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35
“모르겠어. 단순하게 보자면 명확한데 자꾸 복잡하게 느껴져.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제타로가 말했다.
“상대가 인형이었으니까. 예상 밖의 결과가 나타나자 다른 사고들도 계속 의심이 가는 거지.”
“인형.”
발칸이 걸음을 멈췄다.
“나타샤, 쓰레기장에 가서 다시 확인해 봐.”
“스모도가 날마다 하고 있어. 버린 그대로야.”
내정왕 스모도.
그의 ‘결벽시’는 본질적으로 똑같은 것을 제외한 모든 종류의 다름을 간파한다.
이를테면 A라는 메뚜기와 B라는 메뚜기가 전혀 다른 생물체임을 깨닫는다.
또한 같은 거푸집에서 만들어진 1천 자루의 칼을 특징대로 분류할 수 있다.
“오늘은 다른 날이야. 같이 가서 확인해 봐. 나는 전하에게 가서 이상한 점이 있나 볼 테니까.”
“알았어.”
발칸의 말을 들어서 손해 보는 경우는 없었기에 두 사람은 쓰레기장으로 향했다.
“어이, 나타샤.”
가는 길에 스모도가 말했다.
“오늘 밤에 나랑 할래?”
나타샤가 의외라는 듯 돌아보았다.
“똑같은 여자랑 하는 건 질색이잖아?”
“그냥…… 외로울까 봐.”
하비츠의 결혼에 남자인 그도 마음이 뒤숭숭한데 여자인 나타샤는 오죽하겠는가?
“헤헤, 뭐야? 나 위로해 주는 거야?”
“친구잖아.”
“마음은 고맙지만 괜찮아. 스모도는 어차피 즐기지 못할 거고, 나도 오늘은 좀 그래.”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해서 하비츠가 우릴 떠나는 건 아니야.”
나타샤는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담소를 나누며 도착한 그들은 쓰레기장의 문을 열고 쓰레기 더미를 기어올랐다.
“여기쯤에 파묻혀 있을…… 어라?”
쓰레기 더미가 파헤쳐진 흔적을 보고 스모도가 눈을 크게 뜨며 소리쳤다.
“다르다! 분명 달라!”
“……스모도, 이건 나도 알 것 같아.”
거대한 스케일의 장난처럼, 어제까지 있었던 암살자 인형이 사라져 버렸다.
하비츠와 아벨라의 신혼 아파트로 향하는 길에 제타로가 말했다.
“아벨라를 의심하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랬다면 이미 군기로 읽혔을 거야.”
알파피시는 하비츠를 사랑한다.
“알고 있어. 군기는 확실하지. 하지만 내가 암살자를 고용한다면 그 점을 파고들 거야.”
암살자가 살의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가 단수單數를 유지하기 위함이라면.
“황제 폐하를 뵙고 싶다. 전갈을 해 다오.”
시녀장이 황송한 몸짓으로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군사님. 폐하께서 오늘 밤은 누구도 안에 들이지 말라 하셨습니다.”
“급한 일이다. 말이라도 전해 줄 수 없겠나?”
시녀장은 하비츠에게 죽을 것인지 발칸에게 죽을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저를 베고 가시면 될 것입니다.”
협박이 아닌 진심이기에 발칸은 난처한 표정으로 끙 소리를 냈다.
제타로가 웃었다.
“껄껄! 잔뜩 달아올랐군. 하긴, 그럴 만도 하지. 14년 전부터 고대한 날이 아닌가?”
욕망의 통제에 관해 하비츠가 얼마나 엄격한지 알고 있기에 발칸도 더 이상 요구하지 못했다.
“할 수 없군. 그냥 술이나 마시러 가지.”
“그러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발칸이 입맛을 다셨다.
“어쩌겠어? 다 자기 팔자지.”
수백 개의 방이 있는 아파트에 하비츠와 아벨라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하하! 맞아! 예전에는 그랬지.”
“그때 아저씨가 얼마나 괴물 역할을 잘했는데요. 맞다, 정말 괴물이라서 그런가?”
“그럴 수도. 푸하하하!”
술이 취한 하비츠는 무슨 말을 해도 재밌어하며 아벨라의 손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갔다.
방마다 초야를 보낼 수 있는 특징들이 있었는데, 그녀가 들어간 방은 변태적인 행위를 하는 곳이었다.
“여기서 하게?”
“네. 꼭 해 보고 싶었거든요.”
결혼식부터 피로연, 신혼집까지, 모든 것이 아벨라가 교육을 받은 각본대로였다.
“이래서 사람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했군.”
“왜요? 아저씨는 싫어요?”
“아니, 나도 이런 거 좋아해. 그럼 뭐부터 해 볼까? 이 채찍은 어때?”
“후후, 좋아요. 하지만 그 전에 준비할 게 있어요.”
“준비?”
아벨라가 하비츠의 품에 안겨 속삭였다.
“아저씨를 꽁꽁 묶을 거예요.”
율법 살인 (5)
***
“어디야?”
해골의 손가락에 걸린 강선이 출렁이자 나타샤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저기, 우측 통로.”
나타샤가 팔에 끼고 있는 스모도가 결벽시를 통해 크라우치의 동선을 읽어 냈다.
“멀리도 갔네. 저기에 뭐가 있지?”
“없어.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는 거야. 어쩌면 이거, 위험할 수도 있겠는걸.”
하비츠의 아파트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이 모르는 특정 의도가 있음은 자명했다.
“여기서 좌회전.”
직각으로 몸을 뒤튼 나타샤가 길게 뻗은 회랑을 달렸다.
“함정일 거야.”
“아마도. 하지만 우리를 위한 함정은 아니지. 확인할 수밖에 없는 일이야.”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성 마르사크의 지하 감옥, 그것도 끝 층에 있는 막다른 길이었다.
“왔군.”
크라우치가 잘린 목을 한 손에 들고 맞이했다.
“목이 잘렸는데 어떻게 살아 있지?”
나타샤가 경이롭다는 듯 말했으나 스모도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무슨 짓을 꾸미는 거냐?”
잘린 목이 번쩍 눈을 떴다.
“아무것도. 죽을 자리를 찾고 있을 뿐.”
“그래?”
스모도가 말했다.
“잡아. 절대로 죽이지 마라.”
나타샤의 육체가 증발하듯 사라지더니 어느새 크라우치의 얼굴을 빼앗은 채로 나타났다.
후우우우우웅!
그것만으로 지하 감옥에 강풍이 몰아쳤다.
‘정면 대결로는 승산이 없지.’
이미 나타샤의 실력을 알고 있기에 크라우치는 기꺼이 얼굴을 넘겼다.
“신기하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죽이는 거야?”
나타샤가 얼굴을 시선 높이로 들어 올리는 순간 크라우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을 안 했군.”
동시에 목 없는 육체가 한걸음에 달려와 나타샤의 복부에 단도를 찔렀다.
“저승 가는 길동무가 필요했거든.”
크라우치가 쥐고 있는 단도의 고유함이 스모도의 결벽시를 강하게 압박했다.
‘저건 오브제?’
퍼뜩 깨달았다.
“제길! 이다!”
***
변태적인 도구들이 즐비한 방에서 남녀의 거친 숨결이 공기를 뜨겁게 했다.
서로 진한 키스를 나누는 동안에도 알파피시, 아벨라는 하비츠를 증오하지 못했다.
‘안 되겠어. 이러다간 임무를…….’
그녀에게 하비츠를 암살하는 일은 욕망이 시키는 것이 아닌 숙제 같은 것.
그녀를 대신해 무고한 사람이 죽었기에 받은 것을 돌려주겠다는 의지였다.
“아저씨, 이제 시작해요.”
하비츠의 가슴팍을 떠밀자 그가 피처럼 붉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엉금엉금 하비츠의 몸을 타고 오른 아벨라가 철창 헤드에 걸린 사슬 수갑을 끌어내 하비츠의 왼손에 채웠다.
“흐흐흐, 흐흐흐흐.”
재밌다는 듯 하비츠가 실소를 흘리고, 아벨라가 살며시 입맞춤을 하며 애간장을 태웠다.
‘이번에는 오른손.’
쇠사슬이 긁는 소리를 냈다.
***
“크으으!”
크라우치는 의 손잡이를 통해 느껴지는 단단한 감각에 전율했다.
‘바위를 찌른 것 같다.’
분명 심장을 겨누었건만 그녀의 근육이 돌처럼 강하게 칼날을 물고 있었다.
“인형이라서 죽지 않는다?”
나타샤는 복부의 칼날 따위는 관심 없다는 듯 크라우치의 얼굴을 더욱 가깝게 끌어당겼다.
“아니, 만약 그게 전부라면 인형을 박살 내 버리면 그만이야. 너, 생명이 여러 개인 거지?”
크라우치가 사력을 다해 찌르고 있지만 그럼에도 단도는 절반 이상 밀려 나온 상태였다.
“결국 약하다는 거지. 만약 강하다면 나랑 같은 방법을 썼을 테니까.”
나타샤 또한 인형이지만, 그녀는 파괴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몇 개야? 무한정은 아닐 거 아냐. 이번에 죽어도 또 살아나나? 실험해 볼까?”
질문을 던지면서 크라우치의 눈빛을 살핀 나타샤가, 깨달은 듯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이구나?”
스모도가 말했다.
“나타샤, 경거망동하지 마라.”
인류 최악의 무기라고 평가받는 .
‘율법 살인. 여기서 해결할 문제가 아니야.’
눈으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단도에 담긴 참혹한 역사를 생각하면 신중하게 접근해야 했다.
“솔직하게 답해라. 무엇을 꾸미고 있지? 에 담긴 저의가 뭐야?”
크라우치가 침묵하자 나타샤의 두 팔이 팽창했다.
“크으으으!”
양손에 끼인 크라우치의 머리통이 우득 소리를 내며 풍선처럼 찌그러졌다.
‘얼굴 골격은 강철인데, 괴물 같은 완력이군.’
화신의 지배를 받는 나타샤에게 신체 능력의 한계 같은 건 의미가 없다.
“스모도, 어떡하지? 고통을 못 느끼는 것 같아. 그러면 고문도 할 수 없잖아.”
“아니. 이걸로 됐어.”
스모도가 결정을 내렸다.
“그냥 이대로 있으면 돼. 은 율법을 바꾼다. 네 가슴팍에 박혀 있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아하, 그렇다는데?”
크라우치의 눈에 절망이 담겼다.
“여기서 버티고 있어. 나는 발칸에게 말하고 올 테니까. 만약 아벨라가…….”
댕. 댕. 댕.
스모도가 몸을 돌리는 순간, 벽 너머에서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렸다.
“크크크크.”
크라우치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찢어졌다.
“내가 이겼다.”
스모도가 소리쳤다.
“나타샤! 죽여!”
말이 떨어지는 것과 동시에 나타샤의 손가락이 전부 일어서고, 마치 즙을 짜내듯 크라우치의 머리통이 부서졌다.
‘좋은 근육이군.’
생의 말미에서 크라우치가 온 힘을 다해 단도의 손잡이를 거칠게 뒤틀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근육이야.’
화살도 튕겨 낼 정도로 단단한 근육이었기에 쨍 소리를 내며 단도가 끊어졌다.
‘사람이 죽이는 것이 아니지.’
모든 것은 크라우치의 각본대로.
‘상황이 죽이는 것이다.’
크라우치의 몸이 털썩 쓰러지고, 나타샤는 그제야 자신의 심장 쪽을 살폈다.
“스모도, 단도가…….”
박혀 있던 칼날이 마치 환영처럼 옅어지더니 스르륵 공기 중으로 소멸했다.
“뭐지? 무슨 율법이야!”
의 효력은 익히 알려져 있지만 자세한 기능을 아는 사람은 미네르바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