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56
“크으으으!”
인젝션을 통해 프리온이 스며들자 반쯤 복구되던 리안의 육체가 미친 듯이 꿈틀거렸다.
“……나아가라.”
박쥐가 소멸하면서 니케의 육체가 시커먼 재로 변해 바닥에 퍼졌다.
“리안! 리안!”
사건의 현장에 도착한 베노프가 10미터 앞에서 우뚝 걸음을 멈췄다.
“리, 리안?”
구부정하게 몸을 일으켜 세운 리안이 마지막 남은 오른손을 재생시키며 얼굴을 돌렸다.
흰자밖에 없는 얼굴로 잔뜩 이빨을 깨물고 있는 모습이 흡사 한 마리의 야수였다.
“정신 차려!”
“크으으으!”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육체를 잠식하면서 니케의 기억이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제길! 모두 대기!”
이대로 뱀파이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베노프는 장검을 뽑아 들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나. 육체를 넘어선 나.
스밀레의 환청이 들렸다.
-어디까지 갈 수 있냐고?
“흐으으으으…….”
리안의 이빨 사이로 세포가 타면서 발생한 수증기가 길게 새어 나왔다.
-끝까지. 나를 이루는 가장 작은 조각까지 파괴시켰을 때에야…….
“으으으으…….”
불태우고, 재생되고, 다시 불태우고.
니케의 프리온을 몰아내는 과정 속에서 리안은 생물이 붕괴될 수 있는 한계치를 넘어섰다.
-그것이 진정한 나. 오젠트.
“으아아아아!”
리안이 상체를 활짝 펴며 포효를 터뜨리자 강력한 풍압이 병사들을 날려 버렸다.
“제길! 뭐야!”
신적초월-이데아.
-스밀레에에에에에!
전신의 세포가 야차의 형태로 뒤틀리면서, 리안의 머릿속에 까마득한 과거의 정보가 밀려들었다.
“스밀레.”
그 정보가 남아 있는 니케의 기억과 뒤섞이면서 리안의 고개가 홱 틀어졌다.
“스밀레를 구해야 돼.”
땅을 박차고 돌진하는 순간 전방에 있던 수많은 건물들이 쿵쿵 쓰러졌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풍압에 날아갔던 베노프가 머리를 어루만지며 리안이 사리진 곳을 돌아보았다.
대부호 미겔의 저택.
로데닌에서 가장 성공한 귀족 중의 한 사람인 미겔은 베시카 계급의 뱀파이어였다.
“오셨습니까, 로드시여.”
엄브렐라 맨을 대동하고 저택에 도착한 아그네스가 창백하게 변한 헌터들을 땅으로 떨어뜨렸다.
“카노아의 부활은?”
“피는 3분의 2가량 채워졌으나, 아직 부족합니다. 내일 자정 무렵이면 동면에서 깨어나실 겁니다.”
“너, 너 이 자식…….”
유일하게 의식을 차린 제니아가 고개를 쳐들었으나 피가 부족한 탓에 몸을 가누기 어려웠다.
그 모습을 차갑게 노려보던 아그네스가 지하로 방향을 틀며 지시를 내렸다.
“데려와. 그분이 실버 본을 필요로 하신다.”
베시카 계급의 뱀파이어들이 헌터들을 하나씩 들쳐 업고 승강기에 탑승했다.
지하로 무려 3킬로미터나 내려간 곳에 뱀파이어들의 거대한 은신처가 건설되어 있었다.
“깨어났군, 아그네스.”
또 1명의 로드 베네딕트가 그녀를 맞이했다.
“진마께서는?”
동면을 방해받는 것은 극히 기분 나쁜 일이지만 지시를 내린 자가 진마라면 얘기가 달랐다.
“자네를 기다리고 계시네.”
가장 깊숙한 곳, 진마 파우스트가 8개의 거대한 유리구가 설치된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천국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일화의 술을 직감하겠지만, 제니아는 그저 끔찍할 뿐이었다.
“죽여! 죽이란 말이야!”
실험실의 통나무가 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진정해. 이 실험의 주인공은 네가 아니니까.”
베시카들이 헌터들을 하나씩 유리구에 넣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깨어났다.
“제길! 이게 뭐야!”
그들을 무시한 채 파우스트가 엄브렐라 맨에게 물었다.
“어떻게 됐지?”
“니케가 갔습니다. 죽이지는 못해도 인젝션은 확실히 해낼 겁니다.”
제니아가 물었다.
“우리를 어떻게 할 생각이야?”
“딱히. 너희들은 그저 거름이다. 생물의 마지막에 도달하기 위한 거름.”
“생물의 마지막?”
천장을 향하는 파우스트의 눈빛이 1만 년의 시간을 뚫고 과거에 도착했다.
“오젠트라는 인간이 있었다.”
“스밀레…… 스밀레…….”
리안은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파괴하며 미겔의 저택을 향해 질주했다.
눈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뇌에서는 분석할 수 없는 수많은 장면들이 아롱거렸다.
마치 터널을 뚫고 나온 듯, 모든 장면들이 시야 바깥으로 밀려나면서 천국의 풍경이 보였다.
기억에 이끌려 바다를 건너고 숲을 지나 도착한 곳은 어느 고대의 마을.
흑발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가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몸을 돌렸다.
“스밀레.”
스밀레, 스밀레 (3)
***
오메가력 938년.
앙케 라가 일화의 술로 울티마 시스템을 해체한 지도 어느덧 1,500년이 지났다.
여전히 천국에서는 맥클라인 거핀을 필두로 소수의 가이아인들이 항전을 벌이고 있었다.
수많은 거인들이 타 행성으로 진출했고 그곳에서 새로운 인류를 탄생시켰다.
그들 중 일부는 다시 돌아와 천외종이 되었고, 오젠트가 속한 강의 일족도 그중 하나였다.
“오빠.”
강의 일족답게 물빛처럼 맑은 푸른 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여성이 오젠트에게 다가왔다.
“오늘도 혼자 있는 거야?”
“스밀레.”
일족의 누구에게도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오젠트지만 여동생 앞에서는 가끔 수줍은 미소를 짓기도 했다.
“검술만 연습하니까 스물두 살이 되도록 친구가 없지. 사람이 사회 활동이 없으면 외골수가 된다고.”
“혼자 있는 게 편하니까.”
오젠트는 자신의 나이를 정확히 모른다.
물론 그도 천외종이었겠지만, 생애 첫 번째 기억은 들개처럼 산속을 떠돌아다니는 것뿐이었다.
어린 오젠트를 불쌍히 여겨 양자로 거두어 준 사람이 스밀레의 아버지, 다미안이었다.
“돌아가. 아버지가 네가 여기 있는 거 알면…….”
스밀레가 오젠트의 가슴을 떠밀었다.
“자, 자! 귀찮은 얘기는 나중에 하고, 나랑 마랑의 강에 같이 가. 간만에 수영도 하고, 먹을거리도 좀 잡고.”
다미안이 알면 또다시 분위기가 이상해지겠지만 스밀레의 고집을 꺾을 자는 일족 중에 아무도 없었다.
“해 지기 전에는 돌아와야 해.”
“알았다니까.”
작은 능선을 넘어 도착한 마랑의 강은 바다를 방불케 할 정도로 폭이 넓었다.
‘아름답다.’
오젠트는 강을 보는 게 좋았다.
“자, 자! 간만에 실력 발휘 좀 해 볼까? 아빠가 요새는 수영을 못 하게 한다니까.”
혼례가 잡힌 딸이 강을 헤집고 다니는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다.
“그거야 너도 이제 성인이고…… 윽!”
윗옷을 훌러덩 벗어 던지는 모습에 오젠트의 시선이 갈 곳을 잃고 흔들렸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이게 왜? 다들 이렇게 잡는데.”
물론 강의 일족은 수영을 잘했고 이런 차림으로 고기를 잡는 모습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스밀레라는 것이 문제였으나, 오히려 그녀는 그런 오젠트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무리 남매라고 해도 이제 조심할 나이도 됐잖아. 아버지가 걱정하는 이유를 알겠다.”
“하하! 오빠도 참. 어릴 때는 같이 목욕도 하고 그랬는데 이게 뭐 어때서? 가만 보면 되게 이상한 쪽으로 집착하는 구석이 있어. 그러니까 사람들이 음흉하다고 그러지.”
“음흉?”
강의 일족에게 오젠트는 소심하고,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며, 오로지 검만 수행하는 괴짜였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다른 사람에게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그에게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니까 여자도 만나고 친구들도 사귀어. 날마다 검술만 하니까 여동생 몸을 보고도 부끄러워하지.”
스밀레가 팔을 모아 가슴을 치켜올렸다.
“하긴, 내 몸매가 좋긴 하지만.”
그러고는 깔깔대며 웃는 것이었다.
“끔찍한 농담 하지 마라.”
오젠트는 슬펐다.
‘정말로 남매가 되어 버리는 것 같잖아.’
대범한 성격의 스밀레는 오젠트의 마음에서 작용하는 미세한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어쩌면 소심의 극치인 오젠트였기에 철두철미하게 감정이 감추어져서인지도 모른다.
‘나는 겁쟁이다.’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그렇다고 매몰차게 떠나 버리지도 못하는 천하의 겁쟁이.
“아무튼 오빠도 준비하고 들어와. 나 먼저 간다!”
크게 숨을 들이마신 스밀레가 낮은 절벽에서 물고기처럼 수려한 동작으로 강에 들어갔다.
‘젖는 건 질색이야.’
오젠트는 자리에 앉았다.
태양 빛이 반사되는 강물 속에서 힘차게 자맥질을 하는 스밀레의 모습이 보였다.
그저 강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30분 정도 수영을 즐긴 스밀레는 본격적으로 잠수하여 물고기를 사냥했다.
검술에 재능은 없어도 근성만은 따라올 자가 없어서, 한 마리를 잡기 전까지는 물 위로 나오지 않았다.
“스밀레,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한 마리만 더!”
그렇게 소리치고 다시 잠수를 하는 그때, 강의 물살이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뭐지?”
초예민한 오젠트가 아니고서는 발견할 수 없는 변화였다.
잠시 후 물살 위로 지느러미가 올라왔다.
‘수장류?’
천외종으로, 천국의 생태계에서는 나올 수 없는 무게 10톤이 넘어가는 거대 어류였다.
“스밀레! 나와!”
그러나 스밀레는 이미 물속 깊은 곳에 들어간 상태였다.
“제길!”
오젠트가 검을 쥐고 절벽을 박차는 시점에서야 물속의 스밀레도 깨달았다.
수장류에게 쫓기는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올라가야 해!’
온 힘을 다해 수면 위로 올라온 순간 그녀의 눈에 보인 것은 거대한 물고기의 아가리였다.
“스밀레!”
물고기의 배 속으로 넘어가기 직전, 아가미부터 잘려 나간 머리통이 위로 솟구쳤다.
“오빠!”
스밀레의 손을 붙잡은 오젠트는 외중력을 이용해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십 마리의 물고기들이 따라서 튀어 올랐고 그들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꽉 잡아!”
사방으로 외중력을 발산하자 오젠트의 몸이 격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수장류들이 덮치는 것과 동시에 그의 검이 질풍처럼 휘둘렸다.
“우와…….”
토막이 되어 떨어지는 싱싱한 살점을 바라보며 스밀레가 침을 꿀꺽 삼켰다.
‘맛있겠다.’
반면에 오젠트는 사력을 다해 공중을 달린 끝에 겨우 절벽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하아. 하아.”
스밀레가 엄지를 치켜세웠다.
“오빠, 최고!”
“이 멍청아! 수장류의 산란기라는 것도 모르고 강에 온 거야?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녀?”
“오빠도 몰랐잖아.”
“내가 왜 그걸 알아야 하는데? 어차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