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23
부들부들 떨리는 모습만 봐도 그에게 들어간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에드가가 위력에서 밀렸다고?’
그것이 무스탕의 감상이었으나, 욜가의 반응은 조금 달랐다.
“……거핀?”
미로가 흠칫 놀라며 욜가와 눈을 마주쳤다.
뛰어난 통찰력은 미로가 품은 아이와 거핀을 떠올리게 하는 시로네를 번갈아 보는 것으로 순식간에 실마리를 풀었고, 욜가의 눈에 처음으로 분노가 담겼다.
“미로, 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미로!”
욜가가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성 마리아의 눈이 번쩍 뜨이고 쇠사슬의 재갈이 끊어졌다.
이어서 몸통밖에 없는 어깨에서 두 팔이 튀어나오더니 관음의 화신을 향해 돌격하기 시작했다.
반야-파破 마리아.
마리아와 관음의 화신이 격돌하면서 이스타스가 흔들렸다.
“버려! 그 아이는 시한폭탄이야!”
“언니야말로 포기해!”
욜가는 너무나도 좋은 사람이라서, 자신을 버리지 않고서는 화를 내지 못한다.
“모두 물러서!”
나인의 말이 토해지는 순간 파 마리아의 표면이 용암처럼 들끓기 시작했다.
“폭발한다! 전부 날려 버릴 거야!”
욜가가 살아오며 진심으로 받아들인 수많은 거짓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위력은 세상의 악의 강도와 같다.
“언니! 안 돼!”
그것이 욜가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
‘끝내야 돼. 저 아이가 존재해서는 안 돼!’
“시로네!”
미로는 헥사를 던지고 관음의 화신을 극한으로 강화시켰다.
“거핀의 문으로 들어가!”
“큭!”
시로네가 촉수를 뻗어 헥사를 받으려는 그때, 아이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모습을 감추었다.
감가상각의 거래-리버스 텔레포트.
원하는 대상을 자신에게 순간 이동시키는 광자 계열의 최고 등급의 마법.
그것을 시전한 자는 다름 아닌 페르미였고 그의 손에는 헥사가 들려 있었다.
“아이를 내놔!”
“흐음.”
아이를 바라보던 페르미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시로네, 이게 너란 말이지?”
그의 눈빛을 본 시로네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너, 설마…….”
하지만 광기의 기운은 잠시였고, 그는 욜가에게 다가가 헥사를 내밀었다.
“자, 이것이 필요한 것 같은데요.”
“아…….”
반야-성 마리아.
욜가의 화신이 눈을 감고 입에 다시 쇠사슬의 재갈이 물렸으며 두 팔이 어깨부터 사라졌다.
헥사를 안아 든 욜가는 무릎을 꿇었다.
‘이 아이는…….’
우주의 법칙을 깬다.
그것이 어떤 의미로 작용할 것인지는 극한의 통찰력으로도 닿을 수 없겠지만, 인간이 인간 이상의 것에 기대는 순간 미래는 없어지는 것이다.
“언니, 그러면 안 돼.”
모두가 시간을 망각한 채 쳐다보는 그때, 헥사가 얼굴을 찡그리더니 울음을 터뜨렸다.
적막 속에 퍼지는 아이의 울음소리에 욜가의 흐느낌이 섞여 들었다.
“어떻게 어린아이를…….”
그래도 욜가는, 좋은 사람이다.
“언니.”
미로가 다가가는 그때 날카로운 사슬낫이 날아와 헥사의 정수리를 강타했다.
시간의 큐브 (2)
품 안에서 죽어 버린 어린 생명을 바라보던 욜가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뭐……!”
모두가 충격을 받은 얼굴로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한쪽 팔이 으스러진 루캉이 벽에 손을 짚고 서 있었다.
“당신은?”
욜가는 루캉을 기억해 냈으나 조금 전에 봤던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기질이 탁했다.
핏발의 눈은 초점이 맞지 않았고, 전신이 피범벅이었다.
“흐, 흐흐흐.”
핏물을 왈칵 쏟아 낸 그가 벽면에 피 칠을 하며 넘어졌다.
“이제…… 집에 갈 수 있어.”
“헥사아아아!”
미로가 소리치며 달려와 아이의 시신을 회수했으나 사슬낫에 정통으로 맞는 바람에 이미 되살리기에는 무리였다.
충격을 받은 그녀가 고개를 돌리자 시로네 또한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헥사가 죽었다.
‘그렇다면 나는?’
손바닥을 들여다보자 천연색이었던 피부가 회색빛으로 변하고 있었다.
죽는다.
무채색의 색감이 그것을 확신시켰고, 시로네는 현기증을 느끼며 비틀거렸다.
“죽는다. 죽…….”
“정신 차려!”
미로가 달려와 시로네의 어깨를 짚었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하지만 제가 죽었어요. 제가…….”
“똑바로 들어. 폐곡선은 원인과 결과를 분리시킬 수 없어. 지금 일어난 사건이 종결되려면 시간선을 한 바퀴 돌아야 돼.”
거기까지 들은 시로네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사건을 바꿀 수 있다.’
“가서 이스타스를 움직여. 욜가와 내가 만나게 해서는 안 돼. 알았어?”
시로네는 즉각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날렸다.
멀어지는 그를 바라보던 미로가 욜가를 노려보았다.
“이제 만족해?”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실망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의문인 것은 루캉의 등장이었다.
“어째서 살아 있었던 것이지?”
“사건이 중첩되고 있는 거야.”
무스탕이 말했다.
“기존의 사건이 한 바퀴를 순환하기 전에 새로운 사건이 밀려들고 있어. 공간이 붕괴되고 있다는 증거지.”
루캉이 죽지 않은 사건이 전보다 빠르게 밀려들었다면 헥사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다는 뜻이었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그제야 욜가는 매서운 눈초리로 미로를 돌아보았다.
***
“제길!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라이컨은 밀려드는 화성의 병력을 피해 계단을 내려갔다.
그럼에도 화성은 어느 방에나 퍼져 있었다.
‘페르미가 말한 것과 전혀 다른데?’
이스타스가 수차례 구조를 바꾸면서 그의 동선도 복잡하게 꼬이고 있었다.
“저 자식은 뭐야?”
화성의 4조가 전방을 가로막자 라이컨은 곧장 옆의 통로로 몸을 날렸다.
‘마음 같아서는 붙어 보고 싶지만…….’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무엇보다 가 걸렸다.
일회성 오브제.
만의 하나라도 위기에 처한다면 오브제의 능력이 발동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복제하기도 전에 100억 골드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거 애물단지잖아.’
본래라면 소지자의 목숨을 구해 주는 고귀한 물건이지만 지금 라이컨에게는 오히려 그 점이 방해가 되고 있었다.
‘거의 다 왔다!’
라이컨은 저 멀리 보이는 복도의 끝을 향해 최고 속도로 달렸다.
페르미가 지정한 금고가 있는 창고였다.
***
실패, 또다시 실패.
복잡하게 움직이는 이스타스의 창고 속에서 시로네는 수많은 사건을 접했으나 그가 원하는 공간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저기다! 잡아!”
“조심해라! 놈은 강하다!”
화성의 대장 니켈이 토르미아 공용 병기인 장검을 움켜쥐고 달려들었다.
실력은 초일류, 내지르는 검술 하나하나가 시로네의 목을 조이며 날아들고 있었다.
‘광폭!’
빛의 장막이 폭발하면서 화성의 대원들이 똑같은 거리로 물러섰다.
포톤 캐논이 튀어 나가고 산탄 무브먼트의 섬광이 복도를 수놓았다.
“잡았다!”
끈질기게 시로네를 따라붙은 니켈이 검을 휘두르는 그때, 2개의 촉수가 칼날을 붙잡았다.
“크윽!”
이어서 또다시 2개의 촉수가 그의 복부를 정통으로 치받았다.
니켈의 눈이 크게 뜨이면서 입에서 핏물이 튀어나오자 대원들의 표정이 창백하게 질렸다.
“대장님!”
‘이러고 있을 시간이…….’
시로네는 필사적으로 정신력을 끌어 올렸다.
“없단 말이야!”
엘리시온이 스피릿 존의 경계선을 허물고, 복도 전체에 포톤 캐논의 섬광이 그물처럼 얽혀 들었다.
“으아아아악!”
대원들의 비명 소리를 따돌리듯 몸을 돌린 시로네는 다시 시불상폭매를 시전했다.
시간대가 변하면서 화성의 병력이 사라졌다.
“빨리! 빨리!”
벌써 일곱 번이나 공간을 우회한 시로네였으나 시간선은 너무나 복잡했고, 어떤 방법을 써도 헥사의 사망을 막아 낼 수가 없었다.
‘문제는 사슬낫을 쓰는 남자야. 미로는 분명 임무를 성공했어. 내가 인지하지 못하는 사건에서 꼬여 버린 거야.’
생각이 끝날 무렵 저 멀리 기관실이 보였다.
시간 : 1시간 57분.
공간 : 이스타스 9번 창고.
‘저곳이다.’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찰이 불쑥 튀어나왔다.
“시로네?”
“안찰!”
시로네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그녀에게 달렸다.
“아직까지 여기서 기다린 거야?”
“아니, 이제 도착했어. 어떻게 된 거야?”
시로네는 입술을 깨물며 조종 장치로 걸어갔다.
“실패했어. 사건이 계속 바뀌어서 도저히 막아 낼 수가 없어.”
“무슨 소리야?”
시간이 지날수록 시로네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폐곡선의 시간이 한 바퀴를 순환하면 헥사가 죽은 사건이 종결되고,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끝장이었다.
“제길! 어떡하면 되지? 대체 어떻게 해야…….”
이미 일곱 번이나 장치를 가동시켰으나 헥사의 사망 사건을 뛰어넘을 수가 없었다.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를 36번 방에 붙여야 돼. 그런 다음 11번 방을 우회해서 돌아가면…….’
실패.
그곳에는 이미 화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55번 방을 위로 붙이자. 거기에서 시간을 크게 우회하면 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기분으로…….’
안찰이 다가와 시로네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뭐 하는 거야? 사건을 뒤틀면 위험하다고 했잖아.”
“어차피 전부 죽어!”
시로네로서는 답답할 따름이었다.
“되돌려야 돼. 내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을 해. 나는 아직 아무 사건도 접하지 못했어.”
“내 실수야. 처음부터 욜가를 미로와 만나게 하는 게 아니었어.”
“뭐?”
“헥사. 내가 죽어 버렸다고. 이제 곧 나도 사라질 거야. 그 안에 나를 살려야 돼.”
이스타스의 가동이 멈추자 시로네가 몸을 돌리며 말했다.
“나를 도와줘! 이쪽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