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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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합
“김밥천국?”
“천국이라면 엘리시온을 말하는 건가?”
이전에 자신이 살던 곳이라면 이름만 언급해도 바로 알 수 있을 정도의 내용이지만 불행히도 이곳의 사람들은 저 단어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형진은 그런 이들을 위해 간단한 설명을 덧붙였다.
“이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식당입니다. 누구나 쉽게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을 정도로 저렴하며, 또한 희망과 생명의 사제만이 부여할 수 있는 강력한 생명력이 부여된 음식을 제공하는 그런 곳이죠.”
“식당이라고요? 저희들보고 식당을 운영하라는 말씀이십니까?”
최고 사제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껏 먹을 것을 가지고 돈을 벌어보겠다는 식의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탓이다. 과거 유아나 하마란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에게 있어 음식은 그저 생명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요소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쪼들리는 살림에 음식을 가지고 사치를 부릴 만한 여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렇습니다. 혹시 여러분께서는 뛰어난 실력의 요리사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음식이 어떤 효과를 지니고 있는지 들어본 적이 계십니까?”
“글쎄요. 잘은…”
“요리사가 일정 경지에 도달하면 요리를 통해 신체 능력을 향상시키는 여러 가지 버프를 부여할 수가 있게 됩니다. 이러한 경지는 낮은 순서대로 숙련, 전문, 장인, 명장, 달인으로 구분되지요. 숙련 단계에서는 1가지 버프 효과만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나 만약 음식을 조리하기 전 식재료를 다듬는 과정에서 사제가 신성력을 부여하고, 그것을 숙련 이상의 경지에 오른 요리사가 조리하게 되면 1가지 버프 효과 외에 기본적으로 생명력 회복 증가와 최대 정신력 증가의 버프 효과가 추가됩니다. 즉, 여러분과 같은 사제가 요리에 참여하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장인 수준의 요리사가 만든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얘깁니다.”
“아… 그런 일이…”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최고 사제 하나가 형진에게 물었다.
“그럼, 방금 전에 밝히신 한 달 수입도 그런 식으로 얻으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현재 저의 경지는 장인입니다. 같은 요리라도 누가 만들었느냐에 따라 단순히 공복감을 채워주는 것에서 머무는 것을 넘어 영혼을 살찌우고 정신을 풍요롭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지요. 장인 경지에서 부여할 수 있는 버프의 숫자는 모두 셋. 여기에 앞서 말씀드렸던 신성력 부여의 효과까지 가미하면 다섯 가지가 됩니다. 일반적인 숙련 요리사가 하나의 요리로 부여할 수 있는 버프 효과가 한 가지인 점을 고려하면, 이것의 희소가치가 얼마나 클지는 아마 어렵지 않게 추측이 가능하실 겁니다.”
“아…”
단순 계산으로도 이미 다섯 배 가치이고, 희소성을 고려하면 그 가치는 더욱 증폭된다. 이문에 밝지 못한 최고 사제들도 한 달에 금화 백 개라는 수입이 절대로 터무니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 정도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여기에는 한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합니다. 요리를 하게 될 사제분들의 능력이 최소한 숙련 단계에 접어들어야 한다는 점이지요. 하지만 이것은 절대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아무런 특별한 보정 효과를 받지 않은 보통의 요리사들은 숙련 단계에 접어드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낙인을 받지 않은 보통 사람이 신성력을 깨달아 회복을 구현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무용지물이 아닙니까. 따로 대책이 있으십니까?”
“물론입니다. 그 정도도 생각지 않고 이런 사업 제안을 할 이유가 없죠. 해결 방법은 간단합니다. 바로 이 회합장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이곳을 말입니까?”
“네. 앞서도 말했지만, 이 회합장은 앞으로 사제 여러분들에게 상시 개방 형태로 제공될 것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요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제분들과 마주하며 그들에게 제가 지닌 노하우와 능력을 전수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열의와 노력이 갖추어져 있다면, 숙련 단계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이 공간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시연하는 것이 될 수도 있겠지요.”
“오! 그런 방법이!”
활용하기에 따라서는 어쩌면 희망과 생명의 신도들에게 있어 가장 강력한 수단이 될 수도 있는 것이 바로 이 회합장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서로가 가진 의견이나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이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한 정보망과 집단 지성의 탄생을 예고하는 일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형진의 요리 강좌는 바로 그 가능성을 시험하는 첫 번째 시도가 되는 셈이다.
또한 형진은 이러한 일종의 프렌차이즈 사업에 추가하여 신전의 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한 가지 방법을 더 떠올리고 있었지만, 그것은 따로 다른 곳과 협의가 필요한 내용이라 확정되기 전까지는 잠시 공개를 보류할 필요가 있다. 먼저 말해놓고 성사되지 않으면 공수표를 남발하는 일이 되어 버리니 어쩔 수 없다.
“첫 번째 회합이니만큼, 이번에는 이 정도만 해두겠습니다. 갑자기 너무 많은 것을 바꾸고자 해도 감당하기 어려우실 테니까요. 따로 제가 공지를 하겠습니다만, 최고 사제 여러분들께서도 각자가 관할하고 계신 신전의 사제 여러분께 오늘 있었던 일을 충분히 설명하여 앞으로의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만전을 기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조금 상기된 표정으로 일제히 대답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모이를 달라고 아우성치는 병아리들이 연상되어 자신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배어 나온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숙제를 하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숙제… 라면?”
“간단합니다. 최근 일 년 동안 각 신전의 수입과 지출 내역을 정리하여 보고하십시오. 최대한 세세하게 부탁드립니다. 그래야 저도 예산을 짜고 그에 맞게 계획을 짤 수 있을 테니까요.”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또한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저에게 요리를 배울 인원들의 명단 또한 보고해주셨으면 합니다. 각 신전별로 최소 세 명 이상이 필요합니다. 세 명을 넘어가는 건 상관이 없지만, 그보다 부족한 것은 곤란합니다. 이해하셨습니까.”
“네!”
“좋습니다. 그럼 오늘의 회합은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참여해 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많은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 말을 끝으로 형진이 고개 숙여 인사하자, 최고 사제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 뜻으로 그를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 박수 소리를 들으며, 형진은 유아와 함께 회합장을 빠져 나왔다.
“후아…”
눈을 뜨자 가장 보인 것은 탄성인지 심호흡인지 모를 소리를 내고 있는 유아 모습이었고, 뒤이어 그리칸의 최고 사제 또한 깊게 숨을 몰아쉬며 기도로부터 깨어났다. 형진은 그런 두 사람이 눈을 뜨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즐겁게 바라보았다.
“죄송합니다. 미처 대리자이신 것을 믿지 못하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당황했던 기분이 조금 정리되었는지, 최고 사제는 유아에게 했던 것처럼 형진에게도 예를 취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곳은 유아에게 있어 친정과도 같은 곳. 마누라가 예쁘면 처갓집 말뚝에 대고 절을 한다는 얘기도 있지 않습니까.”
“쿡! 그럴 듯 하군요.”
유아는 그제서야 최고 사제 앞에서 형진과 다정하게 껴안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얼른 몸을 빼려했지만, 단단하게 허리를 감고 있는 그의 손으로부터 벗어날 방법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저나 유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당분간 함구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미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여신을 대리하는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큰 파급력이 있고, 그것은 신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들의 위치가 공개되면 그것만으로도 꽤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으니 이 점 유념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신전 식구들에게도 단단히 일러두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몇 가지 사안에 대해 좀 더 얘기를 나누고, 형진과 유아는 신전을 빠져 나왔다. 유아는 너무 많은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자 정신이 없는 모양이다.
“나온 김에 옷가게도 잠시 들렸다 가자.”
“옷가게요?”
“전에 입었던 그 야시시한 속옷 있지? 그런 거 몇 벌 더 사야겠어.”
“헉!”
당황해 하는 유아의 모습을 즐기며 형진은 그리칸 지부장 기젤의 옷가게로 들어섰다.
“어서 오십시오. 그렇지 않아도 도착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오자마자 뵈었어야 하는데 여러 가지 일이 겹치다보니 늦었습니다. 그리고, 도시락 용기의 수매 때문에 크게 폐를 끼쳤습니다. 늦게나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폐라고 할 것 까지야 있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자,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지요.”
자리에 앉자 기젤은 티세트를 가져와 차를 타며 말했다.
“인사 때문에 오신 것 같지는 않고, 오늘은 어쩐 일이십니까.”
용건을 묻는 기젤의 말에 형진은 옆에 앉은 유아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 녀석이 입을 옷을 좀 살까 하고요. 기왕이면 아주 요염한 분위기가 나는 속옷이나 잠옷이면 좋겠습니다.”
“헉! 농담 아니었어요?”
“물론. 내가 언제 이런 거 가지고 농담하는 거 봤어?”
기젤은 두 사람의 분위기에서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를 바로 알아보았는지 잔잔하게 웃더니, 손뼉을 쳐서 여급들을 불러다 유아를 맡겼다.
당황한 유아가 여급들에게 끌려가자 형진은 금화 하나를 꺼내 기젤에게 내밀었다.
“이건…”
“이번에 도시락 용기를 수매하는데 들어간 비용과 그것에 대한 수고비, 그리고 오늘 유아가 사갈 옷값입니다.”
그 말을 들은 기젤은 사양하지 않고 금화를 집어 품에 넣고는 다시 말했다.
“뭔가 달리 부탁하실 일이 있으신 모양이군요.”
“정확히는 공포와 죽음께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 것이지만요.”
“말씀해 주십시오. 성도의 뜻을 공포와 죽음께 전하는 일은 저의 의무이기도 하니까요.”
형진은 먼저 기젤이 타준 차로 입술을 축였다.
“제가 공포와 죽음께 건의하고 싶은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가장 먼저 꺼낸 얘기는 바로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에 대한 호위 임무를 집행자들의 임무에 추가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바로 두 번째 건의 사항이다.
“아시다시피, 집행자들의 임무 목록 가운데 암살 임무를 제외한 물자 관련 임무들은 상당히 인기가 없는 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임무는 한 달 넘게 방치되다가 그냥 포기되어 버리는 경우도 허다할 정도니까요.”
그렇다. 형진이 이따금씩 이런 물자 조달 의뢰들을 쓸어 담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그조차도 물자 운송 같은 임무는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게다가 지역별로 생산되는 물품에 차이가 있는 관계로 시장에서 물건을 사서 해결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의뢰도 상당히 많은 편이다.
“그래서 말입니다만, 암살 관련 임무를 제외한 물자 관련 임무들을 희망과 생명 쪽에 공유하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네?”
지부장 기젤은 난 데 없는 형진의 제안에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무 갑작스런 말씀이라 당황스럽군요. 희망과 생명이라니요?”
형진은 그런 기젤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이건 비밀입니다만, 실은 제가 오늘부터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가 되었습니다. 정확히는 여신을 대리해 교단을 관리하는 권한을 얻었지요.”
“헉!”
“아, 물론 이것은 공포와 죽음께서 허락하신 일입니다. 아니, 처음부터 그분의 안배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그럴 수가!”
형진이 희망과 생명의 사제인 유아를 데리고 다니는 거야 익히 알고 있었고, 때문에 호구신의 신전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인 것은 기젤도 익히 알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 치더라도 아예 호구신을 대리하는 권한까지 얻게 될 거라고 누가 감히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알겠습니다. 바로 보고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형진이 신전의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마련한 두 가지 방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프렌차이즈를 내는 것은 요리사에 대한 교육이나 기타 여러 가지로 준비할 것이 많지만, 이것은 공포와 죽음께서 허락하는 즉시 효과를 볼 수 있는 일이다.
물론 물자 관련 의뢰의 목적을 생각해보면 집행자가 된지 얼마 되지 않는 하급 성도의 일거리를 빼앗는 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 임무의 수행률을 생각해보면 물자 임무들은 사실상 집행자들에게 버려지다시피 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반면 이번 도시락 용기 사건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희망과 생명의 신도들은 이 정도 일이라도 감지덕지할 정도다. 만약 그들이 덤벼든다면 현재 방기되어 있는 물자 관련 임무들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을뿐더러,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집행자들은 이런 의뢰들을 더 많이 쏟아내게 될 것이다. 집행자들은 귀찮은 일들을 떠넘길 수 있어서 좋고, 호구신의 식솔들은 그렇게라도 배부르고 따스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되니 좋고.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물론 이 임무들이 암살에 필요한 물자를 수급하는 일들이라는 건 희망과 생명의 신도들에게는 비밀로 해야겠지만 말이다.
기젤은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한 표정으로 가만히 앉아 있다가, 마침내 눈을 뜨고 형진에게 말했다.
“공포와 죽음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다만 이것을 적용하는 데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니 잠시 기다려 달라는 말씀이 계셨습니다.”
역시 멋쟁이다. 이래서 좋아한다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