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78
“비공인 마법사 자격증이 있으니 이제는 나도 길드를 이용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곳에서 라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을까?”
상아탑도 못 찾는 인물을 일개 길드가 알고 있을 가능성은 없었다.
“아마도 힘들겠지. 하지만 경험해 둬서 나쁠 건 없어. 숙박도 되는 것 같으니까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자.”
겨울이라 해가 빨리 졌고 날씨도 추웠기에 리안도 군소리 없이 시로네의 말을 따랐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방에 횃불이 걸린 아늑한 공간이 나왔다.
테이블에는 마법사들이 책을 읽거나 체스를 두고 있었고, 개중에는 벌써부터 술에 취해 엎드려 자는 사람도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였고 그곳으로 향하는 길에 카운터가 있었다.
“어서 오세요. 마법사의 안식처, 실버링 길드입니다.”
카운터에 앉아 있던 여자가 일어나며 업소용 인사를 건넸다.
“어라?”
생각보다 나이가 어린 두 사람이 들어오자 여자가 흥미롭게 쳐다보았다.
“너희 둘, 마법사니?”
“아뇨. 저만 마법사예요. 여기는 제 친구고요.”
리안이 덧붙였다.
“검사입니다.”
등 뒤에 매단 대직도를 확인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실버링 길드의 매니저 에스테라. 뭘 도와줄까?”
“숙박을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응? 혹시 너 길드는 처음이니?”
시로네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처음이에요.”
“어쩐지. 숙박은 길드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거라서 이용할 수 없어. 차라리 이번 기회에 실버링 길드에 가입하는 게 어때? 너도 마법사라면 편한 점이 많을 텐데.”
비공인 자격증만 소지해도 생계 활동 및 정보 수집을 할 수 있기에 비공인 마법사에게 길드 가입은 필수나 마찬가지였다.
“흐음.”
앵무 용병단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 마법협회가 주도하는 왕국일수록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법사 길드는 없다.
다만 시로네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실버링 길드는 전쟁마차, 블러드로즈와 함께 토르미아를 대표하는 3대 전국구 길드였다.
지역마다 분점을 열어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있기에 나쁘지 않은 제안이지만, 어차피 토르미아 왕국을 떠날 생각인 시로네에게는 딱히 이점이 없었다.
“아직 길드에 가입할 생각은 없어요.”
“후후, 부담되나 보구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 실버링 길드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우니까.”
길드의 지상 목표는 단연 세력 확장이고, 그런 만큼 전국구 길드 간의 신경전도 치열하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방식 또한 최대한 많은 숫자의 인력을 보유하려는 실버링 길드만의 사업 전략이었다.
‘자유 가입이라.’
숙박 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으나 역시나 판단은 신중했다.
“조금만 더 생각을 해 볼게요.”
시로네의 말이 떨어지는 순간 리안의 눈빛이 변했다.
홀에 있는 마법사들에게서 맹렬한 적의를 느꼈기 때문이다.
그들 모두 실버링 길드에 속한 자들일 터였고, 자신의 길드가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소년에게 무시당하는 게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속마음은 에스테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역시나 수완가답게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래,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 실버링 길드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까.”
결국 숙박은 다른 곳에서 하게 됐지만 기왕 길드에 온 김에 시로네가 물었다.
“길드에서는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사업 정신이 투철한 에스테라의 눈이 반짝였다.
“물론이지. 돈이 들기는 하지만 말이야. 어떤 정보를 찾고 있는데?”
리안을 한번 쳐다본 시로네가 물었다.
“라 에너미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그것 외에는 딱히 물을 말이 없었다.
“라 에너미?”
고개를 갸웃한 에스테라가 좋은 생각이 난 듯 입꼬리를 올리더니 검지를 세웠다.
“1골드야.”
“네에?”
시로네가 황당한 듯 눈을 깜박거렸다.
“방금 물었잖아, 라 에너미라는 사람에 대한 정보가 있냐고. 거기에 대한 대답을 들으려면 1골드를 내야 해.”
“정보가 있는지 없는지를 알기 위해서 돈을 내라고요?”
상식 밖의 일이었으나 이것이 길드의 생리였다.
“길드에서 오가는 모든 정보는 돈이 돼. 길드원이라면 모를까, 외부인에게는 어떤 것도 공짜로 알려 주지는 않아.”
홀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세상 물정 모르는 꼬맹이들이군. 공짜를 원하면 엄마에게나 가서 물어봐.”
리안은 그저 팔짱을 끼고 한쪽 눈을 지그시 감을 뿐이었다.
‘어떻게 할래, 시로네?’
검은 판단하지 않는다는 철학은 여기서도 주효했다.
‘음, 그러니까 현재 소지금은 300골드.’
액면가로는 큰 액수지만 앞으로의 여정을 생각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무엇보다 실제로 이런 유형의 질문조차 돈을 요구하는 것인지, 가입을 망설인 것에 대한 에스테라의 앙큼한 복수인지 알 길이 없었다.
“1골드 낼게요.”
그렇기에 시로네는 돈을 지불했다.
기회가 있을 때 명확하게 해 두지 않으면 정말 필요할 때 실수를 하게 될 테니까.
1골드라는 액수를 순순히 내놓는 것은 에스테라에게도 의외였으나, 탁 소리를 내며 올라온 금화를 거두어 가는 손길에는 거침이 없었다.
“이제 말해 주세요. 라 에너미에 대한 정보가 있나요?”
팅 하고 동전이 튕긴 에스테라가 짧게 답했다.
“있어.”
“있다고요?”
시로네의 눈이 어리둥절하게 뜨였다.
“정말로 있어요?”
“이 바닥에서 사기 치면 어떻게 되는지 정도는 알 텐데? 테이블에서 기다려. 정리해서 갈 테니까.”
기록실로 들어가는 에스테라를 멍하니 바라보던 시로네는 그제야 홀을 돌아보았다.
협회의 사람들과는 달리 험상궂게 생긴 마법사들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쪽 눈에 안대를 찬 마법사, 오른팔이 아예 없는 마법사, 얼굴에 화상이 있는 마법사 등 외모만 봐도 그들이 살아온 인생을 짐작할 수 있었다.
시로네와 리안이 테이블에 앉자 서빙을 하는 길드원이 차를 따라 주었다.
정신을 맑게 해 주는 차를 홀짝이면서도 시로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도도 아니고 지방에 있는 마법사 길드에 라 에너미에 대한 정보가 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어이, 애송아.”
애꾸의 마법사가 불렀다.
“너 마법학교 졸업생이지?”
“네, 그런데요.”
“큭큭. 그럴 줄 알았지. 얼굴에 쓰여 있거든. 이런 하찮은 길드에서 뭘 얻을 수 있겠냐고. 하지만 말이야, 이 바닥은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곳이 아니야. 마법학교 졸업생이면 귀족이나 되나 본데, 그런 태도로 있다가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거다.”
시로네는 묵묵히 듣고 있었다.
정말로 이곳에 라 에너미에 대한 정보가 있다면 기존에 세워 둔 전략을 전면 수정할 정도로 착각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마법사들의 괄시를 받으며 1시간 정도를 기다리자 에스테라가 카운터로 불렀다.
“정보는 찾았나요?”
에스테라는 실버링 길드의 마크가 뒷면에 그려진 스물일곱 장의 카드를 꺼냈다.
“이건 정보 카드라는 거야. 마크는 다르지만 대부분의 길드는 이것으로 정보를 거래해.”
정보라는 것은 확인되는 순간 가치를 상실하기에 금전적 거래를 위해서는 특별한 형태가 필요했다.
“이 카드가 전부 라 에너미의 정보라고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숫자였다.
“응. 라 에너미라는 키워드가 한 번이라도 들어간 정보는 모두 가져왔어. 정확도 100퍼센트.”
“얼마죠?”
고민하지 않고 묻자 에스테라가 입꼬리를 올렸다.
“개당 2골드.”
스물일곱 장의 카드를 전부 구입하려면 무려 54골드를 내야 한다.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아니, 오히려 운이 좋은 거지. 27개의 정보 모두 ‘순수’ 상태니까.”
에스테라가 설명했다.
“여기 있는 정보들은 전부 누군가에게서 돈을 주고 구입한 것들이야. 그리고 너처럼 키워드를 말하면 거기에 포함된 정보를 파는 거지.”
확실히 이런 방식이라면 무형의 정보를 마치 상점의 물건처럼 거래할 수 있었다.
“네가 낸 1골드는 키워드값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리고 순수 상태는 아직 아무도 열람하지 않은 정보라는 뜻이야.”
같은 정보라도 가치를 매기는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열람의 횟수를 기준으로 삼는 것은 합리적이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믿죠?”
“물론 증명할 방법은 없지. 그래서 금액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아. 한 번도 열람하지 않은 정보는 2골드. 한 번이라도 열람한 정보는 1골드 50실버. 너무 많이 열람해서 보안 가치가 없는 정보는 1골드에 판매하고 있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시로네가 2골드를 올려놓았다.
“그럼 일단 한 장만 구입할게요.”
“좋아. 어떤 걸로 줄까?”
“제일 마지막 장요.”
카드에 옮겨 적으면서 이미 정보를 읽었을 것이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마지막에 놓았을 확률이 있었다.
“좋은 판단이야. 다른 사람에게 안 보이게 조심해.”
카드를 빠르게 낚아챈 시로네는 앞면을 확인한 뒤에도 여전히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런 세계구나…….’
정보 제공자의 이름 아래에 한 줄의 문장이 적혀 있었다.
-라 에너미는 남성으로 ‘추정’된다.
그들이 사는 방식 (2)
“라 에너미는…….”
황당함에 목소리를 내던 리안이 말을 삼켰다.
허접한 정보라도 돈을 지불하고 얻은 것인 데다 시로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도 한몫을 했다.
‘하지만 이건 대체…….’
물론 라가 여성으로 환생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그렇다고 해도 시로네에게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고, 남성이면 남성이지 ‘추정’은 뭐란 말인가?
‘학교처럼 떠먹여 주는 사람은 없다는 거지.’
실망감을 느낀 것은 시로네도 마찬가지지만 이 세계의 생리를 알게 되었으니 3골드가 그리 아깝지는 않았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라의 성별이 중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으로 정보의 질이 떨어진다고 보기는 어려워. 다만…….’
역시나 거슬리는 것은 추정이라는 단어였다.
“설명을 해 주시죠.”
시로네의 눈빛이 갑자기 예리하게 변하자 에스테라도 적잖이 놀랐다.
‘이런 성격이었나?’
마법학교 졸업생이 길드를 찾는 것은 대부분 공인의 희망을 버리고 생계 활동으로 뛰어드는 경우였다.
특히나 이제 막 졸업한 애송이라면 매니저의 재량껏 덤터기를 씌우는 것도 업무의 일환.
루키에게 최대한 이득을 남겨야 베테랑과의 거래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남기 때문이다.
‘이걸 어쩐다. 그냥 말해 줘?’
평소대로라면 설명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정답이지만 시로네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수많은 마법사를 상대했던 육감이 경고를 보내는 기분이었다.
‘일단 조금 더 지켜보자.’
자신의 육감에 따르기로 한 에스테라가 설명했다.
“정보 거래상은 정보를 4단계로 분류해. 확인, 추정, 의심, 소문. 물론 이 경우에도 검증은 어렵지만, 확인 등급에 한해서는 증거나 서류를 첨부하게 되어 있어.”
“그렇다면 추정 등급은 뭐죠?”
“무언가를 첨부할 필요가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확인 등급과 같다고 보면 돼. 그래서 전문적으로 정보를 취급하는 마법사가 아니면 대부분 추정 등급으로 정보를 파는 편이야.”
마법사들은 다양한 지역을 여행하기에 일반인보다 보고 듣는 정보의 양이 월등했다.
따라서 의뢰를 끝내고 길드에 돌아오면 여행 중에 얻은 정보를 판매해 부수입을 올리는 구조였다.
‘각지의 정보가 모이게 된다. 그럼 길드를 이용하는 사람의 숫자도 많아지니 길드 쪽에서도 손해는 아니야.’
리안이 물었다.
“하지만 첨부 자료가 없다면 어떻게 믿죠? 이번 경우는 믿고 말고도 없지만.”
“그런 건 구매자가 감수해야지. 어디까지나 정보는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에 불과해. 그래서 다른 마법사들도 반드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추정 등급 이상으로 정보를 요구하지는 않아.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전국구 길드 정도라면 정보를 허투루 거래하지는 않는다는 거야. 카드 아래에 정보 제공자의 이름이 있었지?”
시로네는 기억을 더듬어 카드에 새겨진 마르카 인터라는 이름을 떠올렸다.
“구매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판매는 오직 신원이 명확한 길드원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만약 의심스럽다면 정보 제공자를 직접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 될 거야. 강조하지만 길드는 정부 기관이 아니야. 어떤 길드든 신뢰를 바탕으로 업무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아 두는 게 좋아.”
“만약 정보 제공자가 사기를 쳤을 경우에는요?”
“길드원 자격이 박탈당하겠지. 자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있는 모든 길드에 연락이 취해질 거고.”
시로네가 걱정하는 것을 알고 있는 에스테라가 덧붙였다.
“물론 배신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쁜 면만 보다가는 끝이 없어. 대부분 신뢰를 바탕으로 일하기에 길드가 존속할 수 있는 거야.”
한몫 단단히 챙겨서 이 바닥을 뜰 게 아니라면, 그들의 생계 수단인 길드 시스템을 파괴할 리가 없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시로네가 물었다.
“이 카드의 주인은 정보를 얼마에 팔았죠?”
“50실버.”
길드가 무려 1골드 50실버를 번 셈이지만 인터라는 마법사 또한 여러 정보를 팔았을 것이기에 합리적인 수준이었다.
솔직히 길드라는 시스템이 없었다면 이런 정보를 누가 50실버나 주고 구매하겠는가?
“결국 확인 등급의 정보는 없었던 거네요.”
에스테라가 머쓱하게 웃었다.
“맞아. 키워드가 포함된 확인 등급의 정보는 없었어. 아까 말했듯 전문가의 영역이니까. 검증도 철저한 데다가 가격도 상당히 비싸지거든.”
리안이 투덜거렸다.
“그럼 처음부터 말해 줬어야 되는 거 아닌가요?”
“후후, 덕분에 많이 배웠잖아? 수업비라고 생각해.”
“언제는 신뢰가 어쩌고…….”
시로네가 리안의 말을 끊었다.
“전부 살게요.”
귀를 의심한 에스테라가 되물었다.
“응? 뭐라고?”
“여기 있는 정보 카드 전부 구입한다고요. 스물여섯 장 남았으니 52골드 내면 되는 거죠?”
시로네가 중급 금화 5개와 하급 금화 2개를 테이블에 놓는 순간 에스테라는 육감의 정체를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