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32
해가 지기 전까지는 반드시 뱅가드에 도착해야 한다는 우오린의 말이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조금만 참아. 저기 오아시스가 보인다.”
호수처럼 거대한 오아시스가 하늘에 떠 있는 달을 비추고, 옆에는 상가 복합 단지가 형성되어 있었다.
‘저기가 뱅가드구나.’
3개의 동으로 이루어진 아파트가 자체로 외벽을 이루고 있었고 안쪽의 공터에 수많은 가판대가 보였다.
리안이 말했다.
“저건 요새야. 건물도 철골이고 창문도 이중창이잖아. 굳이 저렇게 지을 필요가 있나?”
“확실히 이상하네. 게다가 그거 알아? 해가 떨어진 뒤로 사람들이 자주 보이고 있어.”
여태까지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모를 수많은 상인들이 빠른 속도로 뱅가드에 집결하고 있었다.
“그렇군. 꼭 쫓기고 있는 사람들처럼.”
키도가 웃었다.
“킥킥! 무슨 걱정이야? 우오린이 가라고 했잖아. 그 여자, 또라이기는 해도 사리 분별은 제대로 하니까.”
모순적인 말이었으나 묘하게 납득이 되었다.
“낮에 미친 듯이 싸웠으니 쉴 때는 확실히 쉬자고. 돈도 빵빵하게 받았으니까 말이야.”
카이드라가 접근하자 뱅가드에 집결하고 있던 상인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어이! 저기 봐!”
무시무시한 괴조의 등장에 발탄이 겁을 집어먹고, 뱅가드의 망루에서는 사이렌이 울렸다.
“괴물! 괴물이 나타났다!”
그때 누군가가 시로네를 가리켰다.
“잠깐! 사람이 있어!”
우오린을 주인으로 둔 카이드라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가장 가까운 곳에 안착했다.
“라투사는 어떻게 할 거야? 마구간 같은 곳에 데려가도 전부 한 끼 식량일 텐데.”
“우오린이 특별히 보살필 필요는 없다고 그랬어. 자유롭게 풀어 주면 알아서 먹을 것을 구한대.”
카이드라에서 뛰어내린 시로네는 걸음을 옮기다 말고 굳은 표정으로 전방을 바라보았다.
수많은 상인들이 시로네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안녕하세요?”
대륙 공용어로 인사했으나 카샨의 언어 하나만으로 평생을 쓰고도 남는 상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중동인이 아니잖아? 저 징그러운 녹색 얼굴은 뭐야?”
“사막의 독에 중독된 모양이구먼. 쯧쯧, 안타깝군. 저래서야 장가가기는 글렀어.”
키도는 중동인을 먹은 적이 없으나, 그들의 시선과 혀를 차는 소리만으로 이해했다.
“이것들이 진짜! 난 고블린이야! 고블린 중에서는 제일 잘생긴 얼굴이라고!”
혀를 차는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자네들은 어디에서 온 건가?”
나이 지긋한 상인의 물음에 시로네가 말했다.
“리안, 내 말을 전해 줘. 우리는 상인이 아니고, 저 괴수는 내 소환수라고 해. 나는 마법사라고 소개하고.”
이 정도면 설득시킬 수 있을 터였다.
리안이 기억을 더듬으며 얼추 전하자 상인들 사이에서 술렁거림이 생겼다.
“마법사? 저런 괴수를 부릴 정도면 엄청난 마법사인데?”
“그렇다면…….”
모두의 눈빛이 변했다.
‘마법사는 돈이 많다.’
생각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상인들이 모조리 시로네의 주위로 달려들었다.
“뭐야! 이 사람들 왜 이래!”
상인들 간에 싸움이 벌어지면 그날로 장사 접는 것이기 때문에 뱅가드 안에서는 호객 행위가 절대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뱅가드 밖에서라면 호구는 무는 사람이 임자.
특히나 괴조를 소환하는 마법사라면 자신들의 물건을 전부 사 가는 것쯤이야 일도 아니었다.
“여기! 내 물건을 사 주게! 특제품이야! 품질은 보증하지!”
“뭔지를 말해 줘야죠!”
울티마 시스템을 통해 수많은 말들이 전해져 왔다.
“내 것을 사! 빨리 사 가라고! 죽여 버리기 전에!”
‘죽일 거면 장사는 왜 하는 거야?’
해골처럼 마른 남자가 검은 흙덩어리 같은 것을 내밀자 역한 냄새가 치밀었다.
“이걸 찾고 있었지? 불사신이 되는 약이야.”
“불사신?”
“한 숟가락만 물에 타서 마시면 다음 날 아침까지 절대로 안 죽어. 끝내주는 밤을 보낼 수 있다고.”
“안 사요! 아무것도 안 살 거라고요!”
“혼자서도 충분해! 자네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도 모르나?”
시로네가 울부짖었다.
“리안!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듣겠어!”
동시에 리안이 시로네를 붙잡고 사람들을 뛰어넘었다.
안경이 비뚤어진 키도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고, 시로네가 도착하자 동시에 몸을 틀었다.
“달려! 안으로 들어가!”
뱅가드의 정문을 통과할 무렵 창공을 비행하는 카이드라의 괴조음이 아련하게 들렸다.
“우와! 진짜 엄청나다! 완전 강매잖아.”
시로네가 무릎을 짚으며 숨을 고르는데 자지러지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호호호! 당연하죠. 여긴 허무가 지배하는 사막의 한복판이니까요. 온전한 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죠.”
피둥피둥 살이 찐 40대 중년의 여성이었고, 좌우에는 검을 장착한 부하 2명이 호위하고 있었다.
가무잡잡한 피부를 하얗게 보이게 할 정도로 분을 칠한 그녀의 입술은 피처럼 붉었다.
중동의 부채를 들고 있었고, 속이 보이는 드레스 안으로 코르셋이 짱짱하게 동여매여 있었다.
“당신은……?”
여자가 부채를 뒤로 넘기며 인사했다.
“뱅가드 제32대 관리자 모모도라고 합니다. 마법사라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네.”
리안이 통역할 필요도 없었다.
“밖의 소란은 잊어 주시고, 모쪼록 뱅가드에서 펑펑 돈을 써 주세요. 오늘 밤은 꽤나 길어질 테니까 말이지요.”
“그게 무슨 뜻이죠?”
이번에는 리안이 통역했다.
“곧 사막의 신이 이곳을 덮칠 테니까요.”
“사막의 신?”
죽은 남자의 일기장에서 봤던 단어다.
“사막의 신이란 노스카르타, 아카드 사막의 특수한 환경이 만들어 내는 적도풍이랍니다. 거대한 모래 폭풍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이죠.”
“그렇게 대단한 모래 폭풍이라면, 이곳은 어떻게 여태까지 무사할 수 있는 거죠?”
모모도가 ㄷ 자 형태의 아파트 사이에 설치되어 있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가리켰다.
“배사 장치예요. 모래 폭풍이 불어도 곧바로 퍼내 버리죠. 절대 마르지 않는 오아시스 루나, 그리고 이 배사 장치가 뱅가드의 자랑거리랍니다.”
중부 사막의 유일한 안식처였다.
‘흐음, 그럼 킹 스콜피언의 대이동도…….’
대체 얼마나 대단한 모래 폭풍이기에 몸길이 2미터가 넘어가는 몬스터가 떼로 도망친단 말인가?
“뱅가드는 안전합니다. 그러니 돈을 쓰세요! 즐기세요! 사막의 신도 당신의 사치를 막을 수 없을 테니까요.”
모모도가 뱅가드의 홍보 멘트를 날리고 사라지자 시로네 일행은 화려한 빛깔로 수놓인 시장을 돌아보았다.
“저렇게 자신하니 편하게 있자. 적어도 사막에 파묻힐 일은 없잖아?”
사막 폭풍이 온다면 당분간 발이 묶일 수밖에 없었다.
“그럴까? 일단 배부터 채우자. 킹 스콜피언이랑 싸우느라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시로네 일행의 선택은 도롱뇽을 꼬치에 끼워서 구운 음식이었다.
보기에는 역했으나 새로운 곳에 왔으면 새로운 지역의 명물을 맛봐야 한다는 게 키도의 지론이었다.
의미 모를 기념품을 사고, 태양 빛에 피부가 상하는 것을 막아 주는 특제 크림도 하나씩 챙겼다.
“재밌네, 여행이라는 거. 이제 어디 가 볼까?”
“저기는 어때?”
시로네가 가리킨 곳에는 각양각색의 천막들이 길을 따라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점성술 가게야. 아카드 사막의 부족들은 점성술에 능하다고 들었거든.”
“아하, 미래를 예지하는 거 말이지?”
눈을 깜박이던 키도가 콧방귀를 뀌었다.
“나는 저런 거 안 믿어. 단순 통계로 생각해도 일단 엄청나게 많잖아? 전 세계 예언가들이 여기 다 모였나?”
“하하! 그렇기는 하지.”
시로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으나 율법을 깨달은 반야로서 흥미가 생기는 것도 사실이었다.
“진짜 율법을 깨달은 점성술사는 세계에서도 극소수야. 그래도 속는 셈치고 가 보자. 이런 것도 추억이니까.”
천막마다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하긴, 이곳은 사막이지.’
죽음이 지배하는 땅에서 생존하는 사람들이라면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인기가 좋네. 오래 기다려야 할 것 같은데?”
“저 천막은 줄이 없어.”
수정구 깃발이 펄럭이는 천막이었고, 놀랍게도 대기하는 사람이 단 1명도 없었다.
키도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말했다.
“보통 저런 곳은 정말 실력이 없는 곳일 텐데.”
“뭐 어때? 어차피 믿지도 않는데. 우리들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다른 사람의 입으로 듣는 것도 재밌잖아.”
기왕 쉬기로 했으니 이것저것 해 보고 싶었다.
“킥킥! 난 세계의 지배자가 되어 있을 거야.”
그렇게 점성술 가게를 찾은 시로네가 천막을 좌우로 젖히며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합니다. 어라?”
비슷한 또래의 소녀가 얼굴 가리개조차 테이블에 올려 두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잠을 자고 있었다.
침까지 흘리며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데 키도가 따라 들어오며 말했다.
“망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라니까.”
사막의 신 (3)
시로네는 소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중동 사람이 아니잖아?’
테이블에 수정구가 있는 것을 보아하니 점성술사가 분명하건만 백인이었고 머리카락도 금발이었다.
“어째서 손님이 없는지 알겠어.”
시로네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아카드 사막은 점성술의 원류니까. 중동인이 아니면 신뢰도가 떨어지지.”
뱅가드에 천막을 치기로 결정한 그녀의 용기가 가상했다.
“그런데 왜 앉아, 이렇게 떠들어도 안 일어나는데? 떼돈을 버는 꿈이나 꾸라고 하지 뭐.”
신뢰가 떨어지는 건 시로네도 마찬가지였지만 같은 타지 출신으로 동병상련의 마음이 작용했다.
“그냥 여기서 보자. 어쩌면 실력이 좋은데 인종 때문에 차별받는 걸 수도 있잖아.”
키도와 리안이 의자를 끌고 와서 양옆에 자리를 잡은 가운데 시로네가 헛기침을 했다.
“저기요, 손님인데요.”
나직하게 코 고는 소리가 대답을 대신했다.
“어이! 손님 왔다고!”
키도가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자 감전된 듯 몸을 부르르 떤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해…….”
“해?”
“해산물 파스타?”
대륙공용어였다.
아직 잠이 덜 깬 그녀가 시로네 일행을 바라보더니 황급히 정신을 차리고 자세를 고쳤다.
“어머! 어서 오세요!”
테이블 위에 널브러진 얼굴 가리개를 황급히 다는 모습에 시로네가 말했다.
“천천히 하세요. 이미 얼굴 다 봤는데요.”
“호호호! 미안해요. 요즘 통 잠을 못 자서. 원래 점성술사는 얼굴을 보여 주면 안 되는데.”
성격은 좋은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대륙공용어를 쓰시네요. 어디에서 오셨어요?”
“토르미아요.”
“반가워요. 저는 메르헨 왕국 출신이에요.”
지중해 아래에 붙어 있는 나라로 샤갈의 고향이었다.
“어릴 때부터 점성술에 관심이 많아 카샨에서 유학했어요. 로지 씨를 사사했죠.”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뱅가드에서 1만 골드를 벌 때까지는 돌아오지 말라고 하셨거든요. 일종의 수련인 셈이에요.”
“점을 치는 데 얼마나 받는데요?”
소녀가 혀를 삐죽 내밀었다.
“2골드요. 두 달 동안 360골드 벌었어요.”
도시와 비교했을 때 괜찮은 벌이였으나 사막에서 생활하는 환경도 따져 보아야 했다.
“어쩌면, 못 떠날 수도 있겠네요.”
“후후, 괜찮아요. 입소문을 타면 손님들이 줄을 서거든요. 그때는 1만 골드야 금방이죠.”
“얼굴 가리개를 쓰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시로네의 말뜻을 이해한 그녀가 웃었다.
“그런 부분도 있죠. 하지만 재밌다며 오시는 손님들도 있어요. 물론 지금은 발길이 뚝 끊어졌지만.”
소녀가 한숨을 내쉬었다.
“제가 수완이 좀 부족하거든요. 희망적인 해석을 해야 손님들이 좋아하는데, 몰입하다 보면 감정이 북받쳐서 나도 모르게 말이 나오고 말죠. 그래서 로지 씨도 뱅가드에서 일을 해 보라고 한 걸 거예요.”
정식으로 점성술을 배운 사람이라면 기대가 되었다.
“그럼 누구부터 점을 봐 드릴까요?”
시로네가 2골드를 건네며 말했다.
“내가 먼저 할게요. 점성술사는 앞으로 닥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고 하던데.”
이것이야말로 점성술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물론이죠. 그게 제 일인 걸요.”
소녀는 수정구의 받침대를 조절해서 시로네의 얼굴이 비치도록 하고 양손을 가져다 댔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매섭게 수정구를 노려보는 모습에서는 조금 전의 푼수기를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