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56
리안의 엄숙한 각오를 들은 페르미는 미소를 지었다.
‘재밌는 여행이 되겠군.’
인더 코더 (2)
그로부터 24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미로 일행은 여전히 언더 코더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언더 코더로 가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드리모로 들어가야 한다.
문제는 몽인 루버를 찾아내려면 꿈에서도 현실을 인지하는 루시드 드림의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마르샤는 루시드 드림을 불과 2회의 시도에 해냈으나 리안은 애를 먹고 있었다.
“꼭 드리모를 통해서 가야 하는 거야? 그냥 꿈속에서 이탈하면 안 돼?”
페르미는 고개를 저었다.
“언더 코더는 정신 바깥의 영역이에요. 약물 디자이너들이 여러 시도를 해 봤지만 실패했어요. 드림 스타는 드리모에서밖에 효과가 없습니다.”
“들었지? 이번에는 제대로 해 보자, 응?”
마르샤의 말에 리안은 의기소침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옆방으로 들어갔다.
심리적 압박을 줄이자는 조언에 따른 것이었으나, 솔직히 루시드 드림이라는 게 무엇인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젠장! 이제는 꿈꾸는 것도 애를 써야 돼?”
그렇게 네 사람은 다시 꿈에 빠졌다.
아리우스의 통제에 따라 들어간 꿈속은 골목길이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어느 빈민가였다.
미로와 페르미, 마르샤는 금세 서로를 찾아냈지만 역시나 리안은 이번에도 보이지 않았다.
세 사람이 리안을 발견한 곳은 골목의 끝에 있는 폐자재를 모아 놓은 공터였다.
썩은 나무토막을 휘두르며 무언가를 중얼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미로가 고개를 저었다.
“릴핀에 빠졌어.”
릴핀이란 자각의 반대 개념으로, 꿈속에서 완전히 포커스를 잃어버린 상태를 뜻한다.
“이런 식으로 베어서는 안 되지만, 어쩌면 저런 식도 괜찮고, 그래도 역시나 해야만 하는 거라면…….”
페르미가 말했다.
“의미 없는 중얼거림이군요.”
“야! 리안! 정신 차려! 여긴 꿈속이라고!”
마르샤가 손나팔을 만들어 외쳤으나 리안은 이미 들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답답한 그녀가 페르미에게 물었다.
“릴핀에서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되지?”
“자각할 정도의 충격을 주면 됩니다. 하지만 꿈에서 깨 버리게 되겠죠.”
말이 끝나자마자 마르샤는 성큼성큼 걸어가 온 힘을 다해 리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야!”
빡 소리가 들리는 순간 현실의 리안이 벌떡 일어났다.
“아욱!”
꿈에서 맞은 것이지만 얼얼한 기분에 얻어맞은 자리를 어루만지고 있는데 문이 쾅 하고 열렸다.
마르샤가 어깨를 세우고 씩씩대며 서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때릴 필요까지는…….”
빠르게 걸어 들어온 마르샤가 손을 치켜들어 리안의 뒤통수를 때렸다.
“야!”
하지만 꿈과는 달라서 이번에는 마르샤의 손이 얼얼했다.
“왜 때려요?”
“너 죽을래?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지? 일반인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하잖아!”
“꿈을 꾸는데 그게 꿈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요?”
마르샤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잘 들어. 네가 실패하면 시로네도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오지 못해. 그래도 괜찮다는 거야?”
리안의 얼굴이 긴장감에 굳어졌다.
‘그래, 내가 시로네를 구해야 해.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해야…….’
가장 분한 사람은 리안이라는 걸 알고 있는 마르샤가 표정을 고치며 다독였다.
“기술로 안되면 근성으로 해 봐. 무조건 꿈속에서 각성하는 거야. 시로네를 생각해.”
“다시 해 보겠습니다. 지금 바로 시작하죠.”
그리고 정확히 24시간 후, 마침내 네 사람 모두 루시드 드림 상태에서 꿈속에 모이게 되었다.
몽인 루버를 찾아 일자리를 구해 달라고 하자, 그는 사랑, 권력, 명예에 관련된 세 가지 직업을 제안했다.
그리고 미로 일행이 전부 거절하자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짓더니 꿈속에 있는 문 하나를 열어 주며 말했다.
“들어가게. 마음껏 원하는 꿈을 꾸게나.”
문을 통해 들어간 일행은 순식간에 변해 버린 풍경에 눈을 크게 떴다.
나왔던 문은 이미 사라졌고, 옅은 안개가 깔린 세상에 말도 안 되는 높이의 건물들이 하늘을 뚫고 솟아올라 있었다.
“엄청 높다. 천국과는 비교가 안 되네.”
“실제로 있는 건물은 아닙니다.”
아리우스의 목소리에 고개를 숙이자 푸른 털이 복슬복슬한 개 한 마리가 앉아 있었다.
미로의 개가 되고 싶은 아리우스의 바람이 화신의 형태로 투영된 것이었다.
“실제로 없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냥 풍경의 정보일 뿐이라는 것이죠. 막상 건물의 구체적인 상태는 만들어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관상용이라는 거네. 연극의 배경 소품 같은.”
그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땅이 울렸다.
반사적으로 하늘을 살핀 일행의 얼굴이 하나같이 창백해졌다.
“솜사탕?”
마르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누가…… 솜사탕 먹고 싶었어? 그럼 말을 하지. 사 줬을 텐데.”
“아뇨. 우리의 사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드리모가 위험한 이유이기도 하죠.”
페르미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일이 있는데. 캡슐이 녹을 시간이 됐어. 이제 곧 드림 스타의 약효가 발동할 거야.”
예고한 대로 현실에서 나란히 누워 있는 네 사람의 육체가 가볍게 들썩거렸다.
드림 스타가 뇌를 각성시키면서 현실의 감각을 뇌에 전하자 드리모의 풍경이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
동시에 솜사탕의 색감이 구정물에 젖은 듯 탁하게 변하더니 연기처럼 풀어지며 일행을 덮쳤다.
“시작입니다! 포커스에 주의하며 달려요!”
페르미가 앞장서자 미로가 따라가며 물었다.
“갑자기 왜 저래? 불량 식품이었어?”
“약효 때문이에요. 우리는 드리모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이질적인 존재가 된 겁니다.”
리안이 전방을 향해 턱짓을 했다.
“그럼 저것도 정상적인 건가?”
세상이 흔들리는 진동 속에서 눈에 보이는 모든 구조물들이 파편처럼 부서지며 추락하고 있었다.
꿈이 붕괴되는 것이었다.
“이쪽으로!”
페르미가 급격히 방향을 꺾어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남은 네 사람이 문을 향해 뛰어들었다.
풍경이 또다시 바뀌고, 갑판 바깥으로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를 발견한 네 사람은 망연자실했다.
“제길!”
그들은 한 척의 배에 타고 있었고, 어디를 둘러봐도 출구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어떡하지? 이곳도 곧 무너질 텐데.”
“이런 식으로 차원만 바꿔서는 드리모를 빠져나갈 수 없어요. 어떻게든 바다 끝으로 가든가, 새로운 차원으로 가는 출구를 찾아야 합니다.”
“잠깐! 뭔가 이상해!”
지반이 흔들리는 듯 물길이 요동치더니 바닷물이 높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 밑에 불이라도 난 듯 온갖 바다 생물들이 수면 위로 튀어나와 아치를 그리며 잠수했다.
“아무래도 시간에 맞출 수 없겠는데.”
불과 10미터 앞이 바다라는 정보의 끝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을 믿고 노를 저었다가 판단이 틀렸을 경우에는, 꼼짝없이 이곳에서 수몰당할 판이었다.
“저, 저기……!”
마르샤가 말을 잇지 못하고 하늘을 가리키자 모두가 그곳을 돌아보았다.
행성 스케일의 거대한 흰색 기둥이 하늘에서 사선으로 내려오더니 먼바다에 잠기고 있었다.
네 사람은 망연자실하게 허공을 관찰했다.
창공 전체에 염색체가 몇 개 부족한 듯한 어린아이의 얼굴이 떠 있었고, 흰색 기둥이 아이의 입에 물려 있었다.
“다른 차원이 간섭하기 시작한 겁니다.”
“도망쳐! 배에서 나가!”
미로는 에어 마법으로 일행을 전부 띄우고 갑판 바깥으로 몸을 날렸다.
사력을 다해 하늘로 올라가는 순간 아이의 볼이 움푹하게 파이더니 바닷물의 수위가 순식간에 내려가면서 증발하듯 흰색 기둥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행성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빨려드는 광경은 보는 것만으로도 쇼크가 밀려들 만큼 상식 밖이었다.
미로의 등에 업힌 아리우스가 소리쳤다.
“찾았습니다!”
“어디야?”
“저 기둥, 아니 빨대 속입니다!”
다른 차원으로 연결되는 유일한 통로를 찾았으나 굳이 애를 쓸 필요조차 없었다.
바다가 사라지자 이어서 공기가 빨려들기 시작했고, 4명의 인간과 한 마리의 개 또한 그곳으로 들어갔다.
“후우우우우.”
아이가 공기를 불어 내쉬자 아름다운 비눗방울이 탄생하면서 바람을 따라 흩날렸다.
5개의 비눗방울이 터지고, 미로 일행은 놀란 표정으로 주위를 살폈다.
예쁘장한 아이들이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탈출의 여운을 음미할 시간도 없이 붕괴의 여파는 즉각적으로 찾아왔다.
저 멀리 초원 바깥에서부터 어둠이 밀려들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겁에 질린 듯 울음을 터뜨렸다.
반응하듯 대지가 흔들리고, 마침내 하늘을 뒤덮은 어둠에서 점액질처럼 끈끈한 형태들이 수도 없이 내려왔다.
“나이트메어입니다! 절대로 닿지 마세요! 만약 닿게 되면 이 세계는 악몽으로 변할 겁니다!”
“키에에에에!”
날렵하게 생긴 어둠이 미로 일행을 향해 쇄도했다.
반사적으로 검을 휘두르려던 리안은 아리우스의 조언을 상기하고 즉각적으로 디나이를 걸었다.
공간이 왜곡된 듯 상체가 뒤틀리자 나이트메어가 아슬아슬하게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다.
“숫자가 너무 많아!”
속도 자체가 그리 빠르지는 않지만 관성이 적용되지 않는 움직임은 하나하나가 액싱을 구사하는 듯했다.
두 마리의 나이트메어를 옆구리 사이로 보낸 미로가 페르미에게 소리쳤다.
“공간 이동으로 빠져나갈 수는 없는 거야?”
“포커스 유지할 수 있겠어요?”
“내가 누군지 잊었어?”
“그럼 빨리 해요!”
페르미의 말이 끝나자마자 미로는 모두를 데리고 공간 이동을 시전했고, 곧바로 하늘이 무너지듯 어둠이 내려와 대지를 짓이겼다.
쿵! 쿵! 쿵! 쿵!
거대한 어둠은 마치 개미를 밟는 코끼리의 다리처럼 공간 이동의 섬광을 끝없이 추적해 왔다.
“대체 끝이 어디야!”
아리우스가 소리쳤다.
“나이트메어 때문에 확장되고 있어요! 이대로는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아우, 진짜!”
미로가 공간 이동을 멈추고 일행을 내려놓자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나이트메어가 사람의 손과 같은 형상을 내밀면서 밀려들었다.
“끝까지 해보자 이거지!”
세상을 뒤덮으며 밀려드는 나이트메어를 노려보며 미로는 합장한 두 손을 전방으로 쭉 내밀었다.
심적초월 반야-일수장.
거대한 관음의 화신이 미로의 후광에서 탄생하며 합장한 수도로 나이트메어의 중심을 찔렀다.
미로가 두 팔을 펼치자 화신이 똑같은 동작을 취하면서 나이트메어의 몸을 좌우로 찢어 냈다.
“됐어! 가자!”
리안과 마르샤가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것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미로는 곧장 공간 이동을 시전하여 모두를 나이트메어의 영역 바깥으로 탈출시켰다.
“이제 남은 건 뭐야?”
페르미가 찝찝한 표정으로 말했다.
“악몽이죠.”
쿠쿠쿠쿠쿠쿠쿠쿠!
마치 바다 위에 떠 있는 듯 초원이 출렁이더니 땅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미로 일행이 각자 산개하여 최대한 지그재그로 몸을 날리고 있는데 조금씩 시간이 느려지기 시작했다.
‘젠장! 나이트메어 타임이군.’
사방에서 폭음성이 들리고, 땅 밑에서는 불기둥이 바닥을 뚫고 솟아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여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거대한 폭발이 일행을 선으로 연결한 중간 지점에서 터졌다.
퍼어어어어어어어엉!
느려진 시간 속에서 모두 하늘로 솟아올랐고, 충격에 의해 제멋대로 회전했다.
마르샤는 마치 부유하는 것처럼 느리게 움직이는 일행을 선명하게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불쌍하게 뒤집어진 채로 혀를 빼물고 있는 아리우스를 지나 다시 폭발의 불꽃으로 시선이 넘어가자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전율이 차올랐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차 있는 불꽃이 거대하게 펼쳐지면서 한 송이의 꽃이 되어 만개하고 있었다.
사방에서 불의 꽃이 피고 있다.
꽃의 표면은 기름을 바른 듯 번질번질했고, 황금처럼 타오르면서 세상을 대낮처럼 환하게 밝혔다.
“아…….”
마르샤는 몽롱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진짜 끝내주는 악몽이다.’
동시에 시간이 되돌아왔다.
“정신 차려!”
포커스를 잃기 직전, 미로가 마르샤의 허리를 감싸며 지평선을 향해 비행했다.
이미 그녀의 주위에 모두가 모여 있었다.
가장 컸던 폭발이 충격파를 퍼트리면서 미로 일행의 몸을 수백 미터나 날렸고, 부유감의 릴핀에 빠지기 직전 미로는 처박히듯 추락해 바닥을 굴렀다.
“후아, 후아.”
마르샤는 조금 전에 봤던 장렬한 광경이 여전히 선명한 듯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고 리안 또한 기가 빠진 표정이었다.
“도착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