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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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가공 수련
큰 일 하나가 비로소 마무리된 느낌. 내심 거절당하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했던 물자 관련 의뢰에 대한 건이 무사히 통과되었으니 이제는 희망과 생명의 신도들에게 오늘 결정된 사안에 대한 공지를 날릴 차례다.
회합 중에 있었던 내용을 문건으로 정리하고, 추가로 물자 관련 의뢰에 대한 내용을 관리자 메뉴를 통해 기재하고 있는데, 유아가 우물쭈물하며 뭔가 보퉁이를 양손가득 들고 나타난다.
“음? 벌써 다 골랐어?”
“그게…”
“시착도 좀 해보고 그러지. 나도 좀 보게.”
“무, 무, 무슨… 여, 여, 여기에서 어떻게 그래요.”
구경하게 시착 좀 해보라는 형진의 말에 유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물든 채 어쩔 줄 몰라 했고, 뒤따라 나오던 여급들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억지로 모르는 척 하느라 고생이다.
“마침 수도에서 최신 유행의 메이드복이 다량 입하되었는데, 그것도 좀 살펴보시지요.”
“아! 메이드복. 그거 좋군요. 뭐해? 가서 입어봐. 나도 좀 보게.”
“…”
유아는 울상을 지었지만, 이내 키득거리는 여급들에 의해 다시 안으로 끌려들어 가고 말았다. 그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던 형진은 깜빡 잊고 있던 인물 하나를 떠올렸다.
“아, 이번에 수도에서 새로운 메이드를 둘 구했습니다. 그 녀석들도 조만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새로운 메이드라… 진님의 안목이라면 필시 보통은 아니겠군요.”
“네. 너무 독특하다는 것이 좀 문제이긴 합니다만.”
“호오. 어떤 분들이시기에?”
“한 명은 가사의 요정인 브라우니입니다. 혼자서 열 명 몫의 일을 해내는 살림꾼이지요. 또 한 명도 혼자서 열 명 몫이긴 한데, 힘만 그렇고 손재주는 눈곱만큼도 없습니다. 신성 폭력배거든요.”
“허어.”
기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희망과 생명의 사제인 유아도 솔직히 메이드로서는 보기 드문 경우인데, 여기에 브라우니와 신성 폭력배라니.
“거참… 취향이 독특하신 것은 알았습니다만, 이렇게 다양하기까지 하실 줄은 미처 몰랐습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론 신성 폭력배 역시 공포와 죽음께서 허락하신 일이니 크게 걱정 않으셔도 됩니다. 참고로 현재 배교자 신분이니 지부장께서도 유념해주십시오.”
“배교자라. 알겠습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이미 허락하신 일에 대해 제가 무슨 꼬투리를 잡겠습니까. 허허.”
“그렇게 되나요. 하하하.”
곧바로 유아의 메이드복 패션쇼가 시작되었다. 형진이 보기엔 거기서 거기인 것 같았지만, 개중에는 일상적인 메이드복이라고는 보기 어려운 야시시한 느낌의 옷도 있는데다, 어차피 미리 지불한 옷값도 상당한 터라 그냥 다 사버렸다. 더불어 유아가 마음에 들어 하는 드레스와 형진의 정장도 몇 벌 추가하고 나니 사들인 옷이 산더미처럼 쌓여 버렸다.
패션쇼를 관람하며 공지를 작성하여 발송하는 일까지 마치고 난 형진은 충동구매가 이래서 무섭구나 하는 생각마저 떠올리고 있었다.
“이거 너무 많이 산거 아닌가 싶네요.”
“선불로 치르신 값이 워낙 많아서 말이죠. 나머지는 새로 들이신 메이드 분들의 몫으로 해두죠.”
“하하, 알겠습니다.”
“두 분이 들고 가시기에는 벅찰 것 같으니 배달을 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시면 저로서야 감사할 따름이죠.”
메이드복을 입어볼 때는 울상이더니, 제대로 된 파티 드레스를 장만한 덕분인지 유아는 다시 들뜬 표정마저 지은 채 형진의 팔에 꼭 안겨서 가게를 나왔다.
“바로 돌아가실 건가요?”
“아니. 이번에는 미엘님을 찾아가 봐야 할 것 같아.”
“미, 미엘님이요?”
미엘의 이름이 언급되자 유아는 금새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아침에 크루그가 말했던 방음 결계의 일을 떠올렸나 보다. 이 엉큼한 메이드 같으니.
“킥. 물론 그것도 있지만, 다른 용무도 있어서야. 도시락 용기라든가 대미궁이라든가.”
“아하. 그, 그랬군요. 아하하…”
어색하게 웃으며 딴청을 부리는 유아의 모습에 키득거리며 형진은 제랄딘의 저택으로 향했다.
“어떻게, 도시락 용기의 건은 잘 해결이 되었나요?”
“네. 염려해주신 덕분에 잘 해결이 되었습니다.”
먼저 제랄딘과 인사를 나눈 형진은 미엘에게 용건을 말했다.
“혹시 커다란 방 하나 정도를 감당할 만한 방음 결계를 구할 수 있겠습니까? 필요할 때 끄고 켤 수 있는 것으로.”
미엘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물론이에요. 그런 식의 방음 결계는 귀족이나 상인들에게서도 수요가 꽤 많기 때문에 제가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습니다. 어느 정도 크기의 것을 원하시죠?”
“음… 너무 클 필요는 없고, 이 정도 크기의 방을 감당할 정도면 되겠군요.”
“그런 것이라면 하나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곧바로 미엘은 인벤토리에서 작은 루비 장식이 달린 반지 하나를 꺼냈다.
“귀족이나 상인들이 마차나 밀실 같은 곳에서 회담 같은 것을 할 때 사용하기 위해 많이 쓰는 휴대형 방음 결계입니다. 벽과 천장으로 막힌 공간을 자동으로 인식해서 그 안의 소리를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만들어 줍니다. 도청이나 녹취를 막는 효과까지 있어서 꽤 쓸 만할 겁니다.”
“오, 대단하군요.”
녹취라는 말에 형진은 이전에 있었던 일 하나를 떠올렸지만, 이내 머리속에서 지워버렸다. 굳이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런 옛날 일을 떠올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격은 어느 정도죠?”
성능에 만족한 형진의 물음에 미엘은 씩 웃었다.
“원래는 제법 비싸지만, 일단은 선물 정도로 해두죠. 늦었습니다만, 축하드립니다.”
“하, 하하…”
역시 나이는 어디 안 가는지, 형진과 유아의 바뀐 분위기를 대번에 알아챈 모양이다. 제랄딘은 갑자기 뭘 축하하는 건지 몰라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부끄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유아의 모습과 방음 결계의 용도를 연관 짓는 순간 두 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음을 알아차렸다.
“저도 축하드려요.”
“크흠. 감사합니다.”
제랄딘까지 정색을 하고 축하 인사를 건네자 천하의 형진도 어쩐지 쑥스러운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괜히 헛기침을 하던 형진은 제랄딘과 미엘의 눈이 점점 반달로 변해 가는 것을 보고는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던지 말을 돌렸다. 둘 다 남자에 딱히 관심이 없는 여자들이지만, 남의 연애사에 대한 흥미까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과는 관계없는 일이기에 더욱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도시락 용기에 새길 룬에 대한 것을 알고 싶습니다.”
“아… 그거요. 그런데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작업 자체는 단순하지만 백만 개나 되는 걸 다 작업하려면 만만치 않으실 텐데.”
“확인해 보니 납품 안 된 물량도 그 두 배는 있다더군요.”
“헉. 그럼 삼백만 개?”
“그나마도 최소한으로 잡은 겁니다.”
제랄딘도 미엘도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질러 버린 희망과 생명 교단의 저력에 감탄했다.
“역시 사람을 따로 구해보는 것이.”
제랄딘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말했지만,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이번 기회에 가공 분야도 경지를 높여 볼 생각이니 마침 잘 되었다 생각하던 참입니다.”
“가공을요?”
“네. 사실 이런 공예 분야에도 요리와 같은 경지가 존재합니다.”
“아… 그렇군요. 미처 몰랐습니다.”
어쩔 수 없다. 가공은 경지가 올라도 요리처럼 버프 효과 같은 것이 바로 나타나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것은 어디까지나 숙련까지의 얘기고, 특화와 심화라는 개념이 나타나는 전문 단계부터는 얘기가 달라진다.
이전까지는 무엇을 가공하든 동일한 경험치를 얻고 동일한 숙련도 보정을 받았던 것에 비해, 특화와 심화를 통해 하나의 분야를 선택하게 되면 그 분야의 숙련도 상승이 빨라지고 더불어 각 분야에 걸맞은 효과가 작품에 부여된다.
과거 엘리시온에서 형진이 선택한 특화 분야는 바로 석재 가공. 이것을 통해 그는 명장에 도달했고, 인스턴트 킬을 발견한 것 역시 석재를 가공하던 중에 벌어진 일이다.
특화와 심화는 동시에 여러 분야를 선택하는 것도 가능하다. 다만 이 경우에는 하나의 특화 분야를 선택하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숙련도 획득에 있어서 패널티가 부여된다. 때문에 보통 하나의 분야를 최대 숙련도까지 찍고 난 뒤에 다른 분야에 도전하는데, 만약 하나라도 특화 분야에서 명장을 찍게 되면 이후에 선택한 특화 분야에 적용되는 숙련도 패널티가 50퍼센트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이런 식으로 패널티가 감소되더라도, 실질적으로 모든 패널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므로, 보통 가공에서 선택할 수 있는 특화 분야는 세 가지 정도가 한계라는 것이 통설이고, 명장을 찍을 경우에 한해 다섯 개 까지 가능하다고 여겨진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엘리시온의 얘기고 이곳에서는 어떤 식으로 적용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도시락 용기에 룬을 새기는 것이 단순히 목재 가공으로 분류되는지조차도 현재로는 알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문제다.
목재 가공이라고는 하지만 이것도 활용되는 범위는 엄청나게 많다. 단순히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도구부터 시작해서, 집안에 들여놓을 가구나 운송 수단인 마차와 배, 그리고 각종 공성 병기나 간이 성채의 제작에 이르기까지 그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형진이 현재 흥미를 느끼고 있는 것은 장비 제작 분야이다. 특히나 강화 때문에 내구도가 터무니없이 낮아진 트렌치코트를 수리하는 것이 당면한 과제인데, 이것이 단순히 특화 분야에 상관없이 장인에만 올라서면 되는 것인지도 아직 형진은 알지 못한다. 또한 만약 그렇더라도 특화 분야에 해당하는 장비를 수리할 경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효율이나 효과 면에서 뭔가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이미 장인 단계에 오른 자가 있어 그들의 노하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자들이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설령 있더라도 간단하게 대답해 줄만한 사안이 아니다. 요리든 가공이든, 이런 것들은 흔히 가문의 비법 같은 느낌으로 비밀리에 전승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설마 이것도 요리처럼 최고의 경지를 노리시는 건가요?”
제랄딘의 말에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시작하지 않으면 몰라도 이왕 시작했다면 끝을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허…”
요리만으로도 이미 일개인으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수준에 올랐건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분야까지 노리다니. 만약 진이 다른 보통 사람 같았다면 그냥 하던 거나 제대로 하라고 핀잔을 주었으리라. 하지만 이미 그 말도 안 되는 경지에 올라서서 사람을 들었다 놨다 하는 요리를 마구 만들어내는 모습을 본 제랄딘은 오히려 이 남자가 과연 그렇게 높아진 경지로 무엇을 만들어낼까 하는 기대를 먼저 떠올리고 있었다.
“음? 잠시만요.”
그렇게 대화를 나누며 미엘에게서 룬을 새기는 방법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던 형진은 문득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한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한 뒤 그것을 확인했다.
[공포와 죽음께서 진님의 건의를 받아들여 의뢰 목록에 ‘호구신의 사제 호위’ 임무가 추가되었습니다. 이 호위 임무는 오직 호구신의 사제를 호위하는 일에만 한정되며, 각 신전의 최고 사제에 의해 의뢰가 가능합니다.] [‘호구신의 사제 호위’ 임무가 하나 완수될 때마다, 제안자인 진님에게 공헌도와 의뢰비의 10퍼센트가 인센티브로 주어집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진님의 건의를 받아들여 ‘물자 조달’과 ‘물자 운송’ 임무가 호구신의 사제들에게도 공유됩니다. 단, 이렇게 공유되는 임무들은 의뢰 등록 후 하루가 지나도 집행자들에 의해 수락되지 않은 경우에 한합니다.] [호구신의 사제들에 의해 ‘물자 조달’과 ‘물자 운송’ 의뢰가 완수될 때마다, 제안자인 진님에게 공헌도와 의뢰비의 10퍼센트가 인센티브로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