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7
“에리나, 이럴 수는 없어. 어떻게 이럴 수가…….”
“여보, 미안해요.”
“뭐가 미안해? 당신이 뭐가…….”
“바보라서.”
알페아스는 깨달았다.
아내를 바꾸려 들다니.
존재하는 것만으로 아름답다는 그녀의 말을 어째서 잊어버린 것일까?
“아니야. 왜 미안해? 뭐가 미안하다는 거야? 나야! 내가 바보였어! 바보는 나였다고!”
에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합리성으로 가득한 멋진 세계. 남편은 그런 곳에서 살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짧은 순간이나마 그와 함께할 수 있어서,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날 수 있어서 행복했다.
“여보! 눈 좀 떠 봐! 제발, 내가 잘못했어, 여보!”
스르르 눈이 감긴 에리나의 얼굴을 끌어안고 알페아스는 오열했다.
“으아아아! 여보! 여보!”
그 슬픈 광경 속에서 아케인은 고개를 숙였다.
‘왜?’
모든 데이터가 성공을 말하고 있다. 외과 수술도 아니고, 임상 실험에서도 문제가 없었다.
‘대체 왜?’
인간의 뇌가 동물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그 순간 둔탁한 소리가 터졌다.
고개를 들자 알페아스가 벽에 머리를 박아 대고 있었다.
“뭐? 미르히 가문의 빛? 빛? 빛!”
쿵! 쿵! 쿵!
연거푸 세 번 머리를 박은 알페아스의 몸이 고무공처럼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일어나 다시 벽을 향해 전력으로 돌진했다.
“오만한 알페아스!”
쿵!
클럼프가 황급히 알페아스를 붙잡았다. 이대로 두었다가는 꼼짝없이 죽을 터였다.
“알페아스! 정신 차려! 지금 뭐 하는 거야!”
“놔! 빌어먹을! 으아아아!”
클럼프의 완력으로도 알페아스의 발버둥을 막아 내기가 힘들 정도였다. 마치 영혼을 불살라 죽음을 향해 돌진하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쇼크가 치민 알페아스의 동공이 말리면서 의식이 멀어졌다.
“에리나…… 에리나…….”
기절한 뒤에도 아내의 이름을 부르는 모습에 클럼프도 눈물을 참지 못했다.
***
에리나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가문의 직계만이 모인 자리였고 알페아스는 친족들에게 참석을 저지당했다.
결혼식도 올리지 않았고 후사도 없다. 결국 두 사람은 남남인 채로 이별을 맞이하게 되었다.
장례식장이 멀리 보이는 언덕에 알페아스는 하염없이 주저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해가 질 무렵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일어나더니 어딘가로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곳은 아케인의 던전이었다.
2년 동안 아내와 함께 수많은 실험을 했던 흔적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에리나…….”
알페아스는 기름통을 들고 실험실 곳곳에 기름을 뿌리며 다녔다.
그녀와 웃고 떠들던 순간이 마치 어제처럼 생생해 눈물이 흘렀다.
바닥을 드러낸 기름통을 던진 알페아스는 벽에 등을 대고 주저앉았다.
‘여기서 끝내야 해.’
왜 실패했을까? 무엇을 몰랐던 것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은 하나였다.
‘우린…… 신의 영역을 침범한 거야.’
아케인이 들어왔다.
“왔느냐, 알페아스?”
장례식에 초대조차 받지 못했기에 알페아스에게 이곳은 아내의 무덤인 셈이었다.
“에리나의 일은 유감이구나. 당분간은 심신을 챙겨라. 그런 다음 다시…….”
그 순간 기름 냄새를 맡은 아케인이 말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알페아스, 너 설마……?”
알페아스가 일어섰다.
파이어 마법 한 번이면 실험실은 사라져 버릴 터였다.
“이 무슨 짓이냐!”
“스승님, 처음부터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아내의 죽음으로 나약해졌다는 건 이해하마. 하지만 실험은 성공했어! 이곳을 없애는 건 에리나의 희생마저 저버리는 짓이야!”
알페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실패입니다. 모든 데이터가 정상인데도 에리나는 죽었어요. 그것은 인간이 검증조차 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아 있었다는 뜻입니다. 무지하고 오만했던 거예요. 실험을 계속해 봤자 더 많은 희생자가 나올 뿐입니다.”
“그것을 파헤치는 게 마법사가 아니더냐! 설령 신의 영역이라고 해도 내가 밝혀낼 것이다. 이곳에 있는 기록들은 나의 것이기도 해!”
알페아스는 잠시 생각했다.
아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이유는 세상에서 가장 오만한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안 돼.’
에리나가 남긴 것은 단순한 실험 기록이 아닌 본능에서 우러난 통찰이었다.
‘사람의 목숨을 걸고 신과 싸우는 격이다.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어.’
화염 마법을 시전한 알페아스가 말했다.
“실험실의 기록조차 에리나의 죽음으로 이룬 것들.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겁니다.”
“알페아스! 너……!”
그 순간 기름 위로 불똥이 떨어지면서 실험실이 순식간에 불타기 시작했다.
수천 장의 서류도, 마법 장치도, 연금 물질도 시커먼 재가 되어 스러졌다.
“안 돼! 안 돼!”
아케인은 자리를 뜰 수 없었다.
불을 꺼야 한다. 아니, 다 잃는 한이 있더라도 실험 데이터는 지켜야 한다.
서류를 챙기는 데 여념이 없던 그때 기화 물질에 불이 붙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실험실이 통째로 날아가고, 무섭게 공기를 빨아들인 불이 땅굴을 질주했다.
“으아아아! 알페아스! 용서하지 않겠다!”
아케인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죽음보다 분한 것은 필생의 역작을 완성하기 직전에 자료를 소실했다는 것이었다.
에리나의 죽음으로 무엇을 느꼈든 아케인에게는 끝까지 오만한 알페아스일 뿐이었다.
‘반드시, 반드시 살아남아 주마. 그리고 복수하리라. 기다려라, 알페아스!’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남은 아케인은 정보력을 동원해 대륙을 샅샅이 뒤졌으나 알페아스의 행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알페아스가 다시 세상에 등장한 건 그로부터 7년 후, 오젠트 가문의 본가였다.
“알페아스! 야, 인마!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클럼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버린 알페아스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깔끔했던 얼굴은 사라지고 광인처럼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누더기를 걸친 차림새에 피부는 완전히 까맣게 익은 상태였다.
클럼프는 알페아스를 욕실로 데려가 직접 씻겨 주었다.
수많은 상처가 보였고, 검사였기에 구별이 가능한 것들도 있었다.
맹수에게 당한 상처, 고문을 당해 생긴 상처, 명백한 자해의 상처…….
“죽을 곳이라도 찾아다닌 거냐?”
젖은 머리로 얼굴을 가린 알페아스는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딱히 죽을 생각은 없었어. 그렇다고 살 생각도 없었지만. 그냥 되는대로 돌아다녔어.”
“……그래.”
“얘기 들었어. 공인 검사가 됐다며. 축하한다.”
“우리 사이에 축하는 무슨. 또래 중에선 내가 제일 늦었어, 인마.”
클럼프는 머쓱하게 받아쳤다.
친구가 오지에서 지옥을 경험하는 동안 이루어 낸 성과가 딱히 자랑스럽지 않았다.
“미안하다. 갈 곳이 여기밖에 없어서. 신세 좀 지자.”
알페아스의 말라비틀어진 등을 바라보며 클럼프는 씁쓸한 의문을 던졌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마법사회의 초신성이었던 남자가 지금은 아는 귀족 하나 없는 부랑자 신세라니.
목욕을 끝내고 식사가 나왔다. 위장마저 줄었는지 알페아스는 음식을 많이 넘기지 못했다.
클럼프는 알고 있었다. 단지 갈 곳이 없다는 이유로 찾아올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서재에서 클럼프는 술을 내놓았다.
알페아스는 술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다만 7년 전의 모습처럼 총명한 눈빛이 언뜻 스쳐 지나갔다.
“말해 봐. 방황은 끝났으니까 세상에 나타난 거겠지. 너도 재기해야 할 거 아냐. 도와줄 수 있는 거라면 도와줄게.”
알페아스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1억 골드만 빌려줘.”
“1억…… 골드?”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물론 클럼프는 공인 시험에 합격함으로써 가주 승계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설령 가주가 되었다고 해도 출자 금액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한번에 빌려 달라는 뜻은 아냐. 4년에 걸쳐 인출할게. 재무사를 고용해. 월 한도를 700만으로 잡으면 별다른 타격 없이 운용이 가능할 거야. 이자도 낼 테니까. 단, 복리는 안 돼. 대신 연이율 20퍼센트로 맞춰 주지. 원금 상환은 1년 뒤부터 가능할 거야.”
상환 방식은 빌려주는 사람이 정하는 것이지만 클럼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아는 알페아스라면 이곳에 오기 전부터 최적의 조건을 생각해 왔을 테니까.
결국 4년 뒤에 원금 제외하고 8천만 골드의 수익을 올리겠다는 얘기인데, 대체 무슨 수로 그렇게 하겠다는 건지가 더 궁금했다.
“어쩔 생각인데? 새로운 마법이라도 개발한 거냐?”
알페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더 이상 마법에 열정은 없어.”
“그렇다면 1억 골드로 뭘 하려고?”
“학교를 지을 거야.”
“뭐? 학교?”
클럼프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오직 자신이 최고라고 여기던 알페아스가 남을 가르치겠다니.
“너 대체 무슨 생각을…….”
알페아스의 뺨을 타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말했다.
“다시는…… 나 같은 인간이 나와서는 안 돼. 죽기 직전까지 속죄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칠 거야. 한순간의 실수로 재능이 짓밟히지 않도록, 내 고통을 갉아 먹으며 살아갈 거야.”
클럼프의 눈도 붉어졌다.
바스타드 에리나. 아마도 알페아스는 평생 그녀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결정은 쉬웠다.
알페아스의 고통이 누군가의 성장으로 승화될 수 있다면, 성공보다 행복을 꿈꾸었던 이 친구도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 빌려주마, 1억 골드.”
그렇게 알페아스는 자신의 이름을 딴 마법학교를 크레아스에 세웠다.
공사 기간 동안 마법사 일을 하며 이자를 갚아 나갔고, 밤에는 공부를 해서 교사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4년 후.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교장 미르히 알페아스는 오젠트 가문에 1억 8천만 골드를 완납했다.
***
어비스 노바의 효과가 완전히 사라지자 알페아스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스, 스승님.”
“…….”
아마도 모든 기억이 돌아왔을 테지만,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거슬러 되풀이한 40년의 세월이 그토록 길고 무거웠기 때문일 터였다.
빛을 잃은 천재(6)
사드는 선뜻 말을 걸지 못했다.
인간은 미래를 모르기에 희망을 갖지만 알페아스는 이미 자신의 현실을 알고 있다.
교육자가 되겠다는 선택을 후회한다면 그의 인격도 충분히 바뀔 수 있었다.
“사드.”
알페아스는 눈을 감았다. 한 방울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고맙구나.”
인자한 말투에 사드는 일단 안도했다.
“괜찮으십니까, 스승님?”
“아무렴. 너에게 험한 말을 해서 미안하구나. 하지만 그게 예전의 나란다.”
“아닙니다. 제가 죄송스럽죠. 저는 스승님이 잘못되실 것 같아서, 차라리 그대로 계셨으면 하고…….”
알페아스는 사드의 어깨를 두드렸다.
“너다운 판단이었다. 어쩌면 그게 좋았을 수도 있겠지.”
“스승님, 그럼……?”
사드는 다시 불안해졌다.
“그래. 결코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지. 그런 삶이었고. 하지만…….”
알페아스는 에리나의 초상화를 돌아보았다.
처음 무도회장에서 만나 고백했던 순간을 떠올리자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삶이라도 오직 한순간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는 경우도 있단다.”
“그렇군요.”
사드는 이해했다.
에리나라는 여인은 알페아스의 가슴속에 영원한 고통으로, 하지만 결코 내칠 수 없는 가장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을 터였다.
“스승님, 이번 일을 저지른 자는 아케인입니다. 현재 에텔라 선생이…….”
“당했을 때부터 직감은 하고 있었다. 설명을 들을 때가 아니구나. 일단 움직이자.”
알페아스가 문으로 걸어가자 사드가 뒤를 따랐다.
1차 고비는 넘겼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전교생이 아케인의 마수에 걸린 상황이었다.
‘제발 늦지 않아야 할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