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45
“이자를 대세계전으로 소환할 거다.”
카리엘이 손을 벌리자 성광체가 번쩍이면서 손바닥 위에 법전이 탄생했다.
우주의 이치가 담긴 법전은 고강도 금속 하드커버였고, 빛으로 만든 페이지가 넘어가기 시작했다.
중앙 연산 시스템이 풀가동되면서 푸르스름한 전기가 파도처럼 바닥을 타고 흐르더니 아치형 기계장치에 모여들었다.
유리엘은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중앙 연산장치의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도굴꾼이라…….’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누군가의 이름이 점멸하고 있었다.
모리건 아리우스
***
반군 제1사령부.
시로네 일행은 반군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대천사의 능력으로 수백 명의 거인을 복종시킨 시로네의 무용담은 드론을 통해 빠르게 퍼졌고, 벌써부터 반군의 새로운 신화가 되어 있었다.
거대한 백색소음 속에서 시로네의 얼굴은 비장했다.
사령부에 제1이라는 숫자가 붙는 것이 의아했으나 예상보다 훨씬 큰 반군 기지의 규모에 의심의 여지는 사라졌다.
군수창고로 추정되는 수십 채의 건물들이 부지를 에워싸고 있었고, 숲속에는 높이 30미터가 넘어가는 거대한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굉장한 전력이다. 만약 이들이 움직인다면…….’
가올드의 생각은 달랐다.
‘씨알도 안 먹히겠지.’
물론 사령부의 전력은 막강했다.
하지만 전멸 직전까지 갔다는 대대장의 말에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전력의 비대칭 같은 문제가 아니다.
애초부터 천국의 존재들은 인간과 다른 무언가였다.
개미 수천 마리가 인간을 물어뜯는다면 죽겠지만 애초부터 그렇게 당해 줄 인간이 아닌 것처럼, 천사도 마찬가지였다.
“어? 저기 시로네다. 어이, 시로네! 나야, 나!”
행렬의 중간에서 아는 얼굴이 불쑥 튀어나왔다.
1년 전 천국에서 시로네와 친구들을 노르의 쉼터까지 안내했던 클로브와 가드락이었다.
클로브가 에이미를 무시했던 기억이 여전히 남아 있으나 이런 순간에 아는 얼굴을 발견하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하지만 시로네는 차마 그쪽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클로브의 말을 들은 수많은 인파가 전부 튀어나오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와아아아! 진짜였어! 진짜 시로네가 왔다고!”
클로브와 가드락은 인파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았다.
73구역의 사람들 외에는 시로네의 얼굴을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보니 일어난 현상이었다.
시로네는 식겁한 표정으로 거리를 벌렸다.
더 가까이 다가갔다가는 자칫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멀어지는 시로네를 바라보며, 클로브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한탄의 말을 내뱉었다.
“아우, 저 애송이가 이렇게 중요한 인물이 될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미리 친해질 걸 그랬어요.”
가드락이 제자의 머리를 탁 하고 쳤다.
“지금 그게 문제냐? 천사들에게 전멸당하느냐 마느냐 하는 판국인데.”
클로브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스승님도 그랬잖아요, 시로네가 오면 우리도 여기에서 대접받을 수 있을 거라고.”
가드락은 말이 없었다.
시로네가 돌아왔다. 그것도 아주 절묘한 타이밍에.
천국의 공격 중단은 확실히 반군에게 호재였으나, 그것만으로는 연전연패를 거듭하면서 깊어진 메카와 노르족 사이의 갈등의 골을 메울 수 없었다.
의견의 일치를 이루지 못한 사령부는 급기야 제1과 제2사령부로 분리되고 말았고, 전투만 없다 뿐이지 이미 패색은 짙어진 상황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자멸만을 기다리는 시점에서 73구역의 빛이 다시 이들을 비추기 시작했다.
‘어째서 지금이지? 알고 돌아온 것인가?’
보이지 않는 고리로 연결되어 있는 일련의 사건들이, 시로네의 귀환을 그저 기적으로 치부할 수 없게끔 만들었다.
“헤헤, 오빠랑 이렇게 걸으니까 너무 좋아요.”
한편 시로네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레나는 지휘 본부로 가는 동안 한시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자 허리가 뻣뻣하게 세워진 시로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플루가 혀를 차며 말했다.
“저게 뭐 하는 거야? 천국에 연애하러 왔나?”
가올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크크, 내버려 둬. 저런 것도 퍼레이드에 도움이 될 테니까.”
전멸 직전까지 몰렸던 반란군에게 시로네라는 기적이 찾아왔으니 약간의 연출이 들어가는 것도 괜찮을 터였다.
하지만 카냐는 동생의 추태가 민망할 따름이었다.
참다못한 그녀가 레나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일렀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빨리 떨어져. 시로네가 반군에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 사람들이 오해하면 어떡해?”
“무슨 오해? 시로네 오빠랑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닌데. 1년 만에 만났는데 팔짱도 못 껴?”
레나가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오빠, 언니도 옆에서 팔짱 끼게 해 주세요.”
시로네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지금도 가슴이 뛰는데 양팔에 두 여자를 달고 어떻게 길을 가겠는가?
카냐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다.
“너, 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시로네랑 팔짱을 껴?”
“아이, 참. 언니는 이런 쪽에 너무 약하다니까. 시로네 오빠랑 친한 것처럼 보여야 우리도 사령부에서 일을 할 수 있단 말이야. 언니는 구로이도 파손됐잖아. 여기서 새로운 구로이를 보급받아야 다시 파일럿이 되지.”
카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나이는 어리지만 생각하는 건 동생이 더 치밀했다.
아니, 이런 경우에는 영악하다고 해야 하나?
시로네가 그녀를 안심시켰다.
“카냐, 너무 걱정하지 마. 구로이는 내가 파괴한 거니까. 사령관님을 만나면 꼭 말해 줄게.”
시로네에게 미소를 지은 카냐는 다시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레나를 돌아보았다.
‘어휴, 저 여우…….’
언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로네의 팔을 감은 레나는 흐뭇하게 웃고 있을 뿐이었다.
천국에서 (2)
지휘 본부 건물에 들어가고 철문이 닫히자 바깥의 환호성이 꿈에서 깨어난 듯 차단되었다.
복도 천장에 달린 전등은 최소한의 밝기만 유지하고 있었고 길을 따라 정확한 간격마다 병사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메카 전투 시스템 1단계로 무장한 그들은 한 번도 시로네 일행을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시선의 강도는 벽을 뚫어 버릴 만큼 무시무시했다.
‘모두 최정예 병사들이야.’
메카족에게는 초인적인 육체나 마법적 능력은 없지만 두 가지 모두 보완할 수 있는 기술력이 있다.
어차피 전쟁이란 이기면 그만인 것이기 때문에, 그들 자체의 무력이 약하다고 전력마저 약하리란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았다.
대령이 지하 벙커로 시로네 일행을 안내했다.
벙커의 보안장치는 협회의 기술과 비교했을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고, 철문이 열리자 수많은 기계장치들이 작동하고 있었다.
기술자들이 모니터를 주시하며 바쁘게 손을 옮기는 가운데 사령관 망토를 입은 남자가 뒷짐을 진 채 그들의 작업을 지켜보고 있었다.
“사령관님, 시로네 님을 모셔 왔습니다.”
대령의 말에 사령관이 몸을 돌렸다.
관자놀이에서 귀 옆을 타고 길게 상흔이 새겨진 20대 후반의 남자였다.
가느다란 입술을 고집스럽게 닫고 있었고, 안경 너머의 눈동자에는 냉철함과 열정이 엿보였다.
반군 제1사령관 크루드.
카냐에게 들은 대로 젊은 사람이었다.
전쟁에서, 그것도 패색이 짙은 전시라면 나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병사들이 원하는 건 먼저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용맹함과 최대한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전술적 실력을 겸비한 지휘관이었다.
크루드는 그 조건에 정확히 부합하는 남자였다.
메카 3단계 전투 시스템에 속하는 타이탄의 정비, 운전, 조작에 관한 모든 걸 파악하고 있는 천재 파일럿이자 2각 마라를 해치운 전적이 있는 메카족의 전쟁 영웅인 것이다.
“당신이 시로네인가.”
크루드는 시로네에게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반군 제1사령관 크루드다.”
“시로네입니다.”
크루드는 시로네 일행을 주의 깊게 살폈다.
수많은 전투 경험이 있는 그는 한눈에 일행의 강력함을 알아보았으나 당당한 눈빛은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플루를 봤을 때는 평생 동안 기계하고만 씨름했던 스물여덟 살의 공학도로 돌아가 잠시 눈길이 머물렀다.
아담한 체구에 푸른 머리를 허리까지 땋아 내린, 똑 부러지는 스타일의 여성.
특히나 마음에 든 것은 그녀의 눈빛이었다. 일행 중에 그녀만이 힘이 바짝 들어가 있었다.
마치 전쟁터에 첫 출전하는 여장부처럼.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73구역의 빛, 시로네의 일화는 크루드 또한 알고 있으나 실제로 경험한 전쟁은 신화 같은 것에 기대기에는 너무나 현실적이었다.
“조용한 곳으로 가지.”
크루드는 벙커 깊숙한 곳에 있는 전략회의실로 모두를 안내했다.
당연히 차 같은 것은 내오지 않았고,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으로 들어갔다.
“나를 만나고 싶어 했다고 들었는데?”
세인이 대표로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우리는 천국을 공격할 거다. 이에 반군 사령부의 협조를 요청한다.”
“거절한다.”
크루드의 대답은 즉각적이었다.
“대대장과 마찰이 있었다는 소식은 들었지. 물론 마음이 꺾인 군인은 우리 쪽에서도 쓸모가 없지만, 냉철하게 생각해 봤을 때 당장 전쟁을 치르는 건 승산이 없어. 정체성을 잃은 거인을 복종시켰다고 천국을 공격할 수 있다는 건 망상에 지나지 않아.”
세인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패배 의식에 절어 버린 대대장을 봤을 때는 걱정했지만 역시나 사령관은 달랐다.
“말인즉슨, 전쟁을 포기하지는 않았다는 뜻이군.”
“휴전이랄지, 타협의 여지는 언제나 남겨 두고 있다. 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을 개죽음시킬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천국이 우리를 타협의 대상으로 볼 것 같지는 않군. 어차피 싸워야 한다면, 살아남기 위해 이겨야 하겠지.”
“만약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한다면?”
“흥, 헛소리.”
기존의 이단들과 천국에서 나온 신민들을 더해 수십만의 반란군이 천국과 맞서 싸웠으나 이렇다 할 전과를 세운 경우는 손에 꼽았다.
평천사는커녕 3각 마라조차 잡지 못한 게 노르와 메카의 연합이다. 고작 10명의 인간들이 더해진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지스 시스템을 타기스로 마비시킬 것이다. 그렇게 되면 천국에 침투할 수 있고 게릴라전이 가능하다.”
천국의 핵심 방공 체계인 이지스는 이백 가지 탐색 방식으로 요격 순서를 정하고 7천 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공격할 수 있는 난공불락의 방어막.
그것을 뚫고 무혈입성할 수 있다면 반군에게도 희망의 빛이 생기는 셈이었다.
“흐흐흐흐.”
크루드는 얼굴을 가리고 허파를 들썩거렸다.
“어디에서 타기스라는 말을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건 이미 메카에서 소실된 기술 중의 하나다.”
손을 내린 크루드는 더 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봐. 천국의 요격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기술을 천사들이 그냥 내버려 둘 리가 없잖아. 기술을 다시 살리려면 아카식 레코드에 접속해야 돼.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이지스 시스템을 뚫어야 하지. 이제 알겠어? 순서가 바뀌었다고, 멍청아.”
세인은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다리를 꼬았다.
“만약…… 내가 그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뭐?”
크루드의 얼굴이 멍해졌다.
“그게 무슨 헛소리야?”
“천국에서 소실된 기술이라고 땅의 나라에서도 그러리란 법은 없지. 나는 20년 동안 세계를 떠돌아다니며 고대 병기에 대한 모든 걸 조사했다. 그리고 현재 완벽하게 복원된 타기스의 설계도가 내 머릿속에 있지. 어때, 이제는 좀 머리가 돌아가나?”
크루드의 눈빛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만약 거짓이라면…….”
“지금 당장이라도 복원시킬 수 있다. 내 머리에 망각은 없어. 어차피 너 또한 엔지니어이니 도면을 보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텐데.”
‘그렇구나. 그래서 블랙 라인에…….’
시로네는 세인을 달리 보았다.
고대 병기는 왕국을 막론하고 특급 기밀.
정보에 접근하는 행위만으로도 사형에 처해지는 위험한 일을 오직 미로를 구하기 위해 해 왔던 것이다.
“흐음…….”
크루드도 이제는 혼란스러웠다.
대체 이들은 누구인가? 수십만 반군도 하지 못한 일을 어째서 하려는 것인가?
‘아니, 중요한 건 성공 여부다.’
이지스를 마비시키고 천국에 들어간다고 해도 천사와 마라, 거인과 요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들을 물리치고 앙케 라가 있는 아라보트까지 침투한다는 건 화약을 짊어지고 불에 뛰어드는 격이었다.
‘그래도 뛰어들어 볼 수는 있다. 1퍼센트의 승산이라도 있어.’
이것은 기적인가? 아니면 꺼지기 직전 가장 밝게 타오르는 촛불의 마지막 몸부림일까?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예상보다 많은 조건이었으나 세인은 오히려 신뢰감이 들었다. 크루드가 지금의 계획을 현실적으로 대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일단 들어 보지.”
크루드가 손가락을 꼽으며 말했다.
“첫 번째, 73구역의 빛, 시로네를 이용해서 제2사령부를 회유할 것. 천국에 침투해도 메카와 노르가 연합하지 않으면 어차피 계란으로 바위 치기야.”
“그렇겠지. 다음은?”
“두 번째, 설계도가 있다고 해도 천국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대형 타기스라면 이곳에서 제작할 수 없다. 본토의 공장을 빌려야 하는데, 그들에게 승낙을 받아 와라.”
세인은 반군을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군수 커뮤니티인가?”
“그래. 정확히는 ‘야맹’이라는 방위산업체다. 천국 내란을 틈타 급격히 성장한 신흥 세력으로, 군수복합단지를 모조리 섭렵해 무기 생산을 독점하고 있어. 반군에게는 가증스러운 놈들이지. 하지만 그들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천국과의 전면전은 무리다.”
“좋아. 마지막 조건은?”
크루드는 처음으로 제안을 주저했다.
시로네 일행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일개 팀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타기스를 제조하려면 아마도 블랙 엘릭서가 필요할 거다.”
“블랙 엘릭서?”
“천국 대부분의 생명체는 행성에 흐르는 라이프 스트림을 체내에 받아들여 엘릭서를 생성한다. 종류는 다섯 가지. 레드, 그린, 옐로, 화이트, 마지막으로 블랙이다.”
“굳이 블랙이어야 하나? 내가 알기로 엘릭서는 재료 혼합과 비율에 따라 우회하는 기술이 있다고 하던데?”
“엘릭서는 종류마다 독특한 작용을 일으킨다. 레드는 열을, 그린은 생화학적 원소를, 옐로는 에너지 성질 변화를, 화이트는 대기 원소에 관여하지. 천국의 암석은 수만 년이 지나도 풍화되지 않을 정도로 내구력이 강하다. 그렇기에 행성의 힘이 결집되어 있는 엘릭서가 필요한 거야.”
크루드는 창고 쪽을 가리켰다.
“예를 들어 구로이 한 기에 들어가는 금속을 주조하려면 레드 엘릭서 8천 개가 필요하지만 화이트 엘릭서를 섞으면 열 반응 효율이 훨씬 높아지지. 화이트와 옐로를 섞으면 전기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 이렇듯 엘릭서는 이 세계의 모든 것을 이루는 수단이야.”
플루가 물었다.
“그렇다면 블랙 엘릭서는 어떤 작용을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