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41
341====================
72. 도발
이들의 가장 큰 실수는 하마란의 강습에 직면하자 그녀를 잡기 위해 선회를 시도하며 속도를 떨어뜨린 것이다.
물론 작전 목표 자체가 오귀스트와 하마란이었기 때문에, 알아서 자신들의 진형 속으로 들어온 하마란을 잡기 위한 이들의 행동은 일견 타당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선회를 시도하며 속도를 누그러뜨린 것은, 이미 인간을 초월해 버린 것이나 다름 없는 이들 부부를 상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무기를 스스로 내팽개친 것이나 다름 없는 행동이었다.
오귀스트는 기사의 말을 빼앗아 타기가 무섭게 빠르게 가속하며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든 외곽으로부터 적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양 허벅지로 말의 옆구리를 꽉 조인 채, 방패를 든 손으로 고삐를 잡고, 나머지 한 손에는 검을 든 상태로 사실상 돈좌되어 버린 적 기병대를 돌려 깎기 시작한 것이다.
“일단 여자부터! 여자부터! 콰이드로 분대는 일단 여자부터!”
선회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꼴이 되어 버린 기병대는 그런 오귀스트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잠시 혼란에 빠졌지만, 그들을 이끄는 기사 중 하나가 직할 부대를 하마란의 포획에 돌리자 정신을 차린 기사들 몇몇이 동시에 오귀스트를 저지하기 위해 나섰다.
“던져!”
누군가의 외침과 함께 밧줄이 날아든다. 기사들의 진형 한복판에서 헌신의 일격을 일깨운 채 버티고 서 있던 하마란은 자신을 노리고 날아드는 밧줄을 힐끗 보았지만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그중 몇 개의 밧줄이 자신의 목에 걸리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 버렸다.
헌신의 일격은 얼핏 보기에 몸에서 불꽃이 피어오르는 듯한 형상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불꽃을 피워낸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뿜어져 나오는 신의 힘이 마치 불꽃처럼 보이는 것일 뿐이라고 해야 하나. 실제로 몸에서 무언가를 태울 수 있는 화력을 지닌 불育?피워낼 수 있는 추종자는 파괴와 재생의 구현자가 유일하다.
“잡았다!”
“당겨!”
기병들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지금 이들이 사용하는 밧줄은 보통의 밧줄보다 훨씬 질긴 삼에 철사까지 넣어 만든 것으로 동굴곰 같은 야수들을 잡을 때 쓰는 물건이다. 질긴 말을 탄 채 안장에 밧줄을 걸고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당기면 동굴곰 같은 야수들도 옴짝달싹 못한다.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말을 이용해 잡아당기니 아무리 힘이 좋아도 소용이 없는 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런 방식으로 잡아당기는 순간 목이 부러질 수밖에 없다. 부러지는 게 뭔가. 밧줄이 파고들어 목뼈를 부러뜨리다 못해 목이 통째로 잘려도 이상하지 않다.
어디까지나, 보통의 인간이라면.
기병들은 이미 하마란이 인간을 초월한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본 직후였기 때문에, 메이드 차림의 그녀에게 야수들한테나 쓰는 이런 사냥법을 사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다. 맨주먹으로 말과 사람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인간을 어찌 보통 사람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 있겠는가.
“어?”
“이, 이건…”
하지만 그들은 이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말을 몰아 당기는 데도 마치 거대한 고목에 밧줄을 걸어 당기는 것처럼 옴짝달싹하지 않는 것이다.
“훗.”
가만히 버티고 서 있던 하마란의 입에서 작은 소리가 흘러나온 건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천천히 자신의 목에 걸린 밧줄로 손을 가져가더니, 문득 그것을 잡고 확 끌어 당겼다.
“헉!”
밧줄을 안장에 건 상태로 말에게 박차를 가하던 기병 하나가 말과 함께 그대로 확 끌려가 버린다. 뭘 어떻게 해볼 틈도 없었다. 마치 낚시에 걸린 붕어처럼 속절없이 획 하고 하마란의 손에 끌려가 버린 것이다.
하마란의 손이 다른 밧줄을 잡았다. 지켜보던 기병은 자신의 밧줄이 그녀의 손아귀에 잡히는 순간 기겁을 하며 얼른 안장에 묶어둔 것을 풀고자 했지만,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역시나 그대로 휙 하고 끌려가 말과 함께 바닥에 나뒹구는 처지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미친!”
“더! 밧줄을 더 던져! 어서… 헉!”
그 말도 안 되는 광경에 기겁해서 다른 기병들에게 그렇게 명령을 내리던 기사는 문득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거대한 무언가를 보고는 헛숨을 들이켰다. 하지만 그 기사는 그렇게 들이쉰 숨을 다시 내뱉지 못했다. 곧바로 한 뭉텅이가 되어 날아든 말과 사람의 체구에 깔려 짓뭉개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마, 말도 안 돼.”
자신의 목에 걸린 밧줄을 끌어당겨 도리어 거기 매달린 말과 사람으로 기사를 뭉개버리는 그 말도 안 되는 괴력에, 하마란을 에워싸고 있던 기병들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리고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들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존재를 건드려 버린 것인지.
하마란은 자신의 목에 걸린 밧줄을 천천히 벗겨 내더니 이내 자신을 에워싼 기사들에게로 걸음을 옮겼다.
주춤, 주춤.
기가 질려버린 기병들은 감히 다시 밧줄을 던질 엄두도, 그렇다고 그녀에게 달려들어 무기를 휘두를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이미 기선이 제압되어 항거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크악!”
“컥!”
그때, 하마란을 에워싸고 있던 병력의 일각이 갑자기 무너지는가 싶더니 기병들의 틈을 헤집고 오귀스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라.”
오귀스트는 하마란의 모습과 떡이 되어 널브러진 말과 사람, 그리고 질려버린 표정으로 감히 다가설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여기서 하마란을 자기 부인이라고 밝히면 다른 모든 이들에게 존경과 동정의 감정이 듬뿍 담긴 표정을 동시에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란.”
“…”
“지원이 도착했어. 머리를 잡으러 가려는데, 같이 가지 않을래?”
“좋아요.”
오귀스트의 말에 하마란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내미는 손을 잡고 곧바로 남편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이럇!”
하마란을 뒤에 태운 오귀스트는 곧바로 박차를 가하며 자신들을 에워싸고 있는 기병들을 뚫고 어디론가 달려가기 시작했다.
“서, 설마?”
“안돼! 막아!”
갑자기 그들이 어디론가 달려가는 모습을 황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던 기사들은 이내 오귀스트와 하마란이 향하는 곳을 깨닫고는 기겁을 하며 기병들을 독려해 그들의 뒤를 쫓았다.
“엥.”
요정의 문을 통해 할과 제랄딘, 그리고 한 무리의 수호자들까지 데리고 괴헨 영지에 도착한 형진은 적의 병력이 급히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 가는 거지?”
그런 형진의 말에 제랄딘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먼 곳을 바라보더니 언덕 위에서 우왕좌왕하고 있는 한 무리의 병력을 가리켜 보였다.
“저쪽으로 가는 모양인데요.”
“흠…”
형진은 제랄딘이 가리킨 방향을 보고는 이내 혀를 찼다. 적 병력을 끌고 말을 탄 채 언덕을 향해 질주하는 오귀스트와 하마란의 모습을 알아본 것이다.
“굳이 지원을 올 필요도 없었던 모양이군.”
하지만 말을 하면서도 뭔가 이상하다.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수호자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정도는 저들이 더 잘 알고 있었을 텐데, 이런 식으로 무모한 기습을 감행한 저의가 뭘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양동 작전 아닐까요?”
그때 제랄딘이 그런 말을 건넸다.
“양동? 어딜 노리고? 설마 우릴 끌어내려고?”
“정확히는 우리를 끌어낸 뒤 비어있는 곳을 노리는 방식일지도 모르죠.”
“흠…”
수호자들은 분명히 강한 존재들이지만 수가 적다는 문제가 있다. 이것은 다시 말해, 한 번에 지킬 수 있는 거점의 수가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요컨대, 우리를 이곳에 묶어둔 상태로 다른 거점을 노린다?”
“신전이든 사제든 사람들이든 일단 포로를 잡아둘 수만 있다면, 그걸로 협상을 시도하려는 건지도 모르죠.”
“과연. 그럴 듯 한데.”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각 지역의 신전으로부터 적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다는 보고가 빗발치기 시작한다. 물론 신전 안으로 들어올 엄두는 내지 못하고 있지만, 신전이 위치한 마을을 에워싸며 포위한 채 금방이라도 마을 전체에 불을 질러버릴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제법이야. 꽤 공을 들였는걸.”
공격을 받은 마을과 신전은 최소 10여개. 아디슈를 통해 끌어올 수 있는 수호자의 수에도 명백하게 한계가 있는지라 그 모든 곳을 동시에 구원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구원하러 가야 하지 않나요?”
“무엇 때문에?”
“그야…”
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저들의 행동은 거기까지야. 불을 지른다 해도 사람들의 원성만 살 뿐이지. 어차피 성역이 자리 잡은 신전에는 피해를 줄 수 없으니까. 불을 지르고 싶으면 지르라고 해. 우리로선 손해 볼 일이 없으니.”
“하지만…”
어차피 불을 질러봐야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이 좀 타버릴 뿐이고,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불을 지른 자들을 원망하며 더욱더 신전 쪽으로 마음이 기울게 될 것이다.
민족 의식이니 뭐니 하는 걸 일부러 주입시킨 상태도 아니고,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나라니 뭐니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니라 결국은 자신이 지닌 재산과 가족 정도가 전부다. 그리고 집은 그런 서민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재산이며 또한 다른 재산을 보관하는 장소이니, 그것을 불태워버린 원한은 결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제랄딘은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형진은 오귀스트와 하마란이 언덕 위의 무리들을 흩어 버리고 이내 한 사람을 사로 잡아 이리로 돌아오는 광경을 느긋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조바심 낼 필요 없어. 저들의 의도 따윈 바로 알 수 있을 테니까.”
“바로요?”
“그래. 지금 바로.”
형진은 그렇게 대답하고는 말을 타고 달려오는 오귀스트와 하마란을 맞이했다. 두 사람이 훌쩍 뛰어 내리자, 말은 피로를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입에 거품을 문 채 비틀거리다가 푹 주저앉고 말았다.
“수고 하셨습니다. 이 녀석이 지휘관입니까?”
“네.”
오귀스트는 그렇게 말하고는 허리에 끼고 있던 왜소한 체구의 남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사, 살려 주십시오.”
형진은 슬쩍 고개를 돌려 적의 병력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언덕에 멈추어 선 채 더 이상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말도 결국은 생물이기에, 무한정 전력 질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저 무리들이 타고 있는 말은 오귀스트와 하마란에게 휘둘려 여기저기 뛰어다니다가 지금 눈앞에서 주저앉아 버린 이 말처럼 기진맥진한 상황일 것이다.
아마도 이들의 목적은 최대한 관심을 끌어내어 신전 세력의 이목을 이쪽으로 향하도록 만드는 것이었으리라. 채권 추심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방어가 허술한 영지에 일천의 기병이 기습을 가했다면 누구든 놀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물론 그런 내용을 알고 있는 건 눈앞의 이 지휘관을 비롯한 몇몇 사람들 정도가 고작이겠지만. 기병을 일천이나 모아서 왔으니 잘 하면 포로 한두 명쯤은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을지도 모르고.
“제안을 가지고 왔겠지? 자, 내놔봐.”
“알겠습니다.”
예상대로 왜소한 체구의 지휘관은 품 안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두루마리를 꺼내 조심스럽게 형진에게 바쳤다.
형진은 그것을 제랄딘에게 건넸고, 그녀는 혹시라도 독 같은 것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확인 과정을 거친 다음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슈트라이허 대공이 신전의 대표자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적혀 있어요.”
“그게 누군데?”
형진의 물음에 제랄딘은 굳은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과거 엘 파르드 왕실이 몰살당했던 바르잔 사변의 중심 인물이며, 현재 엘 파르드에서 가장 큰 세력을 구가하고 있는 인물이에요.”
제랄딘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시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크루그와 카트린의 먼 삼촌 뻘이 되기도 하구요.”
“먼 삼촌 뻘?”
“적어도 스스로는 그렇게 주장하고 있어요.”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결국 진짜 왕족도 뭣도 아니라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멍청한 놈이군.”
기껏 일을 저질렀으면 확실하게 장악을 하든가. 이도 저도 아닌 상황에서 어정쩡하게 굴다가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을 봐서는 대국적인 안목이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일만 봐도 잔머리는 제법 굴릴 줄 아는 느낌이지만 그게 전부라고나 할까. 하기야 지금 상황에서는 그 정도라도 대단한 일이지만.
“기껏 초대를 해줬는데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겠지. 그럼 바로 가볼까.”
함정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제랄딘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형진이 이미 마음을 굳혔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다른 말을 꺼냈다.
“이 녀석은요?”
그녀의 말에 왜소한 체구의 지휘관은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형진은 그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으며 오귀스트에게 말했다.
“데리고 온 수호자분들 데리고, 저 친구 영지에 잠시 구경을 다녀오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지금요?”
“네. 바로 지금. 아, 가는 김에 저 친구들도 같이 데리고 가는 편이 좋겠네요.”
형진의 말에 오귀스트는 언덕 위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기병들을 바라보며 피식 웃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수호자들을 데리고 가란 얘기는, 다시 말해 예정을 앞당겨 이 지휘관의 영지에 대한 채권 추심을 마치고 오란 뜻임을 이해한 것이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오귀스트와 하마란이 포로로 잡아온 지휘관의 영지로 수호자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모습을 잠시 지켜보던 형진은 제랄딘과 할에게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 가볼까. 그 자칭 대공이란 자의 초대에 응하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