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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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도발
형진이 그렇게 새로운 시스템이 엘리시온 안에 가지고 올 반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동안, 오귀스트와 하마란은 언제나와 다름없이 새로 뽑힌 가스트샵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 있었다.
배꼽 인사부터 시작해서, 가스트샵에서 다룰 품목들에 대한 교육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교육은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오귀스트와 하마란은 직접 교육에 참여하기 보다는 그런 교육 과정들을 총괄하는 쪽의 일에 전념하고 있었다. 그들이 직접 교육에 참여하는 것은 채권 추심이 막 끝난 새로운 영지를 방문했을 때 정도다.
현재 엘 파르드 지역에 대한 채권 추심은 절반 정도 진행된 상황이다. 마치 알박기가 들어가듯이 이곳 저곳이 신전의 영역으로 선포되자, 지금까지 엘 파르드에 군림하던 대세력들은 혼란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중간 중간 들어서 버린 신전 세력들로 인해 군세를 결집시키는 것도 물자를 모아들이는 것도 불가능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엘 파르드의 사람들 대부분은 이제 자신들의 나라가 신전에 의해 통일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전란으로 얼룩진 나라에서 힘겹게 살아오고 있던 그들은 누구라도 좋으니 이 혼란스러운 나라를 진정시켜 주길 바랐고, 세금을 거둬가기는커녕 오히려 베푸느라 여념이 없는 호구신의 사제들은 그런 그들에게 있어 더할 나위 없을 정도로 이상적인 지배자라 할 수 있었다.
“음?”
오귀스트가 직원들을 교육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하마란은 잠시 눈을 찡그리더니, 이내 오귀스트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했다.
“뭐? 그게 정말인가?”
“네. 방금 들어온 첩보에요.”
“흠…”
오귀스트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이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제들에게 다가가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후의 교육은 사제님들이 맡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십시오.”
오귀스트는 그렇게 사제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급히 하마란을 데리고 교육장으로 쓰이는 접견실을 빠져 나왔다. 그렇게 건물 밖으로 나오자, 그는 뒤따르는 하마란을 양손으로 안아 올린 다음, 곧바로 이동 스킬을 사용해 근처의 성벽 위로 올라섰다.
“흠…”
“저쪽인 것 같아요.”
“그렇군.”
두 사람의 시선이 닿은 지평선 부근에 먼지 구름이 일어나고 있었다.
“멀어서 얼마나 되는지 잘 보이질 않는군.”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시기에, 이 장소에 저렇게 급하게 달려올 만한 군마 따위 있을 이유가 없으니.
“일단 보고를 해야겠군. 부탁해도 될까.”
“물론이죠.”
하마란은 오귀스트에게 공주님처럼 안긴 자세가 싫지 않은지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며 형진에게 메시지를 넣었다. 조력자로서의 지위가 부여되면서 그녀에게도 유아나 제랄딘처럼 형진에게 직접 보고할 수 있는 수단이 주어진 것이다.
[하마란입니다.] [응? 무슨 일이지?] [괴헨 영지에 적들의 침입이 감지되었습니다. 일단 저와 오귀스트님이 막아볼 생각입니다만, 저들이 병력을 나누어 마을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으니 지원 부탁드립니다.] [알았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지.]이미 신전에 성역이 존재한다는 것은 엘 파르드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신전을 직접 들이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 하지만 채권 추심이 완료되어 빈 땅이 된 영지라면 그런 식의 방비가 없을 테니 허점을 노리기에 딱 좋다.
“어쩌면 저들은 우리를 노린 것인지도 모르겠군.”
“우리요? 거스와 저?”
“응.”
형진이 엘리시온의 일에 집중하고 있는 상황에서 엘 파르드의 일을 총괄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오귀스트와 하마란이다. 만약 그들을 사로잡아 인질로 삼을 수만 있다면 순식간에 엘 파르드의 반을 장악해 버린 신전 세력의 기세를 누그러뜨리는 것은 물론이고, 좋은 조건에서 협상을 벌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호구신의 사제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뢰와 헌신의 수호자들이 개입한 것이 확실한 지금 상황에서 무력을 동원해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 시도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모를 이유가 없으니까. 하지만 사실 저들로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협상을 시도했다가 빈털터리로 쫓겨난 로우너 자작령의 일을 생각해 보면, 신전 세력이 기존에 엘 파르드에 할거하고 있던 기득권 세력에게 일말의 양보조차 할 생각이 없음은 굳이 따질 필요도 없을 정도로 명확하고 확정적인 사항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후의 도박을 생각해 보는 것은 저들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만히 있어도 죽고 덤벼도 죽는다면, 시도라도 해보는 쪽이 낫다는 생각 정도는 누구라도 떠올릴 법한 일이니까. 물론 채권 추심을 당한다고 해서 수호자들이 영주 가족들을 죽인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고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야만 하는 삶이란 건 태어나면서부터 권력이란 것을 마음껏 즐기며 살아왔던 이들에게 있어서는 죽음보다도 치욕스러운 일인지도 모른다.
촤촤착!
하마란을 양손으로 안은 채 마을 밖으로 질주하는 오귀스트의 몸에 빠른 속도로 장비가 착용된다. 토글 기능을 사용해 전투 장비들의 착용을 마친 것이다.
“흠…”
대략 적의 숫자를 가늠해 본다. 거리가 있어서 정확한 숫자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얼핏 보기에도 천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중무장한 기병 일천이라. 근방에 있는 세력들 가운데 이 정도의 군세를 지닌 곳은 없다. 그것은 다시 말해, 보다 큰 대세력이 기회를 엿보다가 결행을 했거나, 아니면 근방의 작은 세력들이 연합해 일을 모의했다는 의미다.
다가서는 쪽도 필사적이고, 맞이하러 나가는 쪽도 최대한 속력을 내고 있는 터라 그들은 순식간에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적은 흔히 스피어헤드라고 불리는 삼각 진형을 취하고 있다. 보통 저런 진형은 충격력을 극대화해서 단숨에 방어를 무너뜨리는데 쓰인다. 하기야 야전에서 일천의 기병이 전속으로 덤벼드는 경우 일반적인 군세로는 그것을 막아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하지만 지금 같은 경우라면 조금 상황이 다르다. 아마도 저들은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자가 있더라도 무시하고 달려들어 그대로 거점을 돌파하여 성에 있는 사제들이나 중요인물을 생포하는 것이 목적일 것이다.
“곤란한데.”
물론 오귀스트와 하마란이라면, 적의 수가 많다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이 일부 병력으로 오귀스트와 하마란을 상대로 시간을 끄는 동안 성으로 침입해 사제들을 노리고자 한다면 일이 꽤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었다. 성을 접수하자마자 성물과 토끼들을 배치하긴 했지만, 솔직히 불안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거스.”
“응.”
“날 던져줘요.”
보통 여자가 이런 말을 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펄쩍 뛰었겠지만, 상대는 무려 하마란이다.
“조심해.”
“걱정말아요.”
하지만 아무리 튼튼한 여자라도 새 신부다. 오귀스트는 그렇게 당부하고는 하마란을 번쩍 들어올려 마치 투포환을 던지는 듯한 자세를 취했다.
예전의 오귀스트라면 솔직히 좀 부담스러운 자세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의 오귀스트는 영약을 먹은 덕분인지 이 정도는 가뿐하게 할 수 있을 정도로 힘이 넘친다. 물론 그래봐야 하마란에 비하면 새발에 피지만.
“헙!”
오귀스트의 손이 허공으로 떨쳐지자, 하마란은 마치 인간 탄환과 같은 모습으로 허공을 가로질러 돌격해 들어오는 기병의 선두로 날아들었다.
“헉!”
“미, 미친!”
말이 달리는 것보다도 빠른 속도로 자신들을 향해 돌진해 들어오는 것도 믿기지 않는데, 그 상황에서 메이드복 입은 여자를 마치 창을 던지는 것처럼 집어던지다니! 아니, 그 이전에 메이드복 입은 여자가 마치 발리스타로부터 발사된 화살처럼 날아드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설마… 저 여자가?”
문득 선두에 선 기사 중 하나가 자신들이 목표로 삼은 대상 가운데 한 명의 인상착의를 떠올리고는 그렇게 중얼거렸지만, 그 말이 채 다른 이들의 귀에 들어가기도 전에 하마란은 문득 몸에서 거대한 불꽃과도 같은 것을 뿜어내며 포탄처럼 기사단을 향해 날아들었다.
쾅!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기사 하나가 떡이 되어 날아간다. 그를 태우고 있던 말은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다리가 부러지며 땅바닥을 뒹굴었고, 뒤따르던 기병 두셋 정도가 나가 떨어진 기사와 뒤엉키며 역시나 말 위에서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후웁!”
하마란은 지면에 착지하는 순간 자신을 향해 한 덩어리로 뒤엉켜 날아드는 말과 사람을 보더니, 그대로 진각을 밟음과 동시에 체중을 이동시키며 주먹을 뻗었다.
쾅!
다시 한 번 뭔가 폭발하는 소리가 터져 나오며 하마란을 향해 날아들던 말과 사람이 한 덩이가 되어 튕겨 나간다.
“미, 미친…”
“수호자다!”
“저 모습은 설마…”
“목표다! 선회! 선회!”
어떤 자들은 경악하고, 또 어떤 자들은 제 발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하마란의 모습에 쾌재를 올리며 포획용 밧줄을 꺼내들며 선회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전부 무시하고 마을로 곧장 돌입하려던 이유를 생각하면 당연한 반응이다.
“팔과 다리를 묶어! 제 아무리 수호자라 해도 팔 다리를 얽어서 끌고 가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말 위에서 밧줄을 던져 사냥감을 포획하는 것은 엘 파르드의 기병이라면 누구나 연습하는 기초적인 사냥법이다. 동굴곰처럼 거대한 체구를 지닌 사냥감이라면, 어설프게 창이나 화살 같은 걸로 잡으려고 하기 보다는 이런 식으로 포획하는 쪽이 더 나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온몸에서 불꽃을 뿜어내고 있는 하마란의 존재감에 휩쓸려 자신들에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던 또 한 사람의 남자를 잊어 버렸다.
스컥!
달려가던 말의 고삐를 당겨 방향을 틀면서 안장에 걸려 있던 밧줄을 꺼내들던 기병은 갑자기 희뿌연 무언가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보는 순간 그대로 피를 뿌리며 말 위에서 굴러떨어졌다.
“읏차!”
오귀스트는 재빨리 기병 하나를 베어 떨어뜨리고는 곧바로 말 위에 올라탔다.
보통 집행자들은 기마 전투 같은 걸 선호하지 않는다. 어지간한 말보다 더 빠르게 달리고, 더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그들에게 있어서 익숙하지 않은 말 같은 걸 타봐야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 자신의 진짜 실력을 드러내기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지금 말 위에 올라탄 이 남자는 다르다.
그는 한때 라야바르트 최고의 기사 중 하나로 일컬어지던 몸. 비록 지금은 기사의 이름을 버렸다지만, 하나의 나라에서 최고로 손꼽히던 그의 실력이 어디로 가는 것은 아니다.
“타핫!”
자세를 잡고 박차를 가하자 말은 화들짝 놀라며 그가 뜻하는 바대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막 선회를 시작하는 바람에 속도가 떨어진 기병들은 갑자기 달려드는 강력한 돌격을 맨몸으로 받는 꼴이 되고 말았다.
“크악!”
“컥!”
손 쓸 틈도 없었다. 말에 탄 오귀스트는 문자 그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기병들 속을 헤집고 있었다. 지금 동원된 기병들로서는 기마술로도 무기술로도 그를 감당하기엔 터무니 없이 역부족일 수밖에 없었다.
“아브겐의 하란트, 그대에게 도전하겠다!”
기병들을 이끌고 있던 기사 하나가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그런 오귀스트에게 달려들었다. 일반적인 기병들로는 도저히 당해낼 수 없다는 판단과 더불어, 이토록 뛰어난 실력의 기사에게 이긴다면 자신의 이름 또한 드높일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서 였다.
“커흑!”
하지만 자신만만하게 덤벼들었던 기사는 채 일합도 견뎌내지 못한 채 오귀스트의 검 아래 피를 흩뿌리며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오귀스트는 자신에게 덤벼들었던 기사가 그렇게 말 안장 아래로 굴러 떨어지자, 가볍게 몸을 튕겨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다른 자들이 뭘 어쩔 틈도 없이 방금 나가 떨어진 기사의 말 위에 자리를 잡았다.
“좋군.”
역시 기사가 타는 말이라서 그런지 일반 기병의 말보다 훨씬 느낌이 좋다. 기사의 말은 갑자기 묵직한 무언가가 올라타자 기겁했지만, 이내 오귀스트의 능숙한 기마술에 마치 홀려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전력을 다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