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30
“이게 진짜!”
시로네가 위치를 바꿔 얼굴을 내밀자 네이드의 목이 다시 반대편으로 홱 하고 넘어갔다.
시선을 피하려는 사람과 마주치려는 사람의 행동이 반복되는 와중에 주위에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부터 뭐 하는 거야? 남우세스럽게.”
“잠깐만, 둘 다 남자 같은데?”
얼굴이 빨개진 네이드가 어깨를 짚은 시로네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에잇! 이거 놔! 너 때문에 괜히 이상한 오해 받잖아!”
“그러니까 왜 도망을 쳐? 뭐 죄지은 거라도 있어?”
한참이나 씩씩대던 네이드가 갑자기 슬픈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푹 숙였다.
“미안해, 시로네. 내가 모두 망쳐 버렸어. 너희들을 끌어들인 것도 나였는데.”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너도 최선을 다해 싸운 거잖아. 이루키에게 얘기 들었다고. 게다가 스크럼블 로열도 이겼고.”
네이드에게는 무엇보다 안도가 되는 소식이었으나 그런 만큼 죄책감은 더했다.
“하아, 내가 있었어야 했는데.”
“모두 걱정하고 있어. 일단 학교로 돌아가자.”
한편 이제 막 도시에 도착한 남녀는 대낮부터 일어난 활극에 어안이 벙벙했다.
“대체 무슨 소란이야, 아까부터?”
금발의 남성은 훤칠하게 잘생겼고 옆에는 수도 바슈카의 세련미가 물씬 풍기는 여성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저쪽 블록에서 마법사가 어쩌고 하더라고. 듣기로는 아직 어린애라던데.”
“그럼 학생인가? 알페아스 마법학교.”
남자의 말에 여자가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고.”
“나 참. 지방이라 학생들 관리도 엉망인가 보네. 수도에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인데 말이야.”
여자가 눈을 흘겼다.
“지금 내 모교 욕하는 거야?”
“하하! 그게 그렇게 되나?”
“아무튼 가 보자, 궁금하니까. 혹시 알아? 아는 후배라도 만날 수 있을지.”
“바쁜데 그냥 가지……!”
여자가 남자의 팔을 끌어안고 걸음을 옮기자 남자도 할 수없이 입맛을 다시며 끌려갔다.
“후후, 대체 어떤 애들이…….”
인파를 헤치며 도착한 여자는 옥신각신 다투고 있는 두 소년을 발견하고 눈을 크게 떴다.
“어라?”
“왜? 아는 애들이야?”
남자가 하품을 하며 물었으나 그녀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그들에게 다가갔다.
“네이드! 너 네이드 맞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네이드는 혼이 빠져나가는 표정으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리즈…… 선배님?”
“이야! 너 진짜 네이드구나? 이게 얼마 만이야?”
“선배님이 여긴 어떻게……?”
에이플 리즈.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의 전前 회장이자 네이드를 지옥에서 끄집어낸 첫사랑이었다.
뿌리 없는 나무 (3)
“네이드, 정말 반갑다! 잘 지냈어?”
리즈가 다가와 어깨를 흔드는 와중에도 네이드는 빠져나간 영혼을 찾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어떻게?’
수도 바슈카에 있어야 할 그녀가 여기에 와 있단 말인가?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야.’
졸업 시험이 끝나고 열린 파티에서 네이드는 리즈에게 진심을 고백했었다.
좋은 동생이지만 남자로 보이지는 않는다고, 미안하다는 말을 남겨 두고 학교를 떠나 버린 그녀.
네이드의 마음속에서는 지금도 그날의 일이 생생하건만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밝은 표정으로 말을 걸어오는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언제 돌아오신 거예요?”
시로네가 의아하게 쳐다보는 가운데 네이드가 애써 말을 꺼냈다.
“오늘 아침에.”
“하지만 듣기로는 수도 병기창에 취직하셨다고…….”
“응. 휴가 쓰고 내려왔어. 일이 있어서.”
“아, 그렇군요.”
네이드가 의기소침한 모습을 감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자 리즈가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래도 조만간 직장 정리하고 이곳에 내려올 것 같아.”
네이드의 고개가 빠르게 올라갔으나, 이어진 리즈의 말이 또다시 억장을 무너뜨렸다.
“사실 나, 이번에 약혼하거든.”
“네에?”
리즈의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수십 번이나 메아리치고 있음에도 네이드는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리즈는 뒤편에 서 있는 말끔한 외모의 남자의 팔짱을 끼고 다시 다가왔다.
“이 사람이야. 인사해. 공인 8급 마법사 클리드 오스카야. 이번에 크레아스 마법협회에 부임하게 되었거든.”
“아, 안녕하세요.”
시로네가 황급히 고개를 숙였으나 네이드는 얼이 빠져 인사를 하는 것도 망각했다.
‘약혼? 약혼이 뭐였더라? 약혼이라고?’
오스카는 신경 쓰지 않고 사람 좋은 웃음으로 두 사람을 반겼다.
“반가워. 오스카야. 네가 네이드구나. 리즈에게 얘기는 많이 들었다.”
“아…….”
오스카가 악수를 건네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 네이드는 천천히 그의 손을 맞잡았다.
부드럽고 따듯한 손이었다.
“이럴 게 아니라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 후배들을 만났으니 맛있는 거 사 줘야지.”
리즈의 말에 네이드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우리들은 금방 학교로 돌아가 봐야 해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학교는 절대 안 갈 거라고 난리를 치던 네이드였으나 시로네는 눈치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학교로 가 봐야 해요.”
리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뻥치고 있네! 모를 줄 알아? 이 시간에 도시에 나온 거면 누가 봐도 땡땡이지 뭐.”
“진짠데. 가 봐야 되는데.”
시로네는 나름 최선을 다했으나 리즈는 무시하고 네이드에게 다가갔다.
“가자, 응? 먹고 싶은 거 내가 다 사 줄게.”
“딱히 먹고 싶은 건…….”
“너에게 꼭 소개시켜 주고 싶어서 그래.”
네이드는 그제야 리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고, 아름다운 눈동자에 담긴 간절함을 발견했다.
‘선배도 기억하고 있구나.’
그때는 어렸기에, 또한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당시의 감정도 희석되었으리라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과연 리즈는 오스카에게 어떤 말을 했을까?
한때 자신을 쫓아다니던 후배, 혹은 성질머리 고약한 동생이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쳇, 이게 뭐야.’
리즈는 약혼자를 소개하는 것으로 과거에 남은 일말의 짐조차 훌훌 털어 버리고 싶은 것이다.
“응? 네이드, 가자아.”
생각할수록 억울한 일이지만 길 잃은 고양이처럼 간절한 그녀의 얼굴을 보면 심장이 두근거려서 어떤 거절도 할 수 없게 되고 만다.
“알았어요. 대신에 비싼 거 시킬 거예요.”
“물론이지! 그냥 후배도 아니고 연구회 직속 후배인데.”
연구회 직속 후배.
그 말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고 있는 듯했다.
***
아침이라 고급 레스토랑에 사람은 많지 않았다.
네 사람은 창가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자, 이제 뭘 먹을까?”
메뉴판을 들고 어깨춤을 들썩이는 그녀를 바라보자 예전의 향수가 네이드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다.
‘위험하다.’
목소리, 말투, 눈짓이나 사소한 행동까지,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정식으로 소개하지. 나는 오스카, 여기는 내 약혼녀 리즈.”
오스카가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는 것을 보자 속에서 불기운이 치솟은 네이드였지만, 그조차도 리즈와 재회했다는 충격 앞에서는 현실감이 없었다.
“네이드입니다. 여기는 제 친구 시로네고요.”
시로네가 고개를 숙이자 네이드가 덧붙였다.
“굉장히 유명한 애예요.”
“어머, 정말?”
토르미아 왕국에 있는 마법학교 학생 중에 시로네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터였다.
설령 오스카가 프로 마법사라고 해도 왕국의 주목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알고 있을 터였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 가진 듯한 표정에 한 방 먹여 주고 싶었던 것이지만, 그는 능수능란하게 도발을 받아쳤다.
“하하! 이거 실례했네. 사실 졸업하고 몇 년간은 스피릿 잡지도 살펴보고 그랬는데 요즘은 마법학교 소식을 듣지 못해서 말이야.”
그래 봤자 학생일 뿐이라는 말이었다.
물론 그렇겠지만 후배에게 옹졸한 발언인 것만은 사실이었기에 리즈가 황급히 말을 돌렸다.
“굉장히 유명하다면 이제 곧 졸업하겠네. 지금 졸업반 맞지?”
“네.”
“힘들겠다. 솔직히 나는 요즘에도 졸업반 꿈을 꾼다니까.”
“그래도 저 같은 경우는 좀 괜찮아요. 후반기 졸업 평가는 포기했거든요.”
“아, 그래서 오늘 도시에 나왔구나. 나 때도 그런 애들이 꽤 있었지. 그럼 네이드도 포기한 거야?”
“아뇨. 저는 정말로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럼 지금 몇 등인데?”
네이드는 살짝 공포감이 밀려들었으나 거짓말을 하는 것조차 초라했기에 사실을 말했다.
“꼴등요.”
“푸훕!”
물을 마시던 오스카가 뿜어내는 시늉을 했다.
“아, 미안. 너무 의외라서. 그렇게 안 보였는데.”
사실은 시로네가 평가를 포기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가 마법학교에 다닐 때에도 평가 포기는 이도 저도 답이 안 나올 때 하는 선택이었다.
‘물론 꼴등일 줄은 몰랐지만.’
내색하지 않아도, 오스카의 눈빛이 전과 다르다는 건 알 수 있었다.
“흐음, 그랬구나.”
반면에 리즈는 무언가 짐작 가는 게 있는지 안쓰러운 표정으로 네이드를 바라보았다.
“사정이 있는 거겠지.”
“그렇지도 않아요. 꼴등은 꼴등이죠.”
이왕 망가진 체면, 네이드는 될 대로 되라는 듯 내뱉었다.
“후후, 얼굴은 왜 그래? 또 누구랑 싸운 거야?”
네이드는 그제야 얼굴에 남아 있는 상처를 기억해 냈다.
‘오늘 진짜 최악의 날이구나.’
네이드가 고개를 살며시 숙이자 오스카가 끼어들었다.
“평가 포기도 좋고 성적이 낮은 것도 상관없지만, 마법사가 될 거라면 그렇게 싸우고 돌아다니는 건 안 돼. 실력을 과신하기 시작하면 발전이 없거든.”
이미 프로가 된 선배의 조언이지만 오늘만큼은 고깝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싸운 거 아니에요. 그냥 이건…… 제가 화나서 그랬어요.”
리즈와 헤어지고 나면 모든 말들이 후회로 밀려들 것을 알면서도 목구멍에 필터를 채울 수가 없었다.
자해의 흔적을 지켜보던 리즈가 무엇인지 알겠다는 듯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여전하구나, 네이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식사가 이어졌다.
대부분 리즈가 대화를 주도했고 오스카가 듣고 있다가 한마디씩 끼어드는 식이었다.
음식은 맛있었지만 네이드는 음식이 어디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머, 정말? 그럼 시로네도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회야? 회원 1명 가입시키기 정말 힘든데. 너, 능력 있다?”
“그래 봤자 3명이에요. 이루키는 아시죠?”
리즈가 손을 깍지 끼고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아, 너 만나니까 정말 예전 생각난다. 상층부의 비밀이 무엇인지 밤새도록 토론도 하고 그랬는데. 지금도 밝혀지지 않았지?”
“네, 뭐…….”
아예 상층부를 닫아 버린 시로네로서는 할 말이 없었다.
그들만의 동문회가 이어지자 소외감을 느낀 오스카가 화제를 바꿨다.
“이제 얼마 안 남았군. 졸업시험 말이야. 준비는 잘되고 있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이잖아.”
오스카의 모든 말에 의도가 담겨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네이드는 미운 오리 새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관심 없어요, 시험 같은 거. 마법사가 되고 싶지도 않고.”
사뭇 건방진 소리였고, 오스카는 그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판단은 네 몫이니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학교에 붙어 있는다는 건 어폐가 있지 않아? 이런 식으로 도망치는 거라면…….”
“합격할 거야.”
리즈가 말을 끊었다.
“합격할 수 있을 거야. 네이드는 강하니까. 그렇지?”
확신이 가득 담긴 눈빛을 대한 네이드는 빨개진 얼굴을 감추려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제길. 그렇게 쳐다보면 날더러 뭘 어쩌라는 거야?’
“흠흠.”
오스카가 헛기침을 하고 냅킨으로 입을 닦았다.
“다 먹었으면 그만 가지. 볼일이 있어서.”
“정말? 아직 차도 못 마셨는데?”
“리즈, 협회 사람들하고 약속 있다고 했잖아.”
“아, 그렇지.”
리즈는 아쉬운 듯 느릿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