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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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시험
타천사를 연상시키는 검은 기운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날개. 방금 전까지 자신들의 곁에서 다른 유저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서 있던 남자에게서, 이벤트 던전의 진짜 최종 보스의 상징과도 같은 그것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기겁하며 얼른 옆으로 물러섰다.
흔히 모세의 기적이라 표현되는 그런 현상이 지금 이 순간 유저들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허…”
잔뜩 긴장한 채 월드 보스가 죽은 장소를 바라보고 있던 공격대들은, 갑자기 보스 방 입구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형진의 모습에 잠시 얼이 빠져 버렸다.
보통 보스들은 특정한 장소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 리젠이라는 것 자체가 본래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어제의 정보를 토대로 미리 진형을 갖추고 대비하고 있었던 것인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칠 줄이야 어찌 예상이나 했겠는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상식은 의미가 없다는 건가.”
공격대를 이끌고 있던 리더는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사실 이번에 주도적으로 나선 공격대 가운데 하나는 엘리시온의 제작사인 미라지 코어, 그 중에서도 처음 회사가 설립되었던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지사에 속한 개발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제작사인 미라지 코어 역시 게임의 컨텐츠를 먼저 시험하고 관리하기 위한 테스터 그룹이 존재한다. 지금 참여한 공격대 중 하나가 바로 그런 테스터 그룹과 뜻있는 개발자들이 모여 만들어진 것이다.
신규 코스튬과 그것이 연계된 이벤트에 대한 정보가 알려졌을 때, 기존의 개발팀 역시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직접적인 구현은 허세와 망상이 주도하고 있었더라도 그렇게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형태는 개발팀에 의해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게임계를 뒤집어엎어 버린 엘리시온의 창조에 기여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 중에서도 실리콘 밸리 지사에 속한 개발팀들은 엘리시온 그 자체를 자식처럼 여기는 사람들조차 있을 정도였다.
그런 게임이 어느 한순간 털려버렸다. 그것만으로도 떠올리기 싫을 정도로 치욕스러운 일인데, 이번에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업데이트까지 이루어지고 말았다.
임시 주총의 소집 공고가 나붙고 회장은 실종되었으며 사실상 경영권이 누군가에게 넘어갈 것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다른 대부분의 사원들이 불투명한 앞날에 대비하고자 움직이는 시점에서, 이런 식으로 게임 안에 들어와 새로운 업데이트를 살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어리석은 일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창조자라 할 수 있는 허세와 망상보다 훨씬 더 엘리시온에 애착을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 이렇게나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다.
형진은 물론 이곳에 모인 사람들이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몰랐다. 정확히는 알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건 집행자로서의 선발이 끝나 동료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이후에도 이루어져도 충분한 일이다.
그의 몸에서 한줄기 바람이 확하고 퍼져 나온다. 라이언하트가 극성으로 발동된 것이다.
“읏차! 읏차!”
“해치!”
여신들은 그 현상을 목격하자 어제와 마찬가지로 열심히 금가루를 뿌리기 시작했다. 오늘은 미리 준비를 해뒀던 덕택에 형진의 몸은 아주 적절한 타이밍에 금빛 회오리를 휘감은 모습으로 바뀌어 갔다.
“와…”
“쩐다…”
바로 코앞에서 그런 식으로 보스가 서서히 모습을 갖춰가는 모습을 지켜본 유저들은 슬금슬금 뒤로 물러서면서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 갑자기 자신들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도 그렇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검은 날개와 금빛 회오리도 그렇고. 그저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바로 자신의 눈앞에서 이루어지니 절로 감탄이 나와 버린다.
형진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럴 생각이 있다면 주위에 늘어선 다른 유저들에게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미친 듯이 날뛰는 것보다 주위의 상황은 상관없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기는 것이 사람들의 인상에 더 또렷하고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방향 전환! 방향 전환!”
잠시 얼빠진 표정으로 형진의 등장을 지켜보던 공격대의 리더 가운데 하나가 그렇게 외치자, 전투 준비를 갖추고 진형을 유지하고 있던 공격대들이 허겁지겁 형진을 향해 방향을 돌렸다. 곧바로 다른 공격대들 역시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진형의 방향을 되돌리려 했지만, 바로 그 순간 형진의 모습이 확하고 번지듯 앞으로 쏘아져 나가며 공격대의 후미를 들이쳤다.
“으악!”
“컥!”
진형의 후방에 서 있던 힐러나 마법사들은 갑작스런 형진의 돌격에 놀라면서도 급히 뒤로 물러나며, 앞으로 나서는 딜러들 속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다시 완전하게 진형을 갖추기 전에, 금빛 회오리에 휩싸인 형진의 모습이 그들 속으로 파고들었다.
“젠장!”
활을 쏠 틈도 없이 지척으로 다가선 형진의 모습에 궁수 중 하나가 그렇게 외치며 단검을 뽑아들었고, 그 옆에 선 또 다른 궁수는 급히 뒤로 텀블링을 하더니 여러 개의 화살을 아무렇게나 허공에 뿌려댔다.
“이건…”
제대로 조준도 하지 않고 쏘아댄 화살이긴 했지만, 그렇게 마구 잡이로 날아든 화살은 모두 매캐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볼 것도 없다. 방금 되는 대로 뿌려진 화살은 바로 독화살인 것이다.
“제법인데.”
회피와 동시에 독화살을 뿌려대다니, 제법 근접전 상황에도 익숙한 궁수인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감탄이 끝날 틈도 없이 단검을 뽑아든 궁수가 자세를 낮추며 그의 무릎을 노리며 공격을 시도했다. 이쪽은 앞서의 다른 궁수와는 달리 단검 스킬을 익힌 하이브리드 타입인 모양이다.
“단검이라면 나도 꽤 다루지.”
형진은 오랜 만에 품에서 단검을 뽑아들고는 맞상대를 시작했다.
촤차차차창!
순식간에 다섯 번 정도의 격돌이 이루어졌고, 자신 있게 단검을 빼들고 나섰던 유저는 어느 틈엔가 손목을 훑고 지나간 공격에 놀라 뒤로 물러섰다.
비록 궁수로 이번 공격대에 나서긴 했지만, 단검 기술도 꽤 자신이 있었는데 채 몇 번의 격돌조차 견디지 못하고 밀려 버린 것이다.
“제법… 헉!”
유저는 얼른 뒤로 물러서며 포션을 써서 상처를 회복시키고 다시 덤벼들고자 했지만, 어느 틈엔가 내구도가 바닥나서 고물처럼 변해버린 단검을 보고는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일부러 인스턴트 킬 피하는 것도 쉽지 않군.”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피식 웃었다.
어제는 무기를 빼들지 않고 맨주먹으로만 상대했지만, 본래 그의 주무기는 바로 단검이다. 마스터 레벨을 넘은지 한참인 단검 숙련 기술에 라이언하트까지 극성으로 펼친 상황에서라면 애초에 상대도 되지 않는 일. 그나마 손목에 살짝 상처만 입는 수준으로 끝난 것도 무의식중에 인스턴트 킬로 상대의 단검을 박살내고자 하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통제하다 보니 벌어진 결과다.
“이번엔 단검… 인가.”
또다시 새로운 패턴이 나타났다. 테스터 그룹이 주축이 된 공격대의 대장은 방금 전에 형진이 보여주었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며 자신이 지휘하는 공격대를 전진시켰다.
단검을 들고 덤빈 궁수는 기겁을 하고 물러났지만, 그가 잠시 시간을 벌어준 덕분에 공격대의 다른 인원들이 순조롭게 진형을 갖추고 공격을 시도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형진은 그렇게 진형을 갖추고 다가오는 공격대의 모습을 바라보더니 두려움 없이 그들에게로 뛰어들었다.
“온다!”
“막아!”
곧바로 탱커들이 방패를 앞세우며 형진을 맞이했다. 방패로 벽을 쌓고 달려드는 그들의 모습을 본 형진은 단검을 쥐지 않은 다른 손으로 용오름을 펼쳤다.
“응?”
하지만 의외의 사태가 벌어졌다. 모처럼 용오름을 선사했건만 탱커들은 휘몰아치는 소용돌이에 굴하지 않고 그대로 버티고 서 있었던 것이다.
“과연. 정예라 이건가.”
공격대에 참가한 탱커들이 정예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형진이 펼치는 괴랄한 스킬을 지켜본 이들이 그런 식의 공격을 견뎌내기 위한 특수한 준비를 갖춘 것이 더욱 주효했다. 방패에 공사용 중장비에 흔히 사용되는 아우트리거를 장착해 지면에 고정시키고, 전열의 탱커들이 날아가지 않도록 뒤쪽에 선 이들이 허리를 감싸며 단단하게 스크럼을 짠다. 혼자서라면 용오름이 만들어내는 회오리를 견디기 어렵지만 여럿이라면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고, 그것은 실제로 매우 성공적이었다.
“견뎠다!”
“쳐!”
단지 용오름 한 가지를 견뎌낸 것 뿐이지만, 공격대는 자신들의 준비가 먹혔다는 사실에 환호하며 곧바로 반격을 준비했다.
“이크!”
탱커들의 머리를 넘어 화살들이 날아오자 형진은 날개로 그것들을 쳐내며 슬쩍 도약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격대들은 그런 형진의 행동에 대한 준비를 해둔 상태였다.
“지금이다!”
“던져!”
형진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기가 무섭게, 방패 뒤에서 웅크리고 있던 탱커들이 그물을 던진다. 아마도 대형 동물을 수렵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보이는, 질긴 그물 중간 중간에 낚시와 같은 바늘을 달아 상대로 하여금 움직이기 어렵게 만드는 그런 물건이다.
“이거 참.”
순식간에 수십개의 그물이 형진의 몸을 뒤덮으며 떨어진다. 하늘을 가득 뒤덮으며 날아드는 모양새가 보기에도 상당히 흉악해 보인다.
형진은 가만히 그것을 지켜보다가 환영의 반딧불로 가볍게 빠져 나와 탱커들의 후방으로 파고 들었다.
“젠장!”
“뒤다! 돌아!”
하지만 미처 탱커들이 다시 돌아서기도 전에 형진의 발끝에서 폭렬차기가 날아들었고, 그것에 격중당한 탱커들은 한데 뒤엉키며 우르르 넘어져 버렸다.
“비켜! 비켜!”
순식간에 공격대 하나의 전열이 와해되어 버렸지만,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공격대가 형진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건… 차륜전이군.”
전열이 와해된 공격대가 썰물처럼 빠져 나가고 대신 새로운 공격대가 다가서는 모습에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맞상대를 해서 피해를 키우는 것보다, 적당한 시점에서 준비를 갖춘 다른 공격대가 나서는 방식이라면 순차적으로 정비도 할 수 있으니 여러모로 효과적이다. 물론 그런 식으로는 형진에게 치명적인 일격을 주기 어렵겠지만, 계속적으로 차륜전을 이어나가면 앞서 공격대의 리더 가운데 하나가 말했던 것처럼 모든 공격 패턴을 끌어내는 목표만큼은 충분히 이룰 수 있다.
“훌륭해.”
시간도 별로 없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준비를 해오다니 형진으로서는 매우 흡족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다. 그래서 형진은 곧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로 했다. 과연 어떤 식의 준비가 더 갖추어졌는지 확인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격대가 코앞으로 다가오기 전에, 곧바로 허공으로 날아오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다른 공격대들까지 포함한 모든 원거리 공격 가능자들에게서 일점사가 이루어진다. 각양각색의 화살부터 시작해서, 투창이나 투석, 그리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는 마법까지. 아마도 이 공격대들은 지금처럼 형진이 날아올랐을 때를 딜 타이밍으로 파악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이크!”
형진은 그렇게 쏟아지는, 문자 그대로 포화라고 불러도 좋을 법한 공격들을 피해 내며 품에서 망상구현의 단장을 꺼내고는 곧바로 그것을 사용했다.
“우왁!”
“버텨라!”
어김없이 거대한 해일이 일어나 공격대는 물론이고 보스방 바깥에서 싸움을 지켜보고 있던 이들까지 단숨에 휩쓸어 버린다. 공격대들은 뜬금없이 나타난 거대한 해일에 기겁하며 앞서 용오름을 견뎌냈던 것처럼 서로 뭉쳐 이 공격을 버텨내려 했지만, 바깥에서 구경하던 이들은 갑작스런 이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허우적거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역시 이건 대비를 하지 못한 건가.”
형진은 껄껄 웃으며 뒤이어 음식의 파도를 불러 일으켰다.
“크헉!”
“그, 그만!”
“안 돼! 이러다 살쪄버려!”
이 한 번의 환상 공격을 대부분의 공격대들은 견디지 못하고 전열이 와해되어 버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를 악물고 버티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테스터 그룹을 중심으로 한 공격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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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