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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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진 보스
“이건 장난이 너무 심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저걸 본 따서 보스를 만들다니.”
“미친…”
몇몇 사람들은 불쾌한 표정을 잔뜩 지었다. 드러난 모습, 특히 날개는 그야말로 완전히 똑같아서 자신도 모르게 죽음의 천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게임 내의 캐릭터와 앞서의 사건에서 등장했던 존재가 동일 인물이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일리노이 사건은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참혹한 일이었고, 때문에 사람들 중에는 은연중에 그 사건을 금기시해서 화제 거리로 만드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았다. 그런데 이렇게 게임 안의 이벤트에서 진 보스라는 이름으로 그 모습이 등장했으니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갑작스런 전개에 놀라고, 그렇게 변한 모습에 한 번 더 놀랐지만 사람들은 다시금 형진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은 게임. 나중에 문제를 삼는 일은 있더라도 일단은 클리어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어차피 따지고 싶어도 진짜 운영자도 아니고 게임을 털어버린 장본인이 여는 이벤트이니 항의할 대상도 마땅치 않았다.
“헤에…”
“역시 파격적이네 뭔가.”
“뭐 상관없지만.”
이런 식으로.
형진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드러내는 반응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잔뜩 화가 나서 덤비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그냥 별 생각 없이 움직이는 자들도 있다. 몇몇 사람은 살짝 흥분한 기색을 보이기도 하고, 개중에는 아예 보스방 밖으로 나가서 조용히 지켜보기만 하는 이들도 있었다. 어떻게 보면 중구난방이고, 또 어떻게 보면 이 안에 모여 있는 사람들이 프로그래밍된 NPC가 아니라는 의미도 된다.
공포와 죽음께서는 과연 어떤 이들을 선택하실까. 형진으로서는 신이 추종자를 선택하는 기준 같은 건 알 도리가 없다. 보호와 균형을 비롯한 꼬맹이 신들을 보면 딱히 정해진 규칙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르겠지만 이렇게 굳이 시험을 한다는 건 어떤 식으로든 기준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럼 슬슬 힘을 좀 써볼까.
인스턴트 킬을 쓰면 상대가 어떤 장비를 착용했든 한 방에 보낼 수 있지만, 그래서는 시험의 의미가 없다. 방어 자체가 불가능한, 육체 뿐만 아니라 영혼에도 직접 타격을 가하는 천벌 역시 써서는 안 된다.
“권능을 거둬 주세요.”
“네? 하지만…”
“괜찮습니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공격에 놀라 보호의 권능으로 그것들을 막아내고 있던 보호와 균형은 형진의 부드러운 말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거듭 재촉하자 눈을 질끈 감고 권능을 거두어 들였다.
보호의 권능이 걷히자 곧바로 유저들의 공격이 직접 그에게로 쏟아지기 시작한다. 화살부터 시작해서 마법이나 기타 원거리 스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공격들이 비처럼 쏟아지는 모습은 여신들조차도 눈을 질끈 감게 만들 정도로 위협적이다.
이거 참. 숨겨진 보스라니. 이런 역할까지 해보게 될 줄이야.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스륵 몸을 움직여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공격을 회피했다. 물론 그런 식으로 위치를 이동해도 유도탄처럼 따라 오는 공격이 있었지만, 무시한 채 방패를 앞세우고 다가오는 탱커들에게 달려들었다.
“온다!”
자신들을 향해 형진이 다가서자 탱커들은 방패를 내밀고 몸을 낮춰 방어태세를 취한다. 서로 방패를 잇댄 상태에서 최대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니, 역시 숙련된 탱커들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법한 느낌이다. 혹시 군대를 전투 경찰로 다녀 온 건가.
하지만 형진은 그런 탱커들의 머리를 가볍게 뛰어 넘은 뒤 가볍게 뿌리치듯 꼬리를 휘둘렀다.
“컥!”
“크윽!”
단 일격에 몇몇 탱커들이 날아가 버린다. 급히 방향을 틀어 다시 방어자세를 취하며 공격을 막아낸 이들도 있었지만, 모처럼 견고하게 짜놓았던 전열은 그 한 번의 공격으로 흐트러져 버렸다.
“흡!”
“몰아넣어!”
“에워싸라!”
하지만 탱커들은 모처럼 자신들의 진형 안으로 들어온 형진을 방패의 벽으로 에워싸려고 했고, 지켜보던 법사들에게서 이동 불가 상태를 유발하는 마법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형진은 날아드는 상태 이상 마법들을 무시한 채, 양손을 크게 휘둘렀다.
“으악!”
“뭐야 이게!”
뭐긴. 용오름이지.
데미지 자체는 별거 없어도 확고하게 굳어진 자세나 진형을 깨부수는 데는 이만한 스킬이 없다. 모처럼 형진을 에워싸던 탱커들은 갑자기 자신의 몸을 감싸 들어 올리는 강렬한 바람의 위력에 속절없이 허공으로 떠올라버리고 말았다.
용오름으로 주위 공간을 잠시 흩어버린 형진은 허공으로 가볍게 뛰어 올라 라이언하트를 극성으로 발현했다.
“엇! 금가루가…”
“여기!”
“아, 깜빡 잊고 안 챙겼었는데. 고마워.”
여신들은 어깨 위에 앉은 채로 이 격렬한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가, 형진이 라이언하트를 극성으로 펼치자 그것이 자신들의 일이라는 듯이 얼른 금가루를 뿌려 대기 시작했다.
“킥!”
여신들의 앙증맞은 반응에 형진은 웃음을 터뜨렸지만, 사람들은 갑자기 전신이 금빛 바람에 뒤덮인 형진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보통 저런 식의 반응이 보스에게 일어난다는 것은 광역기 같은 걸 발현한다는 걸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럼 기대에 부응해서.”
형진은 꼬리들을 넓게 펼쳤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각각의 꼬리들을 써서 최저 수준으로 약화돤 브레스를 기관총처럼 쏟아 붓도록 만들었다.
“뭐야 이건!”
“아악!”
하지만 최저 수준이라고 해도 근본은 단숨에 산을 날려버리는 필살기. 그런 식의 공격이 마치 기관총처럼 쏟아지자 유저들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망할! 장판조차 아니라는 거냐!”
“이걸 어떻게 피하라고!”
유저들 대부분은 쏟아지는 공격을 피하느라 우왕좌왕하다가 자신들끼리 걸려 넘어지거나 하는 경우도 많았지만, 개중 몇몇은 그런 공격을 피해 공중에 떠있는 형진의 배후를 노리고 공격을 시도하는 이들도 있었다.
“제법인데.”
물론 일반적으로는 이런 필살기를 쓸 때 공격 방향 외에는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이 맞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멍텅구리 보스가 아니었고,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검을 여유롭게 꼬리와 손으로 가로막았다.
“좀 더 정진하도록.”
그리고는 발을 휘둘러 폭렬차기를 시전했다.
“컥!”
“크윽!”
배후를 노렸던 유저들은 형진의 발이 날아드는 순간 마치 수평세열지행성지뢰, 통칭 클레이모어가 폭발하는 것처럼 작은 기운들이 자신들에게 날아들어 작렬하는 것을 느끼며 튕겨져 나가고 말았다.
형진은 다시 지면으로 내려가 이번에는 직접 격투를 시도했다.
라이언하트를 극성으로 펼친 상태로 형진이 딜러들에게 뛰어들자, 유저들은 당황한 와중에도 대항하기 시작했다.
보통 일반적인 보스전에서 이렇게 일대일로 격투를 벌이는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때문에 유저들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만, 형진이 스킬조차 쓰지 않고 난투를 벌이기 시작하자 곧바로 그에 대항해 왔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육식 유저라면 매일 이런 식의 전투를 치러왔으니 정신은 없어도 몸이 바로 반응하기 시작한 것이다.
양손에 단검을 든 유저가 몸을 낮추며 연거푸 찌르기를 시전 한다. 찔러가는 단검으로 상대의 시야를 교란하며 그렇게 스스로 만든 사각을 통해 다음 공격을 연계해 들어오는 감각이 제법이다.
손에 쥔 단검은 일반적인 것인 공격용 단검이 아니라, 방어용의 망고슈와 소드 브레이커를 각각 하나씩 손에 쥐고 있었다. 공격해 들어오는 형진의 주먹을 무기로 간주하고 얽어매려는 동작이 제법이다. 이런 식의 스킬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이상, 아마도 스스로 연구를 해서 만들어낸 전투 스타일 아닐까.
과거 토끼에게 맞아죽던 시절의 형진이라면 이 변칙적인 전투 스타일에 농락당해 꽤 고생을 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마스터 레벨에 도달한 라이언하트가 그런 부족한 전투 센스를 충분하다 못해 넘칠 정도로 채워주고 있었다.
콱!
역수로 잡은 채 휘둘러오던 소드 브레이커를 꼬리로 움켜잡았다. 그리고 갑자기 무기 하나가 봉쇄되어 당황한 상대의 얼굴을 향해 팔꿈치를 휘두른다.
“큭!”
상대는 소드 브레이커를 잡은 손을 놓더니 다른 손에 쥔 망고슈로 형진의 드러난 겨드랑이를 노린다. 겨드랑이는 동맥이 지나가고 폐와 바로 직결되는 치명적인 급소 중의 하나다. 평소에는 팔로 가려져 있어서 타격하기 어렵지만, 그런 신체 구조 때문에 역으로 방어구를 착용하기 어려워서 중갑을 입은 상태에서도 약점으로 작용하기 쉽다.
그것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반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형진 쪽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상대가 상체의 공격에 집중하는 사이, 어느 틈엔가 사각에서 뻗어나간 꼬리 하나가 상대의 오금을 걸어 그대로 끌어 당긴 것이다.
“억!”
애초에 형진은 일반적인 인간과는 달리, 손처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꼬리가 열 개나 있다. 이것은 피와 살로 이루어진 신체도 아니기에, 상대의 공격에 역으로 피해를 입을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다. 최근 들어 형진이 굳이 무기를 들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모처럼 좋은 기회를 얻었던 상대는 자세가 무너지는 순간 뒤이어 날아든 형진의 주먹에 정통으로 얻어맞으며 뒤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놈!”
그러나 어디선가 많이 봤던 인물 하나가 그에게 커다란 워해머를 휘두르며 다가선다. 기억 났다. 두 번째로 아이템 수리를 맡겼다가 50퍼센트 추가 요금을 냈던 바로 그 남자다.
상당히 높은 수준까지 강화한 것을 자랑하듯 그의 워해머는 은은한 서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문득 형진은 저 망치를 인스턴트 킬로 부숴버리고 싶은 욕망을 느꼈지만, 공포와 죽음께서 맡기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그와의 전투를 시작했다.
“하압!”
머리 위로 치켜 올려진 워해머가 불꽃에 휩싸인 채 형진의 머리를 노리고 내리쳐진다. 만약 현실에서 이런 모습을 정면에서 마주했다면 찔끔하며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겠지만, 형진은 의외로 이 공격이 그리 강력하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보았다. 라이언하트가 상대의 공격에 실린 힘의 정도를 바로 분석해 형진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 정도면 그냥 맞받아도 된다.
그런 판단이 내려지자, 형진은 곧바로 다가서며 주먹을 날렸다. 물론 망치의 끄트머리에 달린 쇠뭉치가 아니라 그것을 쥐고 있는 상대의 손을 향해.
“으악!”
형진의 주먹이 워해머를 쥐고 있는 상대의 손과 격돌하는 순간, 섬짓한 소음과 함께 남자의 손가락이 뭉개지고 말았다. 남자는 그 소름끼치는 감각에 몸서리를 치며 워해머를 놓쳤고, 다음 순간 날아든 폭렬차기에 맞아 뒤로 날아가 버렸다.
큰 소리를 쳤던 것 치고는 별 것 아니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숨쉴 틈도 없이 다시 세 방향에서 날카로운 공격이 이어진다.
한쪽은 날카롭게 벼린 삼지창. 또 한 쪽은 제법 서슬 퍼런 장검. 또 한 쪽은 누군가가 던진 투척용 단검.
한발만 삐끗해도 온몸에 구멍이 숭숭 날 것 같은 위태로운 상황이지만, 형진에게는 그 모든 공격이 느린 화면처럼 느껴지고 있었다. 정확히는 정말로 그 모든 공격이 느려진 것이 아니라, 극성에 도달한 라이언하트로 인해 쏟아지는 정보로 인해 머리 속에서 일시적인 병목 현상이 일어났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라이언하트에 의해 정보 처리의 보정효과가 일어나며 느릿하게 느껴졌던 모든 것이 다시 본래대로 돌아간다.
형진은 먼저 가장 먼저 도달한 투척용 단검을 등주먹으로 밀어 경로를 바꾸고 몸을 돌려 삼지창의 창대를 건드려 갈라진 창날로 장검을 막아내도록 했다.
“악!”
자신에 의해 방향이 바뀌어 버린 단검이 삼지창을 찔러오던 자의 머리에 박히는 모습을 일견한 형진은, 슬쩍 몸을 돌려 삼지창에 얽혀 버린 장검을 급히 회수하는 남자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헉!”
미처 검을 회수 하지 못한 상태에서 드러난 가슴으로 형진이 파고들자 그 유저는 기겁을 하며 놀랐지만 다른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몸통 박치기에 들이 받히며 역시나 뒤로 튕겨져 나가버렸다. 형진은 그렇게 튕겨져 나간 유저를 방패로 삼은 채 훌쩍 허공을 뛰어 넘어 뒤쪽에서 화살을 쏘기 위해 시위를 당기던 사람들 속으로 떨어져 내렸다.
유저들은 어쩔 줄 몰랐다. 일반적으로 보스들은 체구가 훨씬 크기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달려든 상태에서도 타겟팅을 하기가 편했다. 하지만 지금 상대하고 있는 대상은 날개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사람과 별 차이가 없었고, 때문에 이렇게 인파속에 뒤섞여 버리면 직접 마주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공격을 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보통 일대 다수가 되어 버리면 다수가 유리한 것이 당연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문자 그대로 양떼 속에 뛰어든 늑대나 다름없다. 지금까지 늑대의 입장에서 게임을 해왔던 유저들로서는 그런 식으로 양의 입장이 되어 버린 것 자체만으로도 당혹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