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25
425====================
93. 대회 준비
두 꼬리 도마뱀을 처치하자 일단 물러나 있던 여신들이 다시 블랙베리 채집에 열을 올린다. 평소에는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황혼과 망각까지도 열심인 걸 보니 맛이 제법 마음에 들었나 보다.
가시덤불을 헤치고 좀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골짜기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흠…”
주위를 둘러봤지만 다른 도마뱀의 흔적은 느껴지지 않는다. 개체수가 적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로 적을 줄이야. 이래서는 운이 좋아야 한 마리쯤 잡을 수 있을 정도에 가깝다.
투덜대며 골짜기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문득 동물의 발자국 같은 것이 남아있는 것을 발견했다. 길쭉한 잎사귀 두 개를 겹쳐 놓은 듯한 모양으로 봐서는 발굽이 두 개인 초식 동물의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식으로 발굽이 갈라진 생물에는 소, 돼지, 양, 사슴 등이 있는데, 흔히 가축 전염병으로 유명한 구제역은 바로 이렇게 발굽이 갈라진 가축들만 걸리는 병으로 유명하다.
앞굽 모양이 길고 뒷굽 자국이 따로 없는 걸로 봐서는 사슴 종류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자세한 것은 직접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을 듯 하다.
사냥개의 코장식으로 가만히 흔적을 추적해 따라가자 이내 상당한 수의 사슴들이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사슴이라.”
동화 같은 곳에서 등장하는 사슴은 대부분 귀여운 꽃사슴 같은 걸로 묘사가 되지만, 실제 사슴을 보니 그다지 귀여운 느낌은 없는 것 같다. 특히나 눈앞의 놈들은 덩치가 무슨 말보다도 더 큰 그런 놈들이라 더 그런지도. 아니, 이 정도로 크면 순록이라고 봐야 하나.
사슴이든 순록이든 고기의 맛은 특유의 냄새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편이다. 사실 야생의 동물들 대부분이 원래 그런 식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동굴곰 같은 생물이 오히려 비정상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일단 평소에 보기 드문 식재료를 구하러 나온 것이니 사슴 고기도 한 번 구해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경우 가축은 암컷의 고기가 맛있는 경우가 많다. 수컷의 경우에는 돼지처럼 웅취라고 불리는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고 이래저래 고기가 질기다는 인식도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곳도 그런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일단 암수 한 마리씩을 잡아 보기로 했다.
형진은 가만히 흑요호의 힘을 일으킨 다음, 목표의 선택이 끝나자 마치 저격을 하는 느낌으로 한 마리씩 쓰러뜨렸다. 순식간에 두 마리의 사슴이 쓰러지자,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던 사슴들은 기겁을 하며 도망쳐 버린다.
가까이서 보니 수놈의 뿔이 생각보다 훨씬 크고 멋지다. 사슴뿔이라고 하면 흔히 녹용 같은 약재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이 게임에서는 딱히 그런 건 구현이 되지 않은 모양이다. 좀 특이한 사슴이라면 모를까. 그냥 사슴은 흔하니까 딱히 영약으로 분류가 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단 모양이 멋지니 장식품으로나 쓰면 몰라도 딱히 다른 용도는 없어 보인다.
도마뱀과 마찬가지로 피를 빼고 도축을 해서 고기와 가죽을 분리해 인벤토리에 담는다. 역시 게임이라 그런지 뚝딱뚝딱 빠르게 처리가 끝난다. 여신들은 형진이 그렇게 뒤처리를 하는 모습이 좀 보기 그랬는지 고개를 돌린 채 마치 망을 보는 듯한 모습으로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사냥한 사슴을 정리하는 일이 끝나자, 비로소 여신들이 쪼르르 다가와 어깨 위에 자리를 잡는다.
골짜기 안으로 좀 더 들어가 보았다. 어디선가 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다가가서 살펴보니 골짜기 안쪽에 자리 잡은 옹달샘으로부터 흘러나온 물이 작은 냇물을 이루고 있다.
이런 식으로 숲 속에 위치한 샘에는 여러 동물들이 들락거리기 마련이다.
방금 전 사냥했던 사슴들도 그런 식으로 물을 먹으로 찾아왔던 녀석들이 아닐까.
샘 주위의 흔적을 면밀히 살펴보자, 쓸만한 사냥감들이 포착되었다.
그 중에서도 형진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보통의 사슴보다 훨씬 큰 덩치를 가졌을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사슴의 발굽 자국이었다. 반드시 크다고 좋은 것은 아니지만, 게임이란 것이 다 그렇듯이 이 정도로 차이가 나면 보통 사슴이라기 보다는 엘리트 몹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추적한다. 샘에 다녀간지 꽤 되어서 그런지 흔적이 상당히 옅은 편이라 추적이 그리 쉽지 않다.
계속해서 자취를 따라가는데, 문득 어디선가 기이한 향기가 퍼지기 시작한다. 어쩐지 꽃 향기 같기도 하면서 달짝지근한 느낌의 이 향기는…
“만드라고라?”
이미 한 번 영약으로 만들어 복용한 적이 있는지라, 형진은 그 향기의 정체를 대번에 알아차렸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그 향기가 흘러나오는 방향이 자신이 쫓고 있는 대형 사슴의 자취와 일치하고 있다는 점.
발 소리를 죽인 채 그 방향으로 계속 움직이자, 골짜기 안에 자리 잡은 오목한 분지 안에 석상처럼 우뚝 서 있는 커다란 흰 사슴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맙소사.”
사슴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사슴이 있는 곳 주위에 피어난 보랏빛 꽃들을 보는 순간 형진은 놀란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별 것 아닌 잡초마냥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그 꽃들 모두가 바로 만드라고라임을 알아본 탓이다.
최소 열 개? 아니, 저 정도면 이십 개는 충분히 넘을 듯한 느낌이다. 만드라고라는 지능과 마력에 스탯 경험치를 주는 영약이다. 물론 여기서 일컬어지는 지능은 단순히 머리가 좋아진다는 뜻이 아니라 마법을 사용할 때 보다 높은 효과를 얻게 해주는 보정치의 역할이긴 하지만 어쨌든 상당히 좋은 영약인 건 틀림없는 일이다.
형진은 이미 일전에 본체로 영약을 퍼먹은 덕분에 한두 개 정도만 더 먹으면 충분하다. 그러니 저 만드라고라는 아이들과 마눌들에게 가져다 줘야겠다.
예상외의 대박에 절로 콧소리가 나온다. 하지만 그가 그런 반응을 보이기가 무섭게, 마치 풍경의 일부처럼 보이던 커다란 흰 사슴이 그를 인식했는지 고개를 번쩍 치켜든다.
그리고 곧바로 흘러나오는 메시지.
[엘리트 몬스터 ‘근엄한 숲의 주인’이 ‘블러드러스트’를 발동합니다!] [블러드러스트 효과로 인해 엘리트 몬스터 ‘근엄한 숲의 주인’의 체력이 20퍼센트 증가합니다!] [블러드러스트 효과로 인해 엘리트 몬스터 ‘근엄한 숲의 주인’의 이동속도가 25퍼센트 증가합니다!] [블러드러스트 효과로 인해 엘리트 몬스터 ‘근엄한 숲의 주인’의 공격속도가 40퍼센트 증가합니다!]데자뷰인가. 이 메시지, 어디서 많이 봤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형진의 감상이야 어찌 되었든, 근엄한 숲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커다란 흰 사슴은 콧김을 세차게 뿜어내더니 이내 피처럼 붉은 빛깔로 몸의 색이 바뀌었고, 그 과정이 끝나자 곧바로 그를 향해 돌진해 왔다.
역시 이 상황,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일견 상황이 급박해 보이긴 했지만, 형진은 딱히 피할 생각이 없었다. 과거에는 엘리트 몬스터에 쫄아서 이리저리 도망다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이미 얘기가 다르다. 그를 긴장하게 만들려면 최소한 필드 보스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순간 검은 기운이 뭉클거리며 솟아나 형진의 몸을 감싸더니 거대한 흑요호의 모습을 갖추었고, 그렇게 완성된 환수의 형상은 거침없이 돌진해 오는 피처럼 붉은 사슴을 향해 앞발을 휘둘렀다.
퍽!
두 번도 필요 없이 사슴은 그대로 흑요호가 내지른 앞발에 목덜미가 짓눌린 채 엎어지고 말았다. 형진은 그렇게 꼼짝도 못하는 엘리트 몬스터의 미간에 다시 일격을 가했다.
[인스턴트 킬! ‘근엄한 숲의 주인’이 죽었습니다!]원래 눈처럼 하얀 빛의 가죽을 가지고 있던 놈이었지만, 블러드러스트 상태에서 죽은 탓인지 금방이라도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붉은 빛이 여전히 남은 상태로 놈은 숨을 거두고 말았다.
흑요호의 기운을 거두고 다가가는데, 뭔가 특이한 것이 보였다.
“이건…”
웅장한 고목을 연상시키는 놈의 뿔에 등롱 비슷한 형태의 무언가가 매달려서 희미한 빛을 뿜어 내고 있었다. 가만히 손을 내밀자 그것은 툭 하고 형진의 손에 떨어지며 안에 머금고 있는 황금빛 구슬 같은 것을 드러냈다.
아이템정보
명칭 : 숲의 영혼
등급 : 진귀
사용제한 : 없음
설명 : 영약을 먹고 자라난 엘리트 몬스터 숲의 주인의 기운이 담긴 결정체. 특정한 조건에서만 획득이 가능하기 때문에 손에 넣기가 무척 힘들다.
효과 : 영약의 효과를 크게 증폭시킨다. (그외 알려지지 않은 효과 한 가지.)
강화시 효과 : 강화 불가.
“이것 봐라.”
영약의 효과를 증폭시키는 결정체라니. 의외의 장소에서 대단한 물건을 손에 넣었다. 아마도 특정한 조건이라는 것은 블러드러스트 상태에서 놈을 쓰러뜨리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역시 가장 신경이 쓰이는 건 알려지지 않은 효과라고 표현되어 있는 부분이다.
“아무튼 일단 접수.”
형진은 일단 숲의 영혼을 인벤토리에 넣어 두고는 방금 사냥한 커다란 사슴의 시체를 도축하기 시작했다.
피처럼 붉은 기운이 감도는 가죽은 물론이고, 고기 역시 딱 봐도 감이 잡힐 정도로 육질이 뛰어나다. 이 정도라면 특급 식재료라고 봐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영약을 먹고 자란 놈인지라 피는 피대로 일단 따로 저장을 하고, 가죽도 조심스럽게 잘 벗겨내어 담아 놓았다. 남겨진 고기 역시 부위별로 잘 나누어 인벤토리에 담고 나서야 형진은 비로소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밭으로 다가갔다.
“이게 전부 만드라고라인가.”
형진은 콧노래를 부르며 그곳에 있는 만드라고라를 하나도 남김없이 채취했다. 마치 라커라도 되는 듯이 샤우트 창법을 펼치는 만드라고라의 모습에 놀란 여신들의 귀여운 모습을 보는 것은 덤.
그렇게 채취한 만드라고라의 수는 모두 스물 두개. 이쯤 되면 대박이라는 말도 부족하다.
“잠깐만…”
형진은 문득 혹시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급히 누군가를 불렀다.
‘계시나요?’
[…]
‘보고 계시죠?’
[…]
대답이 없었지만 형진은 공포와 죽음이 계속 지켜 보고 있었으리라는 확신을 느꼈다.
‘보고 있었던 거 다 압니다. 좀 도와주시죠.’
그제서야 비로소 공포와 죽음으로부터 대답이 돌아왔다.
[뭘?] ‘헤헤. 혹시 거짓된 천국 안에 존재하는, 숲의 주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엘리트 몬스터의 위치를 알고 계십니까?’손바닥을 비비며 허공을 향해 간사하게 웃는 그의 모습에, 옆에서 멀뚱거리던 여신들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형진이 갑자기 왜 이런 모습을 보이는지는 몰라도,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별로 내키지 않는 종류의 것이 아닌지라 본능적으로 그에게서 떨어진 것이다.
[안다.] “오오오오! 역시 대단하심. 짱 멋지심! 과연 그 이름도 찬란한 공포와 죽음! 이 위대한 신의 이름을 경배하라!”[흥.]
공포와 죽음은 콧방귀를 뀌었다. 하지만 형진은 포기하지 않고 손바닥을 비비며 다시 아부를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아니 사정을 아는 사람이라도 그리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 모습이다.
“헤헤헤, 뭔가 필요하신 거라도 있으십니까? 어이쿠. 그러고 보니 제가 임무를 요새 별로 수행하지 않았던 것 같군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뭐든 다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전부 모조리 몽땅 다 해결해 드리겠습니다.”
[놀고 있네.]
대답은 그렇게 퉁명스러워도 말투에서 어쩐지 피식 웃는 듯한 느낌이 전해진다.
[딱히 네가 임무를 하든 말든 상관은 없다만, 너 그게 뭔지는 알고 그렇게 찾는 거냐?] “네? 혹시 알려지지 않은 효과가 뭔지 아시는 겁니까?”[당연하지. 내가 원래 좀 위대하거든.] “…”
대놓고 스스로 위대하다 말하는 신의 모습에 형진은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
[네가 방금 그렇게 말했잖아!]공포와 죽음도 뭔가 민망하다 싶었던지, 그렇게 소리를 버럭 지른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스스로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다 싶은데요.”
[알기 싫어?]
“아닙니다. 알고 싶습니다. 위대한 공포의 죽음님 만세! 만세! 만만세!”
중국 사극에서 내시가 황제에게 인사하는 것처럼 가슴을 치고 머리를 수그리는 동작까지 해보인다. 뒤에서 여신들이 이게 뭔 난리인가 하는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지만, 형진은 꿋꿋하게 아부를 이어갔다.
[쳇.] “헤헤, 제가 우리 공포와 죽음님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시면서. 알라뷰… 꽥!”손을 머리에 대고 하트를 만들어 보이며 그렇게 말하는 순간 어딘가에서 벼락이 떨어져 형진의 머리를 강타한다.
[너, 그거 하지마.] “죄, 죄송합니다.”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느닷없이 천벌을 때리다니. 제 아무리 파편의 힘을 모아서 신위에 근접한 자격을 갖추게 된 형진이라도 느닷없이 천벌을 얻어맞으니 간이 쪼그라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어쩐지 공포와 죽음이 부끄러워하는 듯한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는 어째서일까.
[크흠. 그것의 알려지지 않은 효과는.]어쩐지 말을 돌리는 것은 같은 느낌이지만, 어쨌든 당장 알고 싶었던 내용은 그것이라 형진은 천벌로 인해 고슬고슬하게 잘 구워진 상태에서도 귀를 쭝긋 세웠다.
“효과는?”
[레벨 50으로 정해져 있는 스킬 레벨의 상한선을 해제시켜서 100레벨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해준다. 복용할 수 있는 횟수의 제한은 세 번. 다시 말해, 숲의 영혼을 세 번 획득하면, 자신의 주력 스킬 세 가지를 100레벨까지 수련할 수 있는 것이지.]
“헉!”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늦어서 죄송합니다.
나머지는 아침에 이어서…
알라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