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96
‘이번에는 보이네?’
붉은 곤봉이 마치 여러 개로 분리되는 듯 공간을 따라 다가오고 있었다.
시간의 시소 속에서 손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모오놈도 마찬가지였다.
‘피할 수 없어.’
1,700대의 아이큐가 현재의 상황을 잔인할 정도로 명확하게 분석했다.
‘끝났다.’
죽는 것이었고, 오리스도, 모오놈도, 심지어 손유정도 그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명확한 미래.
그리고 시로네는 그 율법처럼 얼어붙은 사건에 미라클 스트림을 시전했다.
핸드 오브 갓-손의 기술.
빛의 손바닥이 오리스와 모오놈을 쓸어 담는 순간 시간의 시소가 풀렸다.
콰아아아아앙!
반경 수십 미터 안에 있는 건물들이 날아갔으나 7장군은 포함되지 않았다.
괄한 연기를 입에서 뿜어낸 손유정이 어깨 너머로 전방을 노려보았다.
“이건 또 뭐야?”
특정 사건이 사라진 기분.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니, 사라진 것처럼 착각하게 만들었다가 정답일 것이다.
‘그게 가능하다고? 율법의 레벨에서?’
전율이 일었으나 정상치를 넘는 기괴함이 오히려 사고를 차갑게 했다.
‘부처라면 하지 않을 일이다.’
진리가 아니니까.
‘그렇다고 부처보다 경지가 떨어진다는 생각도 절대로 들지 않아. 그렇다면…….’
신神인가.
잠시 후 오리스와 모오놈을 내려놓은 빛의 손이 하얗게 탈색되며 증발했다.
“어? 어라?”
오리스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모오놈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입을 벌렸다.
“…….”
1,700대의 아이큐가 어떻게 분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시로네가 그들의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가 한계다.’
만약 손유정이 화안금정을 발동한다면 야훼의 정체도 발각되고 말 터였다.
“침입자는 내가 맡겠습니다. 두 장군은 이타카에게 가서 새로운 전략을 받으세요.”
모오놈의 외눈에 힘이 들어갔다.
“헛소리하지 마. 우리는 마족이다. 적을 두고 도망치는 게 뭔지 모르는 거냐?”
시로네는 마족이 아니었다.
“흥, 로열은 늘 그런 식이지. 이타카도 마찬가지야. 마치 인간처럼 효율만 따지는…….”
“모오놈.”
시로네가 차갑게 말했다.
“가라고.”
아마도 90퍼센트의 야훼, 시선에 관통당하는 기분에 오리스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7장군인 내가 겁을 먹다니.’
한편으로는 평생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달콤하고 야릇한 감정이 전신을 감쌌다.
‘나, 저 마족을…….’
물론 이 기운이 증폭되어 100퍼센트가 된다면 애정은 증오로 바뀌겠지만.
오리스가 모오놈의 팔을 잡았다.
“가자. 지금은 유피에게 맡기는 게 좋아. 이타카도 같은 생각일 거야.”
“크윽!”
결국 뜻을 굽힌 모오놈이 자리를 떠나고, 오리스가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조심해, 유피.”
다정한 손길을 기대하는 고양이의 표정 앞에서 시로네는 마음이 무거웠다.
‘유피라고 짓지 말걸.’
그들을 조롱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금방 갈게요.”
시로네의 미소에 얼굴이 밝아진 오리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날렸다.
손유정이 물었다.
“이제 말해 줄래?”
여태까지 그저 지켜본 이유는, 천천히 돌아서는 시로네의 눈빛이 말해 주고 있었다.
“후후,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눈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씻길 것 같은 청명한 눈동자였다.
“……나네가 보냈냐?”
“흐음.”
부처와 말을 트는 느낌을 받은 손유정이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진짜 모르겠네. 긴고주를 외우지 않는 걸 보니 부처와 맞먹는 건 아닌 듯한데.’
시로네는 긴고주를 알고 있지만, 효과를 내려면 100퍼센트의 야훼가 되어야 한다.
“돌아가서 나네에게 전해라. 안 그래도 바쁘니까 귀찮은 짐은 알아서 해결하라고.”
손유정의 눈썹이 꿈틀했다.
“뭐, 좋아. 이제부터 여의에 대고 물어보면 되니까. 싸울 준비는 된 거지?”
“장소를 옮기자.”
가급적이면 오리스가 없는 곳으로.
“장소?”
무게중심을 낮춘 손유정이 쇳물처럼 달구어진 육체를 화살처럼 쏘았다.
“깔깔깔! 그딴 걸 내가 왜 신경 써?”
‘천둥벌거숭이 같으니.’
콧잔등을 일그러뜨린 시로네가 93퍼센트의 야훼를 발동, 그녀를 치받았다.
쿠르르르르릉!
도시가 흔들리고 거대한 흙먼지가 하늘로 피어올랐다.
***
레테가 테이블을 쳤다.
“야훼의 본질이 무엇이든 화공사의 입장은 변함이 없습니다. 대공은 지금 큰 실수를 하는 거예요.”
“무슨 뜻인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상황에 질린 레테가 차갑게 몸을 일으켰다.
“대공께서 수치를 모른다면, 저도 똑같이 해 드리죠. 이곳에서 기다리겠습니다. 1년이든 100년이든, 대공의 거짓말은 들통이 나게 되어 있어요.”
“저는 조용히 연구하는 것을 선호하는 마족입니다.”
레테가 싸늘하게 웃었다.
“이제야 겁이 나십니까? 인포메이터에게 포착되지 않은 건, 리안이 아직 실험실에 있다는 뜻이지요.”
레테가 실험실의 장치들을 함부로 살피자 마그리트가 나직하게 일렀다.
“예민한 기계입니다.”
“그러니까 말을 해요! 대공에게 수치를 주게 하지 말란 얘기입니다!”
“저는 속이는 게 없습니다. 사장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이건 시간 낭비입니다.”
“흥!”
레테는 메르케데에게 다가갔다.
“솔직히 말해 줘, 메르케데. 이 실험실에 야훼나 리안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니?”
“아, 아뇨. 없는데요.”
마그리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대공의 정신이라면 레테에게 저항할 수 있지만 메르케데는 견디지 못할 터였다.
“걱정하지 마. 절대로 너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할게. 그냥 한마디만 하면 돼.”
“아니에요. 저는 못 봤어요.”
메르케데는 거의 울 듯한 표정이었다.
“너는 알고 있어. 그렇지? 자, 고개 돌리지 말고 나를 봐. 내 눈을 보라고.”
레테의 시선에 직격을 당한 서큐버스는 정신이 날아갈 듯한 공포를 느꼈다.
‘어? 어어?’
자식이 아무리 발뺌을 해도 결국 어머니의 눈을 속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다가는 걸리고 말아.’
눈동자에 거짓의 신호가 떠오르는 것을 깨달은 메르케데가 결정을 내렸다.
“레테 님.”
그녀가 희미하게 웃었다.
“정말이에요.”
눈빛을 읽은 레테가 소리치려는 그때, 메르케데의 머리통이 폭발했다.
“아……!”
정신적인 충격에 몸이 앞뒤로 흔들린 레테는 얼굴 없는 시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메, 메르케데.”
그녀와 함께 웃고 떠들었던 추억들이 한 장면도 빠지지 않고 뇌리를 스쳤다.
마그리트가 다가왔다.
“그만 돌아가시죠. 실험실을 치워야겠습니다. 제가 따로 기별을 드리겠습니다.”
레테가 눈에 힘을 주며 고개를 돌렸다.
“대공, 이런다고 내가…….”
“저에게도 물어보시렵니까?”
대공이 똑같은 선택을 할 일은 없겠지만, 그의 말은 레테의 죄책감을 한없이 키웠다.
‘미안해, 메르케데.’
현실 세계의 가이아가 그렇듯이 레테에게는 모든 마족이 동등한 가치였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다음에 다시 찾아왔을 때는 절대로 물러서지 않을 거예요.”
메르케데의 각오를 무의미하게 만들지 않기 위해 레테는 차후를 기약했다.
실험실의 문이 닫히자 마그리트는 얼굴 없는 시체의 손을 들고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편히 쉬어라.”
단련의 한계 (2)
메르케데를 순수한 마로 정화시킨 다음에야 마그리트는 창고의 문을 열었다.
“나오게.”
정화되지 않은 육체 속에서 리안이 한쪽 눈을 감은 채로 얼굴을 드러냈다.
“…….”
그들이 나눈 대화는 모른다.
다만 누군가가 죽었다는 것은 대공의 눈빛만 보고도 직감할 수 있었다.
리안이 창고에서 나오자 마그리트는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실험 도구를 챙겼다.
본래 메르케데가 해야 할 일이었다.
“시간이 많지 않아. 본래 자네에 대해 연구를 깊이 할 생각이었네만, 당장 개조에 착수하지.”
레테는 다시 돌아올 터였다.
“어째서 이렇게까지 하는 겁니까?”
“……무슨 뜻이야?”
“서큐버스가 죽었고, 레테는 돌아갔죠. 당신에게도 소중한 사람이었을 텐데요.”
“그래서 하는 말이 아닌가. 사장님이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지금 같지 않을 것이야. 이건 최후의 경고네. 우리에게 베푸는 마지막 배려란 말일세.”
“제가 하고 싶은 말이 그겁니다.”
리안은 찝찝했다.
“레테가 사탄과 같은 인물이라면 고작 이런 일로 돌아갈 리가 없죠. 그녀는 진심으로 대하고 있는 겁니다. 당신도 알고 있으면서 어째서 우릴 돕는 겁니까?”
“흐음.”
마그리트는 손을 멈췄다.
“레테 님은 좋은 분이지. 냉철하고 공명정대하지만, 정이 많아. 그건 지옥과 어울리지 않는 성향이야. 하지만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 레테 님은 마족이 아닐세.”
그가 차가운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 세계의 관리자지. 우리와는 본질부터 다른, 심지어 사탄하고도 다른 존재야.”
“그렇다고 그녀의 마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마음?”
마그리트는 피식 웃었다.
“그럼 한번 말해 보게. 나는 솔직히 잘 모르겠거든. 메르케데가 죽었을 때, 레테 님은 지옥의 운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물러서 주셨지. 그렇다면 그건 마음일까? 아니면…….”
끔찍한 진실.
“그렇게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일까?”
“…….”
“사장님의 말에 의하면 자네의 오류를 상담하기 위해 비서실장 모노라스를 보냈네. 하지만 그는 오지 않았고, 야훼가 먼저 도착했지. 운이 좋다고 생각하나? 난 그렇게 보지 않아. 왜냐하면 모노라스도 관리자거든.”
“무슨 말씀이신지…….”
“고작 수십 년을 사는 인간이 거대한 순리를 어떻게 이해하겠나? 하지만 자네가 모시는 주군은 어느 정도 의심하고 있을 거야. 그런 수준의 정신 능력이니까.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건, 어디까지가 진짜고 어디까지가 허상이냐는 거야.”
마그리트는 리안의 스캔 정보를 확인했다.
“자네의 능력은 이 세계의 사용자, 즉 마스터 아이덴티티 코드를 기반으로 하네. 게헨나의 사슬이 끊어진 이유는 그 권한이 시스템을 초월하면서 생긴 오류겠지. 그렇다면 자네는 바깥 세계에서 온 존재인가?”
리안은 대답하지 못했다.
“알 수 없지. 딱 거기까지야. 바깥 세계가 있다고 해도 그곳의 정보와 직접 맞닿지 않는 한 우리가 누구인지는 모르는 거야. 어쩌면 자네 또한 프로그램일지도 모르지.”
“저는 제 의지로 결정하고 행동합니다.”
“알아. 하지만 그것조차 프로그램이라면? 알겠나? 이런 식으로는 결론을 못 내. 하지만 관리자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지. 그들에 대해 정의하는 건 자유지만, 이것만은 기억해 두게.”
리안의 가슴에서 뽑힌 게헨나의 사슬이 대공의 손아귀에 붙잡혔다.
“우리가 상상하는 것과는 다를 수도 있어. 그것이 0.5차원의 벽이라는 거야. 자네가 정말로 야훼를 지키고 싶다면, 아무도 믿어서는 안 돼.”
리안이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마그리트는 사슬의 끊어진 부분을 들여다보았다.
“시작하지.”
***
스탕 국립 마법학교.
위저드를 훈련시키는 조건으로 부모의 참관을 허락한 시로네는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그 약속은 차라리 하지 않는 편이 좋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