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4
“전원 공격하라! 절대로 물러서지 마!”
7명의 거인이 구로이 한 기를 붙잡고 땅바닥에 패대기치더니 작신작신 밟아 대기 시작했다.
조종석이 파괴되고, 겁에 질린 파일럿이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결국 1초 뒤에 그조차도 끊어지고 말았다.
“제기랄! 으아아아아!”
뒤늦게 도착한 대대장은 아크를 연거푸 쏘았다. 조준이고 뭐고 없는 막사격이었다.
그럼에도 거인은 맞았다.
그럼에도 끄떡없다는 사실이, 대대장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처음부터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일화의 술이 어쨌다는 것인가? 수명이 정해져 있는 게 뭐가 어떻단 말인가?
신에게 대항한 죄로 인간은 영생의 길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이제는 종의 멸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아!”
대대장이 거인의 다리를 시그나로 내리찍자 느리게 통증을 느낀 거인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풀린 동공을 보는 순간 소름이 쫙 하고 끼쳤다.
“이단을…… 처단하라.”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이빨 사이로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를 참을 수 없었다.
“흐윽. 흐으으윽.”
거인이 다가올수록 대대장의 얼굴은 울상으로 변했다.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지만 자신의 죽음만큼은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새로운 것이었다.
“이단을…… 처단하라.”
“아, 아니야. 나는 이단이…….”
거인의 주먹이 내리꽂히자 대대장은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크르르르…….
엄청난 저음으로 목을 긁는 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자 생전 처음 보는 맹수가 시커먼 장벽처럼 서 있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먹빛의 털에 몸은 표범처럼 늘씬했고 다리는 6개였으며 얼굴은 납작했고 1미터가 넘어가는 송곳니가 삐져나와 있었다. 거인의 주먹을 받으면서 발톱을 웅크린 탓에 지면에 균열이 가 있었다.
“뭐, 뭐야, 이건?”
“뭐긴 뭐야? 3티어 몬스터 쿠거지.”
어느새 가올드 일행이 도착해 있었다.
줄루가 선두로 나서 손가락을 톡톡 튀기자 쿠거가 ‘갸릉?’ 하고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소리를 내며 돌아보았다.
“가서 놀아.”
크아아아아앙!
쿠거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마치 검은 장막을 걷어 낸 것처럼 시야가 활짝 열렸다.
짐승의 발톱이 휘둘릴 때마다 거인의 몸이 썽둥썽둥 잘려 나갔다.
운동 능력만 놓고 봤을 때는 3티어 최강이라고 평가받는 쿠거의 강력함이었다.
홀린 듯 전장을 바라보던 대대장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당신들은, 도대체 누구지?”
가올드가 입가를 찢으며 말했다.
“인간이다. 너희랑 똑같은.”
***
“레나! 레나!”
“언니!”
카냐는 거인들의 틈바구니에 끼어서 싸우고 있는 레나를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거인의 발바닥이 두 사람이 있던 자릴 쿵 하고 내리찍자 마치 고무판 위에 떨어진 듯 몸이 들썩거렸다.
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율법에 레나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그러다가 카냐가 맨몸인 것을 보고 그녀를 더듬었다.
“언니! 다친 데는 없어? 구로이는?”
카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울컥 눈물이 치솟았다.
불쌍한 여동생이다. 세상에 태어나 좋은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해 보지 못하고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게 슬펐다.
레나는 무언가를 직감했는지 미소를 지었다.
“언니, 나는 괜찮아.”
카냐는 레나의 뺨에 볼을 비볐다.
똑똑한 여동생이니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이미 사방이 전우들의 시체였으니까.
마지막으로 할 말은 이미 정해 두었다.
그녀만큼이나 기다렸던 여동생이었기에, 죽기 전에 이 말은 꼭 해 주고 싶었다.
“레나, 시로네가…….”
“시로네 오빠?”
레나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하자 동생을 따라 고개를 쳐든 카냐의 눈이 충격에 흔들렸다.
시로네가 금빛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것이 천국의 전쟁인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전장의 풍경은 참혹했다.
거인이 인간을 학살하는 건 인간이 개미를 학살하는 것과 딱히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가 끝낼 수 있어. 이게 통한다면…….’
시로네는 샤이닝 임팩트를 시전했다. 태양광에 맞먹는 밝기가 모두의 눈을 멀게 만들었다.
어둑한 시간대라 효과는 더욱 컸다.
“그아아아아!”
“젠장! 갑자기 뭐야!”
잠시 후에 사람들은 시력을 되찾았다.
거인에게도 앞이 안 보이는 공포는 상당했기에 더욱 광포하게 돌변하여 괴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그때 하늘에서 무언가가 번쩍하더니 오색찬란한 광채가 밤하늘에 펼쳐졌다.
어둠의 장막이 다가오는 평야에 무지갯빛 얼룩이 아롱거리자 거인과 인간을 가리지 않고 고개를 쳐들었다.
“저, 저건…….”
머리 위에 거대한 아타락시아를 완성시킨 시로네가 광익을 펄럭이며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메카족들은 넋이 나갔다.
지금 시로네의 모습은 신민들이 실로 두려워했던 어떤 존재와 정확히 닮아 있었다.
“으어어어. 으어어어.”
수백 명의 거인들이 땅을 울리며 무릎을 구부리더니 바보처럼 입을 벌리고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거인 또한 율법의 존재.
이카엘의 마법진은 정체성을 잃은 상태에서도 본능 속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휘하고 있었다.
“율법의…… 조율자시여…….”
무릎을 꿇은 것도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거인들은 이마를 땅에 대며 몸을 한껏 낮추었다.
비로소 인간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하지만 그들 또한 서로를 잠시 돌아봤을 뿐 다시 하늘로 시선을 올렸다.
“네피림이다…….”
머릿속에서 잊고 있었던 단어 하나가 이단들의 입에서 저절로 튀어나왔다.
“언니, 시로네 오빠가 왔어.”
카냐의 품에 안긴 레나는 눈물을 펑펑 흘렸다.
누군가는 도망자라고 욕해도, 그에게 속아 신을 거역한 일을 후회한다고 말해도, 단 한 번도 시로네를 의심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이것이야말로 기적이었다.
“그래, 레나. 시로네는…… 정말로 천사의 후예였나 봐.”
천사보다 멋진 금빛 날개를 달고, 대천사의 상징인 오색찬란한 광륜을 머리 위에 띄우고 시로네는 돌아왔다.
73구역의 빛에서, 천국의 빛이 되기 위해.
“네피림. 네피림.”
“율법의 조율자시여…….”
모두가 시로네의 발밑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천국에서 (1)
천국 제6천 제불. 대세계전.
빛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천사가 있다.
2미터 30센티미터의 늘씬한 몸에 세상의 이치를 모두 알고 태어난 지성의 정점.
수많은 천사들 중에서도 오직 8명밖에 없다는 대천사,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는 탄생의 천사 카리엘.
하지만 지금 그의 얼굴은 마치 병에 걸린 인간처럼 핼쑥하기 그지없었다.
눈은 퀭하니 들어갔고 표정은 신경질적이었다.
지성미가 넘치던 인자하고 선명했던 얼굴선은 근래 들어 일그러지는 일이 잦았다.
실제로 그는 병에 걸린 것과 마찬가지 상태였다.
천사의 힘이 또렷한 개념에서 나온다면, 현재 그의 선명도는 평소의 1할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게 1명의 인간을 데려오기 위해 감수한 노동의 결과물이었다.
“카리엘, 정말 괜찮은 건가?”
파괴의 천사 유리엘이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카리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대천사 중에서 가장 키가 큰 3미터의 신장에 단단한 육체, 턱 끝에 닿을 정도로 두꺼운 흉갑의 중심에는 황금빛 광륜이 성난 듯 회전하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버틸 만해. 버텨야지.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카리엘이 느끼는 피로도를 인간의 기준으로 환산하자면 대략 40년 동안 수면을 취하지 않을 정도와 맞먹었다.
어떤 생물이든 이 정도의 피로에 가격당하면 이미 모든 세포가 말라 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여전히 감정에 불타고 있었다.
유리엘은 카리엘이 바라보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세계의 운행을 관장하는 은하경 아래에 인간의 기준으로 아름다운 여성이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아드리아스 미로.
천국의 존재에게 이보다 가증스러운 개념이 있을까?
아카식 레코드의 화신인 앙케 라조차도 뚫을 수 없는 방어막을 치고 우주의 정복을 방해하는 인류 최후의 보루.
하지만 그런 그녀조차도 카리엘의 집요함에는 꼼짝없이 당하고 말았다.
“결국은 해냈군.”
반란군이 섬멸당하기 직전 돌연 전쟁을 취소시킨 앙케 라는 인간에 대한 일체의 조사 행위를 금지했다.
모든 천사가 전언에 복종했으나 유독 카리엘만은 포기하지 않고 인간 말살 계획을 꾸준히 진행시켜 나갔다.
그렇게 하여 얻은 것이 바로 눈앞에 있는 미로의 ‘육신’이었다.
“어떻게 한 거지? 미로의 시공은 파괴할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나?”
카리엘의 지친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천폭으로 미로의 시공을 공격했을 때 균열을 통해 옵트러스가 넘어갔지. 놈의 전자기 패턴에 미로의 시공에 대한 정보가 묻어 있었어. 그것을 분석한 거야.”
“하지만 미로의 시공은 곧바로 아물었지. 차원의 장벽을 뚫고 그녀를 데려올 수는 없었을 텐데?”
“차원의 장벽이란, 사실 실체가 없는 거야. 천국의 군대가 땅의 나라로 가지 못하는 이유는 이곳과 프로토콜이 다르기 때문이지. 양자적 얽힘조차 없는 독립적인 세계거든.”
유리엘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파괴를 위해 태어난 자가 파괴 대상을 이해할 의무는 없었다.
“그래서?”
“옵트러스에서 얻은 정보로 프로토콜을 해독했어. 그런 다음 양자 중첩을 통해 미로를 대세계전으로 전송시킨 거야.”
“흐음, 그래서?”
카리엘은 유리엘이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달았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통에 손을 넣고 원하는 물건이 나올 때까지 뽑기를 한 거야. 통의 크기는 전 우주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
유리엘은 카리엘이 쇠약해진 이유를 깨달았다.
“그러니까 우주를 뒤져서 납치했다는 거군.”
“뭐…… 바로 그거야.”
카리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흐음.”
유리엘은 삼매경에 빠진 미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최후의 전쟁이 터지기 직전, 홀로 천국의 군대에 맞서 차원의 벽을 펼친 앳된 얼굴 그대로였다.
“인간의 정신, 어떤 의미로는 가공할 만하군.”
현재 미로의 시공을 이루는 그녀의 정신은 공겁의 차원으로 끝없이 빨려 들고 있다.
탄생부터 모든 게 완벽한 천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정신 상태이자 개념이었다.
“흥, 그것이야말로 불완전한 존재라는 증거지. 하찮은 인간 따위에게 감상 같은 것 하지 말라고.”
유리엘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해할 수 없는 건 파괴시켜 버리면 그만이다.
하지만 과연 카리엘도 그럴까?
탄생이란 모든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전제하에서 성립되는 개념.
생명의 술을 다루는 카리엘이 인간을 이해할 수 없다는 건 어쩌면 이 우주에서 가장 큰 모순일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참으로 이상한 존재다. 지금도 1명의 인간이 천국의 모든 전력을 막아 내고 있지 않은가.”
카리엘의 인상이 구겨졌다.
인간. 인간.
앙케 라부터 시작해서 모두가 인간에게만 다른 기준을 적용시키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럴 일은 없어. 내가 멸망시킬 테니까.”
유리엘은 말을 돌렸다. 같은 날 다른 개념으로 태어난 쌍둥이와 같은 천사의 심기를 더 이상 건드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 이제 어떡할 거지? 미로를 죽여도 미로의 시공은 사라지지 않는다. 소멸 직전까지 정신을 혹사하면서 그녀를 데려온 이유가 뭐야?”
“흥, 당연히 미로의 시공을 파괴하기 위해서지. 공겁의 차원에서 미로를 끌어낼 거야. 정신을 차린 뒤에 죽이면 미로의 시공은 사라진다.”
괜찮은 방법, 아니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불완전성을 이해할 수 없어. 신민들 중에도 미로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없을 거다. 거핀 말소 이후 네피림은 사라졌으니까.”
“천국에는 없지만 땅의 나라에는 있어.”
유리엘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땅의 나라에는 자생적으로 네피림으로 각성하는 자들이 있다.
하지만 미로의 시공이 가로막고 있는 이상 그곳에서 누군가를 데려오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번에도 전 우주를 뒤질 셈인가? 그러다가 완전 소멸할지도 모른다.”
“그럴 필요 없어.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고.”
카리엘은 기둥 형태의 중앙 시스템으로 날아올라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했다.
뒤를 따라 날아오른 유리엘이 카리엘의 뒤편에서 화면을 바라보았다.
“아카식 레코드를 뒤지다가 재밌는 걸 찾아냈지.”
카리엘이 옆으로 비켜나자 화면에 한 인간의 이름이 보였다.
아래에 이어지는 설명을 읽어 내려가던 유리엘은 고개를 주억거렸다.
“확실히, 흥미롭군.”
공교롭게도 인간의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인간이었다.
아니, 인간의 정신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에 현재의 상태로 변한 것이라고 보는 게 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