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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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침공
“오오오…”
뭔가 좀 달라진 것 같다. 고작해야 쏟아져 내리는 빛의 색깔만 달라지지는 않았을 테니. 아니나 다를까 잠시 기다리자 메시지가 나타난다.
[새롭게 업데이트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조정자가 엘리시온에 접속할 때, 함께 있는 인원들을 파티원으로 삼아 동시 접속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단, 이렇게 동시에 접속한 인원들은 조정자가 접속을 해제할 경우 함께 접속 해제됩니다.
-파티원들을 위한 공용 인벤토리가 제공됩니다. 공용 인벤토리는 개인적으로 인벤토리를 보유하지 않은 인물이 게임 내에서 물품을 습득했을 경우의 저장 공간으로 활용됩니다. 공용 인벤토리의 내용물은 접속 해제시 조정자의 인벤토리로 이동됩니다.
-새로운 서브 코어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임의로 설치된 서브 코어를 중심 코어와 연동시켜 업무 보조 등의 용도로 활용할 수 있게 됩니다. 기존에 설치된 서브 코어 역시 연동이 가능합니다.
-코어의 권역을 성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 경우, 지정된 성역에서의 공격 권한은 조정자에 의해 부여됩니다.
-거짓된 천국으로의 접속을 위한 대기실이 추가되었습니다.
“키야…”
기존에는 형진만이 일부 펫으로 지정 가능한 대상만 데리고 접속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여러 명의 파티원을 대동한 채 접속이 가능해졌다. 만약 이렇게 함께 접속하는 인원들 가운데 인벤토리가 없는 인물이 있을 경우 활용 가능한 공용 인벤토리가 추가되었으며, 이 공용 인벤토리의 내용물은 접속 해제시 형진의 인벤토리로 옮겨진다.
또한 지금까지 형진이 중심 코어의 권역 밖에 임의로 설치한 코어들을 중심 코어와 연동시켜 처음 계획했던 대로 업무 보조 등에 활용할 수 있게 되었으며, 특히 중심 코어의 권역은 성역으로 지정하여 다른 이들이 함부로 코어를 파괴하거나 탈취할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는 무조건 이곳 코어 중심부에 와야만 접속이 가능했으나, 이제는 전용의 접속 대기실에서 엘리시온으로의 접속이 가능해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형진 외에는 임의로 코어 중심부에 접근할 수 없게 되니 만약의 사태를 최소화할 수 있게 된다.
“대단하네요. 솔직히 이 정도로 신경 써 주실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역시 멋쟁이!”
형진이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했지만,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는다. 설마 아까 한 말 때문에 삐친 건가.
[아니거든?] “아, 예… 그러시군요.”가만있다가 이럴 때는 또 대답을 한다. 괜히 좋으면서 툴툴대는 그런 느낌의 신인 것 같아서 형진은 피식 웃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임무가 갱신되었습니다.] -대미궁의 중심부에서 허세와 망상의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제 그 거짓된 천국의 실체를 살펴보도록 하자.(완료!)-허세와 망상의 야욕을 분쇄해야만 한다. 주어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내부로부터 거짓된 천국을 장악하도록 하자.
“킥.”
이미 조정자에 총괄 지부장까지 되었으니 그냥 말로 전해도 될 텐데, 깨알 같이 잠시나마 잊고 있던 엘리시온 특제 튜토리얼까지 갱신해 주시는 공포와 죽음의 센스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다시금 웃음을 짓고 말았다.
“네, 네. 알겠습니다.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누구 명이신데.”
[대답은 한 번만 해.]
“예압!”
형진은 서둘러 기존에 설치했던 서브 코어들을 중심 코어에 연결시키고는 보안 관리자로 오귀스트를 임명했다.
“일단 돌아가 봐야겠네.”
섬으로 돌아가기가 무섭게 형진은 우선 제랄딘을 불러 그녀에게 코어를 업무 보조로 활용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이게 뭐죠?”
“업무 보조용 코어. 이걸 잘 활용하면 앞으로 일이 많이 편해질 거야. 뭐… 아직은 기본적인 사칙연산 정도밖에는 못할 테니 여러 가지로 가르쳐야겠지만.”
현재 중심 코어에 연동된 서브 코어들은 사람으로 따지면 어린 아이 정도에 불과하다. 때문에 보다 복잡한 업무에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활용하는 사람이 이런 저런 것들을 교육시켜야만 한다.
“사칙연산 정도밖에 안된다면 그리 큰 도움은 안 될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아도 작년치 결산 때문에 정신없는데 이런 식으로 짐덩이를 떠맡는 것이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다. 하지만 형진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이렇게 말해 주었다.
“쯧쯧.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
어쩐지 바보 취급 당한 것 같은 느낌. 그래서 제랄딘은 얼굴을 살짝 찌푸린 채 되물었다.
“뭐가요?”
그런 제랄딘을 바라보며 형진은 씩 웃었다.
“요새 신전들 결산하느라 정신없지?”
“네.”
“신전의 인원들 통계 내는 것도 그렇고. 새로 신전에 들어올 아이들과 신전을 나간 아이들, 그리고 올해 나갈 아이들의 통계를 내서 거기에 맞는 예산을 책정하는 것도 그렇고.”
“…”
“거기에 엘 파르드 지역에 새로 여는 가스트샵에 필요한 물자나 인원들 급료 계산부터 시작해서…”
“으으…”
형진이 여러 가지 산적한 업무들을 늘어놓기 시작하자 제랄딘은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는 듯이 안색이 창백해지고 말았다. 아닌게 아니라 시야에 수많은 숫자들이 마구 쏟아져 내리는 듯한 기분마저 느껴질 정도다. 제랄딘이니까 그걸 다 감당하는거지, 유아였다면 아마 채 오분도 버티지 못하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 버렸을 것이다.
형진은 그런 제랄딘을 바라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것들 따지고 보면 다 사칙연산으로 해결 가능한 일들 아닌가?”
“네?”
“그렇잖아. 인원 파악 같은 건 말 그대로 세계 각지에서 들어오는 인원수를 그냥 더하고 빼는게 전부고.”
“아…”
그렇다. 따지고 보면 이런 업무들은 기본적으로 더하고 빼는 수준의 일에 불과하다. 단지 전 세계에서 숫자들이 밀려들기 때문에 사람이 일일이 계산하고 다시 검산까지 하려면 미쳐서 돌아 버릴 정도라는 것이 문제일 뿐.
하지만 그 계산을 다른 누군가가 대신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모르긴 해도 지금 제랄딘이 겪고 있는 업무 부담은 최소 십분의 일, 아니 그 이상까지 확 줄어들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제 좀 감이 잡혀?”
“세상에…”
애초에 지구에서도 최초의 컴퓨터가 만들어졌을 때 그것이 수행했던 업무는 바로 인구센서스처럼 막대한 분량의 계산을 사람대신 수행하는 용도였다. 컴퓨터라는 말 자체가 계산하는 사람이니 말 다한 것 아닌가.
하지만 이 코어 시스템은 지구상에 처음 출현했던 컴퓨터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물건이다. 새로운 업무를 맡기려 할 때마다 프로그램을 새로 짜고 그것에 맞게 배선과 스위치를 일일이 옮겨주는, 그야말로 무식하기 짝이 없는 방법으로 업무를 지정해 주어야만 했던 지구의 초창기 컴퓨터와는 달리 코어 시스템은 스스로 학습이 가능하다.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은 바로 스스로 지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나 마찬가지고, 무엇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중심 코어처럼 말도 안되는 일을 시킬 수도 있게 된다. 인공 지능이라는 말조차 무색한, 그야말로 마법과 같은 시스템인 셈이다.
제랄딘은 형진의 간단한 설명을 통해 자신에게 부여된 이 코어 시스템이 무지막지한 활용성과 성장성을 지니고 있음을 뒤늦게나마 이해했다.
“무엇보다도 말이지. 사람은 먹고 자고 쉬어야만 하지만, 이 코어 시스템은 그런 게 필요 없어. 업무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지시만 내리고 제랄딘은 하루 종일 나랑 알콩달콩 지내도 상관없다는 얘기지.”
“와아…”
물론 제랄딘의 성격상 그렇게 시간이 남으면 또다른 일에 매달릴 가능성이 크지만, 적어도 일이 너무 바빠서 밥 먹을 때나 잠잘 때 외에는 얼굴 보기조차 어려워지는 사태는 최소화 할 수 있다는 얘기다.
“고마워요!”
제랄딘은 기뻐하며 형진에게 달려들어 그의 뺨에 입을 맞추어 주고는 얼른 이 새로운 시스템을 활용해 보기 위해 자신에게 마련된 집무실로 달려가 버렸다.
“쳇. 고마우면 좀 더 화끈한 보답을 해줘도 되는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기분은 나쁘지 않은지 피식 거리느라 정신이 없다.
잠시 제랄딘이 입을 맞춰준 뺨을 만지작거리던 형진은 다시 섬에 머무르고 있는 식구들을 불러들여 엘리시온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엘리시온이요? 추종자들이 간다는 그 천국 말씀하시는 건가요?”
놀란 표정으로 되묻는 유아의 말에 형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 엘리시온이 아니라, 이름만 따온 거짓된 천국이라고 해야겠지. 허세와 망상이 만들어낸, 가짜 천국.”
“세상에…”
허세와 망상이 이 세계를 버리고 어딘가로 가버렸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던 일이지만, 이런 일을 벌이고 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는지 모두 충격 받은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런데, 그곳에서 허세와 망상이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였어.”
“말도 안 되는 짓이라면…”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들을 향해 형진은 이렇게 말했다.
“공포와 죽음을 비롯해서, 자신에게 망신을 주었던 신들을 사교의 신으로 표현하고 있더군.”
“그런!”
그때까지는 이게 뭔 소린가 하는 표정으로 듣고 있던 다른 식구들조차 대번에 격분한 표정을 짓는다. 하기야 유아, 하마란, 카트린 정도를 제외하면 전부 공포와 죽음의 신도들이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인 셈이다. 참고로 허세와 망상을 신봉하는 요정들은 일단 부르지 않고 제외시켰다. 괜히 얘기를 꺼내봐야 득될 것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최근까지 나는 공포와 죽음의 명에 따라서 그곳을 탐사하는 일을 맡고 있었어. 하지만 최근 그곳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자, 공포와 죽음께서 나에게 새로운 직책을 내리시고 그 거짓된 천국을 내부로부터 장악해서 허세와 망상의 야욕을 분쇄하는 임무를 맡기셨지. 어때, 나와 함께 이 일을 함께 해보지 않겠어?”
형진의 말에 집행자들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고, 하마란은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다.
“필요하다면 저희 쪽에서도 인원을 추가로 보내겠다는 말씀이 있으셨습니다.”
그새 아버지에게 연락해 신뢰와 헌신에게 이 사실을 알린 모양이다. 하긴 원래 그럴 생각으로 하마란을 부른 것이니 상관 없다. 그녀에게까지 비밀로 할 생각이었다면 요정들처럼 일단 이 자리에서 제외시켰을 테니까.
공포와 죽음께서는 엘리시온을 오직 자신의 이름만으로 채우라고 하신 것이 아니다.
“말은 고마운데, 아직 그렇게 많은 인원들을 들여보내는 것은 불가능해. 우선은 하마란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아와 카트린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저희들도요?”
“물론이지. 유아가 지닌 회복 능력이라면 거기서는 거의 여왕 대접을 받을테고, 카트린은 여신님을 모셔야 하지 않겠어?”
“아하.”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크루그가 불안한 표정으로 끼어든다.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신들의 일에 끼어드는 것인데.”
역시나 시스콤. 완쾌가 된지 얼마 되지 않은 카트린이 위험에 휩쓸리는 것이 싫은 모양이다.
“괜찮아. 생각보다 그렇게 위험한 일이 아니니까. 아, 이럴게 아니라 직접 가서 확인해 보면 되겠네. 잠시만.”
형진은 곧바로 요정의 문을 열고 중심 코어 근처에 새로 조정된 접속 대기실로 그들을 데리고 갔다.
“와아…”
“특이한 곳이군요.”
그곳은 작은 카페와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접속하다가 잠시 나와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소파와 침대, 그리고 칵테일 바 스타일의 음료 코너가 작은 분수대를 중심으로 마련되어 있는데, 주위의 공간이 모두 검은 빛의 무언가로 치장되어 있고 간간히 촛불이 밝혀져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공포와 죽음의 성소 같은 것인가 보다.
“공포와 죽음께서 직접 마련해주신 곳이야.”
“과연.”
“일단 이쪽으로.”
분수대 주위에 코어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아름다운 무지개색 빛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고 있다. 형진은 식구들을 그곳으로 데리고 간 뒤, 접속을 실행했다.
“앗!”
“어엇!”
갑작스럽게 시야로 쏟아지는 빛에 놀라는 것도 잠시, 그들은 이내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 어떤 곳과도 다른 느낌의 마을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자신들의 모습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여긴…”
형진은 마치 시골에서 처음 올라온 촌뜨기들처럼 두리번대는 식구들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다.
“허세와 망상에 의해 만들어진 거짓된 천국, 엘리시온을 방문하신 것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