. 그렇게 둘 수는 없지.’
바위어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제법 버티네? 하지만 괜찮겠어? 눈이 풀린 것 같은데.”
실제로 리안은 몽롱했다. 근력의 대결은 호흡의 완급을 상대의 반응에 맞춰야 한다. 마치 물속에 들어가 누가 오래 숨을 참을 수 있는지 내기하는 식이었다. 산소가 부족하자 서 있는 상태에서도 의식이 멀어졌다.
“그럼 이제부터 접기로 들어가 볼까?”
리안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여태까지 접기를 하지 않은 채로 싸웠다는 것인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바위어의 몸에서 막대한 힘이 전해져왔다.
“하하하! 이거 너무 쉬운데?”
바위어는 리안을 마음대로 요리했다. 아이를 데리고 놀듯 들었다가 내려놓고 좌우로 휘둘렀다. 완력에서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버리자 기술은 무용지물이었다.
‘이대로 끝내 줄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
바위어는 리안의 가슴을 끌어안고 들어올렸다. 그 상태로 압박을 가하자 폐 속의 공기가 전부 빠져나갔다.
“허억!”
몸속의 공기가 강제로 빠져나가는 기분은 불쾌의 극치였지만 이어진 바위어의 기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리안의 팔을 들고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간 그는 서 있는 상태에서 하체에 만자 꺾기를 시도했다.
“저, 저건…….”
생도들이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업도미널 스트레치. 일명 코브라 트위스트라고 불리는 기술이었다.
물론 레슬링의 기술은 맞다. 하지만 서 있는 상대에게 기술을 성공시킨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기에 실력 차이가 크지 않은 이상 장난으로나 연습하는 기술이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바위어가 노리던 바였다.
리안은 옆구리가 휘어지고 팔이 들린 자세로 기술에 걸렸다. 우스꽝스러워 보여도 힘을 낼 수 있는 자세가 아니기 때문에 일단 걸리면 꼼짝할 수 없게 된다.
“크으으윽!”
리안의 입에서 신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근육이 한계치까지 늘어난 상태라 바위어가 1센티미터만 움직여도 통증이 척추를 타고 전해져왔다.
바위어는 리안의 몰골을 구경시키듯 생도들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렸다. 굴욕적이지만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어때? 이대로 허리를 부러뜨려줄까? 엉?”
바위어가 살짝살짝 움직일 때마다 리안의 척추에서는 삐거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만족한 그는 테스에게 고개를 돌렸다. 입술을 깨문 채로 몸을 떠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게 말했잖아. 날 너무 무시하면 안 되지.’
테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리안의 사정을 봐준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사랑에 빠진 여자는 외곬수라서, 아무리 멋진 남자가 다가와도 한 사람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엉망으로 만든 다음에 아예 눈앞에서 치워버려야 한다.
“슬슬 항복하는 게 어때? 아니면 조금 더 놀까?”
리안은 대답이 없었다. 그의 시선 또한 바위어가 보고 있는 것을 보고 있었다.
‘테스…….’
테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했다. 그녀는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에서 가장 분한 사람 또한 자신이 아닌 테스일 것이다.
“부러뜨려.”
“뭐?”
바위어가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날 죽여도 상관없다고. 하지만 절대로 항복은 하지 않을 거다.”
“하하하! 야, 너는 항상 뭐가 그렇게 심각해? 이건 그냥 평가야. 죽기 살기로 할 필요 없는 거라고. 게다가 이런다고 네 쪽팔림이 사라지는 건 아니잖아?”
바위어는 리안을 이끌고 다시 순회공연을 했다. 생도들의 감정이 전해져왔다. 누군가는 두려움을, 누군가는 분노를, 누군가는 동정을.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강자를 바라보는 약자들의 시선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어라?”
그 순간 강렬한 힘이 전해져왔다. 날벌레에 물린 것처럼 깜짝 놀란 바위어가 리안을 돌아보았다.
‘아직도 힘이 남아 있어?’
딱히 용을 쓰는 얼굴은 아니었다. 다만 시간이 멈춘 듯 눈동자가 차갑게 죽어있었다.
‘허리를 편다. 허리를 편다. 허리를 편다.’
리안의 시선은 내면을 향하고 있었다.
허리를 펴야 한다는 명령이 전달되자 거짓말처럼 그의 옆구리가 천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허허. 이 자식 봐라?”
바위어는 같잖다는 듯 웃었으나 긴장한 감정을 완전히 감추지는 못했다. 은근슬쩍 전력을 끌어내고 있으나 그럼에도 리안이 움직이는 것을 저지할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거? 도대체 왜 이래?’
바위어는 이를 앙다물고 온몸의 근육을 부풀렸다.
“흐으으으으읍!”
그리고 반응을 느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착각이나 방심이 아니다. 리안의 상체가 계속 올라오고 있는데도 정말로 막을 수가 없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고 등골을 타고 전율이 흘렀다. 힘이라고 불리는 것과는 다른 무언가가 리안을 들어 올리고 있다. 세상 전부가 밀려드는 것 같은 거대한 움직임이 그에게 생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지켜보는 쿠안의 눈동자는 깜박임을 잊었다. 바로 이것이었다. 절대로 이해할 수 없는 신적초월의 신비가.
‘말도 안 돼. 어떻게 이게 가능하지? 대체 뭐가 움직이고 있는 거야?’
리안은 힘을 낼 수 있는 자세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지렛대의 원리를 완벽하게 무시하고 일이서는 중이었다. 따라서 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세계의 어떤 규칙이 그를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이봐! 잠깐!”
급기야 바위어의 입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무리 힘을 줘도 끝없이 밀리고만 있었다. 리안의 자세가 되돌아올수록 그의 몸은 괴상하게 뒤틀렸다. 마침내 코브라 트위스트가 역전되며 근육이 한계치까지 늘어났다.
“으아아아악!”
피격자가 비명을 지르는 광경에 생도들은 넋을 잃었다. 리안은 분을 풀지도, 바위어를 조롱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자신의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항복! 졌어! 제발 그만해! 허리는 안 돼!”
리안은 멈추지 않았다. 바위어가 조롱의 퍼포먼스를 했을 때도 조금도 화나지 않았다. 수치심 따위는 재능의 한계 앞에서 내다버린 지 오래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자신을 꺾기 위해서는 상대도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또한 그 모든 게 재능 없는 자의 치기라고 해도, 테스를 화나게 한 건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리안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겨드랑이에 끼어있는 바위어의 얼굴을 아래로 짓눌렀다. 우두둑하고 무언가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으아아아아아!”
바위어는 턱이 빠질 듯 비명을 질렀다. 몸이 얽혀있는 상태라서 쓰러질 수도 없었다. 복부 근육이 찢어지자 온몸에 힘이 빠져나갔고 실 끊어진 인형처럼 축 늘어진 채로 턱만 벌리고 있었다. 느침이 질질 새어나왔다.
리안은 겨드랑이에 끼어 있는 바위어의 머리를 잡고 밀어냈다. 바닥에 쓰러진 바위어가 2차 충격에 몸을 뒤틀었다. 얼마나 아픈 지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길어지는 정적 속에서 생도들의 눈빛이 변해갔다. 울고 있는 바위어의 모습에서는 조금 전에 느꼈던 절대강자의 풍미를 찾아볼 수 없었다.
‘불쌍한 자식. 오늘부터 휴가인데, 3개월 동안 실컷 요양이나 하게 생겼군.’
바위어는 손으로 땅을 짚고 상체를 세웠다. 하지만 다시 느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쓰러지고 말았다. 가까스로 고개만 들어 올린 그가 악에 받친 소리를 내질렀다.
“이것으로 뭔가 변할 거라고 생각하지 마! 내가 약한 것뿐이야! 네가 강한 게 아니라고!”
자신을 깎아내리면서까지 악담을 퍼붓는 모습에서 바위어의 독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리안은 아무 말도 듣지 못했다.
강제적으로 육체를 움직였던 신적초월의 후폭풍으로 전신의 근육이 찢어지는 듯했다.
‘제길. 너무 무리했어.’
리안은 속으로 10초를 셌다. 카운트에 맞추어 통증이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계를 돌파한 덕분에 얻은 어마무시한 회복능력이었다.
‘이제 움직일 수 있다.’
귀가 열리면서 바위어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고 통할 거 같아? 나는 더욱 강해질 거다! 하지만 너는 그게 한계야. 평생 패배자로 살아가게 될 거라고!”
“저 자식이……!”
테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평가만 아니었으면 당장 달려가서 찢어진 복부에 한 대를 더 날려주었을 터였다.
반면에 리안은 담담한 표정이었다. 자리로 돌아온 그는 훈련복을 어깨에 걸쳤다. 그러고는 일언반구도 없이 훈련장의 출구 쪽으로 몸을 돌려 걸어갔다.
“리, 리안?”
테스는 물론 다른 생도들도 황당한 표정으로 리안을 바라보았다. 쿠안의 차가운 목소리가 등에 박혔다.
“리안. 자리에 앉아. 무단이탈은 낙제다.”
“그럼 낙제로 하시죠.”
리안은 꼴등과 낙제가 다른 점을 찾지 못했다. 어떤 성과를 보여도 학교에서는 스키마를 못하는 검사에게 점수를 주지 않는다.
리안이 훈련장을 떠나자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여태까지 쿠안 교관을 상대로 배짱을 부린 생도는 한 명도 없었기에 벌써부터 리안의 명복을 비는 자들도 있었다.
‘결국 이게 한계인가?’
쿠안은 불쾌하지도, 그렇다고 리안을 걱정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만 진다면야 생도들이 인생을 망치든 말든 알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기분이 가볍지 않았다. 신적초월은 실재하는 힘이었고 리안은 그것을 구사할 수 있다.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까? 언젠가는 육체가 의지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파괴할 날이 올 것이다.
리안의 평가지에 낙제를 적은 쿠안은 괄호를 쳤다. 그리고 무단이탈이라는 글귀를 덧붙였다.
레슬링 평가가 끝나자 테스는 몸을 씻을 겨를도 없이 리안을 찾아갔다. 때마침 숙소에서 리안이 문을 열고 나왔다. 남은 속이 타서 죽겠건만 샤워까지 했는지 말끔한 차림새였다.
“리안! 어떻게 된 거야? 너 정말 낙제당하고 싶어?”
리안은 테스를 지나쳐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각오를 단단히 한 모양새였다. 그렇기에 불안했다. 한 번 불길이 타오르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는 게 리안의 성격이었다.
“제발 뭐라고 말 좀 해봐. 평가 중에 나가는 건 심각한 일이야. 꼴등이 문제가 아니라고. 교관들에게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알잖아?”
“상관없어. 찍히든 말든.”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하는 리안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이번에는 정말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상관에 대한 항명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이 안 되는 일이었다.
“리안. 다시 생각해 봐. 여태까지 잘 버텨왔잖아.”
“못 버텨서 이러는 게 아냐. 지긋지긋하단 말이야.”
리안의 일그러진 얼굴을 본 순간 테스는 진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런다고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긴단 말인가? 모든 일이 너무 빨리 진행되고 있었다.
리안이 도착한 곳은 교관실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쿠안이 평가지를 분류하고 있었다. 경례를 올리는 리안을 슬쩍 쳐다본 그는 관심 없다는 듯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나가버릴 때는 언제고.”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습니다.”
“돌아가. 너는 낙제다.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생도는 실력을 평가할 가치도 없어.”
리안은 한 장의 봉투를 책상에 놓았다. 봉투에 적힌 글자를 확인한 쿠안이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리안은 이미 각오를 끝낸 듯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퇴서입니다. 검술 학교에서 나가겠습니다.”
검사의 신념 (1)
시로네는 토르미아의 수도 바슈카에 도착했다.
시로네는 마차의 창문을 통해서 비쳐지는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리는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복장도 저마다 개성을 강조하듯 화려했다.
중심가로 들어서자 하늘을 찌를 정도로 높은 건물들이 즐비했다. 시로네는 책으로만 접했던 기관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연금술재단, 검사협회, 대법원.
마지막으로 도착한 곳에 이름도 드높은 마법협회의 건물이 우뚝 세워져 있었다.
18층짜리 건물은 탑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거대한 탑이었다. 1층만 놓고 봐도 귀족 저택 몇 채는 들어갈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