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5)
어깨는 빠지고 다리는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꺾여있었으며, 내출혈도 꽤 있는 것 같다.
클라우드는 우선 탈골된 오른쪽 어깨부터 끼우기로 했다. 왼손을 어깨에 얹고 힘을 강하게 주자 뚜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어깨뼈가 맞춰졌다.
꺾인 다리는 붙잡고 원래 방향으로 돌렸다.
부러진 뼛조각이 맞물릴 때까지 요리조리 움직여보다가, 딱 알맞게 붙었을 때 손을 놓았다.
“됐다. 이제 치료해줘.”
“…네? 아, 네…”
오필리아는 어째서인지 조금 섬뜩한 기분을 느끼며 클라우드에게 힐을 사용해주었다.
파티를 해체할 때는 ‘해산!’ 한 마디면 끝나는 줄 알았다. 내가 끌려갔던 세계도 그러했고. 근데 여기는 아닌 모양이다.
“그럼 파티의 연을 끊도록 하겠습니다. 조금 아플 수도 있습니다.”
흰머리가 지긋한 노인이 내 등 뒤로 다가가 섰다.
이 세계에서의 파티는 맺고 끊음에 꽤 까다로운 절차가 있었다.
파티를 맺을 때는 등에 새겨진 스테이터스에 그 사람의 피로 등록을 하고, 끊을 때는 자신의 피로 덧씌운 뒤 닦아내야한다.
이런 절차를 하는 이유는 마물을 잡았을 때 경험치를 나누기 위해서라나.
그런데 당연하게도 등 뒤로 손이 닿을 리가 없다. 때문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지금 내 등에서 파티를 해체시켜주고 있는 사람은 황궁의 집사 중 하나이다.
세 히로인들은 다른 방에서 하녀에게 도움을 받고 있을 것이다.
“시작하겠습니다.”
등에 차가운 액체가 발라지는 느낌이 든다.
간지러운 느낌보단 따갑고 욱신거리는 통증이 찾아왔다.
신음소리를 낼 정도의 아픔은 아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 멍하니 있으니 어느새 끝나버렸다.
“이제 가면 되는 겁니까?”
“예, 파티 해체는 완료되었습니다.”
“그럼 전 이만.”
나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조금 있으면 황제가 사교회에 모습을 드러낸다고 한다.
황제가 있을 때 사교회를 나가려했다간 덜미를 잡힐 수 있었기에, 그가 나타나기 전에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다행히 내가 있었던 방은 황궁 입구와 가까운 1층이었기에 빠져나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궁에서 나와 높은 계단을 쭉 내려가는데, 반대쪽에서 한 사람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낯설지가 않다.
그럴 수밖에. 지금 계단을 올라오고 있는 여인은 ‘용사일행’에 등장하는 용사 중 유일한 여성 용사니까.
프릴리테.
제국 변경백의 장녀이자 네 용사 중 가장 강한 용사.
“클라우드? 아직 사교회는 끝나지 않았는데 어딜 가는 거지?”
그녀가 계단을 내려가는 날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피곤해서. 오늘은 좀 일찍 돌아가려고.”
음식이 맛없다면 내가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나?”
“아무 일도 없었어.”
나는 그녀의 옆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내가 완전히 계단을 내려갈 때까지 그녀의 시선은 내게 박혀있었다.
이 세계에는 놀랍게도 바가 있었다.
뭔가 어둡고 은밀한 분위기에, 중앙 테이블에선 바텐더가 접시를 닦고 있는 그 바가 맞다.
칵테일은 없고 포도주밖에 없다는 게 흠이지만.
‘포도주밖에 없는데 바텐더는 왜 필요한 거야?’
그런 의문이 들었지만 대충 넘어가기로 했다.
포도주 맛은 괜찮았으니까.
여관에서 먹었던 그 맛대가리 없는 에일에 비하면 상당히!
‘탄산 없는 맥주라니. 어떤 악마가 그딴 걸 만든 건지.’
하긴 탄산은 전에 끌려간 세계에서도 없었지.
그래서 지구로 돌아오자마자 마신 게 콜라였고. 그때 느꼈던 청량감은 아직도 잊질 못하고 있다.
콜라 마렵네 진짜.
남은 포도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아까까지만 해도 회백색이었던 잔이 투명한 빛을 낸다.
여긴 신기하게 유리공예는 또 발달해있단 말이지.
“그렇게 마시다간 내일 탈난다.”
한 여인이 내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고개를 돌려보면 붉은 머리칼을 포니테일로 묶은 여인이 보인다.
바의 어두운 분위기는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를 조금도 떨어트리지 못 했고, 붉은색과 황금색이 공존하는 연미복은 남성의 옷임에도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다 가리지 못 했다.
“레드? 화이트?”
“화이트로 부탁하지.”
“의외네. 넌 레드를 고를 줄 알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지?”
“넌 빨갛잖아.”
나는 그녀의 붉은 머리칼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는 너도 붉은 머리칼이면서 화이트 와인을 마시고 있지 않나?”
“그거와 이건 다르지.”
난 원래 붉은 머리칼이 아니었거든.
그 사실을 모르는 그녀는 피식 웃었다.
“아직 농담할 기운은 남아있는 것 같아 다행이군.”
웨이터가 프릴리테의 앞에 화이트 와인이 담긴 잔을 놓았다.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는데. 그보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프릴리테. 아직 사교회가 끝날 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프릴리테 드 페르디아크.
제국의 변경백 중 가장 세력이 강한 가문의 여식이자 용사인 그녀는 지금쯤 사교회를 빛내고 있어야 했다.
나처럼 이런 지하 술집에서 싸구려 포도주나 마시는 게 아니라.
프릴리테가 잔을 잡고 흔들자, 회백색을 머금은 와인이 파도처럼 찰랑찰랑 흔들린다. 그럼에도 와인은 단 한 방울조차 잔 밖으로 튀어나가지 않았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었다.”
그녀는 잔을 흔드는 것을 그만두고 잔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와인이 끝없이 넘어간다.
그냥 술을 끝없이 들이키는 것에 불과함에도 그 모습에는 기품이 살아있었다.
“아까 나처럼 마시면 탈난다고 하지 않았었나?”
“가끔씩은 이렇게라도 마셔줘야 기분이 풀리지.”
미소를 지은 그녀.
이내 진지한 표정을 짓는다.
“그 멍청한 놈들이 그런 일을 벌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 내 불찰이다.”
“그게 왜 네 불찰이야?”
“내가 조금 더 신경 썼어야 했다. 하지만 마물 토벌이라는 핑계 때문에 그러지 못했지. 그러니 내 잘못이 맞아.”
“얼씨구.”
프릴리테는 바텐더가 새로 따라준 와인을 들이켰다.
모르는 사람은 이상하다고 여기겠지만 나는 저 여인이 저러는 이유를 안다.
개인적인 친분 때문은 아니다.
클라우드와 그녀 사이에 접점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
그럼에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클라우드를 신경써주는 이유는 단 하나다.
클라우드가 용사니까.
프릴리테는 혹시나 이번 일로 인해 클라우드가 의욕을 잃어버리는 일을 걱정하는 것이다.
네 명의 용사는 서로 힘을 합쳐 인류의 적인 마왕을 봉인해야한다.
이 대륙에 내려오는 전설.
그녀는 그것을 이번 대에서 깨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깟 전설이 뭐가 중요하냐, 그냥 용사가 마왕을 무찌르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용사는 성장한계에 부딪치지 않고 끝없이 성장할 수 있다. 그것은 곧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뚫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용사는 하나의 병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런 용사는 공국을 제외한 네 나라에서 한 명씩 배출된다.
헌데 어떠한 경위로 인해 한 나라의 용사가 사라지거나, 배출되지 않게 된다?
그대로 나라간의 밸러스가 무너지게 된다.
그 격차는 되돌릴 수 없이 커지게 될 것이고, 용사를 잃은 나라는 결국 망국으로 치닫게 될 지도 모른다.
프릴리테는 그것을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엄하지만 올바른 아비 아래에서 잘 자란 딸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함께했던 동료와 그런 식으로 이별하게 된 기분을 나는 모른다. 짐작할 수도 없지.”
“어.”
“그럼에도 나는 네가 부러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안 부러져.”
“네가 내 생각보다 강인한 남자라 다행이군. 어쨌든 다시 동료를 구하려면 꽤 시간이 들겠지. 그건 내가 도와주마. 제국에서 뛰어난 실력을 가진 이들을 섭외해서…”
“필요 없어.”
나의 짧은 대답에도 잘만 넘어가던 프릴리테가 이번에는 멈칫했다.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심적으로 힘든 건 알겠다. 그러나 용기와 만용은 다른 법이다.”
“알아.”
“그럼 내 호의를 받아라. 부담스럽더라도 그게 널 위한 길이니.”
아, 거 되게 끈질기네.
“됐다니까. 너도 혼자 다니면서 나한테는 왜 자꾸 그러냐?”
“나야…”
“그래, 실력이 있으니까 그런 거겠지. 근데 나도 좀 치거든? 그러니까 냅둬. 혼자 다녀도 상관없으니까.”
“클라우드 너…”
프릴리테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이내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바텐더가 들고 있는 와인병을 빼앗아 그대로 한 입에 들이켰다.
와, 원샷이다.
나는 피식 웃다가 문득 잊고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게임에 얘 cg는 없었네.’
나름 비중 있는 캐릭터였는데 마계에 갔다가 실종됐다는 소식만 나올 뿐, 따로 이벤트 씬이 있거나 하진 않았다.
“후우…”
기어코 병 하나를 통째로 비운 그녀는 와인병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쳐주었다.
“눈나 멋져요 헤으응.”
“…아무래도 많이 취해있었던 모양이군. 다음에 술이 깨면 다시 이야기 하지.”
그녀는 품에 손을 넣더니 묵직한 돈주머니를 꺼내 바텐더에게 던졌다.
“이걸로 내 술값과 이 남자가 마신, 그리고 마실 술값까지 전부 계산해라. 부족하진 않을 것이다.”
바텐더는 돈주머니를 살짝 열어보더니, 휘둥그레진 눈으로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에.”
그녀는 나를 한 번 쓱 쳐다본 뒤 등을 돌려 그대로 술집에서 나갔다.
어라, 이건 진짜 멋진데.
까놓고 말하자면 그날 이후로 나와 프릴리테가 다시 만날 일은 없었다.
왜?
그야 내가 다음날 바로 제국 수도에서 빠져나왔으니까.
누군가는 그런 미인이 신경 써 주는데 고맙게 받아들여야하는 것 아니냐 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런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그럼 네가 빙의 되던가.
난 용사 일을 또 다시 하고 싶지는 않다.
딱히 즐겁지도 않을 것이고, 또 그 고생을 해봐야 나한테 남는 것도 없지 않나?
뭐, 마음만 먹으면 마왕을 무찌르고 그 공적으로 잘 먹고 잘 살 수야 있겠다만…
‘이딴 곳에서 잘 살아야봐야 뭐가 즐겁다고.’
컴퓨터도 없어,
휴대폰도 없어,
넷플릭스도 없어,
치킨도 없어,
콜라도 없어.
있는 게 없다.
그나마 지구보다 나은 점은 사람들의 평균 외모 수준이 높다는 점일까.
당장 내가 빙의한 놈의 얼굴만 해도 지구에 있을 땐 본적도 없는 얼굴이었으니.
‘웬만하면 빨간 머리가 잘 어울리기는 힘든데 말이지.’
이 얼굴로 지구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아이돌로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텐데.
아쉬울 따름이다.
“읏차,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나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제국의 수도에서 나온 이후로 나는 다른 도시를 돌아다니며 식도락 여행을 다니고 있다.
이런 세계여도 맛있는 거 하나 정도는 있겠지 라는 희망을 가지고 말이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로 마지막.
오늘 먹은 것도 맛없으면 그냥 자살할 예정이다.
일단 이 육체에서 내 영혼이 빠져나가기만 하면 뒤는 레아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애니까.
나는 휘파람을 불며 거리를 돌아다녔다.
제국의 수도만큼은 아니지만 일단 제국이라고 거리도 깨끗하고 치안도 좋다.
음식만 맛있으면 진짜 괜찮을 텐데.
‘저기 꼬치는 퍽퍽했고, 저기 선술집은 고기 비린내가 너무 심했어. 저 집 과일에는 애벌레가 들어있었지. 음, 저긴?’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며 음식집을 탐색하던 내게 거리 구석에 위치한 허름한 가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