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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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추종자들
그렇게 길드 가입이 성사되자 지켜보고 있던 이들이 함께 축하의 말을 건네 온다.
“축하합니다!”
“반가워요. 식구가 되신 것을.”
“앞으로 잘 지내봐요.”
그렇게 인사가 끝나자 카트린이 얼른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름이 뭐에요? 한스푼은 별명 같은데.”
어떻게 보면 이런 점이 엘리시온의 다른 길드와 다른 점인지도 모른다. 보통 다른 길드 같으면 이런 식으로 가입 즉시 본명을 물어 오거나 하지 않는다. 아니, 같은 길드 내에서 오랫동안 마주쳤어도 실제로 현실에서 얼굴을 마주할 정도가 아니라면 본명은 끝까지 모른 상태로 지내는 경우도 흔하다.
“본명은 한수빈이에요. 한스푼은 요리사의 이미지를 따서 비슷하게 붙인 닉네임인 셈이죠.”
이미지라든가 닉네임 같은 단어까진 몰라도 대충 의미를 파악하는 것 자체는 이들에게도 문제가 없었다.
“그럼 한수빈 언니라고 부르면 되는 건가요?”
“아… 성이 한이고, 이름이 수빈이에요. 그러니까 수빈이라고만 부르셔도 돼요.”
“아하. 그렇군요.”
성이 앞에 오고 이름이 뒤에 오는 한국식 이름 체계에 대해서도 이미 아름과 새름을 통해 경험한 바가 있기 때문에 별다른 저항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젖어 있는데, 문득 한 사람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오전에 예정된 재활 프로그램을 후다닥 마친 아름이 다시 접속한 것이다.
“와! 아름님이다! 어서 오세요! 일찍 오셨네요? 별 일 없었죠?”
아름의 등장을 눈치 채기가 무섭게 보호와 균형이 얼른 달려가 그녀를 맞이했다. 자신과는 다르게 너무나도 간단하게 추종자를 얻어 버린 꽃과 바람의 모습에 살짝 질투를 하고 있던 여신은 이곳에 와서 처음 맞이한 자신의 추종자가 접속하자 반색하며 얼른 달려가 그녀의 가슴에 폭 안겨 버렸다.
“네. 여신님도 별 일 없으셨죠?”
갑작스럽게 여신이 달려와 안기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아름은 가만히 웃으며 여신에게 대답했다.
“그게… 없으신 동안 조금 특별한 일이 있었어요. 이리 와요. 소개해 줄게요.”
“소개요?”
아름은 여신의 말에 사람들을 둘러보고는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사람이 몇 정도 섞여 있음을 뒤늦게 눈치 챘다.
“먼저 이쪽은 제랄딘. 진의 부인 가운데 한 명이에요.”
“아, 예… 안녕하… 엣?”
딱 봐도 귀부인 느낌이 나는 제랄딘을 소개 받은 아름은 반사적으로 인사를 건네려다가 부인 가운데 한 명이라는 소개에 깜짝 놀라버렸다.
“반가워요. 제랄딘이라고 합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그게… 바, 반갑습니다.”
슬쩍 주위를 돌아보니 처음 보는 사람 하나를 제외하고는 그 소개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 반응이다. 설마 이들이 온 곳에서는 여러 여자와 결혼하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그리고 이쪽은 저와 같은 여신 가운데 한 명인 꽃과 바람이에요.”
“반가워요. 꽃과 바람입니다.”
하지만 뒤이어 새로운 여신을 소개 받자 아름의 머리 속에서는 방금 들었던 내용 따위는 확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보호와 균형도 충분히 예쁘고 귀여운 여신이지만, 이쪽은 뭔가 존재감 자체가 확 다른 느낌의 여신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여자끼린데도 보는 순간 어쩐지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콩닥거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수빈이 느꼈던 강렬한 충격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아름에게도 꽃과 바람은 충분히 놀랄 만한 외모의 여신이었다.
“마지막으로… 이쪽은 방금 막 꽃과 바람의 추종자가 된 수빈님이고요.”
“안녕… 하세요. 한수빈이라고 합니다. 캐릭명은 한스푼이에요.”
“반갑습니다. 이아름이라고 해요. 캐릭명은 아르미풀스윙입니다. 보호와 균형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신이 소개를 해주니 본명과 캐릭명을 밝히긴 했는데, 막상 이렇게 면전에서 두 가지를 밝히자니 뭔가 난감한 기분이 든다. 차라리 본명이든 캐릭명이든 하나만 밝히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둘 다 밝히려니 막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이 순간 아름과 수빈은 서로가 저들과는 달리 온전히 지구, 그곳도 한국 태생임을 명확하게 인식했다. 적어도 지금까지 길드원과 통성명을 하면서 이런 식으로 본명과 캐릭명을 구분해서 서로를 소개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둘이 조금은 서먹한 모습으로 서로를 소개하는 걸 지켜보던 형진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름이 자연스럽게 보호와 균형을 섬기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일이 있었음을 알아차린 것이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으셨던 모양이군요.”
“네? 아… 그게…”
형진이 그렇게 콕 집어 말하자 아름은 잠시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게… 실은 저도 모르게 이동기를 써버리고 말았어요.”
다른 이들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지만, 형진은 바로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했다. 아름은 이곳에서 배웠던 이동기를 현실에서 써버린 사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기존에 게임 상에서 통용되는 기술이 아니라, 자신들이 지닌 스킬을 전수해 주면서 혹시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낙인을 통해 얻은 권능이라든가 토끼의 소환 능력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지니고 있는 스킬들도 어찌 보면 공포와 죽음의 권능을 통해 전수받은 능력들이기 때문이다.
다만 형진이 확신하지 못한 것은, 아름이나 새름은 어디까지나 보호와 균형의 추종자이기 때문에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현실에서 그 능력을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스러운 부분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저런. 혹시 다른 이들에게 들키거나 한 건가요?”
형진의 말에 아름은 얼른 손을 내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뇨. 그런 건 아니구요.”
“다행이군요. 하지만 조심하셔야 합니다. 앞으로 여러 가지 스킬들을 더 배우게 되실 텐데, 그것들을 현실에서 부주의하게 사용했다가는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아름은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동기야 자신의 몸이 빠르게 움직인다거나 하는 것 뿐이지만, 공격 기술 같은 걸 깜빡 잘못 사용하기라도 하면 정말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과는 달리, 현실에서 폭력을 함부로 사용했다가는 정말 큰 일이 날 수도 있다.
“명심하겠습니다.”
아름이 그렇게 대답하자, 형진은 다시 수빈에게 말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꽃과 바람께서 건네주신 권능은 다소 위험한 면이 있습니다. 이쪽에서도 가급적 빠르게 조치를 취하겠지만, 가급적이면 당분간은 사람이 많이 붐비는 장소는 피하시는 편이 좋을 듯 합니다.”
“하긴… 그러는 편이 좋겠죠.”
“통근 시간대의 버스나 전철 같은 것은 특히 위험합니다. 의도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향기가 전해질 수 있으니까요.”
“그거라면 괜찮아요. 몸이 안 좋아서 학교를 쉬는 중이라…”
저쪽 세계 출신들은 이게 뭔 소린가 하는 표정이지만, 대화를 나누는 대상이 형진이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애초에 이 거짓된 천국이란 곳을 발견해서 그들을 데려온 것도 형진이고 그만큼 이곳에 대해 아는 것도 많을 수밖에 없으니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사실 아름도 새름도 아직 여신에게 게임 밖의 현실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몸이 안 좋다는 말이 들리기가 무섭게 잠자코 얘기를 듣고 있던 유아가 거의 조건 반사 식으로 반응하며 수빈에게 다가왔다.
“아파요? 어디가 아프신대요? 아까도 그래서 그랬던 건가요?”
“네? 아니… 저기 그게… 지금 아프다는 게 아니고…”
사실은 정말로 아픈 게 아니라 공무원 시험 준비 때문에 휴학을 하고 있다. 아파서 잠깐 쉬는 중이라고 하면 대충 거기서 얘기가 끝나지만, 공무원 시험 준비 중이라고 하면 어른들은 취업이 어쩌고 사귀는 사람은 어쩌고 하면서 꼭 얘기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는지라 에둘러 말하던 것이 입에 붙어버렸다.
“유아 언니는 대단해요. 무려 희망과 생명의 신녀거든요! 아픈 데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금방 깨끗하게 낫게 해줄 거에요.”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아름이 한 마디 덧붙인다.
“실은… 저도 무릎 부상을 당해서 쉬고 있었는데, 유아님 덕분에 다 나았어요.”
“…”
카트린은 그렇다 쳐도 자신과 같은 현실에 속한 사람이 분명한 아름까지 그렇게 두둔하고 나서자 수빈은 할 말을 잃었다.
신녀라니. 병을 낫게 하다니. 그런 권능이 정말로 존재한단 말인가.
“속는 셈 치고 한 번 회복을 받아 보십시오. 아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 그럼… 부탁드립니다.”
형진까지 그렇게 말하자 마지못한 척 받아들인다. 사실 예전부터 편두통을 앓았던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와서 회복을 받아봐야 그건 이미 헛짓이었다. 극장에서 꽃과 바람 때문에 육체와 정신이 놀란 증상을 보였을 때, 유아에게 회복을 받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아에게 회복을 받고 나자, 형진은 아름과 수빈을 제외한 다른 이들을 다시 영화관으로 보냈다.
본래 아름의 훈련은 크루그가 맡고 있었지만, 카트린이 남아서 지켜보면 몰라도 모두 함께 영화 관람을 하러 가는 와중에까지 혼자 남아서 훈련을 시키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형진도 남아서 할 일이 있으니 겸사겸사 오늘은 크루그를 대신해 둘의 훈련을 봐주기로 했다.
“원래는 느긋하게 갈 생각이었지만, 상황을 보니 아무래도 조금 급하게 진행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수빈님은 현실에서 만약의 사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이동 스킬 만큼은 확실하게 익혀 두셔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게임 안에서 배운 스킬이 현실에서도 적용이 된다. 너무나 여러 가지 일이 한꺼번에 마구 몰아쳐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따지고 보면 이것 하나만 가지고도 엄청나게 놀라운 일이다.
“아름님은 이미 배우신 것이 있으시죠?”
“네.”
“그럼 제가 따로 말하지 않더라도 자율적으로 훈련을 부탁드립니다.”
“알겠습니다.”
아름은 얼른 인벤을 열어 부스터 장비를 착용하고는 카트에 담겨진 도핑용 음식을 먹고 스스로 연습을 시작했다.
잠시 아름이 스스로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형진은 별 문제 없겠다는 판단이 내려지자 다시 수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일단 이것을 받으십시오.”
“이건… 헉!”
수빈은 깜짝 놀랐다. 대수롭지 않게 건네준 것이 모두 최소 +2로 강화된 부스터 액세서리들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착용하시고, 여기 있는 음식들을 우선 복용하십시오. 앞으로의 훈련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
오늘 막 가입한 길드원에게 이런 걸 막 내주다니. 수빈은 어쩐지 좀 질려버리는 기분이 들었다. 이대로 들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도대체 어쩌려고.
하지만 그건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아, 그건 수빈님께 드리는 거니까 다시 돌려주실 필요 없습니다.”
“네? 저, 정말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그 정도는 별로 대단치도 않은 것이니 그리 놀라실 것 없습니다.”
“…”
수빈은 이제 완전히 질려버렸다. 그냥 빌려주기만 해도 놀랄 일인데 이 정도 부스터 아이템을 그냥 막 줘버리다니.
어쨌든 그렇게 부스터 아이템의 착용을 마치고 도핑까지 끝내자, 형진은 그녀에게 다가와 가만히 손을 잡더니 스킬을 전수해 주었다.
[축하합니다! 스킬 ‘전율의 질주’ lv.0을 습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스킬 ‘환영의 반딧불’ lv.0을 습득했습니다!]형진은 그렇게 두 개의 스킬을 전수하고는 다시 말했다.
“다른 스킬도 여러 가지가 있지만, 사실 저도 그걸 다 써본 일이 없어서 일단 제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스킬들을 전해 드렸습니다. 모두 어디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는 훌륭한 스킬들이니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감사… 합니다.”
스킬의 전수가 끝나자 형진은 한쪽으로 물러나더니 인벤토리에서 이것저것 꺼내어 주위에 늘어놓기 시작한다. 끌부터 시작해서 망치와 탁자 같은 것을 주욱 늘어놓더니, 이내 커다란 대리석 조각을 하나 꺼내 놓는다.
뭘 하려고 저러나 싶어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조각 준비를 마친 형진이 그런 수빈을 바라보며 다시 말했다.
“그렇게 멀뚱히 서 있지 말고 바로 시작하십시오. 아름님 훈련하는 것 보이시죠? 따라서 하시면 됩니다.”
“네.”
수빈은 그제서야 혼자서 열심히 훈련 중인 아름을 보았다.
“…”
정확히는 아름으로 보이는 뭔가 거뭇한 물체가 뒤뜰을 정신없이 움직이는 모습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금 저걸 따라 하라는 얘기?
“빨리 시작 안합니까? 좀 더 과격한 방법으로 재촉해야 하는 건가요? 그쪽을 원하십니까?”
“아, 아뇨. 바로 시작… 으악!”
형진의 말에 화들짝 놀라 전율의 질주를 실행했던 수빈은 순간 확하고 지면이 덮쳐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그대로 발이 꼬여 바닥을 구르고 말았다.
데굴데굴.
그렇게 구르다가 정원석에 부딪히고 나서야 겨우 멈춘다. 어딘가에서 돌 굴러가유 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느낌이다.
“아야야…”
정원석에 부딪힌 머리부터 시작해서 엎어지면서 격돌한 무릎까지 이곳저곳에서 전해지는 통증에 수빈은 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아… 참고로 그 스킬들, 레벨 0에서도 부스터와 도핑을 받은 상태라면 성능이 상당히 우월한 편입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무릎이 몇 개가 있어도 부족할 테니 조심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