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2
어퍼컷을 연타하는 에텔라의 몸이 제자리에서 잔상을 일으켰다.
화룡점정이라고 할 수 있는 쌍장이 들어가면서 6만 8천 회의 간섭파가 발생했다.
쿠쿠쿠쿠쿠쿵!
웅크린 링거의 몸이 육중하게 흔들렸다.
그로부터 5초 후, 갑각에 살며시 실금이 가더니 링거의 몸이 퍽 하고 터졌다.
“후우.”
에텔라는 지친 표정으로 주저앉았다.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음양파동권의 오의로도 고작 실금을 내는 게 전부인 내구력이었다.
“무지막지하네요. 확실히 더블S급이었어요.”
아르민도 동의했다.
“파동 계열이 아니었다면 상대하기 훨씬 어려웠을 겁니다. 이쯤 되니 궁금해지는군요. 야맹은 어째서 이런 생물체의 사체를 모으는 걸까요?”
짝. 짝. 짝.
그때 숲에서 박수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기분을 느낀 아르민 일행이 고개를 돌렸고,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본토에서 만났던 케이지 B팀이었다. 선두에서는 부팀장 호르킨이 뒷짐을 지고 다가오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또 뵙는군요.”
에텔라가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요. 전생에 인연이 닿았나 보죠.”
“소문으로 듣던 대로 대단한 무위였습니다. 그나저나…… 가올드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네?”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모르는 척을 하는 에텔라의 모습에 호르킨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때는 몰라 봬서 죄송합니다.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 로미 에텔라 양.”
약속이라도 한 듯 전원의 몸에서 살기가 피어올랐다.
대보름의 날 (1)
정적.
더할 수 없는 정적 속에서 다양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에텔라는 언제 그랬냐는 듯 표정을 고치고 호르킨을 예의 주시했다.
이미 눈치를 챘다고 봐야 했고, 그런 마당에 ‘어떻게?’라는 의문은 중요하지 않았다.
“탁월한 연기력이었소. 가올드의 일행이었다면 우리가 협회에서 특파한 케이지 팀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터.”
오래전, 그러니까 호르킨이 지금처럼 백발이 아니었을 무렵 카르시스 수도회에 천재 수도사가 나왔다는 소문이 전국에 깔린 적이 있었다.
대륙에 이름난 카르시스지만 특별히 구도에 관심이 없다면 알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당시 호르킨은 임무를 위해 수도회의 본산에 들른 적이 있었고 거기에서 직위 계승식을 하는 앳된 소녀를 보았다.
‘놓칠 뻔했지. 아직 치매가 안 와서 다행이야.’
로미 에텔라였다.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교사.
천국에서 가올드가 졸업한 학교의 교사와 우연히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설령 그것이 어느 정도 현실적인 확률일 수 있더라도, 호르킨의 촉은 에텔라야말로 자신들이 찾던 실마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알고도 모른 척했던 것은 겁에 질린 자들의 궁여지책이오? 그렇다면 탁월한 선택. 자, 이제 끌 만큼 끌었으니 가올드가 어디 있는지 알려 주실까?”
호르킨의 뒤편에 서 있는 20명의 마법사들이 무시무시한 기운으로 아르민 일행을 압도했다.
‘위험하군.’
아르민이 마법사로서 판단하건대 정면 대결은 어렵다.
물론 자신의 팀원들도 굉장히 강한 자들이지만 저들 또한 하나하나가 로미 에텔라였고 올리페르 시이나였다.
모두가 상대의 반응을 주시하는 가운데 검사인 쿠안만이 앞으로 걸어갔다.
전장을 헤집고 다녔던 검귀로서 저들이 얼마나 대단한 고수인지는 알고 있지만, 검사는 그저 눈앞에 있는 적을 베기 위해 싸울 뿐이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만약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호르킨이 되물었다.
“움직인다면?”
쿠안의 몸이 순식간에 날아와 회전했다.
하지만 강풍이 몰아치는 자리에 이미 호르킨은 없었다.
‘쥐새끼 같은 것들…….’
쿠안에게서 10미터 떨어진 곳에 족제비 상의 남자가 호르킨의 뒷덜미를 붙잡고 있었다.
탐색 계열 마법사 스티크로, 소나 마법을 전공한 공인 5급의 마법사이다.
액체 매질 속에서 소나의 전파속도는 대략 1,500미터 퍼 세크.
마하 4가 넘어가는 전달 속도라면 어설픈 공격은 처음부터 통하지 않는다.
스티크가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성질이 급하시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은…….”
쿠안이 다시 몸을 날렸다.
“혓바닥도 놀리지 말라는 것이다.”
쿠안의 선제공격을 기점으로 25명이 동시에 움직였다.
저마다 개성적인 무브먼트를 선보이는 가운데 염화의 아로엘라가 시이나를 노리고 접근했다.
“파이어 익스트림!”
아로엘라의 머리 위로 불꽃이 뚝뚝 흐르는 농밀한 불길이 치솟더니 불의 급류를 이루며 시이나를 덮쳤다.
시이나는 두 주먹을 움켜쥐고 눈을 부릅떴다.
유리 깨지는 소리를 내며 공기가 얼어붙었다.
수천 개의 가시 꽃들이 만개하고, 파이어 익스트림의 불길이 물에 처박힌 듯 급격히 식어 버렸다.
‘확실히 호락호락한 팀은 아니군.’
한 번씩 상대의 역량을 맛본 두 팀은 본격적인 대결로 들어갔다.
케이지 B팀이 본격적으로 나서자 힘의 균형이 급격히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팀장 로즈의 향기 마법이 정신력을 흐트러뜨리고, 마미의 언령 마법이 시전되자 대지가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온갖 버프와 방어막, 회복 마법, 검사의 무위에 뒤지지 않는 전투 마법사의 무력시위로 아르민 일행은 원래 있었던 자리에서 2킬로미터나 밀려났다.
워터 드래곤.
수력 계열의 몽랑에게서 시전된 거대한 물줄기가 사방을 휩쓸었다.
앱솔루트 제로.
시이나가 아로엘라를 상대하면서도 필살의 마법을 시전하자 수룡이 형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 위를 에텔라가 내달렸다.
음양파동권-단벽.
10센티 거리에서 그녀의 주먹이 수십 차례나 몽랑의 옆구리를 두드렸다.
묵직한 액체가 타격 지점을 방어했으나 그마저 파동의 힘에 의해 산산조각 흩어지고 말았다.
‘최소한 1명 정도는 줄여야 해!’
한 걸음을 내디디며 피니시를 날리려는 순간 대머리 남자가 에텔라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바닥을 뒹굴었다.
옴짝달싹하지 못하도록 밀착한 상태였으나 대머리의 관자놀이에 솟은 핏대는 점차 굵어져 갔다.
‘크윽! 무슨 여자가 힘이…….’
과연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이다.
에텔라가 일어서려고 하자 머리로 짓눌러 쓰러뜨린 대머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 그녀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상대의 살점을 먹어 힘을 강화시키는 전투 마법사 베니피스의 능력 ‘약육강식’이었다.
베니피스가 에텔라의 살점을 우물거리며 황홀한 듯 고개를 쳐들자 에텔라가 상체를 세워 박치기를 가했다.
콰직!
베니피스의 코가 깨졌다.
하지만 각종 버프와 회복 마법 덕분에 끌어안은 자세는 풀리지 않았다.
“지금이다!”
베니피스의 외침에 타르반이 양 손바닥을 내밀었다.
마신 벨키르를 박살 냈던 진공 폭격 카이저 블래스트였다.
퍼어어어엉!
부채꼴 형태로 퍼진 아르민 일행의 진형이 의미가 없을 만큼 넓은 반경이 초토화되었다.
자욱한 연무가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가운데 전투를 끝낸 케이지 B팀이 위풍당당하게 걸음을 옮겼다.
“뭐야?”
아무것도 없었다.
분명 시체가 되어 있어야 마땅하건만 보이는 것은 회를 떠 버린 듯 모든 게 쓸려 나간 평야뿐이었다.
타르반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거…… 누가 설명할 거야?”
아로엘라가 입을 열었다.
“일단은 마법이야. 파란 머리 여자는 나랑 지근거리에서 싸우고 있었어. 갑자기 사라질 이유가 없다고.”
언로커이자 규정외식자인 모노로스가 의견을 냈다.
“아마도 가능성이 있다면 붕대를 감은 남자일 거다. 나와 똑같은 언로커였으니까.”
성녀 모리악이 말했다.
“언로커의 어떤 마법이 이렇지? 케이지급 실력자 21명이 눈치조차 채지 못하게 사라질 수 있는 마법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뱀을 닮은 언령사 마미가 가는 눈썹을 찡그렸다.
“사라진 게 아니야. 마치 뭐랄까…… 단절된 것 같은 기분? 분명 무언가가 끊어졌어.”
“스톱이군.”
모두가 호르킨을 돌아보았다.
“설마, 스톱 마법을 말하는 거요?”
“그래. 상아탑에 1명 있다고 들었네. 스톱을 구사하는 맹인 마법사가.”
“그렇게 단정 지을 수는 없지. 눈이 안 보인다고 꼭 그자가 상아탑 마법사일 거란 보장도 없고, 우리가 당한 게 스톱일 거라는 보장도 없잖아.”
단순하게 보자면 호르킨의 말이 맞지만 금속 마법사 로체의 반박은 합리적이었다.
세상에 맹인은 소수고, 상아탑 마법사는 더욱 소수다.
하지만 스톱을 구사하는 마법사는 세상 전체를 통틀어 단 1명뿐이었다.
“게다가 상아탑에서 가올드를 돕는 건 뭐야? 가올드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않아. 무려 20년 동안 기밀을 유지한 인간이라고.”
성녀 모리악이 말했다.
“딱히 그렇지는 않다고 보는데. 그는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는 게 아니야. 어울릴 필요가 없기 때문이지. 미로를 구하기 위해서라면 누구하고도 손을 잡을 수 있고, 누구하고도 싸울 수 있어.”
“그만.”
로즈가 회의를 멈췄다.
“너무 가정이 많아. 어쨌거나 상대는 스톱 마법, 혹은 그에 준하는 위력의 군중 제어 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아마도 가올드를 돕고 있을 테고.”
그렇게 말한 로즈조차 가정법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임무 수행의 난이도가 월등히 높아진 데에 대한 인지상정이리라.
호르킨이 정리했다.
“팀장이 말하고 싶은 건 이거겠지. 맹인 남자가 곁에 있는 한, 가올드를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
타르반이 물었다.
“그래서, 손가락만 빨고 있으라고?”
통신 마법사 웨이건이 끼어들었다.
“잠시만요. 그 전에 먼저 살펴야 할 의문이 있어요. 그들이 정말 가올드를 돕는다면, 대체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던 거죠?”
호르킨이 수염을 쓸어내렸다.
“흐음, 그렇군. 이런 위험한 곳에서 팀을 분산시킬 필요는 없지. 실제로 우리도 아주 비효율적으로 뭉쳐 다니고 있으니까.”
“맞아요. 그리고 가올드는 미로에게 미쳐 있죠. 그런 사람이 팀을 분산시킬 정도라면, 상당히 큰 건수일 거예요. 따라서 저들이 이곳에서 무엇을 했는지를 역추적해 보면, 결국 가올드가 나오지 않겠어요?”
“과연…… 그렇겠군.”
로즈는 턱을 괴고 생각에 잠겼다.
분명 지금 상황에서 가장 명확한 해법이었다.
“좋아. 본토로 돌아간다. 에텔라가 누구의 사주를 받고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 가올드의 소재도 파악할 수 있을 거야. 단, 전투는 최후의 수단이다. 붕대를 감은 남자가 끼어들어서는 안 돼.”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팀장의 지시를 곧이곧대로 따를 만큼 순한 자는 없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도 붕대의 남자는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놓는 게 좋았다.
“그럼, 가자.”
21개의 섬광이 하늘로 솟구쳤다.
***
제2반군 사령부 예하 부대를 순회하고 시로네가 돌아왔을 때는 초저녁이었다.
하지만 달빛이 너무 강해 주위를 살피는 데에 무리가 없었다.
“와아.”
시로네는 홀린 듯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원래의 행성에서 보던 것보다 10배는 커다란 달이 떠 있었다.
연옥에서 음의 율법이 가장 강해진다고 알려져 있는 대보름의 날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령부 인근의 숲에서는 마수들의 울음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불길하군. 꼭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아.”
“걱정하지 마. 요즘은 천사들도 순찰을 돌지 않는다고. 천사만 아니라면 단체 마법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어.”
사령부 앞에 도착한 시로네가 인사했다.
“저는 먼저 들어가 볼게요. 수고하셨습니다.”
“아, 조장님도 고생하셨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시로네는 지친 몸을 이끌고 침대에 털썩 앉았다.
일단 눕고 싶었으나 무언가를 할 시간도 없이 문이 벌컥 열렸다.
“시로네!”
플루가 들어왔다.
“어? 선배님?”
밖을 잠시 살피던 플루가 문을 닫고 시로네의 옆에 바싹 다가와 앉았다.
“할 얘기가 있어.”
“표정이 왜 그래요? 제가 없는 동안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가 없는 며칠 동안 지하 시설을 조사해 봤어. 그런데 그곳에…….”
플루가 인상을 찡그렸다.
또다시 두통이 치밀었다. 하긴, 당시의 광경을 상상하면 지금도 이가 갈린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는 법이 없던 그녀였기에 시로네는 비로소 궁금증이 생겼다.
“대체 무슨 일인데 그래요?”
“인간 복제야.”
“네? 무슨 복제요?”
“레이시스가 우리의 혈액을 채취한 이유를 알았어.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지금 당장…….”
우우우우우우우우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