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14
‘무섭다.’
마법사로서, 가올드 팀의 일원으로서 이 정도의 각오조차 없이 천국에 온 것은 아니다.
진정으로 두려운 것은 그 각오조차 무뎌진 채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이었다.
“리안.”
냉정하던 시로네의 얼굴이 갑자기 일그러지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너무 무섭다, 리안.”
“저기다! 쫓아라! 절대로 놓치지 마!”
또다시 이단 사냥꾼들이 추격을 해 왔다.
시로네가 피 냄새를 풍기고 다니는 한 그들은 어디까지고 쫓아올 것이다.
화살처럼 빠르게 다가온 케르고 전사가 언월도를 수직으로 내리긋는 순간 아카마이의 눈동자가 안티테제를 발동했다.
동작이 멈추기도 전에 아르망의 촉수가 적의 얼굴을 터뜨렸다.
이어진 전투는 전과 같은 일방적인 살육.
쿠젠의 섭식 대사 능력은 시로네에게 피로를 허락하지 않는다.
링거의 갑옷은 상처를 허락하지 않고, 켄서의 절대 수복은 부상을 허락하지 않는다.
온갖 능력으로 강화된 속에서 울티마 시스템은 직지가 인지하는 모든 공간에 마법을 박아 넣고 있었다.
아카마이가 적들을 제압하고, 갈토믹의 마력 증폭은 위력을 극대화시켰으며, 접근하는 적들은 촉수의 칼날에 썰려 나갔다.
‘젠장! 괴물이다! 인간이 아니야!’
73구역의 빛이라는 상징성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추격자들은 가히 무신이나 다름없는 시로네의 무위를 접하고 공포에 떨었다.
‘엘리시온!’
직지로 세상을 관통하는 시로네의 눈빛이 번뜩이자 지면에서 수많은 포톤 캐논이 탄생해 모조리 하늘로 솟구쳤다.
마치 거대한 섬광이 다발로 일어서는 듯한 광경이었다.
발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공격에 적응하기란 눈이 머리에 달린 인간에게 극히 어려운 일이었고, 적들은 시로네에게 다가서지조차 못한 채 목숨을 잃었다.
또 한차례의 전투가 끝나자 처연한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페오페.”
시로네는 가슴에 손을 대고 페오페의 상태를 확인했다.
숨이 끊어지지는 않았지만 생명력이 전보다 훨씬 떨어진 게 느껴졌다.
그 미약한 생명력이 시로네의 정신을 채찍질했다.
“아라보트로 가야 해.”
수많은 자들의 피로 어두워진 시로네의 로브가 금세 피를 빨아들이며 에너지로 전환했다.
그 힘을 바탕으로 시로네는 쭉쭉 전진해 나갔다.
목적지가 가까워질수록 추적자들의 숫자가 현저하게 줄어들기 시작했다.
아라보트가 풍기는 신성한 기운의 영향이 없지는 않을 테지만, 셰하킴을 제외한 다른 지역에서 무언가 큰일이 벌어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아라보트의 성벽이 눈에 들어오자 시로네는 순간 이동을 시전하여 어느 한 곳에 정지했다.
‘여기가 첫 번째 포인트.’
세인은 신의 징벌을 시전할 수 있는 포인트를 세 군데 지정해 주었고, 시로네 또한 그에 맞춰 낙하 궤도를 학습했다.
이곳에서 마법을 시전한다면 천국은 파괴될 것이다.
하지만 시로네는 포인트를 무시하고 걸어갔다.
특별한 전술적 지시가 내려오지 않을 시 신의 징벌은 아라보트에서 가장 가까운 포인트에서 시전하도록 약속되었다.
단, 정오를 넘기지 않을 것.
플루가 있었다면 판단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더 나았겠지만 어차피 결과는 같을 터였다.
‘이카엘을 만날 거야. 조금만 기다려, 페오페.’
시로네는 곧바로 몸을 날려 아라보트의 성벽을 넘었다.
가올드 팀과 반군을 통틀어서 최초로 아라보트에 도착한 상황이었다.
두 번째 포인트 지점에서 시로네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저 멀리 앙케 라가 거주하는 첨탑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졌음에도 그를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시로네가 비로소 누군가를 만날 수 있었던 장소는 세 번째 포인트마저 지나친, 아라보트에서 불과 2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다.
첨탑을 등에 업고 증폭의 대천사 이카엘이 시로네를 기다리고 있었다.
“결국 왔군요, 시로네.”
얼마나 많은 사선을 넘어온 것일까?
건조하게 말라 버린 듯한 눈빛에서는 딱히 살아 있는 감정 같은 게 전해지지 않았다.
이카엘의 명백한 적의를 대하면서도 시로네는 걸음걸이에 흔들림이 없었다.
“부탁드릴 게 있어요.”
“거절합니다. 당신과 나는 적. 더 이상 다가오면 죽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이카엘의 몸이 천천히 기울었다.
그녀에게도 마음을 차단할 이유는 명확했다.
“어쨌거나 죽이겠지만요.”
펑! 하고 공기가 폭발하면서 이카엘의 모습이 사라졌다.
그녀가 나타난 곳은 시로네가 서 있는 자리의 바로 뒤편이었다.
속도를 증폭시켜 돌진한 이카엘의 주먹이 허무하게 공기를 가르고 멈추자 그녀의 미간이 좁혀졌다.
시로네는 어느새 이카엘로부터 10미터 떨어진 장소에 서 있었다.
머리 위에서는 이카사의 사법 광륜 발할라 액션이 회전하고 있었다.
비록 타락천사로 격하되어 대부분의 힘을 구속당했지만 사법 광륜의 능력만큼은 다른 천사들이 지닌 고유의 힘과 똑같다.
이카엘이 발할라 액션을 보고 자신이 전수한 아타락시아의 연계를 떠올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천사의 사법을 두 가지나 구사하다니.’
천국의 어느 누구에게도 불가능한 일이고, 따라서 시로네는 죽어야 한다.
결정을 내린 이카엘은 다시 몸을 날렸다.
아르망의 신경계 강화로도 잔상만이 보일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었다.
퍼엉! 하고 또다시 공기가 폭발하며 이카엘이 주먹을 내밀었다.
“…….”
하지만 이번에도 시로네의 모습은 사라져 있었다.
이카사의 발할라 액션은 결과를 선행시키는 대가로 원인에 걸리는 시간을 전부 소모해야 한다.
시로네에게 시간을 준 것은 분명 그녀의 판단.
하지만 그럼에도 실수라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번만큼은 절대로 피할 수 없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어떻게 본 거지?’
이카엘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어느새 등 뒤로 돌아들어 간 시로네를 확인했다.
아르망의 촉수가 펄럭이며 본격적으로 맞설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놀란 이유는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있었다.
시로네에게서 정신의 구심점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그녀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가이아의 능력이었다.
“엘리시온?”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린 이카엘이 아픈 표정으로 인상을 찡그렸다.
“흑!”
이미 생각을 정리했건만 또 다른 감각이 망각의 저편과 연결되려 하고 있었다.
‘기억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앙케 라의 의지.
빠르게 정신을 회복시킨 그녀가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돌변해 말했다.
“훨씬 강해졌군요. 불과 며칠 사이에.”
울티마 시스템으로 인지하고 발할라 액션으로 회피한다.
분명 그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이카엘은 어리석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고작 그 정도로 나를 상대하려고 한 것인가요?”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건 1회뿐.
연격을 가하면 발할라 액션의 특성상 절대로 피하지 못한다.
아니,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는 일이다.
시로네의 수준을 알았으니 직지로도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움직이면 그만이었다.
시로네가 품에 안고 있는 페오페를 꺼내자 이카엘의 시선이 앙상하게 말라 버린 요정에게 향했다.
“아직 살아 있어. 당신이라면 페오페를 회생시킬 수 있겠지.”
페오페는 이카엘에게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시로네가 천국에 처음 왔을 때 그를 데려온 요정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전시 상황이고, 페오페는 시로네를 도운 이단이었다.
“착각하지 마세요, 시로네. 당신은 나하고 어떤 거래도 할 수 없습니다. 과연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당신이 날 죽일 수 있다는 걸 알아.”
칭!
시로네의 머리 위에 발할라 액션의 마법진이 탄생했다.
“대천사 이카엘은 천국에서 가장 강한 존재일 테니까.”
“……하고 싶은 말이 뭐죠?”
시로네는 머리 위에 떠 있는 마법진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발할라 액션은 원인과 결과를 역전시키지. 그것은 어떤 행위든 곧바로 결과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카엘의 목소리가 사나워졌다.
“지금 천사장을 놀리는 겁니까?”
천사들의 모든 사법은 이카엘의 머릿속에 있다.
그녀가 모든 사법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설명을 하는 거야. 이미 결과에 도달해 버리면 두 번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테니까.”
시로네는 다시 이카엘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금 이 발할라 액션에는 여러 가지 마법이 걸려 있어. 레이저를 아타락시아로 증폭시켜서 하늘로 쏘아 보낼 거야. 그런 다음 고도 6천 킬로미터 지점에서 새로운 마법을 시전하게 되지. 질량을 압축시키는 신의 입자를 이용해서. 그런다면 이 행성의 기준으로 10톤의 질량을 가진 빛의 창이 완성될 거야.”
이카엘의 얼굴이 점차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창은 정확히 아라보트에 추락하게 되지.”
“시로네…….”
가능한 일이다.
유리엘의 파괴보다, 카리엘의 탄생보다 먼저인 이카엘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발할라 액션이었다.
시로네의 설명은 장황했지만 발할라 액션의 사법을 이용하면 그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나 버린다.
“미안하게 생각해. 당신이 전수한 마법을 이런 식으로 이용해서. 포인트는 가르쳐 줄 수 없어. 마법을 시전하기 전에 예측해서 나를 죽일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결국 나를 막을 방법은 없을 거야. 그러니…….”
시로네는 간절한 눈빛으로 페오페를 내밀었다.
“이 요정을 살려 줘. 나를 살리기 위해 이렇게 되어 버렸어.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게 해 줘.”
이카엘은 갈등을 털어 내듯 고개를 저었다.
페오페가 문제가 아니다.
만약 시로네가 신의 징벌을 발동한다면 천국에서 무사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아니, 직격을 당한다면 대천사라도 소멸할 만큼 강력한 위력이 예상되었다.
“만약 그 마법을 시전한다면, 당신이라고 살 수 있을 것 같나요? 발할라 액션의 대가는 당신을 아주 긴 시간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할 터. 그런 짓을 하게 되면 당신의 목숨 또한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아직도 모르겠어?”
시로네가 다가오자 이카엘이 간격을 유지하듯 물러섰다.
힘에 있어서는 천국의 어떤 존재에게도 밀리지 않는 그녀지만 현재 모든 선택권은 시로네에게 있었다.
“나에게는 천국을 파괴할 임무가 있어. 하지만 페오페를 살려 준다면 그 임무를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거야. 그러니…….”
전보다 가까워진 거리에서 시로네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내가 죽는 것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어.”
이카엘의 콧잔등이 구겨졌다.
모든 정황과 상황은 완벽하게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어떠한 선택도 할 수가 없었다.
“…….”
퍼엉. 퍼엉.
아주 긴 침묵이 이어지는 가운데, 제1천부터 제6천까지의 하늘에서 전쟁의 포화 소리가 넘어오고 있었다.
새로운 변수 (2)
시로네가 아라보트로 진입하기 6시간 전.
에텔라는 세인의 특명을 받아 제1천 샤마인에 있는 깊은 숲에 도착했다.
‘늦네. 만약 오지 않는다면…….’
가올드는 야맹의 리더 프랭크와인에게 한 가지 물건을 구해 주기를 요구했고, 그 대가로 야맹은 레이시스가 사령관으로 있던 제2반군 사령부를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가올드가 야맹을 통해 얻고자 한 물건은 디스크라고 불리는 고대의 유물이었다.
미로의 시공이 사라지면서 좌표 또한 변했다.
기존의 메타게이트는 무용지물이 되었고, 그렇기에 가올드는 아카식 레코드에서 새로운 좌표를 추출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부분이 변해도 전체는 완벽하다.
따라서 미로의 시공이 사라지면서 아카식 레코드에도 새롭고 정확한 좌표가 기록되어 있을 터.
그 좌표를 추출하여 새로운 메타게이트에 입력할 수 있는 것이 거핀의 유물이라 불리는 디스크였다.
거핀 말소 이후 천국에 거핀의 유적은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그 유적에서 사용되었던 몇 가지 유물들은 여전히 연옥 전체에 퍼져 있었다.
‘디스크를 구하지 못한다면 인류 쪽에서 손을 쓸 때까지 꼼짝없이 천국에 갇혀 있어야 해.’
에텔라 또한 연옥에서 수많은 사냥을 해 보았기에 얼마나 어려운 임무인지 알고 있다.
그럼에도 가올드가 제안을 한 이유는, 그들이 연옥 커뮤니티 최고의 조직인 야맹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할 수 없다면, 누구도 할 수 없다.
“누가 마중을 나오나 했더니 이런 미녀를 보내다니. 확실히 장사를 할 줄 아는 놈이군. 가올드란 놈 말이야.”
숲의 깊숙한 곳에서 프랭크와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에텔라가 고개를 돌리자 관목 수림이 문처럼 열리면서 프랭크와인과 미트건이 나란히 다가왔다.
시간이 촉박했기에 에텔라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물건은 구하셨나요?”
미트건이 속주머니에서 손바닥 크기의 정사각형 석판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진품의 여부를 확인할 방법은 없으나 석판에는 헤나가 새겨져 있었고 미약한 붉은 빛을 내고 있었다.
‘이미 얻을 걸 다 얻은 시점에서 거짓으로 거래를 할 이유는 없어. 빨리 이걸 가지고 제불로 가야 해.’
아마 지금쯤이면 아르민, 시이나, 쿠안 일행이 제불의 잉그리스로 향하고 있을 터였다.
그곳에 디스크를 전달하는 것까지가 세인이 지시한 에텔라의 임무였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일이…….”
미트건에게 다가가던 에텔라는 급히 걸음을 멈췄다.
심상치 않은 살기가 심장으로 그대로 침투하여 그녀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강풍이 몰아치는 소리와 함께 프랭크와인의 주먹이 에텔라의 관자놀이를 가르고 지나갔다.
잔상을 남겨 두고 허리를 숙인 에텔라는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고 뒤로 물러섰다.
“이게 무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