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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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계약
태어나기는 했는데, 아이가 태어났다는 실감은 요만큼도 느끼지 못했던 기이한 출산이 끝난지 일주일째. 아무리 봐도 털뭉치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 작은 꼬리들의 모습에 정말 아빠가 된 거 맞나 하며 미엘이 말한 시일인 일주일이 되기가 무섭게 부리나케 몰려온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인간과는 확실히 달라서 감염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든가 하는 식의 제한이 없다는 정도. 하기야 설령 그렇다 해도 여신을 통째로 몸 안에 담고 있는 신녀 유아가 있으니 큰일은 없겠지만, 슈트라이허가 감염으로 인한 패혈증으로 죽은 걸 생각하면 마냥 안심하고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이런, 실수다. 이 좋은 날에 그딴 놈을 떠올리다니. 반성하자. 반성.
미엘의 엉덩이 쪽에 쪼그리고 앉아서 이제나 저제나 아이들이 모습을 드러내기를 기다리고 있는 카트린의 옆으로 다가가 같은 자세를 취한다. 유아도 그 대열에 동참하고 싶은지 의자에서 엉덩이를 들썩거리고 있었지만, 임신 중인 그녀는 쪼그려 앉는 것조차도 금기 사항이라 그럴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식구들의 모습에 미엘이 피식 웃으며 이러게 말했다.
“뭔가 기분이 묘하네요.”
“응? 왜? 뭔가 느낌이 와?”
형진이 얼른 반응하며 그렇게 물었지만 미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라… 그렇게 모여서 제 엉덩이를 뚫어지고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해지네요.”
“크흠…”
“풉.”
“킥킥.”
하지만 꼬리가 난 부위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지금의 미엘은 인간의 모습도 아닌 거대한 흑요호의 모습이니까.
“그나저나, 일은 잘 마무리된 건가요?”
“그럭저럭.”
형진의 대답에 카트린이 빙긋 웃는다.
“그럼, 이제는 폐하라고 불러야 겠네요.”
“…”
슈트라이허의 대면 때 라이언하트를 드러내 보인 사실은 포로가 된 일만 병력을 중심으로 서서히 엘 파르드 전역에 퍼져 가고 있었다. 포로의 처지이긴 해도 다른 사람과의 접촉 자체가 차단된 것도 아니니 당연한 일이다. 공사 현장에서 일할 때라든가, 김밥천국에서 식사를 할 때라든가, 가스트샵에서 물건을 살 때 등등, 다른 사람에게 그 때의 일을 털어놓을 기회 따위는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포로들을 그렇게 방목에 가깝게 풀어놓은 이유도 따지고 보면 사람들에게 사자왕의 재림이라는, 어떻게 보면 신전이라는 새로운 지배자에 대해 적대감을 완전히 박살낼 수도 있는 사실을 퍼뜨리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일부러 그 사실을 홍보하고 주입하려고 들면 오히려 반발이 일어날 수밖에 없지만, 이런 식으로 자발적으로 퍼져나간다면 그런 반발조차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확실히 많이 좋아지긴 했나보다. 이런 말을 웃으면서 할 수 있게 되었으니. 마음의 상처 때문에 한때는 걷지도 못했던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카트린이 그런 식으로 날 부르면 슬퍼질 거다. 그냥 하던 대로 해.”
“그럼… 아저씨?”
“끙…”
“킥킥킥.”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미엘이 작게 몸을 떨며 말했다.
“시작되려나 봐요. 읏.”
“뭐?”
화들짝 놀라 그녀의 엉덩이, 아니 꼬리 부위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뽕!
마치 샴페인 뚜껑을 여는 듯한 소리와 함께 작은 꼬리 하나가 미엘의 몸에서 떨어져 나오더니 이내 형진에게로 휙 하고 날아들었다.
“어?”
갑작스럽게 날아들어 가슴에 찰싹 달라붙는 작은 털뭉치의 느낌에 당황해 하고 있는데, 문득 다시 한 번 뽕!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여우귀가 달린 검은 머리털의 작은 아이 모습으로 변한다.
“잠시만요!”
“놀라지 마세요!”
미리 언질을 받았는지 두 여신과 몽마들이 허겁지겁 형진에게 달려들어 아이를 미리 만들어둔 배냇옷으로 감싸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마치 거머리처럼 형진의 품에 달라붙은 채 떨어지려고 들지를 않았다. 여신들은 당황해 하며 아이를 얼러봤지만 소용없었다. 오히려 얼굴을 찌푸리며 화를 내려는 듯한 표정마저 보인다. 아빠 닮아서 그런가 무엄하기 이를 데 없는 아기다.
“어떻게… 된 거지?”
아이를 안아야 할지 아니면 가만 둬야 할지 몰라 두 손을 어정쩡하게 들고 어쩔 줄 몰라 하는데, 미엘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글쎄요. 저도 어떻게 된 건지 통… 아! 설마 정기 때문에?”
“정기?”
“보통은 아이의 모습이 되더라도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거든요. 그 상태로 정기를 받아들여서 꼬리가 하나 나올 때쯤이 되어야 비로소 스스로 걷게 되죠.”
“그럼… 나한테서 흘러나오는 정기 때문에 이러는 거란 소린가?”
“아마도요.”
일반적으로는 태어난 시점에서 부모 가운데 정기를 많이 지닌 쪽은 당연히 흑요호쪽이 되어야 한다.
사실 아이가 태어난 시점에서 흑요호가 반려의 곁을 떠나는 진짜 이유중 하나도 이 때문이다. 성체와는 달리 아이는 자제력이라는 것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칫 반려에게 달라붙기라도 하면 그렇지 않아도 노화로 인해 쇠약해진 반려의 몸으로부터 정기를 과하게 빨아들여 치명적인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으니 거리를 둘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형진의 경우에는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정기의 양 자체도 일반인보다 높은데다, 그나마도 유아의 몸 안에 갇혀 있는 여신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증폭되어 버린 상태다. 평생이 걸린다는 흑요호의 잉태가 며칠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끝날 정도인데 오죽할까. 아이가 미엘이 아닌 형진에게 달라붙은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줘보세요.”
“네.”
형진은 조심스럽게 여신에게서 배냇옷을 받아서 아이에게 입혔다. 아이는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형진을 올려다 보았다.
“크윽!”
작고 동글동글한 그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형진은 가슴이 찌릿하게 옥죄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실감했다. 마침내 자신의 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형진은 두 손을 부들부들 떨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착하지. 아빠가 옷 입혀 줄 테니까, 가만히 있어야 돼.”
“빠?”
“커흑!”
조그마한 입술을 움직여 작은 소리를 내자 형진은 다시 한 번 가슴을 부여잡고 비명인지 탄성인지 환성인지 모를 소리를 질렀다.
“드, 들었지? 아빠라고 했어!”
“하하…”
사실 아빠나 엄마를 가리키는 단어는 문화나 인종을 막론하고 거의 비슷비슷하다. 흔히 이것을 가리켜 엄마와 아빠 현상이라고 부르는데, 가짜동족어의 일종으로서 단순히 아이가 처음으로 발음할 수 있는 음절이 부모를 가리키는 단어로 고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듣는 입장에서는 그런 어문학적 이론 같은 건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아이가 자신의 말에 반응했다는 사실이니까.
그렇게 부들부들 떨며, 누가 보면 좋은 건지 흥분한 건지 아니면 둘 다 인지 모를 모습으로 아이에게 배냇옷을 입히고 있는데,
뽕! 뽀뽀뽕! 뽕! 뽕!
샴페인 뚜껑 따는 소린지 방귀 소리인지 모를 소리가 연이어 터지더니 앞서와 마찬가지로 형진에게 일제히 날아들었다.
“컥!”
얼굴이고 몸이고 빈자리에 빼곡하게 달라붙은 털뭉치는 다시 한 번 뽕뽕 거리는 소리를 터뜨리며 아이의 모습으로 변했다.
“우, 우와아…”
옆에서 그 스펙터클하기 이를 데 없는 부자, 아니 부녀 상봉의 모습을 지켜보던 카트린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말았다. 아마 형진이 보통의 남자라면 거의 테이크 다운을 방불케 하는 아기들의 습격을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나동그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아닌가. 평범한 보통의 남자라면 이런 식으로 아기들이 달라붙지도 않았을 테니까. 애초에 넘어질 일 자체가 없었으리라.
아이들이 모두 형진에게 달라붙어 버리자, 미엘은 급히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오랜 만에 보는 미엘의 인간 모습. 하지만 이래봬도 이제는 일곱이나 되는 아이의 엄마다.
“괜찮아요?”
“어, 그게… 일단은?”
부드러운 촉감을 지닌 아이들의 몸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상태라 당황스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날아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보통 아이들은 본능적으로라도 아빠보다는 엄마를 더 좋아하게 마련이다. 뭐니 뭐니 해도 일단 엄마 쪽이 일용할 양식을 챙겨주는 입장이니 본능적으로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지금 상황도 그래서다. 형진이 오히려 더 양질의 강력한 정기를 품고 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떨어지고 싶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잠깐만요.”
그래도 엄마는 뭐가 달라도 다른 모양이다. 여신이며 몽마가 떼어내려 할 때는 꿈쩍도 않던 아이들이 미엘의 손에는 쉽게 이끌린 채 떨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울상이 된 채 형진을 향해 손을 허우적거리긴 했지만 어쨌든 말이다.
“유아님. 죄송한데 잠깐 도와주실래요?”
“네? 제가요?”
유아는 귀여운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무의식중에 자신의 배를 쓰다듬고 있다가 미엘의 부탁을 받고 허겁지겁 일어나 그들에게 다가섰다.
“잠깐만 안아 주세요.”
“네.”
아이는 유아를 보더니 잠시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품에 안겼다. 형진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지만 유아 역시 여신의 힘을 가져다 쓸 수 있는 입장이기에 어느 정도 저항감 없이 안긴 것이다.
역시.
미엘은 그 모습을 보고는 혹시나 했던 가정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유아는 당황스런 표정이었지만, 그 내막 자체가 일단 당사자인 그녀에게만큼은 비밀이었기 때문에 미엘은 모르는 척 곧바로 분신을 불러내어 아이들에게 옷을 입히는 일을 시작했다.
열 명이나 되는 미엘이 동시에 움직이며 일사분란하게 일을 시작하자,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확실히 분신이 있으니 이런 점에서는 편하겠네.”
아이가 일곱이지만, 엄마는 열이나 된다. 침실에서 열 명이나 되는 미엘을 상대할 때는 정말 생명의 위협까지 느껴질 정도였지만, 이제는 아이들을 하나씩 맡아도 셋이나 남는다. 굳이 유모니 육아 도우미니 하는 식의 사람을 붙이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여유가 있는 셈이다.
하지만 미엘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말 안했던가요?”
“뭘?”
“보통은 이렇게 많은 아이가 한꺼번에 태어나거나 하지 않아요. 많아봐야 둘 정도가 고작이죠.”
“어째서?”
“일반적인 인간의 정기로는 그게 한계거든요.”
“아하…”
형진이나 다른 사람들은 그런가보다 했지만, 사실 지금 모여 있는 이들 가운데 가장 크게 놀라고 있는 이는 따로 있었다.
이제는 완전히 여신의 탈것으로 전락한 하엘이 바로 그 인물이다.
하엘은 비록 지금은 여신의 탈것으로 취급당하고 있지만, 어쨌든 보기 드문 미엘의 동족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직접적으로 혈연관계인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엘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이모라고 불러도 무방한 그런 관계라고나 할까.
그런 하엘이기에 더 크게 놀랄 수밖에 없다.
흑요호가 한 번에 일곱이나 되는 아이를 낳은 것도 전대미문이고, 이렇게 빨리 아이가 태어난 것도 전대미문이다. 뿐인가. 태어난 아이들이 엄마는 거들떠도 안보고 곧바로 아빠에게 달라붙은 것 역시 전대미문이다. 그야말로 전대미문 온 퍼레이드다.
도대체 얼마나 강인한 정기를 가지고 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인가.
하엘은 잠시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이내 일곱이나 되는 아이들이 다닥다닥 달라붙은 채로 기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 형진에게 시선을 던졌다.
어떻게 보면 하엘이 파괴와 재생이라는 신에 귀의한 것도 결국은 번식의 의무를 어떻게든 회피하려는 이유에서다. 다행히 이것은 효과가 있었고, 본신은커녕 꼬리조차 함부로 드러내지 못했던 미엘과는 달리 하엘은 이렇게 작게나마 흑요호의 모습을 취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억제를 시키기는 했어도 번식의 의무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천형이나 다름없는 발정기를 완전히 가라앉히는 건 불가능한 일. 그 번식의 의무를 일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안에 해결할 수 있다면 어떨까.
번식의 의무를 그렇게 기피했던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그 기나긴 잉태기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형진은 그야말로 흑요호의 반려로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
하엘은 고민에 빠졌다. 물론 그래봐야 형진을 덮치기는커녕 말 한 마디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일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