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15)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나?
나중에 내가 힘을 키우고 적당한 세력을 만들면, 과거에 줬던 지원을 빌미로 목줄을 채우려 들 것이다.
거기에 열 뻗쳐서 목줄을 끊어버리면 그날부터는 은혜도 모르는 쌍놈 되는 거고.
그러니 남들의 지원 같은 건 안 받는 게 낫다.
여행 경비도 내가 벌고 먹을 것도 내가 산다.
내돈 내산.
이것이야말로 이 험난한 판타지 세상에서 살아가는 기초수칙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크르르르…!
웬만한 사람의 키보다 커다란 몸집을 가진 늑대가 이를 드러내며 사납게 울었다.
위협적이진 않았다.
잘려나간 앞발에선 지금도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으니까.
크르르… 컹!
시간은 자기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건지 놈은 아가리를 쩍 벌리며 내게 달려들었다.
녀석의 이빨은 여전히 날카롭지만 도약 속도는 그렇지 못하다. 옆으로 미끄러지듯 피한 뒤 검을 휘둘렀다.
늑대 죽이기.
늑대의 목덜미 옆에 커다란 상처가 생겼다. 게임 시스템 때문인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이 기술을 쓰면 동물의 가죽이 쉽게 베어졌다.
덕분에 대형 늑대들도 잡기 쉬웠고.
여하간 1000골드 값은 하는 기술이었다.
끼이잉…
옆으로 쓰러진 늑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었다.
“아프냐? 빨리 끝내줄게.”
놈의 목덜미 중앙에 검을 꽂아 고통을 덜어주었다. 단검을 꺼내 늑대의 뱃가죽을 가른 뒤, 손을 넣어 안쪽을 뒤졌다.
커다란 장기들을 몇 번 헤집다보면 조그만 구슬 같은 게 만져진다. 그걸 꺼냈다. 피가 잔뜩 뭍은 구슬을 물로 씻어내었더니 구슬은 노란빛을 띄었다.
거대 푸른 늑대의 내단.
레벨 22인 거대 푸른 늑대를 잡으면 일정확률로 드랍하는 내단으로, 민첩 능력치를 2 올려준다.
나는 망설임 없이 그걸 꿀꺽 삼킨 뒤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직 던전은 끝난 게 아니니까.
그 후로 계속 나타나는 거대 푸른 늑대들을 잡으며 앞으로 나아가니 동굴의 최심부에 도달했다.
최심부의 안쪽에는 항아리 세 개가 줄지어 있었다.
상식적으로 늑대 둥지에 항아리가 있는 것이 이상하긴 하지만…
판타지잖아?
그러려니 하자.
나는 검을 휘둘러 항아리 셋을 모두 깨부쉈다. 그러자 항아리 파편들 사이에서 무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반짝이는 것은 은색의 반지로, 나는 이것이 무슨 반지인지 알았다.
내가 이 동굴에 들어온 이유가 이 반지 때문이었으니까.
푸른 늑대의 반지.
착용자의 민첩을 20%올려주는 반지다.
‘이걸로 초반에 챙길 수 있는 건 얼추 다 챙겼나.’
프롬왕국의 수도에서부터 시작해 게임루트를 따라가며 반지들을 챙겼다. 몇 개는 전의 클라우드가 챙겼는지 없었고, 챙겨가지 않은 것들만 얻을 수 있었다.
얻은 반지의 목록은 이렇다.
산적의 때묻은 반지.
독 데미지 20%증가.
대대로 내려온 농부 가문의 반지.
회복 아이템 사용효과 30%증가.
광인의 반지.
공격력 50%증가, 내구 50%감소.
유실된 어느 가문의 반지.
내구 50 상승.
이름 모를 기사의 붉은 반지.
공격력 10% 증가.
그리고 방금 얻은 푸른 늑대의 반지까지.
총 6개의 반지를 챙겼다.
원래는 5개 정도 더 있어야 했는데 아마 원래 클라우드 일행이 여행하면서 얻은 모양이다.
‘그런 것 치곤 이 녀석한테 반지는 하나도 없던데.’
설마 그 셋에게 전부 준 건가?
아마 그럴 가능성이 가장 높을 것 같았다.
하여간 네토마조 루트 타던 놈 아니랄까봐. 아주 간이랑 쓸개를 다 줘요, 다 줘.
그나마 가장 중요한 ‘이름 모를 기사의 붉은 반지’를 안 챙겨가서 다행이지.
이름 모를 기사의 반지는 지금 당장이야 애매한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후반에 강화시키면 매우 쓸 만해진다.
‘프롬왕국에서 챙길 것도 다 챙겼겠다, 다음은 알리티아 왕국으로 가야겠네.’
바쁘게 움직여야겠다.
그전에 들러야할 곳도 있으니까.
프롬왕국 남부의 작은 시골 마을.
이름조차 없는 그 작은 마을에 한 소년이 있었다.
금발과 벽안을 가진 어디에나 있을 법한 평범한 소년.
그 소년은 마을의 언덕 위에서 홀로 목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찾았다.’
나는 그 소년을 보며 씨익 웃었다.
소년의 이름은 마르스.
훗날 사천왕의 군세로부터 목숨을 바쳐 도시를 지켜냈으나, 그 명성을 모두 ntr남에게 빼앗긴 비운의 기사.
‘용사일행’의 후속작 ‘외도 기사담’ 주인공이다.
300만원이라는 거금을 빌려놓고 갚지 않는 친구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나는 ntr 게임을 추천한다는 방법을 선택했다.
당연하지만 게임을 추천하기 위해서는 그 게임을 내가 먼저 해봐야했다.
그리고 ‘외도 기사담’은 내가 가장 처음으로 플레이한 ntr 게임이다.
으레 모든 첫 경험이 그렇듯 ‘외도 기사담’은 내가 가장 강렬한 기억을 안겨주었다.
처음은 평범하게 시작한다.
마물에게 부모를 잃고 고아가 된 마르스.
마을을 구해준 기사를 보고 기사가 되길 꿈꾸며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런 그의 곁에는 항상 그를 잘 돌봐주던 소꿉친구 이자벨이 있었다.
솔직히 게임을 시작하고 첫 몇 시간은 편한 마음으로 했다.
마르스와 이자벨의 이어질 듯 말 듯 하는 풋풋한 연애 이야기가 꽤 재밌었거든. 나는 ntr 게임인 것을 잊고 즐겁게 플레이했다.
그래. ntr 게임인 것을 잊고.
ntr 파트가 시작되니까 마치 앞의 순애파트는 모두 뒤에 나오는 ntr파트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듯, ntr이 폭풍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덕분에 마음을 놓고 있었던 나는 잽, 잽, 스트레이트, 훅!을 제대로 맞은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 상태.
이후 나는 어떻게든 순애 엔딩을 보기 위해 노력했다. 이 불쌍한 마르스에게 행복한 미래를 선물하고 싶었던 탓이다. 비록 게임 캐릭터에 불과하지만 이 녀석은 나와 함께 울고 웃었던 전우니까!
근데 없었음.
순애 엔딩 없었다고.
트루 엔딩이 도시 구한 뒤에 뒤지고, 주인공의 명성을 슬쩍한 ntr남이 도시의 영웅으로 추대 받는 거다.
허미 시벌…
동료의 배신이라니…
문득 과거의 PTSD가 떠오른 나는 하마터면 제작사를 찾아갈 뻔했다. 레아가 빠따로 두들겨 패면서 말리지 않았더라면 진짜 찾아갔을 것이다.
그때는 결국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같은 대륙에서 살 게 됐으니까.
‘마르스, 네게 행복이라는 것이 뭔지 알려주마.’
넌 행복하게 살아야 돼.
그럴 자격 있어 임마!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목검을 휘두르는 마르스를 바라보았다.
자, 찾은 건 좋은데 어떻게 다가갈까?
그건 몹시도 간단했다.
“엉망이구만.”
도발을 걸면 된다.
내 말에 마르스는 휘두르던 목검을 멈추고 이쪽으로 돌아봤다. 당연하지만 표정이 좋지 않다.
“누구시죠? 마을에서 본 적 없는 것 같은데.”
“그냥 지나가던 모험가지. 잠깐 이 마을에 머물다 가려는데 헛되게 애쓰는 네 모습이 불쌍해서 말 좀 걸어봤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너 기사가 되고 싶다며?”
“…누구한테 들으신 거죠?”
“그냥 물어보니까 마을 주민이 말해주던데? 왜? 숨기는 거였어?”
“그런 건 아니었는데요…”
“어쨌든, 너 그렇게만 해선 기사 못 될 거다.”
이번 말은 상당히 기분 나빴는지 마르스는 눈살을 찌푸렸다.
“시비를 거시려는 거면 그냥 가시죠?”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현실을 말해주는 거지. 왜? 증명이라도 해줄까?”
“…할 수 있다면 해보세요.”
마르스의 눈이 투쟁심으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게 보였다.
npc들이 투지가 있는 눈이라고 칭찬하더니, 저런 눈이었구만.
“좋아. 목검 남는 거 있냐?”
마르스는 허름한 집 안으로 들어가더니 목검 하나를 꺼내와 내게 던졌다.
목검 살 돈도 없는 건지 직접 깎아 만든 조잡한 목검이었다.
“그럼 이제 보여주시죠.”
“덤벼봐. 네가 왜 기사가 못 되는지 알려줄 테니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마르스는 달려오더니 목검을 사선으로 휘둘렀다. 힘이 잔뜩 담긴 걸 보면 내 도발이 훌륭하게 들어간 것 같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목검을 움직였다.
현재 마르스는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았다.
기사를 꿈꾸게 된 이후로 단 하루도 노력을 게을리 한 적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목검을 휘두르고,
마을 어른들 일을 도와드린 뒤, 밥을 얻어먹고 남은 시간에 목검을 휘둘렀다.
오후에 마을 어른들 일을 도와드리고 저녁을 얻어먹은 뒤, 자기 전까지 목검을 휘둘렀다.
굳은살이 벗겨지고 피가 나도 멈추지 않았다.
그만큼 기사가 되고픈 그의 마음은 간절했으니까. 그런데 그 노력을 갑자기 나타난 누군지도 모를 남자가 비하했다.
그렇게 하다간 평생토록 기사가 되지 못할 거라면서.
화가 났다.
그래서 뻔한 도발에 넘어가 대결을 하게 되었다.
‘기껏해야 모험가이면서… 내가 꿈꾸는 건 그보다 훨씬 위란 말이야!’
저 건방진 얼굴을 뭉개주기 위해 빠르게 달려들어 목검을 휘둘렀다. 그에 반응한 모험가가 자신의 목검을 마르스의 목검에 가져다대었다.
그러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 모험가의 머리를 향했던 마르스의 목검이 어느 순간 땅바닥을 때리고 있는 것이다.
딱!
마르스가 당황해할 틈도 없이 뒤통수에 묵직한 통증이 느껴졌다.
“한 번 죽었다. 또 할 거냐?”
“…방심한 겁니다.”
마르스는 목검을 강하게 쥐고 다시 모험가를 향해 달려들었다. 그러나 몇 번을 달려들어도 결과는 똑같았다.
마르스의 검격은 휘어지고 비틀어졌다. 모험가의 피부조차 스치지 못했다.
그에 마르스는 방법을 달리하기로 했다.
‘달려들어서는 답이 없어. 그럴 바엔 차라리 내가 방어한다.’
마르스는 목검으로 모험가를 겨누며 자세를 취했다.
“그렇게 나오겠다?”
무슨 생각인지 알겠다는 듯 모험가는 피식 웃으며 마르스에게 다가왔다.
달려들었던 마르스와는 다르게 그는 천천히 걸었다. 여유가 넘치는 발걸음이다. 그럼에도 마르스는 방심하지 않았다.
마침내 목검의 사정거리가 되었다. 모험가가 목검을 움직였다.
‘오른쪽 상단!’
탁!
목검끼리 부딪치며 탁한 소리를 내었다.
좋아 막았다. 이제 바로 반격하면…
‘어..?’
마르스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방금 자신의 오른쪽을 공격했던 목검이 어느새 자신의 왼쪽 턱에 닿아있었으니까.
“어떻게..?”
“별로 놀라운 기술은 아니야. 손목 회전을 이용해서 두 번 공격하는 기술이니까. ‘이연격’이라고 동네 검술 길드에서 300골드만 주면 배울 수 있는 기술이지.”
300골드에 누구나 배울 수 있다고..?
‘그런 기술에 난 진 건가..?’
마르스는 침울한 표정으로 바닥을 바라봤다.
300골드라는 것이 작은 돈은 아니었다. 마르스는 300골드는커녕 100골드조차 손에 쥐어본 적이 없으니까.
그러나 지금까지의 그의 노력이 300골드보다 못하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야, 야! 남자라는 새끼가 고작 이런 걸로 표정을 구기면 어쩌냐? 그래선 이 각박한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어요.”
“…”
“에휴… 야, 자세 잡아봐.”
“네..?”
“검 휘두르는 자세 잡아보라고. 내가 좀 봐줄 테니까.”
갑자기 자세를 봐준다고?
마르스는 얼떨떨해 하면서도 일단 평소에 목검을 휘두르던 자세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