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29
“우와아아아! 성공이다! 최고 기록이야!”
미로가 심호흡을 하고 크게 숨을 들이마시자 수십 명이 동시에 소리쳤다.
“빠레이!”
“하아! 기분 죽인다!”
혀를 내민 미로가 의자에 쓰러졌으나 더 이상 세인은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이제 만족하냐?”
“응. 넘칠 정도로 마셨어. 아침에 떠나자.”
“일어나면, 기억이나 할 수 있겠어?”
“후후. 상관없잖아, 기억하지 못해도.”
미로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감정은 남으니까.”
“……그렇군.”
술에 취한 탓인지 광등에서 내려오는 빛이 부옇게 번졌다.
‘욜가 언니, 지켜보고 있는 거지?’
작지만 거대했고, 가장 낮았지만 누구보다 높은 곳을 바라보았던 그녀.
빛무리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얼굴을 향해 미로는 빈 술잔을 들어 올렸다.
“언니와 내가 만들어 갈 미래를 위해…….”
빠레이.
뿌리 없는 나무 (2)
***
잠에서 깨어난 시로네는 정오가 넘을 때까지 침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거핀…….”
그가 남긴 말들이 수수께끼처럼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 봐야겠어.”
몸을 일으킨 시로네는 세안을 끝마치고 초자연 심령과학 연구실을 찾았다.
심호흡을 하고 시불상폭매를 시전하자 시간기가 소용돌이치면서 시간의 장벽을 폭파시켰다.
상층부의 소란스러운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닫혔구나.’
미로가 세상에 나온 이상 헥사는 장벽의 재료가 되지 못하고, 그렇기에 상층부 또한 존재할 의미가 없었다.
‘떠난 거야.’
거핀이 완전히 떠나 버렸다는 생각을 하자 허탈감에 빠진 시로네는 소파에 털썩 앉았다.
‘나는 원인이 없다.’
마치 우주에 홀로 남은 기분이었다.
“시로네, 어떻게 된 거야?”
에이미와 이루키가 들어왔다.
“어라? 벌써 평가 끝났어?”
“평가 시간이 엉망진창이야. 스크럼블 로열 때문에.”
네이드가 돌아오지 않는 한 연합팀은 기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숙소에 없어서 여기로 왔어. 대체 무슨 일이야? 안찰에게 물어보니 직접 들으라고 하던데.”
“맞다, 안찰은?”
“떠났어. 자퇴했대.”
“그렇구나.”
예상은 하고 있었다.
“이제 말해 줘. 약속했잖아.”
“그게…….”
시로네는 상층부에서 벌어진 일을 빠짐없이 고했다.
여태까지도 비밀은 없었기에 이해는 빨랐고,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에이미가 슬픈 표정을 지었다.
‘불쌍한 시로네.’
뿌리를 찾기 위해 마법사의 꿈마저 포기하고 천국행을 결정했건만 이런 식으로 결론이 나 버리다니.
“난 뿌리가 없어. 그게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아. 너무 끔찍한 기분이야.”
“원인이 없는 결과는 없어. 설령 완벽한 우연이라고 해도 너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야.”
에이미가 이루키의 말을 거들었다.
“그래, 시로네. 무슨 이유가 있을 거야. 거핀도 ‘한때는’이라는 말을 썼잖아. 벌써부터 포기하지 마.”
너무 어두운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에 시로네가 분위기를 바꿨다.
“그나저나 네이드는? 설마 아직도 안 돌아온 거야?”
“스크럼블 로열에서 이탈한 것에 책임감을 느끼는 거겠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거야.”
“하지만 이겼잖아. 네이드도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차라리 내가 찾아볼게. 웨스트 가문에 가 봐야겠어.”
“집에는 안 갔을 거야. 어디에서 노숙이나 하고 있겠지.”
집도 있고 돈도 있는데 노숙을 한다는 건 이해가 안 가는 일이었지만 이루키는 확신할 수 있었다.
“말해 줘, 이루키. 네이드는 왜 그런 거야? 적어도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고 있어야 설득을 시킬 거 아냐.”
네이드가 영원히 떠날 것이 아니라면 어차피 밝혀질 일이었다.
“시로네, 너는 뿌리가 없지만…….”
이루키는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네이드의 뿌리는 병들었어.”
***
초가을 산속의 바람은 밤에 더욱 차가웠다.
“어우, 추워.”
네이드는 모닥불 옆에서 몸을 웅크리고 잠을 청했다.
“오늘 밤은 제발 무사히 넘어가기를…….”
19년 전 웨스트 가문에 유례없는 천재가 태어났으나, 가문의 누구도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어휴, 짜증 나!”
네이드의 어머니 테리아는 벌써 1시간째 화장대에 앉아 화장을 고치고 있었다.
‘이딴 싸구려 화장품을 쓰니까…….’
사치에 낭비벽이 심하다는 소리는 정상적인 재벌 가문이었다면 듣지도 않았을 터였다.
누가 알았겠는가?
대대로 부동산 재벌이었던 웨스트 가문이 막대한 부채를 떠안고 있을 줄은.
‘결혼 한번 잘못해서 인생 망쳤어.’
네이드의 아버지 웨스트 볼룸과는 사교계의 파티에서 처음 만났다.
고가의 시계와 유명 디자이너의 옷, 장인이 만든 7평 크기의 집마차를 보았을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진 줄로만 알았다.
술에 취해 네이드를 임신했고 그렇게 웨스트 가문의 일원이 되었으나, 침몰하는 배에 올라탄 셈이었다.
“한심한 인간 같으니라고.”
집안이 망해 가고 있으나 가주인 볼룸은 여전히 술과 놀음에 찌들어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어떻게든 가업을 살려 보라고 윽박을 질러도 하룻밤 불장난으로 끌어안은 테리아가 귀찮다는 시늉만 할 뿐이었다.
“도련님이 또 울어요.”
보모의 말에 그녀는 머리를 빗고 있던 빗을 바닥에 내팽개쳤다.
“그럼 조용히 시켜요! 그러라고 당신이 있는 거잖아요!”
“하지만 한번 울기 시작하면…….”
“짜증 나!”
테리아는 보모를 밀치고 네이드의 방으로 건너갔다.
“엄마! 엄마!”
바보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 울고 있는 아들을 보자 한심한 남편이 생각나서 머리털이 곤두설 지경이었다.
“왜……!”
테리아는 목이 터져라 소리쳤다.
“왜 울어! 도대체 왜 우냔 말이야! 없는 살림 쪼개서 다 해 주잖아!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이상한 소리가…… 소리가…….”
“너 바보야? 왜 너까지 멍청해서 나를 힘들게 만들어!”
테리아의 오해와 다르게 네이드는 세상의 어떤 이치를 깨달아 오버플로우에 시달리는 상태였다.
네이드의 나이 고작 세 살 때였다.
“엄마아. 엄마아.”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테라이의 얼굴이 흉악하게 일그러지더니 네이드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물리적인 충격에 아이는 잠시나마 울음을 참아 낼 수 있었고, 네이드의 정신이 완전히 파괴되기 전까지 이 방법은 테리아의 유일한 수단이었다.
“허억!”
몸을 벌떡 일으킨 네이드는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다행이다.”
전격이 방출되지 않았다는 것은 다시 통제가 되기 시작했다는 뜻이지만, 마음은 여전히 비참했다.
‘슬슬 돌아가야 하는데.’
스크럼블 로열에서 이탈해 버렸으니 친구들을 볼 면목이 없었다.
“일단 좀 씻어야겠다.”
산을 내려가 도시에 도착할 때쯤 동이 텄고, 네이드는 공중목욕탕으로 들어가 야영의 고단함을 녹였다.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았으나 하나같이 네이드의 몸을 흘끗거렸다.
온몸에 퍼져 있는 화상 자국은 잔인하기로 악명이 높은 치킨헤드 도적단이 고문한 흔적이었다.
어쩌면 죽었어야 정상이지만 네이드는 정신을 죽이는 것으로 육체를 살렸다.
“아직도 상처가…….”
거울에 비친 얼굴에는 스스로 새긴 손톱자국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피딱지는 벗겨졌으나 완전히 아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듯했다.
‘어쨌거나 통제할 수 있으니까 오늘부터는 여관에서 자야겠다.’
아직 학교로 돌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는 네이드였다.
***
“없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크레아스 도시를 하루 종일 돌아다닌 시로네는 남의 집 지붕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길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고 있지만 삶에 지친 자들에게는 하늘을 올려다볼 여유가 없는 듯했다.
도시 전체를 하루 만에 뒤질 수는 없겠지만 금강무장의 상태에서 스피릿 존을 확장시키면 아예 불가능할 것 같지도 않았다.
“정말로 산에 들어가 버린 건가?”
그렇다면 어차피 찾을 방법은 없을 테니 조금 더 도시를 살펴보는 게 좋으리라.
광익을 펼치고 날아오른 시로네는 아르망의 신경 강화를 통해 매의 눈으로 지상을 관찰했다.
“어라?”
그리고 마침내 세 블록 떨어진 거리에서 목욕탕에서 나오는 네이드를 발견했다.
“아저씨도 아니고…….”
입맛을 다신 시로네는 곧장 하늘을 날아 블록을 넘어 상가 옥상으로 내려갔다.
촉수가 가볍게 바닥을 치자 그의 몸이 핑그르르 회전하고, 아래로 추락할 때는 이미 아르망이 해제된 상태였다.
날렵한 동작으로 바닥에 착지한 순간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물러섰다.
“뭐, 뭐야? 서커스인가?”
웅성거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네이드의 얼굴이 굳었다.
“하하! 찾았다!”
“시로네?”
인상을 찡그린 네이드가 고개를 숙이더니 시로네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야! 왜 도망가?”
황당하게 쳐다보던 시로네도 곧장 몸을 날렸다.
“시로네! 따라오지 마!”
“그러니까 왜 도망가는데?”
“몰라! 날 좀 그냥 내버려 둬!”
인파에 치이고 좌판의 물건에 넘어지면서도 두 사람은 멈추지 않았다.
‘하여튼 집요하다니까.’
시로네의 고집을 알고 있는 네이드는 순간 이동을 시전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꺄악!”
행인들이 화들짝 놀라고, 몇몇 상인들이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마법사다! 저건 분명 마법이야!”
마법학교 학생들에게는 일상이지만 마법이라는 걸 평생 볼 기회가 없는 사람들이 태반이었다.
“저게……!”
고개를 치켜든 시로네는 이를 악물었다.
사람들 앞에서 마법을 시전하지 못할 것이란 네이드의 계산이었으나, 이루키에게 이미 얘기를 들은 시로네 또한 이번만큼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기 서! 너 잡히기만 해 봐!”
섬광이 솟구치자 거리의 경제활동이 정지되고, 시간마저 멈춘 듯 모두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네이드는 뒤를 바짝 추격해 오는 시로네에게 소리쳤다.
“으아아! 너 미쳤어? 이러다가 누가 학교에 신고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그러니까 왜 도망을 쳐! 잠깐 얘기 좀 하자니까!”
‘큰일이다. 저 녀석 진심이야.’
시로네의 무브먼트 실력을 알고 있는 네이드는 결국 붙잡히는 미래를 상상하고 침을 꿀꺽 삼켰다.
“웃기지 마! 내 진짜 실력을 보여 주지!”
그로부터 1분 후.
“으아아악!”
시로네에게 붙잡힌 네이드는 시장 한복판에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이리 와!”
“사람 살려!”
이제 막 목욕을 한 몸이 먼지투성이가 되었으나 네이드는 바닥을 엉금엉금 기었다.
하지만 결국 몸을 일으키는 것과 동시에 시로네에게 붙잡혀 벽까지 떠밀렸다.
“이제 끝났어! 포기해!”
시로네의 얼굴이 불쑥 다가오자 네이드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차마 얼굴을 보여 줄 수가 없었다.
“날 봐! 고개 돌리지 말고!”
“싫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