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79)
그렇게 시작된 키스.
그것은 처음 했던 입술 박치기와는 다르게 진짜 키스라고 부를 만한 것이었다.
쭈웁. 츄릅. 쯔읍.
두 사람의 혀가 찐득하게 섞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연인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열두 번의 밤을 만났고, 대련한 횟수는 그보다 훨씬 많다. 당연하지만 대련에서 패배할 때마다 로렌느는 입술을 내어줬다.
두 번째 키스는 여전히 불쾌했다. 꾹 눌러 참지 않으면 검을 휘둘러 버릴 정도로.
세 번째도 비슷했다.
네 번째도.
다섯 번째도.
대련은 계속 이어졌고 입맞춤 또한 계속 이어졌다.
정확히 언제부터인 지는 로렌느도 잘 모른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불쾌함이 줄어들었고 인제 와서는 아예 느껴지지도 않았다.
로렌느는 그것이 이해되질 않았다.
아무리 입을 맞춘 경험이 많아졌다고 해도 클라우드가 천한 피인 것은, 평민인 것은 변하지 않는데…
싫지 않았다.
클라우드는 슬쩍 그녀의 뒷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다. 로렌느가 찰싹! 하고 그 손을 쳐냈다.
“착각.. 쮸웁… 하지 마… 내가 허락한 건… 츄릅… 입까지니까…”
어련하시겠어. 클라우드는 그런 표정을 지으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로렌느는 눈을 가늘게 뜨며 클라우드를 노려봤다.
‘…잘생기긴 잘생겼단 말이야.’
옥에 티조차 없는 하얗고 깨끗한 피부.
커다란 눈과 오뚝한 코, 입술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었다.
루비와 같은 붉은 눈동자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이게 어딜 봐서 평민이야?’
로렌느는 평민 사이에서 유명하다는 미남들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죄다 왜 미남이라고 불리는지 이해가 안 가는 놈들이었다. 꼬질꼬질한 건 둘째치고 외모 자체도 그다지 잘생기지 않았다.
귀족들도 마찬가지.
잘생겼다 소문난 귀족 중에서 진짜 잘생긴 놈은 없었다.
어린 시절부터 로리안을 보며 자라온 로렌느였기에 눈이 상당히 높은 것이다.
그리고 그런 로렌느조차도 클라우드의 타고난 외모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아무리 평민이라고 한들 용사잖아? 여신님께 선택받은 존재. 그럼 평범한 평민이 아니지.’
무려 여신님께 선택받은 인간이다.
기사보다야 당연히 높겠고 웬만한 귀족보다도 입지가 높을 것이다. 그럼 명예 귀족이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이것은 자기합리화.
천한 핏줄과 키스를 해도 불쾌함을 느끼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로렌느의 자기합리화이다.
쭈읍… 츄릅…
길었지만 짧게 느껴졌던 키스가 끝이 났다.
키스가 끝났음에도 로렌느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입술에 남은 감촉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클라우드가 아직 떠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꼈다.
“뭐야? 안 가고 뭐 해?”
평소라면 키스가 끝나자마자 돌아갔을 그인데 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걸까.
“내일 아침에도 결투장 보낼 거냐?”
“그거야 내 마음이지! 왜? 인제 와서 자신이 없어지기라도 했어?”
“아니… 그… 됐다.”
클라우드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연무장을 떠났다.
로렌느는 그 모습을 불만스레 쳐다보았다.
“뭐야?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 줄 알았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방으로 돌아가 새로운 결투장을 작성하고 클라우드의 객실 문틈에 끼워놓은 후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밤, 연무장에서 클라우드가 오길 기다렸다.
어느 순간부터 평범한 일과가 되어있었지만 로렌느는 신경 쓰지 않는 척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오늘은 아무리 기다려도 클라우드가 오지 않았다. 기다리다 지친 로렌느는 미간을 와락 일그러트리며 클라우드의 방으로 쳐들어갔다.
“야! 안 나오고 뭐 해? 설마 네까짓 게 날 무시하는 거야?!”
문을 박차고 객실 안으로 들어간 로렌느.
객실 안은 깨끗하게 비어 있었다.
“..?”
뭐지? 잘못 들어왔나?
아닌데. 여기가 맞는데?
어리둥절해 하던 로렌느는 다음 날 아침이 돼서야 자초지종을 들을 수 있었다.
“클라우드 용사님과 일행분들 말씀이십니까? 그분들은 어제 아침 일찍 떠나셨습니다.”
집사가 믿기지 않는 소식을 전했다.
대련을 하고 결투장을 쓰느라 로렌느는 늦게 잠들고 늦게 일어났다. 클라우드는 그녀가 잠든 틈을 타서 떠난 것이었다.
“이… 이 개자식이..!”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하고 가버리다니..!
로렌느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어? 잠깐만. 그놈이 떠났는데 내가 왜 화를 내야 하는 거지?’
화를 내야 하는 이유가…
아 그래, 대련.
대련에서 못 이겼잖아. 나는 매번 지기만 해서 첫 키스도 뺏기고, 그 이후로도 마구 키스 당했잖아?
그 자식은 내 입술을 마구 희롱했어.
그래, 이건 강간이야.
그 놈은 내 입술을 강간하고 떠난 강간범이라고!
그렇게 단정 짓자 화가 더욱더 치밀었다.
다음에 만났을 때는 그 머리를 쪼개주겠다고 다짐하며 로렌느는 로리안의 방으로 향했다.
로리안에게 가르침을 청해 실력을 늘릴 생각이었다. 그가 우울함에 젖어 방구석에 처박힌 건 더 이상 로렌느가 알 바 아니었다.
헌데…
“뭐야. 오라버니는 또 어디 갔어? 뭔데?! 단체로 짜고서 날 놀리는 거야?!”
로리안의 방에는 로리안이 없었다.
로렌느가 로리안의 방에서 고함을 지르고 있을 시각, 로리안은 기스를 마주보고 있었다.
기스는 입으로 하얀 연기를 내뿜으며 피우던 시가를 테이블에 문질렀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 사독회의 암살대를 이용하고 싶다는 거지?”
“그렇습니다.”
“왜 하필 날 찾아온 거야? 우리 잘나신 왕자님께서는 나 아니더라도 충분히 암살대를 이용할 수 있으실 텐데?”
“사독회의 암살대가 대륙 제일인 것은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사실이죠. 그리고 제가 직접 의뢰하는 것보다 당신을 통해 의뢰하는 게 더 나은 암살대를 이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기스는 알리티아 왕국의 범죄조직, 사독회로부터 후원을 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지만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뭐, 그야 그렇지. 대상은? 역시 클라우드?”
로리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죽일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랬다간 그녀의 분노를 살 테니 말이죠. 다만… 그렇군요. 놈에게 절망을 심어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이 꺾여버릴 정도의 절망을.”
“그거야 어렵지 않지. 고문은 우리 암살대의 특기 중 하나니까. 그놈이 나불댈 걱정도 할 필요 없어. 사독회의 암살대는 그렇게 어설프지 않거든.”
기스는 킥 웃으며 의자에 등을 기댔다.
“공범이 늘었군. 잘된 일이야.”
로리안이 눈가를 좁혔다.
“공범?”
“그래, 공범. 설마 내가 그 치욕을 당하고도 가만히 있을 거라 생각한 건 아니지?”
기스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편지를 보냈어.”
“…”
같은 방에 있던 여인 중 아드레아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붙잡으려 드는 올레르 공작가를 뿌리치고 우리들은 프로나 왕국의 수도로 돌아왔다.
왕가에서 전서구로 우리를 호출한 탓이었다.
왕이 직접 호출했다.
안 가면 또 귀찮은 문제가 생길 것 같았기에 우리는 호출을 따라 수도로 왔고…
보았다.
“이단자를 단두대로!”
“왕자를 단두대로!”
“이단 타도! 왕자 타도!”
왕성 앞을 가득 채운 시민들을.
“왕자는 나오시오! 이단이 아니라면 자신의 무고함을 직접 증명하란 말이오!!!”
시민들의 선두에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는 성직자들을.
“…돌아갈까?”
중얼거리듯 내뱉은 말에 일행들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를 빠져나가는 것은 실패했다.
시민들을 통제하던 어떤 눈치 없는 기사님께서 날 발견하곤 ‘어? 용사님!’이라고 소리친 덕분이다.
그 기사 놈이야 날뛰는 시민들 때문에 힘들어 뒤지겠는데 용사가 나타나니 마냥 좋았겠지.
나름 용사니까 어떻게든 도와줄 거라고 믿었을 거야. 어쩌면 내게 날뛰는 시민들을 짬 때리고 편히 쉴 생각이었을 수도 있고.
그런데 어쩌나?
내가 아무리 인지도가 바닥이어도 용사는 용사여서요.
신참 기사가 때린 짬에 얻어맞을 입장은 아니랍니다? 덕분에 시민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반강제로 왕궁으로 끌려오긴 했지만요.
‘씹새끼. 얼굴 외웠다.’
다음에 만나면 내 아래 니 위로 집합인 거야. 알았어?
똑똑.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자니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용사님. 만찬 준비가 끝났기에 모시러 왔습니다.
나는 안내해준 객실에서 얌전히 연회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바깥 상황이 저 꼴인데 웬 연회인가 싶었지만, 받는 입장에서 뭐라 할 처지는 아니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문을 열고 나가자 풀 플레이트 갑옷을 입은 기사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라 연회장으로 향하며 궁금했던 것을 물었다.
“바깥의 소란은 뭐야?”
“무지몽매한 시민들이 헛소문에 사로잡힌 것뿐입니다. 용사님께서는 너무 신경 쓰지 말아 주시길 바랍니다.”
“무지몽매한 놈들이라기엔 성직자들도 끼어있던데?”
“신과 관련된 것이면 살짝 맛이 가버리는 게 그쪽 종자들이잖습니까. 쓸데없이 혈기가 넘치는 몇몇이 분수에 넘치는 행동을 하는 거겠지요.”
“그런가?”
요컨대 마녀사냥이라는 뜻이다.
단지 상대가 평범한 민간인이 아닌 한 나라의 왕자이자 왕위계승자일 뿐.
‘마녀사냥은 아닐 거 같은데.’
나는 헛소문일 뿐이라는 기사의 말에 회의적이었다. 그렇다고 하기엔 스케일이 너무 크다. 한 왕국의 왕위계승자를 이단으로 몰다니? 왕자의 무고함이 밝혀지는 순간 교회의 입장은 굉장히 난처해진다.
안 그래도 귀족이나 왕족과 같은 기득권층과 권력을 두고 기 싸움을 하는 중일 텐데, 명분을 줘버리면 밀리는 건 한순간이다.
그럼에도 교회가 이 정도의 무리수를 던졌다는 건 왕자가 이단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다는 거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연회장에 도착했다.
연회장 안에는 이미 왕을 비롯해 다른 가신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에리와 네리아, 오필리아도 마찬가지.
뭐야?
원래 이런 연회에는 왕이 가장 늦게 와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오라는 대로 왔을 뿐인데 왜 내가 지각쟁이가 된 거지?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일단 허리를 살짝 숙였다.
“이런, 귀한 분들을 모셔두고 시간을 맞추지 못했군요. 실례했습니다.”
“허허, 괜찮네. 어서 들어오게.”
국왕이 허허 웃으며 손짓했다.
저 양반 저거, 저번에 봤을 때는 살벌한 얼굴을 하더니 인제 와서 동네 할아버지처럼 구네.
나는 헛웃음을 지으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연회는 제국 사교회 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히 화려했다. 살짝 무리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
고작 방문했을 뿐인데 이 정도로 환대해준다고?
‘옛날에도 비슷하게 환대받았었나?’
슬쩍 일행들의 표정을 살폈다.
얼떨떨한 표정.
아니었던 모양이다.
연회에 사람이 다 모이자 국왕이 분위기를 잡으며 연설을 시작했다.
“근래 왕국 남부에서 베히모스라는 재앙을 맞이했었다네. 실로 절망적인 재앙이었지. 괴멸적인 피해는 피할 수 없어 보였어. 하지만 실상은 어떤가? 용맹한 용사들이 베히모스를 무찔렀지. 피해라고 할 건 거의 없었어.”
피해가 거의 없었다라…
나는 전장에 남겨진 시체와 피의 강을 떠올렸다. 시민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 생을 마감한 경비병과 병사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없다고 보기엔 조금 많은데…’
하긴 최악의 경우, 왕국 남부가 초토화되는 상황까지 가정했을 테니 상대적으로 보면 적은 게 맞다.
사상자를 숫자로만 들으면 별 감흥이 안 드는 것도 사실이고.
“우리 프로나 왕국의 용사는 베히모스의 마수로부터 로버튼을 구해냈지. 도시에서는 로버튼의 영웅이라고 불린다고 하더군.”
연회장에 자리한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나와 일행들에게 몰렸다.
이윽고 그 모든 사람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한동안 이어진 박수 세례는 국왕이 손을 드는 것으로 끝을 맞이했다.
국왕이 잔을 들어 올렸고 그를 따라 다 함께 잔을 들어 올렸다.
프로나 왕국을 위하여!
연회가 시작되었다.
나는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먹으려 이동하려 했는데, 실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