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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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출발
형진이 메시지를 전달하자 대기 중이던 다른 이들이 다가온다. 메시지를 확인할 수 없는 유아는 갑자기 형진이 뛰쳐나가자 안절부절 못하다가 아무런 탈이 없는 것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 모습을 본 형진은 역시 좀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함께 행동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상태를 확인할 수 있어야 힐러인 유아의 효율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누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야 적절한 행동을 취하기 어려운 것이 당연하다.
관리자 메뉴에 그런 그능을 설정하는 것이 있었던가. 일단 돌아가서 간이형 메신저 같은 거라도 구현할 수 있는지 확인해 봐야겠다. 다른 이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까지는 어렵더라도, 최소한 형진이 보는 메시지만이라도 유아에게 공유가 가능하다면 훨씬 의사소통이 편리해질 것이다.
형진은 임프가 떨어뜨린 두 개의 룻을 획득하고는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이템정보
명칭 : 약삭빠른 임프의 날개 머리핀
등급 : 희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약삭빠른 임프의 날개로 장식한 머리핀. 곰손이 쓰면 딱 좋다.
효과 : 손재주 증가, 매력 증가.
강화시 효과 : 손재주 증가.
“풉!”
형진은 설명을 읽다가 자신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곰손이 쓰면 딱 좋다는 말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곰손 치유 보다는 뛰어난 손재주를 지닌 생활러에게 아주 유용한 아이템이 아닐 수 없다. 매력 증가야 그렇다 치더라도 손재주 증가 옵션을 지닌 아이템은 형진으로서도 처음 본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대미궁에서 사냥을 해야 할 필요가 생긴 셈.
게다가 이곳은 다른 일반적인 지형과는 달리 리스폰까지 되는 던전. 형진은 이 장소를 기억해 두기로 했다. 정확히 리스폰이 어느 정도의 주기로 이루어지는지는 확인해 봐야겠지만. 입구에서도 상당히 가까우니 자주 들러봐야 할 것 같다.
“진님?”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냥 재채기가 좀 나와서…”
“…”
재채기를 참는 소리와도 비슷했기 때문에 제랄딘은 그런가보다 하고 임프의 사체 흔적을 뒤적였다. 하지만 그녀가 날려버린 임프들은 너무 강력한 위력에 형체조차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박살나 버렸다. 둔탱이 유아는 자신의 발치 옆에 떨어진 것이 임프의 잔해인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별 거 없네요. 원래 이런가요?”
“네. 연금술사 중에는 피를 뽑아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가격도 얼마 안 하고 보관도 어려워서 초보 모험가들이 용돈벌이 정도로 채취하는 경우 외엔 그다지 쓸모가 없습니다. 예전에 임프한테서 뭔가 액세서리 종류를 얻었다는 얘기가 있긴 했는데, 누군가 떨군 것을 주워서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귀스트가 언급한 액세서리가 바로 이 머리핀이 아닐까 싶다. 하기야 희귀급 정도의 드랍율이라면 어쩌다 한 번 드랍 되어도 임프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그럼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네.”
조금 더 진행하자 지도에 함정이라도 표시된 장소가 나타났다. 형진이 살펴보니, 아주 초보적인 함정 하나가 머리 위에 도사리고 있다. 이른바 벼락틀. 아래쪽의 반짝이는 무언가에 현혹되어 받침대를 건드리면 머리 위에 장치되어 있던 틀이 쏟아져 내리는 함정이다.
“잠시만요.”
형진은 벼락틀을 확인하자, 위험 범위를 확인하고는 멀리서 갈고리 팔찌를 이용해 함정을 작동시켰다.
쩌적! 콰가각!
그러자 천장의 일부분이 그대로 지면을 향해 떨어진다. 마치 종유석과 같은 것이 뾰족하게 솟아나 있는데다 무게만도 상당해서 제대로 걸렸다면 치명상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쩍하고 갈라지며 떨어지는 소리가 문자 그대로 벼락이 떨어지는 소리를 방불케 한다.
“힉!”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는 유아의 손을 옆에서 미엘이 꼭 잡아주는 모습이 보인다. 겉모습으로는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미엘님,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형진은 미엘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뒤 하마란을 돌아보았다.
“좀 치워봐.”
“…”
하마란은 형진의 지시에 잠시 눈살을 찌푸렸지만 이내 발로 부서진 천장의 잔해를 툭툭 발로 차내 길을 열었다. 뭔가 상당히 무성의한 모습. 아무래도 앞서 임프와의 전투에 참가하지 못한 것이 불만인 모양이다.
벼락틀이 있던 장소를 조금 더 진행하자 갈림길이 나왔다.
“이번에는 이쪽으로 가보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만.”
형진의 말에 오귀스트는 주위를 돌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상관없습니다. 새로운 지역을 탐사하는 것도 좋은 일이니까요.”
“상관없어요. 진님이 원하는 대로 하세요.”
“저도요.”
“그, 그게… 저도.”
오귀스트의 뒤를 이어 제랄딘과 미엘이 별 문제 없다는 듯이 바로 수긍하자 뒤따라서 유아가 얼른 동의한다. 하마란도 뭔가 말하려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입을 닫고 고개만 끄덕인다. 버릇없는 메이드 같으니, 주인이 물어보는데 어디 고개만 까딱거리나. 아무래도 날 잡아서 좀 더 버릇을 가르쳐 주던가 해야겠다.
“그럼 다시 진행하겠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미궁의 진행은 상당히 순조로웠다. 너무 순조로워서 살짝 지루하기까지 할 정도다. 하기야 거의 맵핵 수준으로 주위를 탐색할 수 있는 형진이 트래커 역할을 맡았고,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인스턴트 킬이 아니더라도 일격에 쓰러뜨릴 수 있는 일행들이 즐비한 데다, 즉사만 아니면 어지간한 상처는 바로 회복시킬 수 있는 신녀까지 대동했으니 긴장감이 부족해지는 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응? 이건?”
형진은 좀 더 진행하다가 익숙한 냄새 하나를 발견하고는 정신이 확 들었다.
“왜요?”
뒤따르던 제랄딘의 물음에 형진은 돌아보며 대답했다.
“동굴곰입니다.”
“…”
아직 예전에 잡은 동굴곰 고기를 다 먹지도 못했는데, 여기서 마침 새로운 녀석을 발견했다. 형진의 말을 들은 일행들은 자신도 모르게 동굴곰 고기의 맛을 떠올리고는 군침을 꼴깍 삼키고 말았다.
“아무래도 외부에서 들어온 놈인 것 같습니다. 동굴곰은 던전에서 리스폰 되는 몬스터가 아니니까요.”
“운이 좋네요. 얼른 잡죠.”
동굴곰도 만만치 않은 야수건만, 유아를 제외하면 역시나 긴장하는 기색을 보이는 이들이 아무도 없다. 그저 어서 동굴곰을 잡아먹을 생각에 군침만 삼키고 있을 뿐이다.
형진으로서도 잘 된 일이다. 조만간 가공 장인을 찍을 때가 되어가는 터라 내구도를 복구할 트렌치코트가 필요하던 참이니까.
조심스럽게 진행하던 형진은 동굴곰이 내는 숨소리가 가늘고 고르게 이어지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겨울잠을 자고 있는 모양이다.
개구리 같은 동물과는 달리, 곰 종류는 겨울잠이라고 해도 완전히 푹 잠들지 않는다. 꾸벅꾸벅 졸다가 깨어나면 저장해 두었던 견과류 같은 것을 까먹는 식이다.
[은신처인 모양입니다. 이전에 반지가 숨겨져 있던 곳과 비슷한 형태입니다.]이 동굴곰은 아무래도 미궁 안에서 사람들이 자꾸 들락거리는 것이 짜증스러웠던 모양이다. 아예 자신의 은신처를 막아버린 채 틀어박혀 있으니, 동굴곰의 이런 습성을 모르는 모험가들은 벽 너머에서 동굴곰이 꾸벅꾸벅 졸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지나쳤을 것이다.
[조금 물러나십시오.]형진이 앞으로 나서며 그렇게 말하자, 일행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형진이 이들을 물러나게 한 것은 자신이 인스턴트 킬을 쓰기 전에 다른 누군가가 동굴곰을 죽이는 참사를 막고자 함이다. 임프 같은 녀석이라면 몰라도 동굴곰은 절대로 양보할 수가 없다.
형진은 벽 너머에서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동굴곰의 위치를 확인한 뒤, 곧바로 환영의 반딧불을 발동해 공간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곧바로 동굴곰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리며 눈앞에 드러난 동굴곰의 약점을 찔렀다.
[인스턴트 킬! ‘동굴곰’이 죽었습니다!]동굴곰은 채 피할 틈도 없이 정확히 목 뒤의 약점을 찔린 채 숨을 거두어 버렸다. 녀석은 견과류로 쌓은 작은 동산 위에 엎드려 있었는데, 죽여 놓고 보니 이전에 잡았던 녀석보다 훨씬 작은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아무래도 올해 막 어미에게서 독립한 녀석이 아닐까 싶다.
형진은 일단 룻을 획득한 후, 입구를 막고 있는 벽을 뚫었다.
와르르.
벽이 무너지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유아의 모습이었다. 갑자기 눈앞에서 형진의 모습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크게 놀랐던 모양이다.
“미엘님,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이런 건 얼마든지 부탁하셔도 되요.”
하지만 유아가 놀랄 일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견과류 더미 위에 잠들어 있던 모습 그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죽어 있던 동굴곰이 미엘의 손짓 한 번에 확 사라져 버리는 모습 또한 유아로서는 놀랍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동굴곰을 시작으로 그들은 임프 무리 셋과 후크웜 무리 둘을 더 처치하며 전진을 계속했다.
“이 냄새는…”
슬슬 점심 때가 되어간다는 생각에 적당히 멈춰서서 쉴 곳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형진은 문득 어디선가 열기와 함께 특이한 냄새가 희미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깨달았다.
“왜요?”
조금 지루한 표정으로 뒤따르던 제랄딘은 뭔가 흥미로운 것이 발견되었나 싶었던지 얼른 형진에게 질문을 던진다.
“잠시만요.”
이 냄새를 어디서 맡아봤더라. 잠시 고민하던 형진은 이것이 달걀 썩는 냄새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다면?
“미엘님.”
“네.”
“저쪽으로 화염마법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어요.”
곧바로 미엘의 손 위에 불의 화살 하나가 생성되어 형진이 가리킨 방향을 향해 날아간다. 굳이 미엘에게 이런 일을 시킨 것은, 만에 하나라도 고여 있을지 모르는 유독 가스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지하에서 나올 수 있는 유독가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대부분 불을 사용해 확인하는 것이 가능하다. 특히 달걀 썩는 냄새의 원인이 되는 황화합물 가운데 유독성을 지닌 가스인 황화수소 역시 강한 폭발성을 지닌다.
하지만 화염 마법이 날아갔음에도 다행히 폭발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단 황화수소 같은 유독가스는 없는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기에 형진은 인벤토리에서 등불 하나를 꺼내 미엘의 도움으로 불을 붙이고 앞으로 나아갔다.
“와아…”
그런 그들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는 약간 흐린 느낌의 온천이었다. 흘러나오는 물의 양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서너명 정도가 둘러 앉아서 온천욕을 즐기기에는 충분한 면적이다.
“이런 곳에 온천이…”
“아쉽네요. 던전만 아니라면 꽤 즐거운 경험이 되었을 것 같은데.”
유아는 온천이란 것 자체를 처음 보는지 왜 이런 곳에서 뜨거운 물이 솟아나나 하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부유한 귀족 영애와 그녀를 모시는 시녀답게 제랄딘과 미엘은 안타까움 가득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흠…”
그런 세 여성의 모습을 지켜보던 형진은 일단 주위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미궁 한복판으로서 처음 들어왔던 입구로부터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었다. 조금 돌아오기는 했지만 대충 입구로부터 한나절 정도의 거리라고나 할까.
온천 자체는 미궁의 생성으로 인해 생겼다기보다는 원래부터 지하에 존재하던 것이 미궁의 성장에 의해 연결된 것으로 보인다. 온천이 있는 곳과 미궁의 통로 사이에는 작은 방과도 같은 공간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다. 아니, 이 정도면 꽤 쓸만할 것 같다.
“잠시만요. 유아, 이리와 봐.”
“지금요?”
“그래.”
형진은 온천이 있는 곳으로 들어가는 작은 방으로 유아를 데리고 가더니 가더니 관리자 메뉴를 열고는 명령 하나를 실행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이런 메시지가 나타난다.
[현재 위치에 성소를 설치합니다. 실행하시겠습니까? (Y/n)]“물론.”
그러자 작은 진동과 함께 작은 방의 내부 구조가 변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위에 열주가 들어서고 바닥으로부터 싱그러운 기운이 담긴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샘이 만들어진다. 햇살이 내리쬐는 꽃동산만 없을 뿐이지, 이전에 최고 사제 회합이 열렸던 장소와 그야말로 판박이다.
“이, 이건…”
주위의 공간이 변모하며 성스러운 분위기를 뿜어내는 공간이 순식간에 완성되자 일행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진은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결계를 활성화시키고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잠시 쉬었다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