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52
“쳇! 시로네 저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이야?”
와이번의 화염이 지상을 불태우며 돌진하자 카니스가 섀도 월을 일으켜 세우며 방어했다.
“크크크! 인간들, 재밌는 걸 만들어 냈어.”
그렇게 중얼거린 하비스트가 용아병의 해골을 뽑아내며 정신 채널로 목소리를 전달했다.
-어떡할 거냐? 활약하려면 지금이 기회인데.
-아직 모르겠어. 시로네를 좀 보고.
-암흑 마법의 장기는 방어니까 버티는 것도 나쁘지는 않아. 어차피 여기서 15명 추려질 것 같은데.
“카니스! 괜찮아?”
카니스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골렘들이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납작 부서졌다.
섀도 월을 거둔 카니스의 눈에 우뚝 서 있는 세 마리의 오우거가 들어왔다.
“아린?”
오우거의 다리 사이로 아린이 달려왔다.
“그나마 정신이 단순한 애들로 잡았어. 이거면 3분은 버틸 수 있을 거야.”
그녀의 판단도 수비 쪽이었다.
“호오? 마인드 컨트롤?”
바이칼의 눈에 활기가 돌았다.
“정신 활동성 수치가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4티어 오우거를 세 마리나 장악한 건 놀랍군요.”
아린의 주위를 지키는 세 마리의 오우거가 미친 듯이 적들을 부수는 광경이 보였다.
“정신적 유동성이 어마어마하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왕국에서 거두었으면 좋겠군요. 타국에 빼앗기고 싶지 않은 인재입니다.”
“A.”
모두가 아린처럼 명확하다면 스카우트 간의 의견 충돌이 일어날 일도 없을 터였다.
‘그에 반해서…….’
바이칼의 시선이 시로네를 뒤쫓았다.
여전히 높은 수치로 전투를 벌이고 있지만 전처럼 강렬한 마력의 가속은 보이지 않았다.
“고작 이것이 네가 원하던 그림이냐?”
시로네의 얼굴은 핏기가 말라 버린 듯 창백했고, 눈의 초점도 조금씩 흐려지고 있었다.
‘휴식이 필요해…….’
집중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쓰러뜨릴 수 있는 크리처가 아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위력은 떨어져 갔다.
‘조금만…… 쉴 수 있으면…….’
포톤 캐논은 여전히 우악스럽게 뻗어 나가지만 적들의 포위망은 오히려 좁혀지고 있었다.
“이루키, 시로네가 많이 지친 것 같아.”
네이드가 이루키에게 날아와 말했다.
“……그래서?”
“우리가 도와주자. 조금 쉬게 해 줘야겠어.”
팀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이루키는 네이드와 생각이 달랐다.
“시로네가 결정한 일이야. 도와 달라고 하기 전까지는 우리가 나설 필요 없어.”
“하지만 저러다가는 진짜 탈락이야!”
“그렇더라도 할 수 없는 일이지. 남에게 신경 쓸 정신 있으면 네 앞가림부터 하는 게 어때?”
순간 이동으로 멀어지는 이루키를 바라보며 네이드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제길! 이놈이고 저놈이고……!’
어제까지 웃고 떠들던 친구들이 졸업 시험에서만큼은 남보다 더 차갑게 느껴졌다.
“하아, 하아.”
시로네의 눈을 어지럽히던 포톤 캐논이 마치 물이 말라 버린 수도꼭지처럼 뚝 하고 끊겼다.
골렘들을 밀어내며 다가오는 바실리스크를 보고도 어떠한 대응도 하지 못하는 그때, 네이드가 날아왔다.
“시로네! 조금 쉬어! 내가 지켜 줄게!”
시로네의 눈썹이 꿈틀했다.
“네이드, 비켜…….”
“이대로 탈락할 수는 없잖아! 초반부터 너무 무리했어. 여기서 다시 회복해서…….”
“비키란 말이야!”
네이드가 놀란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네이드, 나는 마법사가 될 거다. 누구도 내 꿈을 막을 수는 없어. 그러니까 비켜.”
‘큰일이다. 제정신이 아니야.’
시로네의 눈에 생기가 없었다.
벌써 1시간 가까이 최고의 집중력으로 마법을 퍼부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만약 비키지 않으면…… 너하고 싸울 수밖에 없어. 날 꺾고 최고가 되고 싶다면 덤벼.”
한순간 네이드의 얼굴에 울상이 드러났다.
“……힘내라, 시로네.”
네이드가 순간 이동으로 날아간 뒤에야 시로네의 입에서 말이 이어졌다.
“끝나고…… 밥 먹자.”
바이칼이 상황을 분석했다.
“저 21번, 엉망진창이군.”
“웨스트 네이드. 실력은 떨어지지 않는 것 같은데 행동 패턴이 이상해요. 확실할 때는 나서지 않고, 정말로 위험할 때는 오히려 좋은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그걸 엉망진창이라고 하는 거지. F다. 27번도 마찬가지야. 이미 한계에 다다른 것 같다.”
“마력 수치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지만 더 이상 올라가지는 않습니다. 효율은 극히 떨어져서, 광자 마법의 위력이 초반의 절반도 나오지 않고 있어요.”
“실망스럽군. 플루가 적극 추천했을 때만 해도 조금은 기대를 했었건만.”
시로네는 장막처럼 드리워진 몬스터들을 향해 재차 포톤 캐논을 시전했다.
‘이제부터 시작이야!’
시분할을 통해 거대한 헤일로를 그리자 아타락시아의 정보가 집적되기 시작했다.
“나왔군요. 대천사의 마력 증폭진입니다.”
“흐음, 가속을 멈춘 대신 여분의 정신력을 다른 곳으로 운용하고 있었군.”
오랜만의 칭찬에 엘리자베스가 맞장구를 쳤다.
“회복 시간이 없는 상황에서 나온 임기응변이죠. 그렇다면 포톤 캐논의 효율이 떨어진 것도 이해가 돼요.”
“그렇다고 달라질 것은 없어. 7단계를 통과하면 8단계가 있을 뿐이다. 2차 시험은 아예 고려조차 하지 않고 있어.”
“아타락시아다! 모두 피해!”
시로네의 마법진을 발견한 참가자들이 섬광의 질주 방향을 예측하며 자리를 피했다.
“쳇, 결국 하는 거냐?”
고급반에서 졸업반에 이르기까지 아타락시아의 위력이 어떤지는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마지막 발악인가?”
이미 거리를 벌린 페르미가 눈웃음을 지으며 시로네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다.
‘수고했다, 시로네.’
시로네를 이용해 단계를 높이고 상위 단계에서 두각을 드러내겠다는 전략이 제대로 먹혀든 셈이었다.
“절대로 멈추지 않아.”
아타락시아의 오색찬란한 빛을 향해, 두 눈을 부릅뜬 시로네가 땅을 박차고 돌진했다.
“뭐야?”
참가자는 물론이고 스카우트들까지 어리둥절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후드를 둘러쓴 여자만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가라, 시로네.”
이후에 다가올 충격파가 너무나 위험하기에 대천사 이카엘조차 시도하지 않았던 기술.
아타락시아 육탄계였다.
스카우트 리포팅 (4)
“허어어억!”
시로네의 동공이 완전히 확장되고, 마치 그곳으로 세상 만물이 빨려드는 듯 정신이 거대하게 부풀어 올랐다.
폭발이라 부를 법한 증폭 속에서 그는 마치 세상을 삼켜 버린 거인이 된 기분이었다.
‘포톤 캐논!’
인간을 통째로 삼킬 듯한 섬광이 튀어 나가 바실리스크의 얼굴을 정통으로 강타했다.
일격과 동시에 파충류의 얼굴이 목 안으로 파묻혀 버리고 몸통 전체가 뒤로 밀렸다.
“저게…… 대체 뭐야?”
학교의 어느 누구도 아타락시아를 통한 육탄계의 위력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충격량. 몇이야?”
바이칼의 물음에 엘리자베스는 침묵했다.
이천번 메인 시스템은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전달받은 수치를 입으로 내뱉을 수가 없을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절대로 멈추지 않아!’
눈앞의 적을 해치운 시로네는 전장의 중심을 향해 몸을 날렸다.
단 한 번의 산탄 무브먼트만으로 콜로세움이 8등분으로 쪼개졌다.
마치 지우개로 지운 듯 섬광이 지나가는 자리가 깨끗해졌고, 중심점 없는 광폭들이 구체의 형태로 점멸하는 광경은 행성의 폭발을 연상케 했다.
“미친 자식! 저건 반칙이잖아!”
시로네의 육체는 변한 것이 없으나 참가자들은 마치 거대한 어떤 존재를 마주하는 기분이었다.
샤이닝 체인에 감긴 와이번들이 목과 척추가 동시에 부러지며 땅에 처박히고, 운석처럼 쏟아지는 포톤 캐논에 오우거들이 짓이겨졌다.
“충격량! 보고해!”
답답해진 바이칼이 소리치자 엘리자베스가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말했다.
“아, 네! 포톤 캐논 단일 충격량 230만 크래시! 마력 수치……!”
망막에 떠오른 숫자를 읽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다.
“현재 1억 7천만을 넘어서고 있습니다!”
“1억 7천만?”
위력을 높이고, 시스템을 바꾸고, 이번에는 아예 스케일 자체를 초월 해버린 셈이었다.
“평가관님, 이 정도라면…….”
“알고 있어. 내 눈은 삐딱하지 않아.”
이제는 바이칼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본래부터 구사할 수 있는 힘이 아니다. 그런데도…… 버틴단 말인가?’
인간의 정신이 얼마나 거대한 것을 담을 수 있는지 떠올리면 전율이 치밀었다.
“평가해 주시죠.”
엘리자베스의 목소리는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F다.”
의외의 평가에 라라의 고개가 갸웃했다.
“아무리 초월적인 위력이라도 극기 생존의 의미를 부정하고 있는 건 변함이 없으니까.”
“하지만 이건…….”
“단, 한 가지는 덧붙여 두지.”
바이칼이 말을 이었다.
“만약 27번이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을 수 있다면…….”
기존의 시스템을 파괴할 수 있다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전 세계 스카우트들의 극찬을 받을 것이다.”
미로가 제시한 유일한 방법이었다.
‘최대한 높은 단계로 올라가야 돼!’
모두가 넋을 잃은 와중에도 어떤 종의 왕이라 불리는 크리처들의 숫자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소나 익스플로전!’
대상이 아닌 좌표에 직접 마법을 시전하자 몇몇 몬스터들이 질량의 폭풍에 휘말려 소멸했다.
5티어는 거의 전멸했고 4티어의 숫자마저 10단위로 줄어들자 참가자들은 비로소 스카우트의 관점에서 전장을 바라볼 수 있었다.
‘우리를 바보로 알아!’
처음에는 제풀에 지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으나 이대로 가다가는 시로네의 들러리가 되어 1차 평가가 끝나게 될 터였다.
‘싸운다.’
태세를 바꾼 참가자들이 적들을 향해 돌진하려는 그때 페르미가 비장의 카드 중 하나인 대지진 마법, 슈퍼 이럽션을 시전했다.
이천번 시스템이 적용된 반경 전체가 쪼개지면서 거대한 괴수들이 대지에 잡아먹힌 채로 으스러졌다.
“어째서?”
페르미를 돌아본 참가자들은 빠르게 깨달았다.
‘그렇구나. 어차피 오래 유지될 수는 없어.’
아타락시아가 마력 증폭진이라면 시로네의 거대한 정신도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감각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시간은 결코 길지 않을 터였다.
‘자, 시로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육탄계의 정신 확장이 끝났을 때의 후폭풍은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시로네는 이 상태에서 최대한 많은 단계를 뛰어넘고 싶을 것이고, 그렇다면 페르미는 그 욕망을 차단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토록 원했던 휴식, 충분히 즐기라고. 너만 설치면 곤란하잖아?’
크리처가 섬멸되면 30초의 시간이 주어지고, 그사이에 육탄계로 증폭시킨 정신력도 잠잠해지게 될 터였다.
슈퍼 이럽션이 발동을 멈추자 이천번 시스템이 땅을 원상태로 되돌려놓았다.
참가자들이 깨끗해진 콜로세움을 멍하니 지켜보는 가운데 페르미가 박수를 치며 말했다.
“자, 그럼 조금 쉬었다가…….”
-극기 생존 8단계에 진입합니다.
“뭐?”
페르미의 말이 멈추고, 참가자들이 콜로세움의 구석을 돌아보았다.
“크으으으!”
여전히 증폭의 힘에 휘말려 있는 시로네가 거친 신음 소리를 내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위쪽이야.‘
샤이닝 체인에 감긴 한 마리의 바실리스크가 높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더 이상은 너에게 휘둘리지 않아.”
페르미가 썩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 봤자 달라지는 건 없어.”
시로네는 말없이 바실리스크의 얼굴에 손을 가져다 댔다.
‘암구.’
검은 구체가 탄생하자 괴물의 사지가 푸들푸들 떨리더니 코드로 분해되어 어둠 속으로 빨려들었다.
“정신 차려! 지금 우리 8단계라고!”
이미 3티어급 크리처들이 콜로세움을 잠식한 상황이었다.
4티어만큼 거대하지도 않고 흉물스럽지도 않았으나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생물의 기능이 아닌 정신적 영역, 즉 마력을 기반으로 하는 마족임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뭐가 이렇게 많아!”
몽마 서큐버스, 반신반혼 뱀파이어, 수면마 샌드맨, 악령 라르바 등 3티어의 중급 마족들 240개체가 소환되어 참가자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전 단계보다 소환 개체 수가 많은 건 중급 마족이기 때문이지만,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그들의 특별한 마력을 감안하면 말이 되지 않는 난이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