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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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불씨
일전에 물었을 때는 이런 식의 버프 능력에 대한 것이 없었기에, 형진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형진이 자신의 능력을 물었을 때, 요안나는 성녀로서의 자신을 밝히고 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그의 몸을 탐한 것 자체가 성처녀로서의 자신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하는 의식이기도 했기에, 다른 누구도 아닌 형진에게 그것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녀는 이제 형진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사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째서 공포와 죽음이 그녀로 하여금 형진을 돌보게 했는지, 또 어째서 자신이 그에게 그토록 끌리는지 모두 이해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과거의 자신을 일깨우는 일이더라도, 그런 자신마저도 요안나는 지금 이순간 형진에게 도움이 된다면 끄집어내어 불사를 준비가 되어 있었다.
“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글쎄요.”
요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직 비밀은 지켜져야만 했다. 그가 좀 더 준비가 될 때까지, 그녀는 공포와 죽음께서 예비해 놓은 대로 그가 올바른 길을 밟아 나갈 수 있도록 그 길을 열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이다. 기수란 이끌어 가는 자. 그녀는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길을 가게 될 것이다.
형진으로서는 이런 터무니없는 힘을 미리 말하지 않은 것이, 그리고 느닷없이 지금 드러내 보이는 것 또한 의아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계속 숨겨가던 것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꺼내보이는 것을 보면 별로 중대한 비밀이 아니었던 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요안나는 현재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데 사소한 망설임조차 보이는 기색이 없었으니까.
게다가 분명한 것은, 그녀가 공포와 죽음의 신녀이며 그것은 자신이 현재 속한 신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는 이상 성녀의 깃발이 지칭하는 아군의 범주에 항상 속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과 자신의 동료들로 하여금 맞서는 자들을 압도적으로 제압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게 될 것이다.
“우와아아아…”
“정말 대단해요!”
“언니… 멋진 분이셨군요?”
당장 카트린과 수빈, 그리고 승희 역시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전투가 익숙하지 않은 그녀들에게 있어 지금 전해진 버프는 순식간에 레벨이 몇이나 급상승한 것과 같은 효과를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럼… 출발한다.”
“네.”
형진은 앞으로 달려나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요안나가 지닌 힘은 저쪽 세계에 존재하는 추종자들 중에서도 쉽게 보기 드문 힘이다. 그런 힘을 지닌 존재가 지구에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이전에 요안나는 분명 자신이 마녀이며 또한 그러한 힘을 지닌 사람들이 이미 지구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식의 말을 했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파편이라고 부른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다. 인스턴트 킬은 저쪽 세계에서도 대적할 자가 없는 압도적인 힘이고, 어떻게 보면 자신이 타나토스라는 세계로 가게 된 것도 그런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지구 어딘가에 자신이나 요안나 같은 힘을 지닌 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한다는 뜻이 된다.
[인스턴트 킬! ‘길 잃은 망자’가 죽었습니다!] [인스턴트 킬! ‘문드러진 망자’가 죽었습니다!]“으…”
뒤따르던 카트린이 비척거리며 일어서는 시체들을 보며 작은 신음 소리를 낸다. 혹시나 싶어 흘깃 바라보았지만, 단순히 징그럽다는 식의 표정일 뿐 그녀가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는 트라우마가 일깨워진 모습은 아니다. 적어도 표정만은 수빈이나 승희 역시 카트린과 다를 바가 없다.
형진은 여신들이 열심히 룻을 집어 드는 모습을 보며 빙긋 웃고는 앞으로 달려 나갔다.
이번에는 숫자가 좀 많다. 적어도 열댓 명은 되는 느낌. 형진은 단숨에 모두 쓰러뜨리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내리고는 잠시 그들을 무력화시키고자 했다.
콰아아!
“헉?”
하지만 버릇처럼 용오름을 사용한 형진은 뒤이어 나타난 현상에 화들짝 놀라야만 했다.
“우와!”
“이건?”
헐레벌떡 뒤따르던 소녀들에게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어두컴컴한 인던 안에 화려한 불꽃의 소용돌이가 나타나 좀비들을 휩쓸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게… 도대체?”
그러나 가장 놀라고 당황한 것은 그것을 사용한 당사자였다. 그냥 평소처럼 용오름을 썼을 뿐인데, 이런 식으로 화염이 뒤섞이고 바람의 힘이 증폭된 거대한 불의 소용돌이가 만들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크!”
자칫하면 불과 바람의 힘이 증폭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용오름의 힘만으로도 좀비들이 모조리 불타고 찢겨질 것 같은 기세라, 형진은 얼른 꼬리들을 날려 좀비들을 격추시키는 묘기를 보여야만 했다.
“일전에 호주에서 산불이 났을 때 이런 식으로 화염 토네이도가 발생한 걸 본적이 있어요. 역시 진은 대단한 사람이었군요.”
“하하…”
솔직히 말해서 쓴 자신도 놀라 버린 터라 감탄 섞인 요안나의 말이 어쩐지 남사스럽게 느껴진다.
혹시나 해서 이번에는 폭렬차기를 써봤다.
그러자, 역시나 이번에도 격렬한 화염의 폭발이 연쇄적으로 터지며 좀비들을 박살내 버린다. 원래부터도 내구도나 방어력이 허약한 하급 좀비들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순식간에 사람의 형체를 가진 녀석들이 불덩이가 되어 박살나는 모습을 보니 형진으로서도 솔직히 좀 보기가 껄끄럽다.
원래부터도 상대가 안 되는 하급 좀비들인데, 요안나의 무지막지한 버프에 영약 덕분에 강화된 형진의 속성력까지 더해지니 완전히 화염 방사기 앞에 놓인 지푸라기 신세나 다름없다.
순식간에 좀비들을 밀어 버리고 앞으로 전진하자 마침내 첫 번째 중간 보스가 모습을 드러낸다.
“크후… 크후우우…”
너덜거리는 상의를 걸친 거한이, 갈비뼈 한쪽이 뜯겨진 모습으로 작은 언덕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갈비뼈 한쪽이 뜯겨 나간 탓인지 말은 못하고 바람 빠진 소리만 내고 있긴 하지만, 클리버를 손에 든 채 붉은 안광을 희번뜩거리는 모습이 제법 괴기스럽다.
물론 그래봐야 형진에게는 좀 더 커다란 과녁판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만.
“크후아아… 아?”
양손을 번쩍 치켜들고 고함을 지르려고 했던 모양이지만, 순식간에 다가선 형진이 단검을 찌르는 순간 붉은 섬광 같은 것이 번뜩이더니 중간 보스의 복부에 커다란 구멍이 뚫려 버린다.
[인스턴트 킬! ‘시체 파괴자’가 죽었습니다!]“헐?”
뱃가죽이 좀 두껍구나 싶어서 좀 더 힘을 주는 느낌으로 찔렀을 뿐인데, 순간 붉은 벼락 같은 것이 단검으로부터 뻗어 나가며 단숨에 보스의 배를 꿰뚫어 버렸다.
이 정도라면 더 이상 근접 공격기라고 부르기도 난감할 정도다. 아니, 애초에 형진은 무슨 스킬 같은 걸 쓴 것조차 아니라 그냥 힘을 다해 단검으로 찔렀을 뿐인데 이런 현상이 나타나 버렸다.
차라리 무슨 검기 같은 거라면 그런가보다 할 텐데, 불과 바람의 속성력이 그의 무지막지한 공격력과 만나 뻗어나가는 형상이니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조차 모르겠다.
원래부터도 비실체형 적이 출몰한다는 걸 빼면 난이도 자체는 높지 않았던 던전이라, 클리어도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오빠!”
“응?”
“오빠가 요리할 때 맨날 불쇼 보여주는 게 사실은 속성력을 기르려고 그런 거였어요?”
“엥?”
눈빛을 반짝반짝 빛내며 묻는 카트린의 모습이라니. 하기야 느닷없이 이런 모습을 보여주면 그런 식의 오해가 생길 법도 한 일이다.
“아니야. 이건 그냥… 운이 좋아서 얻어걸린 거라고나 할까. 게다가 요안나의 버프 덕도 봤고.”
형진이 그렇게 설명을 해주었지만, 카트린은 믿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방금 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스킬도 아닌 그냥 찌르기였다는 쪽이 오히려 믿기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음… 그런가요.”
“그런거야.”
요안나는 인던에서 빠져 나오기가 무섭게 이미 본래의 메이드복으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아마도 갑옷을 입고 깃발을 든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양이다.
“수빈양. 다음은 어디죠?”
수빈은 수첩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음… 다음은 얼어붙은 황야라는 곳인데요. 그곳에 가기 전에… 혹시 진님은 보스 때문에 인던을 도시는 건가요?”
“네. 맞습니다.”
자세한 내막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형진의 진정한 목적을 알아채다니, 수빈도 의외로 눈치가 꽤 좋은 모양이다.
형진의 대답을 들은 수빈은 곧바로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마침 근처에 좋은 목표가 있어요.”
“어떤?”
“필드 보스에요. 타락한 성자 아크리치. 사실 방금 전에 클리어한 인던은 바로 이 아크리치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설정이래요.”
“호오. 그거 꽤 재미있겠네요.”
사실 필드 보스는 인던에 비해 효율이 좋지 못하다. 형진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더 강력한 아이템 보다는 더 많은 수의 사념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면, 기왕 여기까지 온 김에 들러도 나쁘지는 않다. 일종의 보너스 스테이지로 생각해도 되는 일이니까.
물론 필드 보스를 보너스 스테이지 정도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절대 일상적이지 않은 발상이다. 보통은 파티가 아닌 길드 단위로 공격대를 편성해서 공략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먼 곳에 있나요?”
“아뇨. 걸어가도 오 분 밖에는 안 걸려요.”
“좋군요. 안내 부탁드립니다.”
“네!”
인던을 돌 때 이미 요안나 역시 이동 스킬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다. 일행은 곧바로 수빈의 안내를 받아 필드 보스가 있다고 전해지는 어두컴컴한 계곡의 입구에 도착했다.
“이 안쪽으로 들어가면 널찍한 공터가 나오는데, 그곳에 있대요.”
“알겠습니다. 안내 감사합니다.”
“별 말씀을요.”
형진은 수빈에게 인사를 하고는 뒤이어 카트린에게 말했다.
“들어가자마자 입구 근처에 성물을 소환해 두도록 해.”
“바로요?”
“응.”
카트린은 바로 보호와 균형의 성물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지금까지는 딱히 그 능력을 쓸 필요가 없었지만, 마법사 타입의 필드 보스라면 어떤 형태의 광역 공격을 해올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미리미리 대비를 해두는 편이 좋다.
형진과 요안나가 앞장 서고 여신들이 뒤를 따르며 다시 세 명의 소녀들이 후미를 맡는 형태로 그들은 곧장 계곡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수빈의 말대로 널따란 공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진이 뒤를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자, 카트린은 얼른 손을 앞으로 내밀며 외쳤다.
“성물 소환!”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보호와 균형의 성물이 모습을 드러내며 성물로부터 일정 반경 지역에 성역이 선포되었다.
뒤이어 어느 새인가 장비 토글을 마친 요안나가 하얀 백합 문장이 그려진 깃발을 두 손으로 잡은 채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자, 성녀의 깃발 버프가 다시 한 번 사람들에게 베풀어 진다.
그리고, 그렇게 모든 준비가 끝나자 비로소 공터에 검은 빛의 마법진이 새겨지며 필드 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진은 필드 보스인 아크리치가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앞으로 탄환처럼 쏘아져 나가며 단검을 찔렀다. 그러자 앞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단검에서 불의 창이라고 불러도 좋을 기운이 순식간에 아크리치를 향해 뻗어 나갔다.
하지만 역시 필드 보스라고 해야 하나. 예상치 못한 기습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아크리치는 순간 이동 기술을 활용해 그의 공격 범위에서 빠져 나가 바렸다.
“쳇!”
단숨에 결판을 내려고 했던 형진은 처음의 일격이 빗나가자 혀를 차며 조금 떨어진 허공에 모습을 드러낸 아크리치를 향해 뛰어올랐다.
“크크크크…”
아크리치는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허공에 서너 개의 거대한 불덩어리들을 만들어내더니 그것을 형진을 비롯한 다른 파티원에게 골고루 쏘아댔다.
형진은 볼 것도 없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불덩이를 인스턴트 킬로 지워버렸다.
“꺅!”
성역이 발동되었음을 알고 있었음에도 기습적으로 날아든 커다란 불덩이의 모습에 소녀들은 깜짝 놀라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불덩어리는 성역이 보호하는 영역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마치 신기루처럼 허무하게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꽝!
대신 폭음은 다른 곳에서 일어났다. 어느 새인가 형진과는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던 요안나가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불덩이를 향해 깃발을 휘둘러 파괴해 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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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휘는 별로 반응이 좋지 않네요.
역시 그냥 일화가 나을 것 같은데. 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