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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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 진 보스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계속해서 금빛으로 빛나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 하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일대 다수의 이점을 전혀 살릴 수가 없다. 아무리 많은 수의 유저가 모여 있다 한들, 한번에 몇명만 공격에 가담할 수 있어서야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일반적인 보스전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는 상황 때문에 유저들이 그렇게 당혹해 하고 있을 때, 문득 다시 한 번 헬륨 가스 마신 코맹맹이 소리로 공지가 흘러나온다.
[제대로 좀 싸워 보라고. 그래서야 잡을 수나 있겠어? 다 함께 덤벼도 모자랄 판에 빈둥거리며 구경하는 녀석들은 뭐야?]공포와 죽음의 그러한 도발에 사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뒤이어 흘러나온 말을 듣는 순간 그들은 눈에서 번쩍하고 빛이 터져 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 녀석 잡으면 전설 세트 나오는데.]전설 세트!
에픽보다 한 단계 낮기는 하지만 진귀급조차 흔하지 않은 상황에서 그냥 단품도 아니고 세트라니! 어떻게 보면 정말 나오는지조차 알기 어려운 에픽 아이템보다 이쪽이 훨씬 현실적인 보상일 수도 있었다.
공포와 죽음의 말에 형진은 피식 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전설 세트라는 말이 떨어진 순간 유저들의 눈빛이 확연하게 달라진 것을 바로 느꼈기 때문이다.
“끙… 너무 하시는 거 아닌가요. 추종자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때려잡으라고 다른 사람들 등을 떠밀다니.”
[네놈이 죽으란다고 죽을 놈이냐.]
“그거야 그렇지만.”
무한한 신뢰에 감사를 보내야 하는 건가. 형진은 입을 삐죽 내밀고 불퉁거리며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화살을 잡아 반대편에서 달려드는 유저의 이마에 푹 하고 찔러 넣었다.
“으아아악!”
갑자기 이마에 생각지도 못한 장신구를 달게 된 유저가 지르는 비명을 들으며, 형진은 환영의 반딧불을 사용했다.
“헉!”
그리고 자신을 향해 화살을 쐈던 여자를 발로 차서 날려버린 다음, 이번에는 마법사들 속으로 뛰어들었다.
“꺄악!”
“도망쳐!”
날고 기는 탱커들이나 근접 딜러들도 감당하지 못하는 판국에, 근접전에는 완전히 젬병인 법사들이 무슨 수로 형진을 막아설 수 있을까. 형진은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법사들의 모습을 보며 껄껄 웃다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그러자, 어딘가에서 지축을 울리는 듯한 굉음이 울려 퍼지더니 갑자기 영문 모를 거대한 파도가 어디선가 솟아나와 유저들을 휩쓸어 버린다.
“컥!”
“뭐야 이게!”
뭐긴. 망상구현의 힘이지. 실제로 데미지가 가해지지 않는 그저 환상에 불과한 힘이지만, 그것을 꿰뚫어 볼 능력이 없는 자에게는 훌륭한 현실의 구현이기도 한, 그런 터무니없는 힘.
갑작스런 해일에 휩쓸려 허우적거리던 유저들은 이내 새로운 공격을 당해야만 했다.
그것은 바로 음식의 파도.
“커흑!”
“그, 그만!”
입 속으로 밀려드는 특제 요리의 향연에 유저들은 이제 정신마저 몽롱해지는 기분을 느껴야했다. 그냥 먹어도 잠시 멍해지는 맛을 지닌 음식들을 이렇게 강제로 마구 퍼먹이니 당연히 정신을 못 차릴 수밖에.
[장난치지마.] “장난이라뇨. 이게 얼마나 효과적인 정신 공격인데.”[끙.]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이 더욱 난감하다. 막말로 지금 형진이 더 흉악한 뭔가를 하려고 했다면, 유저들은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러고 보면 요정들이 멘탈은 참 강했던 것 같다. 이런 식의 공격을 당하고서도 깔깔거리며 음식맛을 즐기고 뻘소리를 지껄여대기까지 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들이야말로 진정 초월적인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냥 허세에 불과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이긴 해도.
[하지만 이래서는 시험이 안 되잖아.] “그래도 혹시 모르잖습니까. 이 상황을 견뎌내고 저에게 공격을… 이크!”정말로 있었다. 그런 유저가.
이를 악물고 자꾸만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오려는 음식의 압박을 견뎌내며 화살을 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보셨죠?”
[…]
형진은 그렇게 공포와 죽음의 말문을 막히게 만들고는 거대한 삼각 파도를 타는 듯한 모습으로 다른 유저들을 기다렸다. 그러자 몇몇 유저들이 이를 악물고 음식의 파도를 견디며 다가와 그에게 공격을 가하기 시작한다.
“훌륭해.”
땀을 뻘뻘 흘리며 다가온 수영복 차림의 여자 하나가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그에게 검을 휘두르는 순간, 형진은 그렇게 한 마디를 건네고는 손가락을 튕겨 환상을 지워버렸다.
“커흑.”
“큭!”
방금 전의 환상 공격만으로 반수 이상의 유저들이 나가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환상이 사라지는 순간 남은 반수는 끙끙거리며 몸을 일으켰고 그 중 몇 명이 곧바로 형진에게 공격을 가했다.
“우와아아아아!”
함성인지 고함인지 비명인지조차 헷갈리는 이상한 괴성을 터뜨리며 방패를 든 탱커 하나가 돌진해온다. 하지만 얼핏 용맹해 보이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눈은 이미 초점이 풀려 있었고, 형진이 슬쩍 물러나며 다리를 걸자 맥없이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고작 음식 좀 배터지게 먹는 환상에 걸렸다고 이런 상태라니. 근성이 부족해, 근성이.
“합!”
그 때, 한 줄기 기합성과 함께 누군가가 떨친 채찍 하나가 형진의 손목을 옭아매었다.
“나이스!”
그러자 다시 반대편에서 갈고리 같은 것이 날아들어 다른 손을 잡아챈다.
“지금이다!”
“공격!”
유저들은 형진의 양손이 봉쇄되었다고 판단했는지 곧바로 그를 향해 돌격했지만,
“훗.”
형진이 가볍게 손을 떨치자 양손을 채찍과 갈고리로 속박하려던 유저들이 그에게로 확 끌려 온다.
“헉!”
“으악!”
형진이 본신이었으면 혹시 이런 작전이 통했을지도 모른다. 본신은 어쨌든 인간의 몸이니 영약으로 스탯을 아무리 올렸어도 결국 유저들이 사용하는 아바타와 비슷한 수준의 힘 밖에 가지고 있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지금 형진은 아바타를 쓰고 있다. 그것도 한계까지 스탯을 모두 끌어올린 전투용 아바타를.
이전에 본신으로 엘리시온 안을 기웃거리다가 파편을 놓쳐버린 이후로, 형진은 본신으로 직접 어딘가를 탐색한다든가 전투에 임하는 일을 자제하고 있었다. 만약의 상황에서 앞서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피하기 위함이다. 인간은 학습하는 생물이 아니던가. 비록 파편의 힘을 모아 신위를 얻을 준비를 하고 있는 형진이지만,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튕겨지듯 끌려와 허공에서 서로 감격의 포옹을 하는 두 유저들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형진은 자신을 향해 돌진하는 유저들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딴짓을 했다.
“음… 맨손 격투 패시브가… 여 군.”
공포와 죽음으로부터 스킬 마스터 지위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형진은 지금까지 딱히 스킬을 배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무기도 없이 유저들을 상대하고 보니, 패시브 하나 정도는 익혀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축하합니다! 스킬 ‘맨손 격투’ lv.0을 습득했습니다!]스킬 전수야 그리 어렵지 않은 과정이다. 이제부터 그것을 수련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 실질적인 문제일 뿐.
“응?”
이게 뭔가 하고 바라보고 있자니, 다시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난다.
[축하합니다! ‘맨손 격투’를 체득하여 Lv.15를 달성하였습니다.]오, 갑자기 데자뷰가 느껴진다. 예전에도 이런 일이 한 번 있었던 것 같은데. 단검 숙련 찍었을 때던가.
스킬이 재조정된 이유는 솔직히 좀 헷갈리지만 아마도 용오름이나 폭렬차기 같은 스킬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있는 탓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라이언하트가 마스터 레벨에 오르면서 이런 식으로 패시브 스킬에 영향을 준 것일지도 모르고.
사실 스킬 레벨 15 정도는 짧은 시간 동안의 수련만으로도 얻을 수 있는 수준이라 별로 대단할 것도 없지만, 그래도 공짜로 스킬을 주운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딴짓을 하고 있는 동안 가장 먼저 도달한 유저가 들고 있던 장창을 형진에게 찔러넣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렇게 몸통을 노리고 날아드는 창날을 한 손으로 툭 쳐서 방향을 틀어 버리고는 다른 손으로 창대를 잡아끌었다. 그러자 마치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창을 든 유저의 몸이 속절없이 끌려온다. 형진은 그렇게 중심을 잃은 상대 유저의 턱을 가볍게 주먹으로 올려쳤다.
“컥!”
딱히 용오름을 쓴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유저의 몸은 공중으로 치솟아 오르더니, 천정과 격렬하게 키스를 한 뒤 다시 지면으로 곤두박질 쳤다.
“괜찮은데.”
뭐랄까. 지금까지는 어쩐지 막연하기만 했던 주먹질이 좀 더 체계화된 느낌이랄까. 막무가내로 힘을 쏟아 붓는 것이 아니라, 좀 더 효율적으로 완력을 타격력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된 느낌이다. 어쩐지 라이언하트와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도 같고, 서로 시너지를 일으켜 더 효율이 좋아진 것 같은 느낌도 든다.
그때 한 무리의 마법사들이 다시금 그의 움직임을 묶기 위한 여러 가지 상태 이상 마법을 걸어왔다. 하지만 앞서 아무런 효과가 없었던 것을 의식했는지, 이번에는 형진의 몸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식이 아니라 주위의 지형지물을 변화시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모양새다. 이를테면 바닥을 진흙탕으로 만든다든가, 끈적이를 깐다든가, 반대로 마찰계수를 줄여 미끄덩한 상태로 만든다든가.
하지만 형진은 그 모든 마법들을 살짝 허공에 떠오르는 것으로 간단하게 해결해 버렸다.
“맙소사.”
“저걸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몸집이 작아서 타겟팅도 어려운데다, 어지간한 원거리 공격은 모조리 피하거나 튕겨내 버린다. 작다고 힘이 약하냐면 그것도 아니다. 어지간한 유저들은 공격 한 방만 맞아도 나가 떨어지고, 정말 말도 안 된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기괴한 광역기까지 갖췄다. 마법으로 발을 묶는 것도 불가능하고, 어지간한 디버프는 그냥 저항력만으로도 씹어 버린다. 가만히 앉아서 딜 타이밍을 주거나 하는 일도 없다. 도대체 어떻게 잡으라는 말인가.
악몽이다. 이건 문자 그대로 악몽이나 다름없다.
“젠장… 전설 세트 보상이란게 그냥 하는 얘기가 아니었어.”
전투가 시작된 이후로 단 한 번도 공격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자 유저들은 질려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어차피 즉사기도 없는 보스다.”
“안 맞으려고 하는 건 체력이 터무니없이 낮아서일지도 모른다.”
그것은 꽤 예리한 지적이었다. 지금까지 형진이 공격을 가한 이들은 정신이 얼떨떨할 정도의 충격을 받긴 했어도 죽거나 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일부러 즉사가 가능할 정도의 강력한 스킬이나 인스턴트 킬을 쓰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체 봉인이긴 해도 당장 쓸 수 없는 상태니 보스 흉내를 내는 동안에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체력 역시 맞는 얘기다. 형진이 비록 영약이나 체력 증폭 효과로 어지간한 유저들보다 월등한 체력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방금 전 때려잡았던 월드 보스나 다른 중간 보스들에 비하면 터무니 없이 적은 양이기 때문이다.
“밀어붙여!”
“기술이 안 되면 그냥 수로 짓눌러 버려라!”
“움직이지만 못하게 하면 우리의 승리다!”
얼핏 생각하면 참으로 터무니없는 발상이었지만, 그건 의외로 꽤 효과적인 전략일 수도 있었다. 잊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을 적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우와… 바보냐.”
뻔히 하늘을 날 수 있는 걸 보고서도 저런 식의 인해전술을 구사하려 하다니.
형진은 혀를 차며 허공으로 떠오르려다가 이내 생각을 바꾸었다. 인벤토리에 잠자고 있던, 본래 이 던전 안에서 획득 가능했던 전설 세트를 꺼내 입은 것이다.
“어? 모습이 바뀌었다.”
“저게 뭐지?”
전설 세트를 챙겨 입고 코스튬을 벗자, 그곳에는 황금빛으로 번쩍 거리는 갑옷을 입은 인물 하나가 검은 날개로 몸을 감싼 채 서 있었다.
형진은 그런 와중에도 해일처럼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유저들을 상대로 다시 전투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서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으악!”
“뭐, 뭐야 이 불꽃은!”
“헉! 정신력 디버프다!”
“맙소사.”
형진의 공격을 받아 나가떨어졌던 유저들은 자신의 몸에 붙은 불에 기겁을 했다가, 그것이 스킬 사용을 위한 여러 가지 자원을 깎아 먹는 디버프임을 깨닫고는 당황했다. 자신이 지닌 가장 강력한 수단을 써도 이길까 말까 한 판에, 이렇게 스킬까지 봉인 당해 버리면 무슨 수로 이기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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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