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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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어서 옵셔!
“으응…”
잠들었던 유아가 눈을 뜬다. 잠이 덜 깼는지 잠시 멍한 눈으로 형진을 올려다보더니, 자신이 그에게 안겨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분명히 자신은 식사를 하고 나서 식곤증 때문에 잠시 눈을 감았던 것 같은데, 어째서 이런 자세로 형진에게 안겨 있는 것일까.
“왜 이러고 있는 거에요?”
“하하… 그게…”
일전에는 여신이 자신의 몸에 깃들었던 걸 조금이나마 기억했는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혹시 뭔가 기억을 남겨줄 틈도 없이 갇혀 버려서 그런 건가. 차라리 다행이다. 여신이 자신의 몸에 갇혀 있는 것을 알았다면, 건실한 신도이자 추종자인 그녀로서는 그 부담스러움에 까무러쳤을지도 모른다.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서는 역시 이쪽이 훨씬 나은 일이리라.
[아마도.] [끙…] “…”서라운드 입체음향마냥 들려오는 서로 다른 두 신의 반응에 형진은 피식 웃어 버리고 말았다.
이거참. 두 명의 신에게서 동시에 대답을 들을 수 있게 되다니.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지 슬퍼해야 하는 건지.
막상 자신의 몸 안에서 그렇게 여신이 앓는 소리를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아는 그것을 듣지 못했는지 쓴웃음을 짓는 형진의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앗! 이마! 이마가 왜 그래요?”
“응? 뭐가?”
“상처가 났잖아요! 얼른 보여줘요!”
“아…”
여신이 손가락을 대고 있던 그곳에 뭔가 자국이라도 남은 건가. 유아는 회복을 거느라 법석을 떨었지만, 그녀가 연거푸 힘을 쏟아 부어도 그 자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누군가에 의해 지워지지 않을 각인이라도 되어 버린 것처럼, 그 자국은 계속 그대로 남아 있었다.
“어? 이럴 리가 없는데? 잠깐만요.”
“…”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짐작이 간다. 이 자국은 단순한 화상이나 그런 종류의 상처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두 신의 힘이 격돌한 흔적과도 같은 것. 이를테면 성흔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이니 아무리 강력한 회복 능력으로도 원래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테면, 형진이나 유아의 손등에 자리 잡은 낙인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잠시만.”
형진은 유아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거울을 가져다 얼굴을 비춰 보았다. 젠장. 멀쩡한 미남의 얼굴에 이런 자국을 만들어 놓다니. 아무리 신이라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닌가?
[미남?] [그건 좀…]아무래도 일부러 코러스를 맞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백번 양보해서 미남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래서야 완전 부처님 이마 가운데 자리 잡은… 뭐더라. 갑자기 기억이 안 나네. 어쨌든 그거처럼 되어 버렸다. 망할. 유아의 회복으로도 안 고쳐지면 평생 이러고 살아야 한다는 얘기잖아.
하지만 형진이 거울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을 때, 자신이 그냥 맞장구나 치고 있을 상황이 아님을 새삼스럽게 깨달은 여신이 큰 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어째서 내 신녀가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하는 거지? 왜 엉뚱한 저 녀석에게만 내 말이 들리는 거냐고!]하지만 형진은 한심하다는 듯이 마음 속으로 이렇게 대꾸했다.
무슨 소립니까. 멀쩡한 얼굴에 손가락 도장을 콱 찍어 놓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 아무리 무책임한 신이라도 이건 너무 한 거 아닙니까?
당연히 여신은 발끈하며 소리친다.
[너! 지금 그거 나 보고 한 말이야?]그럼 여기 여신님 말고 무책임을 붓으로 화폭에 정성들여 그려놓은 듯한 신이 또 누가 있습니까? 공포와 죽음께서는 취미가 좀 나빠서 그렇지 최소한 책임 하나는 확실하게 지시는 분입니다.
그러자 잠자코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끼어든다.
[너… 은근히 나까지 돌려 까는 것 같다만.] [돌려 까긴. 대놓고 까고 있구만 무슨. 그나저나 너. 목소리가 왜 그따위야? 감기라도 걸렸니?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어쨌든 얘기 나온 김에 말해 봐! 어째서 내 신녀한테 내 말이 전해지지 않는 거냐고!] [글쎄. 어째서일까.] [아악! 이 망할 녀석이!]아아… 뭔가 난장판이다. 머릿속에서 두 신이 방방 뛰며 떠들어댄다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이것도 일종의 신내림일까. 아니지. 최소한 신내림쯤 되려면 두 신 가운데 하나는 나에게 들어와 있든가 해야 할 텐데 막상 아무 신도 들어와 있지 않은 상태이니 최소한 신내림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이걸 기뻐해야 하는 건가.
어쩐지 달관한 것 같은 기분으로 거울을 지켜보고 있는 중에도 두 신의 대화는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간단한 얘기야. 저 이마의 성흔이 일종의 수신기 역할을 하는 거다. 다행으로 생각해. 저것조차 없었다면, 넌 그 신녀의 몸 안에서 아무도 대답해 주지 않는 완전한 무시를 경험했을 테니까.] […]공포와 죽음의 말에 희망과 생명은 그제서야 입을 다물어 버린다.
완전한 무시라. 잊혀진다는 것이 신들에게 있어 죽음이나 다름없는 고통임을 생각하면, 아무리 애타게 부르고 소리를 쳐도 누구 하나 대답하지 않는 완전한 무시는 어쩌면 망각 다음 가는 잔혹한 고문일지도 모른다. 확실히, 그 정도면 꿀먹은 벙어리가 되어 입을 다물어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지금 희망과 생명이 느끼고 있을 감정에 대한 생각을 떠올리던 형진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유아의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것을 떠올렸다.
유아의 그릇이 신을 가둘 정도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신이 갇혀 있어도 그녀의 몸과 정신에 아무런 지장이 없는 걸까. 게다가 그녀는 홀몸조차 아니다. 자신의 아이까지 가지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그런 형진의 걱정이 바로 전해진 것인지, 곧바로 공포와 죽음의 대답이 돌아왔다.
[괜찮아.]아주 단정적인 대답. 하지만 상대는 힘 그 자체만으로 놓고 보면 형진이 알고 있는 그 어떤 신보다도 강대한 존재다.
[그래서 괜찮아.]어째서?
[말이 짧다?]어째서입니까.
[간단해. 이 녀석을 가두고 있는 건 바로 그 자신이기 때문이지. 물론 이 녀석을 가두고 있는 것에 대한 부담을 이 아이 혼자 감당하고 있다면 몰라도, 성흔을 통해 너 역시 그 부담을 나누어 가지고 있으니까.]그런가. 하기야 형진도 보통 사람은 아니다. 여러 신의 대리자로서 일하고 있고, 스스로도 집행자 가운데 꽤 높은 직책이라 할 수 있는 조정자에 이른 상태. 혼자서는 부담이 되더라도 둘이 나누어 감당할 수 있다면 게다가 유아는 그저 매개체일 뿐, 여신을 옭아맨 채 가두어 두고 있는 것이 여신 스스로의 힘이라지 않은가. 자승자박. 잘 묶어 놓은 밧줄은 몸부림칠수록 풀리기는커녕 더욱 죄어들게 마련. 여신 또한 같은 상황인 모양이다.
형진은 당장 유아가 달리 부담을 느낀다거나 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 그렇게 납득했지만, 사실 여기에는 한 가지 비밀이 더 있었다. 갇혀 있는 희망과 생명조차 모르는, 이 자리에서는 오직 공포와 죽음만이 알고 있는 비밀이.
원래대로라면 좀 더 깊이 따지고 들었어야 할 문제지만, 당장의 형진에게는 자신에게 감춰져 있을 지도 모르는 무언가보다는 유아와 아기에게 더 큰 관심을 지니고 있었다.
[아, 그리고.]어쨌든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려는데, 문득 공포와 죽음이 말을 이었다.
[필요하다면 이 녀석의 힘, 너희들이 어느 정도는 끌어다 쓰는 것도 가능해. 물론 전부는 아니고 극히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느 인간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위력을 지니게 될 거다.]아… 혹시 무슨 영단 같은 효과를 발휘하는 건가. 나쁘지 않다. 희망과 생명은 그렇다 쳐도 신들과 이래 저래 얽힐 일이 많은 형진으로서는 힘이 강해서 손해 볼 일은 없으니까.
[영단보다 대단하지. 인간 기준으로는 거의 무한에 가까울 테니까.] [으으…]여신이 앓는 소리를 냈지만 공포와 죽음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이 녀석이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아이가 느끼는 것으로 제한된다. 물론 너와도 연결되어 있으니 네가 허락한다면 너를 통해서 보는 것도 가능하겠지만, 어쨌든 지금 현재로서는 신녀가 이 녀석과 세상을 연결하는 유일한 창이라고 봐도 좋겠지.]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던 형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럼 설마… 밤일을 치르기라도 하면 유아가 느끼는 모든 걸 여신이 그대로 느끼게 된다는 얘긴가.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곧바로 공포와 죽음의 대답이 돌아온다.
[정답.]그리고 공포와 죽음의 짤막한 대답이 전해진 순간, 희망과 생명의 비명이 형진의 귀를 따갑게 만들었다.
[아아아악! 말도 안 돼! 너희들, 도대체 나에게 뭘 시킬 셈이야!]절규와도 같은 그녀의 외침에 공포와 죽음은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한 말투로 답했다.
[좋은 기회니까. 잘 봐두도록 해. 적어도 책임감이 뭔지는 배울 수 있을 테니까.]하하. 책임감이라. 이거 어째 아까 슬쩍 비난을 던진 것에 대한 반격이 아닐까 싶은데. 크흠.
한편으로는 꽤 난감한 일이기도 하다. 공포와 죽음이 훔쳐 보는 거야 딱히 시선이 느껴진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렇다 쳐도, 이제는 아주 라이브로 부부의 사생활을 희망과 생명에게 그대로 전해주게 생겼다. 아니, 유아가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게 될 테니까 단순히 관람을 넘어 가상 체험에 가까운 일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자신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나마 어느 정도 자신의 변태짓에 익숙해진 유아지만, 만약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여신이 자신의 몸에서 나가기 전까지 밤일을 거부하려고 할지도 모른다.
[하… 하하… 하하하…]여신이 자신의 몸 안에서 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모른 채, 유아는 울상을 지은 채 형진의 이마에 난 성흔을 살피고 있었다.
형진은 빙긋 웃음을 지으며 그런 유아에게 말했다.
“괜찮아. 아프다거나 한 건 아니니까.”
“하지만…”
“괜찮다니까.”
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유아를 품안에 끌어당겨 안고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깊게. 아주 깊게.
[너! 너! 내가 뻔히 다 보고 있는 걸 알면서도!]허탈한 웃음을 흘리고 있던 여신은 유아의 몸을 통해 전해지는 감미로운 키스의 느낌에 정신이 화들짝 들었는지 그렇게 소리를 빽빽 지르기 시작한다.
일전에 형진의 이마에 스스로 입을 맞춰준 적도 있는 주제에. 하기야 그때의 입맞춤은 키스라고 하기도 민망한 일이긴 했다. 적어도 지금 유아와 나누고 있는 깊고 진한 키스와 비교하자면 그런 건 그냥 인사 수준의 행위니까.
“후아아…”
길고 긴 키스를 마치자 유아는 발그레해진 표정으로 그렇게 숨을 토했다. 그 모습이 또 얼마나 귀여운지,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심장이 두근거리며 몸에서 뜨거운 기운이 불끈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너… 너… 서, 설마…]그런 형진의 감정 변화를 눈치 챘는지, 여신은 경악한 느낌으로 그렇게 너를 연발할 뿐 이제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하고 있었다.
이쯤 되자 형진도 슬슬 이 상황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한다. 원래부터도 못 말릴 상변태인 그에게 어떻게 보면 여신을 간접적으로 능욕하는 것과도 같은 지금의 상황이 너무나도 자극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자, 잠깐… 농담이지? 그렇지? 아무리 그래도…]경악한 여신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그녀의 몸을 통해 전해져 오고 있었지만, 그런 여신에게 공포와 죽음이 넌지시 한 마디를 건넨다.
[늦었어. 이미 발동이 걸려 버렸다.] [헉! 그, 그런…] [이 놈 이거… 상변태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네.] [농담이지? 제발 농담이라고 해줘… 으앗!]여신의 입에서 그렇게 비명이 터져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형진의 손이 유아의 옷 속으로 파고들어가 그녀의 가슴을 어루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그만! 제발!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 말도 조심하고 조용하게 있을 테니까… 흑!]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해봐야 공포의 죽음 말대로 이미 늦어 버렸다. 게다가 형진과 유아는 이미 함께 지낸 밤의 숫자를 세는 것 자체가 무의미한 부부 사이. 결국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 상황은 늦든 빠르든 유아의 몸에 갇혀 있는 상태라면 언젠가는 거쳐야만 하는 통과 의례인 셈이다.
[말도 안 돼… 제 정신이야? 이렇게 뻔히 지켜보고 있는 이가 있는데…]이제 와서 그런 말 해봐야 늦었다니까.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천천히 유아의 옷을 벗겨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