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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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현현
“크윽!”
갑자기 밀려든 어둠에 놀랄 틈도 없이, 형진은 어디선가 쏟아져 들어오는 막대한 힘에 의해 크게 몸을 떨어야만 했다.
“아아아아…”
“아흐윽…”
변화는 형진에게만 찾아오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와 계약으로 통해 연결된 미엘과, 그녀의 또 다른 계약자인 제랄딘 역시 역류하는 힘에 경도되어 몸을 떨어야만 했다.
도대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하지만 놀란 것은 또한 그들만이 아니었다. 아니, 그들은 놀랄 틈도 없이 형진의 몸으로부터 폭발하듯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어둠 속에 묻혀 버렸고, 또한 그 순간 무아지경 속으로 빠져들어가 버렸다.
“뭐야? 무슨 일이야?”
“하늘이!”
“이건 도대체…”
“재앙이다! 신이 노하셨다!”
“으으…”
스트란드의 상공은 별빛 하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완전한 암흑으로 뒤덮여 버린다. 그것은 밤을 터전으로 살아가던 도시의 사람들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하늘을 뒤덮었던 어둠은 천천히 도시를 뒤덮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거대한 도시를 지배하는 백작가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들에 의해 제공된 거점에 숨어 암약의 기회를 노리고 있던 수배자들이나, 그들을 사냥하기 위해 와있던 집행자들까지도 절로 두려움이 느껴질 만한 모습이었다.
어둠. 그것은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을 일으키게 만드는 무언가. 더구나 그 이유를 알 수조차 없는 어둠이 갑자기 사방에서 쏟아져 들어온다. 누가 있어 섬짓한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일단 물러납니다.”
아무래도 자신들이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깨달은 오귀스트는 함께 움직이고 있던 크루그와 할에게 바로 그렇게 말했다.
“네? 하지만…”
“진님에게 먼저 연락을 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크루그와 할은 그렇게 대답했지만, 오귀스트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으로서는 연락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그것을 위해 저 안으로 뛰어들었다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진님과 제랄딘님은 충분히 현명한 분들이고, 또한 그분들 곁에는 미엘님이 있으니 별 문제는 없을 겁니다.”
요정의 문도 있고, 여차하면 미엘이 본신을 드러낼 수도 있으니 도망치는 것에는 문제가 없을 터. 그런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하면 오히려 위험한 것은 자신들 쪽이다.
오귀스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크루그는 아무래도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지 형진이 있으리라 생각되는 방향을 한 번 뒤돌아보다가 재촉하는 둘의 뒤를 따라 급히 스트란드 시내로부터 벗어났다.
그들처럼 빠른 판단으로 도시를 벗어난 이들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보이는 모든 곳의 빛이 완전히 사라져 버린, 그야말로 도시 전체에 암흑이 내려앉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자 그 안에 살고 있던 자들은 완전히 패닉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신이시여.”
“희망과 생명이시여. 저를 지켜 주십시오.”
그저 암흑이 내려앉았을 뿐이다. 그래서 조용히 자신의 집에 누워 잠이 든 사람들은 그런 현상이 일어났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당황한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 또한 빛처럼 순식간에 어둠 속에 먹혀 버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그래서 자신이라는 존재조차 인식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자,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저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앉아 이 끔찍한 악몽이 어서 지나가 버리기만을 자신이 섬기는 신에게 기원하는 것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그 현상을 일으킨 형진이나 그와 계약을 통해 영적으로 연결된 미엘과 제랄딘은 그런 주위의 상황을 인식할 수 없었다.
무아지경.
그들이 겪고 있는 것은 미스틱 링에 부여된 보호와 균형의 힘에 의해, 그들 셋이 각자 앞으로 지니게 될 힘을 감당할 수 있도록 신체가 지닌 그릇이 변화하는 과정이었다.
미엘은 명실상부한 최강의 환수. 마음만 먹으면 지형 자체를 순식간에 바꿔 버릴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힘을 지닌 존재다.
그런 존재의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만큼 큰 그릇을 가진 신체가 필요하다. 일반적인 인간의 능력으로는 그 힘을 온전히 받아들이려 들었다가는 감당하지 못하고 폭발해 버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미스틱 링은 그런 말도 안 되는 힘을 더욱더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즉, 자칫 그대로 효과를 적용받게 된다면, 환수 강령이 발동하는 순간 미스틱 링의 소유자는 그 육체가 갈기갈기 찢겨지며 폭발해 버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일반적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계약이란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주고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름의 안전 장치는 있는 셈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될 경우 모처럼 계약으로 묶여 있음에도 제대로 그 효과를 온전히 누릴 수 없다는 점.
지금 일어나는 현상은, 그런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스틱 링이 사용자가 지닌 그릇을 임의로 넓히는 과정인 셈이다.
물론 이것은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생물이 지닌 그릇이라는 것은 그렇게 간단하게 단숨에 늘어나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육체나 정신 어느 한쪽의 그릇만 단숨에 커지거나 하면 불균형을 견디지 못해 그 존재는 단숨에 붕괴의 과정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지금 벌어지는 일은 기적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일이다.
본래대로라면 이 과정은 형진에게만 일어나야 맞다.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미엘과 제랄딘 역시 그 효과를 일부나마 그대로 경험하고 있었다.
미엘은 이미 형진과 영혼의 반려로 묶인 상태.
제랄딘은 그런 미엘을 자매이며 또한 부모로 생각할 만큼 친밀한 관계이자 또한 계약자이기도 했다. 뿐인가. 제랄딘 역시 형진의 반려이다.
만약 형진이 이 모든 것을 자신 혼자 누리려 마음먹었다면 이러한 기적을 공유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반려들에게도 자신이 겪는 이 놀라운 기적이 함게 이루어지기를 원했고, 그 바람은 어김없이 미스틱 링을 통해 구현되었다.
그렇게 형진과 미엘, 그리고 제랄딘이 기적을 경험하고 있을 때, 스트란드 시내의 일부 지역에서는 또한 죽음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컥!”
반항하는 것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사방에 들어찬 어둠이 순식간에 살의로 변화하며 단숨에 치명적인 약점을 찔러 절명으로 인도해버렸기 때문이다.
형진은 무아지경에 빠지기 직전, 환수 강령을 실행하면서 수배자들과 그 동료들에 대한 척살을 생각했고, 그 의지는 지금 스트란드 전체를 뒤덮어 버린 암흑에 그대로 깃들어 버렸다. 그리고 마침내 형진이 완전한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자, 그 안에 깃들었던 의지는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사방에 들어찬 암흑을 스스로 움직여 형진이 떠올렸던 척살을 실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그렇게 죽어간 자들의 비명은 다른 이들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몸에서 뿜어진 피나, 차갑게 식어가는 시체의 기척 역시 다른 이들에게는 전해지지 않았다. 그저 모든 것을 뒤덮어버린 차가운 어둠 속에서, 마치 본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자들처럼 조용히 숨을 거두었고, 그와 동시에 떨어진 사념체들만 형진의 인벤토리로 스며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릇을 넓히는 일이 모두 끝나자 사방에 넓게 퍼졌던 암흑은 본래 그것이 있어야 할 곳으로 빠르게 모이며 스며들었다.
“아…”
“어둠이 사라진다.”
“다행… 으악! 시체다!”
“여기도 있어!”
“세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어둠이 사라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뜬 사람들이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들의 모습에 기겁을 할 즈음.
형진과 미엘, 그리고 제랄딘 역시 비로소 무아지경에서 깨어나 눈을 떴다.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들은 사방이 방금 전에 일어났던 암흑의 강림과 그것이 사라지고 난 뒤 나타난 시체들에 의해 소란스러워지자 비로소 화들짝 정신을 차렸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글쎄.”
하지만 황망한 와중에도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의 몸에 뭔가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뭐가 어떻게 바뀐 거냐고 물으면 딱히 대답하기가 곤란하지만, 이전과는 뭔가가 바뀐 것만은 분명했다.
“어라?”
“의뢰가… 전부 완료되었네요.”
“그러네.”
그들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은 정확히 그 내용을 알 수 없는 어떠한 변화만이 아니었다.
오늘 밤 처리하려 했던 의뢰들이 눈을 뜬 순간 전부 완료 상태로 바뀌어 있다. 도대체 그들이 정신을 잃고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그렇게 어리둥절해 하며 서로를 돌아보고 있는데, 문득 멀찍이서 몇몇이 빠른 속도로 그들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진다. 바로 오귀스트와 크루그, 그리고 할이다.
“무사하셨군요. 다행입니다.”
얼른 다가와 안도하는 표정으로 그렇게 말을 건네는 오귀스트의 모습에 형진은 제랄딘과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다.
“저… 죄송합니다만. 오귀스트님.”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
형진의 물음에 이번에는 오귀스트와 크루그, 그리고 할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설마, 기억이 나지 않으시는 겁니까?”
“그게… 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기는 한데.”
물론 그 일이 미스틱 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형진은 그것에 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견물생심. 아무리 돈독한 사이였다가도 물건이나 금전 때문에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는 흔히 있는 일이고, 그러한 일이 지금 자신들에게 똑같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더구나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상황에서라면, 그것은 더욱더 경계해야만 하는 일이다.
“실은…”
오귀스트는 자신이 보았던 일들을 형진에게 간단하게 설명했다. 갑자기 어둠이 대려와 스트란드 전체를 휘감아 버렸다는 것. 그리고 그 어둠 속에서 자신들이 오늘 처리하려 했던 자들이 모조리 죽음을 당했다는 것까지.
“…”
형진은 말없이 그 얘기를 들으며 인벤토리를 살폈다. 그리고 그 안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사념체들을 보고는 말문이 막혔다.
오귀스트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엄청난 힘을 또다시 손에 넣은 것이다. 미엘과의 계약과 그것을 통해 미스틱 링의 숨겨져 있던 힘이 개방되면서.
보호와 균형.
그것은 주정뱅이가 남긴 책자에는 이름만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구체적인 내용을 전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존재감이 사라져 버린 신이라는 의미. 이미 추종자가 사라져 버린 탓에 더 이상 이 세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조차 없게 되어버린 신이라는 의미인 것이다.
그러고 보니 미스틱 링에 그런 설명이 있었다. 본래 토끼를 이 세계에 불러들였던 신이 지니고 있었던 물건이라고 했던가.
그 물건이 환수인 미엘과 반응했다. 그렇다면 혹시, 보호와 균형은 본래 이 세계에 존재하는 환수들의 종주였던 것은 아닐까. 그러던 것이 보호와 균형이라는 신이 잊혀지게 되면서 환수들에 대한 지배력 또한 약해진 것이라면.
[미엘.] [네.] [나 뭔가 달라 보이지 않아?] [글쎄요.]혹시 토끼에게 그런 것처럼 미엘에게도 미스틱 링의 권위가 먹히지 않을까 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 정도 능력까지는 없는 건가. 어쩌면 거기까지는 효과가 개방되지 않은 것인지도.
“오늘은 일단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뭔가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르니 유아님에게 가서 확인을 받아보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거스트란 백작가가 이번 일에 어떤 형식으로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게 되었으나, 스트란드에 남아있던 수배자들이 일망타진 되었으니 생각이 있는 자라면 앞으로 함부로 움직이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사태는 형진의 생각보다 더 심각했다. 스트란드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른바 암흑의 밤이라고 불리게 되었고, 그 와중에 많은 이들이 죽음을 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며 스트란드로부터 도망쳤다.
한때 북부의 패자를 노릴 만큼 강대한 세력을 지니고 있던 거스트란 백작가는 이 일로 인해 그 위세가 급속하게 쪼그라들게 되지만, 그건 조금 더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