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66
하지만 차마 판도라의 상자를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이것은 지옥으로 가는 문일지도 모른다.
가라스가 자유를 되찾으면 사령부는 초토화된다.
살아 있는 어떤 것이든 번식의 대상이 될 것이기에 개체 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해야 돼. 일단 풀어 두고 무조건 뛰는 거야. 붙잡힌 반군들을 구한 다음 레이시스를 치자.”
그것만이 최선.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까지 생각하고 작전을 짤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그럼…… 열게요.”
잠금장치로 향하는 시로네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버튼을 누르자 틱 하고 자물쇠가 풀렸다.
거기까지 확인한 두 사람은 동시에 돌아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볼 엄두조차 내지 않고 순간 이동을 시전했다.
쾅! 유리관을 박차고 가라스가 흘러내렸다.
8개의 다리를 뒤뚱거리며 중심을 잡아 가는 놈의 몸체가 공간의 규모에 맞추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
자연스레 괴성은 더욱 커졌고, 시로네와 플루는 마치 지척에서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져 소리를 질렀다.
“으아아아!”
약속이라도 한 듯 몸을 날린 두 사람은 좌우로 굴러 철문을 쾅 하고 닫았다.
잠시 후 쿵쾅거리는 소음을 뚫고 수많은 생물체들의 절규가 철문을 타고 전해져 왔다.
시로네는 비로소 확신했다.
자신이 연 것은 분명 지옥으로 가는 문이었다.
***
“멍청한 자식들!”
레이시스는 거칠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구원의 보고대로 시로네와 플루가 보이지 않았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든 아카마이가 초라하게 떨어져 있고 철창 안에는 오직 이카사만이 앉아 있었다.
“내가 분명 확인하라고 했을 텐데?”
“그, 그게, 아카마이가 있기 때문에 일단 실험 준비를…….”
퍽 소리를 내며 연구원의 얼굴이 날아갔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빠른 공격이었으나 이카사는 볼 수 있었다.
그녀의 망토 속에 가려진 흉물스러운 채찍을.
“흥, 그딴 걸 몸이라고 달고 다니느냐? 참으로 흉측하구나. 마라 중에 가장 못생긴 고르골도 너 같지는 않느니라.”
크르르륵!
레이시스가 이를 악물자 맞물린 송곳니 사이로 거친 흉성이 터져 나왔다.
“약해 빠진 천사 주제에 감히 이 몸을 평해? 잠시 후면 너 또한 내 배 속에 들어 있을 것이다.”
“호호호! 그래, 내 아름다운 육체가 갖고 싶어 미칠 지경이겠지. 하지만 어쩌나? 무슨 수로도 너의 추악한 외모는 고쳐질 것 같지 않은데 말이야.”
이카사의 독설은 거침이 없었다.
발할라 액션의 원인을 채우기까지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는 그녀였지만 천사의 자존감은 죽음보다 고결했다.
“갈기갈기 찢어 주마!”
레이시스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쿵쿵거렸다.
피부가 붉어지고 괴물의 얼굴을 드러낸 그녀가 거대한 아가리를 한껏 찢으며 철창으로 돌진했다.
“크아아아아아!”
대보름의 날 (5)
시로네와 플루는 지상의 반군들이 붙잡힌 창고를 훔쳐보았다.
아카마이를 대동한 레이시스의 부하들이 철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어떡하죠? 접근하면 꼼짝없이 당하겠어요.”
“아카마이는 혈액 유착을 통해서 사용자와 계약하는 것 같아. 대응하기 전에 사용자를 먼저 제거하면 될 거야.”
아카마이는 세 마리였고, 7명의 남자들 사이에 끼인 상태로 떠 있었다.
간격만 보고서는 어떤 자에게 혈액 유착을 하고 있는지 가늠하기가 불가능했다.
“한 번에 처리해야겠는데요?”
“타이밍 싸움이야. 적들이 대응할 시간을 주면 오히려 우리가 물리게 돼.”
“순간 이동으로 접근하면 어떨까요?”
“가장 편한 방법이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저들도 노르족 마법사니까. 레이시스의 측근이라면 실력도 뛰어나겠지.”
시로네는 아르망을 떠올렸다.
진眞아카마이에 붙잡힌 이후 마검을 빼앗겼지만 레이시스가 모르는 사실이 있다.
울티마 시스템으로 통합된 아르망은 시공간을 가로지르는 단일 신호로 연결되었기에 거리에 구애받지 않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차라리 제가 아르망을 부를게요.”
금강무장으로 변신한 상태라면 아카마이가 발동되기 전에 대원들을 제거할 수 있다.
이카사와도 대등한 박투를 벌인 육체 능력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위치를 들키겠지. 만약 우리가 도주한 사실을 아직 모른다면? 시간은 많을수록 좋잖아.”
“차라리 이미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건 어때요? 어차피 반군을 풀어 주면 위치는 들키게 되어 있어요.”
시로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레이시스가 뒤늦게 알아차릴수록 작전 성공률은 높아지지만 불확실한 가정을 두고 전략을 세우는 건 위험하다.
“흐음, 좋아. 그렇게 하자. 하지만 실수는 안 돼.”
시로네는 손을 뒤로 빼고 정격조종을 시도했다.
아르망의 상태는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지만 막연한 느낌을 통해서 위치가 전해져 왔다.
‘이쪽으로.’
마치 자석이 된 것처럼 아르망과 일체감이 느껴졌다.
그 느낌을 증폭시키자 복도를 따라 직각으로 궤도를 꺾으며 아르망이 손아귀로 날아들었다.
금강무장.
시로네는 심호흡을 하며 대원들의 반응을 주시하다가 부지불식간에 몸을 날렸다.
“뭐야?”
흐릿한 잔상이 눈앞에서 일렁인다는 것이 대원들 생애 마지막 생각이었다.
시로네의 몸이 회전하면서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촉수가 모두의 목을 자르고 지나갔다.
턱. 터터턱.
시로네는 아르망을 통해 밀려드는 불쾌한 감각에 살며시 미간을 찌푸렸다.
잔혹한 생물 실험을 행하는 자들을 처단하는 일에 주저함은 없지만 역시나 마법과는 다른 기분이었다.
‘냉정해지자. 나 혼자만의 임무가 아니야.’
플루는 아카마이의 반응을 살폈다.
사용자는 죽었으나 혈액 유착이 여전히 남아 있다면 뒤늦게라도 반응할 여지가 있었다.
‘처리하는 게 나을까? 아니면 긁어 부스럼인가?’
시로네는 갈등하지 않고 아카마이를 공격했다.
로브가 펄럭이면서 검은 잔상이 휘둘렸다.
세 마리의 아카마이가 물컹한 열대 과일처럼 반으로 쪼개어져 바닥에 떨어졌다.
반응조차 할 수 없는 속도에 플루가 혀를 내둘렀다.
‘울티마 시스템. 확실히 대단하네. 저 정도라면 천국과 전투할 때도 충분히 도움이 될 거야.’
시로네와 플루는 철문 앞에서 눈빛을 교환했다.
자물쇠를 끊고 문을 열자 창고 안쪽에서 날카로운 강풍이 불었다.
“크윽!”
충격에는 강하지만 절단력에는 약한 아르망의 로브가 잘리기 직전까지 파쇄되었다.
몸이 베이는 것 같은 고통에 시로네는 황급히 몸을 움츠리고 안쪽을 살폈다.
수십 개의 눈동자가 빛을 내며 모습을 드러냈다.
“크르르르.”
창고에 있던 것은 지상의 반군들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맞을지도 모른다. 시로네 또한 안면을 익힌 자들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들의 외형은, 인간이었을 때의 몇 가지 개성만이 남아 있을 뿐 완전히 변한 상태였다.
도킨스 알고리즘으로 기습을 피한 플루가 아픈 어깨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찡그렸다.
“사악한 여자 같으니…….”
레이시스는 이용 가치가 없는 반군들을 모조리 병사로 만들었다.
퓨직스 머신으로 만든 육체는 아니지만 텔로미어 레벨을 5까지 끌어올린 육체 능력은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크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노르 대원들이 시로네를 향해 돌진했다.
창고에서 빠져나온 숫자는 족히 백이 넘었고, 하나같이 예전의 지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광폭!
빛의 장막이 괴물들을 후려치자 볼기짝이 찢어지고 심지어는 팔다리의 뼈가 끊어졌다.
하지만 괴물들은 돌진을 멈추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
파괴된 부위에서 스멀스멀 살점이 밀려 나오더니 순식간에 기관을 재생시키고 있었다.
‘무한세포증식체 켄서.’
괴물의 상태를 깨달은 플루가 말했다.
“세포를 재생하는 기능을 장착했어. 어지간한 공격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을 거야.”
괴물들은 시로네와 플루를 노리는 두 패로 나뉘었으나 당하는 입장에서 전투의 무게감이 2분의 1로 줄어든 것은 결코 아니었다.
텔로미어는 생물체의 한계를 정하는 염색체의 끝단으로, 레이시스는 이 부분을 강화시켜 신체 기능을 끌어올렸다.
거기에 더해 텔로미어의 가용 한계치가 없는 켄서의 형질을 결합하여 썩지도, 죽지도 않는 병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본래 천국과의 전쟁에서 메카족의 구로이에 준하는 병력을 갖추기 위해 시도된 전술이었으나, 지금은 오히려 73구역의 빛을 처단하는 주요한 생물병기로 작용하고 있었다.
“크아아아!”
눈에 뱀이 달린 자, 한쪽 팔이 지렁이처럼 늘어진 자, 늑대처럼 야수화가 되어 버린 자 등, 형태와 능력은 제각각이었으나 광포함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아르망의 촉수가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며 놈들의 살점을 베었으나 시로네는 마치 벽을 두고 휘두르는 기분이었다.
‘이대로는 내가 먼저 지치겠어.’
점점 거리를 좁히던 괴물들이 육체의 벽으로 시로네를 위에서 아래로 짓눌렀다.
“크르르르!”
괴물들이 무덤처럼 시로네를 짓누른 가운데 정상 부근에서 직접 살점을 맛보지 못한 괴물이 아쉬운 괴성을 토해 냈다.
콰득!
그때 무덤이 진동했다.
콰드득! 콰드드드득!
흔들림은 더욱 심해졌고, 육체 더미 속에서 마치 심연에서 들리는 것 같은 괴물의 비명 소리가 올라왔다.
콰드드드드드드득!
뼈가 부러지는 소리, 근육이 짓이겨지는 소리, 내장과 피가 뒤섞이는 소리가 혼효하더니 급기야 모조리 중심을 향해 빨려 들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아……!”
마지막 남은 괴물이 종잇장처럼 구겨지면서 검은 구체 속으로 사라졌다.
시로네는 바닥을 짚고 힘겹게 일어섰다.
평소보다 3배나 큰 암구를 시전한 그의 몸이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후우우우우!”
이모탈 펑션에 심적초월을 한계까지 끌어 올려서 발휘한 위력인 만큼 후폭풍이 상당했다.
“시로네, 괜찮아?”
플루가 달려왔다.
그녀가 싸우던 공간에는 석탄처럼 타들어 간 수많은 사체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시로네가 위력으로 승부하는 하드 펀처라면 플루는 정밀한 알고리즘으로 싸우는 변칙파.
켄서의 재생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봉황정으로 불을 붙여 놓고 도킨스 알고리즘으로 시간을 끌면 버틸 재간이 없었다.
“괜찮아요. 과부하가 좀 걸렸어요.”
플루는 5톤의 중량이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복도를 바라보며 약간의 오싹함을 느꼈다.
괴물들을 한곳에 모아 두고 암구를 시전한다.
변칙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완력 일변도의 전술이었다.
“결국 우리를 도울 반군들도 이 꼴이 됐네. 이제는 우리 둘밖에 남지 않았어. 우리가 일화의 술을 저지해야 돼.”
시로네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레이시스를 처단하는 것은 물론, 이카사에게 돌아가야 하는 약속도 있었다.
“저기다! 잡아!”
복도 모퉁이 쪽에서 레이시스의 측근들이 나타났다.
아르망이 본래의 자리에서 이탈하자 수색을 시작한 정예 전투병들이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절망적인 것은 저마다 아카마이를 대동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일단 반사적으로 전투 자세를 취했으나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똑같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길! 늦었어!’
아카마이의 눈이 번쩍 뜨이고 안티테제가 발동되자 시로네와 플루의 행동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마치 원래부터 움직일 수 없는 종으로 태어난 듯 근육 어디에도 힘이 들어가지 않는 무기력함이 전해져 왔다.
‘아니, 그래도 철창을 지키던 것보다는 약해. 이 정도면 일격은 날릴 수 있어.’
문제는 타이밍이었다.
한 번의 공격으로 동시에 3명의 목을 베든가, 세 마리의 아카마이를 처치해야 한다.
‘수평 베기 궤적에 모두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
시로네와 플루가 움직이지 못하자 레이시스의 측근들이 표정을 풀고 다가왔다.
“후우, 겨우 잡았네, 쥐새끼 같은 것들. 하마터면 우리도 골로 갈 뻔했잖아.”
계획이 틀어지자 레이시스는 극도로 난폭해졌고, 곁에 있다가 휩쓸린 사망자만 7명이었다.
만약 이대로 시로네와 플루를 놓쳤다면 그들도 같은 꼴을 당하고 말았으리라.
대머리 남자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친화력 측정에서 플루에게 자존심을 구겼던 그는 역전의 상황을 만끽하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여어, 결국 이런 식으로 만나게 되는군.”
“쓰레기 같은 자식. 이런 짓을 하고도 하늘이 두렵지도 않아?”
“하늘? 잘 모르나 본데 여기가 바로 하늘이야. 덜떨어진 땅의 인간들이 함부로 설치고 다닐 곳이 아니라는 거지.”
대머리는 플루의 턱을 쓰다듬었다.
“흐음, 역시 진짜는 다르다니까.”
“내 몸에서 손 치워.”
“크크크, 너무 그러지 말라고. 어차피 이미 네 클론들은 다 죽었을 테니까. 하나밖에 없는 목숨, 소중히 해야지.”
플루는 대머리 남자의 동태를 주시하는 한편 복도에 있는 자들의 위치를 꼼꼼하게 계산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아카마이 세 마리가 사정권에 들어올 때까지는 일격을 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