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7
“응. 물론 마법사는 언제나 객관적이고자 노력하지만 시로네는 심지어 자기 자신조차도 부정해 버리니까. 마르샤를 끌어안았을 때도, 포니라는 왕족을 용서했을 때도. 아니, 어쩌면 이것도 내 기준일 뿐, 시로네는 처음부터 논리의 흐름만을 따랐던 것일지도 모르지.”
“그건 너무 나간 것 같은데? 시로네가 냉철하기는 하지만 차가운 사람은 아니야.”
“솔직히 잘 모르겠어.”
에이미는 시로네의 카르 수치를 떠올렸다.
“90퍼센트에 가까운 카르 수치라는 것은 판단에 들어가는 주관이 10퍼센트밖에 되지 않는다는 거야. 확실히 인간적이지 않아. 대부분의 인간은 감정에 대한 프리미엄을 기대하고 행동하지만, 시로네의 행동은 오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에이미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야. 기다리겠다는 말도, 미래를 약속하는 말도, 시로네에게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할 테니까.”
탁 소리를 내며 식칼이 도마에 박혔다.
“그렇지 않아, 에이미!”
테스가 두 손으로 에이미의 어깨를 붙잡았다.
“사람의 마음은 수치로 정해지는 게 아니야. 분명 그 10퍼센트 안에 네가 있을 거야. 90퍼센트보다 더 큰 감정으로 10퍼센트를 채우고 있을 거야.”
“그럴까?”
에이미가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쳤다.
“정말로 시로네는 날 잊어버리지 않을까?”
“당연하지! 시로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네가 불안해하면 어떡해?”
“응. 믿어. 시로네를 믿어.”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되는 상황에다가 상아탑이라는 최고 기관의 평가까지 들으니 알게 모르게 마음이 약해졌던 모양이다.
에이미를 넓은 가슴으로 끌어안은 테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최고로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자. 우리 아니면 저 바보들이 밥이라도 먹고 다니겠어?”
그제야 웃음기를 되찾은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하! 맞아, 분명 그럴 거야.”
***
두 필의 말이 대기하는 가운데 시로네는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에이미의 도시락을 양손으로 받았다.
“고마워, 에이미. 잘 먹을게.”
“몸조심하고. 가끔…… 편지 보내.”
편지를 보내라는 말조차 부담스러웠으나, 시로네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자리 잡으면 연락할게.”
하늘에 떠 있는 태양의 위치로 시간을 확인한 리안이 말을 향해 돌아서며 말했다.
“이제 그만 떠나자. 시간이 없어.”
테스가 도끼눈을 치켜떴다.
“야!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지도 모르는데 작별 인사도 안 하냐?”
“언젠가는 보겠지. 시로네는 지금 엄청난 놈들하고 경쟁을 해야 돼. 작별 인사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무심한 대답에 테스는 오히려 황당한 표정이 되었다.
‘뭐 이런 놈이 다 있어?’
리안이 퉁명스럽게 덧붙였다.
“검술학교나 졸업해. 빨리 합류하란 말이야.”
그제야 테스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흥, 당연히 그렇게 할 거야. 수석으로 졸업해서 너 같은 자퇴생하고는 비교도 안 되게 높이 올라갈 테니까.”
“하하하! 아직 모르나 본데, 그때쯤이면 나는 온 세상이 다 아는 대검호가 되어 있을 거다.”
옥신각신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서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이 에이미는 부러웠다.
“맞다! 이걸 깜박했네!”
안장에 매달린 가방에 도시락을 넣은 시로네가 큐브릭에서 아르망을 꺼냈다.
졸업 시험을 치르면서 정신적 진보가 있었기에 아르망에도 어느 정도 변화가 생겼을 터였다.
에이미가 허리에 손을 짚으며 말했다.
“흐음, 그러네. 마법사가 되었으니 앞으로는 무기를 소지할 수 있잖아?”
“응. 가급적 착용하고 다니려고.”
금강무장을 발동하자 칼날이 갈라지면서 시로네를 휘감더니 금속 뼈대 사이에 유기질이 채워졌다.
-다중 집중점 감지. 기능 재설정.
퀀텀 슈퍼포지션의 경지를 확인한 아르망이 천국에 이어 또 한 번의 변화를 꾀했다.
“어라?”
각이 잡힌 순백의 로브였던 형태가 차분한 회색빛에 약간은 닳은 느낌이 나는 후드로 바뀌었다.
변한 것은 외형만이 아니었고, 가장 먼저 확인된 것은 인공두뇌 외가 사라졌다는 점이었다.
‘퀀텀 슈퍼포지션 때문이구나.’
포스 디멘션으로 사고가 중첩되는 상태에서 인공두뇌가 작동하면 울티마로 통합하기가 훨씬 어려워진다.
‘발할라 액션은 여전히 기능 중지.’
테라제 쪽에서 아직 대가를 치르지 못한 듯했으나 미로의 말에 의하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인공두뇌 외가 사라지면서 아카마이의 안티테제도 아르망의 로브 쪽으로 기능이 옮겨진 듯했다.
“흐음.”
안티테제를 개방하자 로브가 칼로 베인 듯 갈라지면서 수십 개의 눈동자가 깜박거렸다.
“으윽!”
테스가 인상을 찡그렸으나 전술적으로 봤을 때는 사각이 없어지는 셈이었다.
충격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링거의 갑피 능력과 연계하면 사용자 보호 기능은 최고라 할 수 있었다.
‘어? 이게 없어졌어?’
가장 큰 변화는 섭식귀 쿠젠의 촉수가 더 이상 나오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심리가 변했기 때문이구나.’
천국에서 금강무장을 변화시켰을 때에만 해도 생존이 최우선 목표였기에 형질발현도 극단적인 감이 있었다.
쿠젠의 촉수는 외부의 생물체를 씹어 삼키는 것으로 에너지를 흡수하는 능력.
물리적인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분명 시로네의 성향과 어울리는 방식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건 퀀텀 슈퍼포지션과 상극이라는 것.’
활동성이 너무 강한 능력은 중첩되는 사건의 개수가 늘어날수록 통제하기가 어려워질 터였다.
“잠깐만, 그럼 어떻게 에너지를 흡수하지?”
아르망과 정신이 통합되어 있는 시로네는 즉각 변화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하, 나를 먹는 거구나.”
“너를…… 먹는다고?”
“에너지대사의 효율이 높아졌어.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먹으면 쿠젠이 다시 내 몸을 먹는 거야.”
외부에서 에너지를 찾는 것보다 안정적인 운용이었다.
“하지만 오싹한데? 너를 먹는다고 생각하니.”
“먹는다고 표현했지만 그냥 신진대사를 촉진시키는 것뿐이야. 굶으면 살이 빠지는 것과 똑같은 거지.”
어차피 생물은 자신의 몸을 소화시키며 살아간다.
“그래도 체력 소진이 심할 텐데. 위험하지 않겠어?”
“괜찮아. 활성화를 결정하는 건 나니까. 특히나 쿠젠의 섭식 대사는 스키마를 상대할 때 굉장히 유용하거든.”
게다가 켄서의 세포 재생 능력과 결합하면 신체 내부에 가해지는 충격에도 방어력이 붙을 터였다.
‘즉, 아르망을 통한 4단계 방어 시스템.’
1단계로 아카마이의 안티테제가 구속하고 2단계인 링거의 갑피가 사용자를 보호한다.
3단계로 쿠젠의 신진대사 촉진이 육체를 강화시키고, 마지막으로 켄서의 능력이 세포를 재생시키는 것이다.
물론 실전은 이론과 다르겠지만, 이 정도의 방어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어떤 적이라도 상대할 수 있을 듯했다.
‘다음은 공격력.’
율법을 강화하는 갈토믹의 능력은 마법의 위력은 물론 광천사의 화신도 강화시킬 터였다.
또한 순수한 마력 증폭 면에서도 기술적인 변화가 있었다.
양쪽 건틀렛에 장착되어 있는 마력 증폭구가 오른쪽 손바닥으로 통합되어 더욱 효율을 끌어올린 것이다.
‘차라리 이게 나아. 밸런스에 집착하면 중요할 때에 변수를 만들지 못하니까.’
이것 또한 시로네의 성향이었다.
“마음에 들어.”
형태부터 기능까지, 천국에서 겪었던 극한의 고통을 벗어던지고 비로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은 느낌이었다.
“네가 마음에 들면 됐지.”
리안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으나 에이미는 심기체 전체를 강화시키는 아르망의 기능에 혀를 내둘렀다.
졸업 시험에서 선보인 시로네의 능력만으로도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음이 증명되었건만 이제는 아르망의 기능까지 더해진 것이다.
‘지금의 시로네는…… 얼마나 강한 거지?’
반면에 시로네는 기능보다도 의장용에 가까웠던 스타일이 야전용으로 변한 것이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렇게 허름한 옷이 더 좋은 것 같아.”
솔직히 주름 하나 없는 순백의 로브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얼굴이 달아올랐다.
“활동성도 좋아졌고, 무엇보다…….”
시로네가 소매를 펄럭거리며 해맑게 웃었다.
“이거 방수도 된다?”
에이미는 멍한 표정을 지었으나, 앞으로 계속 입고 다녀야 하는 시로네에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테스가 말했다.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비싼 옷치고는 심심한데? 좋은 옷에는 디자이너의 이름을 새기잖아. 그런 걸 넣어 보면 어때?”
“아하, 그렇지.”
지적이 합당하다고 생각한 시로네가 눈을 감고 링거의 갑피를 활성화시켰다.
카드득. 카드득.
부드러운 소매에 금속질의 선이 움직이면서 아리안 시로네라는 이름이 새겨졌다.
“어때, 이러면?”
소박한 성품답게 이름 한 줄을 새겼을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훨씬 고급스러워 보였다.
“응, 멋있다. 이제 정말로 마법사가 된 것 같네.”
시로네는 애틋한 마음으로 에이미를 바라보았다.
속에 담긴 감정을 말로 꺼내려면 하루가 모자랄 것이기에 그저 눈빛으로 작별의 정을 나누는 두 사람이었다.
“그럼 다녀올게! 모두 잘 있어!”
말에 올라탄 시로네와 리안이 손을 흔들며 빠른 속도로 멀어지자 테스가 에이미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걱정 마, 에이미. 조금 전에…….”
“응. 나도 들었어.”
에이미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시로네.”
오젠트 가문의 본가를 벗어나 산길에 접어들 무렵 리안이 물었다.
“에이미의 이름도 새겨 주지 그랬어? 바라는 눈치던데. 어려운 일도 아니었잖아?”
시로네는 흐뭇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소매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소매를 뒤집어 안감을 보여주었다.
“이미 새겼어.”
아리안 시로네라는 이름 안쪽에 또 한 줄의 글귀가 태양 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카르미스 에이미
그들이 사는 방식 (1)
크레아스 도시를 벗어난 시로네와 리안은 산길에 말을 묶어 두고 늦은 점심을 먹었다.
“맛있다.”
살뜰하게 주먹밥으로 꾸린 에이미의 도시락과 달리 테스가 싸 준 도시락은 전투식량에 가까웠으나 두 사람 모두 만족스러운 식사였다.
“그나저나, 이제 어디로 갈 거냐?”
상당히 늦은 질문이지만 리안은 시로네가 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갈 생각이었기에 목적지는 관심 밖이었다.
기사 수행을 할 때보다 좋은 점은 시로네가 머리를 써 준다는 것이었고, 예상대로 말이 술술 나왔다.
“솔직히 자력으로 라를 찾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
시로네는 오젠트 가문에서 가져온 세계지도를 펼쳤다.
일단 국가라는 이름이 붙은 것만 해도 70개였고, 부족이나 이종족의 영역까지 합하면 세계를 다 돌기란 평생이 걸려도 모자랐다.
“진성음인가, 그 여자는 황족이라고 그랬지? 탐색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수월하겠어.”
“응. 하지만 우리도 비빌 곳이 없는 건 아니야.”
황족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학교와 천국을 오가면서 쌓은 시로네의 인맥도 상당했다.
“우선 미로 씨가 있지. 아니, 어쩌면 미로 씨는 이미 라를 만났을지도 몰라.”
“하지만 중요한 건 미로 씨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거잖아? 차라리 테라제라는 사람은 어때? 어쨌든 가면 만날 수는 있을 거 아냐.”
카샨이라면 진천의 정보력에 뒤지지 않을 터였다.
“응. 상황에 따라서 도움을 받아야 할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당장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 멀어.”
리안은 지도를 살폈다.
세계는 크게 4개의 땅으로 분류할 수 있다.
상아탑이 있는 북극, 왕국의 집결지인 대륙, 대서양 건너의 동방, 동방 아래 적도에 걸쳐 있는 남방이었다.
가장 큰 영토는 역시나 대륙이었고 시그마∑의 형태로 대서양과 남태평양을 끌어안고 있다.
대륙은 다시 북부 대륙, 중부 대륙, 남부 대륙, 중동으로 나뉘는데, 시로네의 고향인 토르미아는 중부 대륙 21왕국 중의 하나로 남태평양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카샨은 북부 대륙에 있으니…….”
북부 대륙은 오직 제국의 영토로, 카샨과 구스타프가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바슈카에서 계속 올라간다고 해도 대략 야크마, 카즈라, 페리스, 바이덴, 자이브 왕국을 지나야 도착하겠군.”
생각만 해도 아찔한 여정이었다.
시간제한은 없는 테스트지만 경쟁자들의 실력을 상상했을 때 최소한 1년 안에는 라를 찾아야 합격할 수 있을 터였다.
시로네가 말했다.
“당장 라를 찾는 것은 너무 막연해. 그래서 내 생각에는, 우선 라가 졸업한 마법학교를 찾아가 보려고.”
“아하.”
학교에 가면 대략적인 인적 사항은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라가 졸업한 학교를 모르잖아?”
“그래서 우리가 수도에 가려는 거지.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있거든.”
“누군데?”
“스카우트 바이칼 씨.”
플루에게 부탁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시로네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출발하자. 켄트라에서 하루 자고 내일까지는 수도에 도착해야 돼.”
말을 타고 4시간을 달린 끝에 켄트라에 도착한 시로네와 리안은 마구간에 말을 맡기고 도시로 진입했다.
목축 도시답게 어디서나 카우보이를 볼 수 있었고, 요조숙녀가 많은 크레아스와 달리 말괄량이 숙녀들이 깔깔대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시이나 선생님이 이곳에서 쿠안 씨를 만났다고 했지.’
이제는 꿈처럼 아련한 천국의 일을 떠올리며 찾은 곳은 마법사 길드였다.
“실버링 길드.”
간판을 읽은 시로네가 리안을 돌아보며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