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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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시험
확실히 어제와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유저들은 마구잡이로 뛰어서 들어가기 보다는, 주변에 약한 위력의 광역기를 뿌려서 은신 중인 암살자 몹들을 찾아 차근차근 처리하는 식으로 전진했다.
“과연. 이래서 정보가 중요한 건가.”
물론 개중에는 그냥 뭣도 모르고 막무가내로 달려가다 암살자 몹에게 기습당해 죽는 유저도 여전히 있었지만, 초반부터 우르르 사망자가 속출했던 어제와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다.
그렇게 차분하게 전진한 유저들은 첫 번째 보스 방에 도착하자 잠시 멈추어 서더니 몇 사람이 앞으로 나와 첫 번째 중간 보스의 패턴에 대해 설명했다. 반수 정도는 어제의 일을 경험한 상태로 하루 동안 착실하게 준비한 정예 공격대였지만, 소문을 듣고 처음 참가한 인원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첫 번째 보스의 패턴은 크게 몇 가지로 나뉩니다만, 기본적으로 근접 공격이 주가 됩니다…”
그런 식으로 몇 사람이 보스의 패턴과 공략 방법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뒤따라온 초식 유저들이 보스 방 입구에 다시 가판을 열었다.
형진은 흐뭇한 표정으로 유저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근처에 요리 가판을 연 유저를 발견하고는 그리로 다가갔다.
“어서 오십시오.”
가까이서 보니 가판의 주인은 꽤 후덕한 인상의 중년 남자였다. 적당히 기른 턱수염과 앤티크 느낌의 둥근 안경테, 그리고 요리사임을 알리기 위한 용도로 보이는 모자와 앞치마가 묘하게 조화를 이뤄서 꽤나 관록이 있어 보인다.
“실례하겠습니다.”
형진은 인사를 하고는 개인 상점에 비치된 메뉴를 확인해 보았다.
제빵이 주종목인지 메뉴 대부분이 다양한 종류의 빵으로 채워져 있었지만, 개중에는 비프 웰링턴이나 로스트 비프에 요크셔 푸딩이나 토드 인 더 홀에 매시드 포테이토를 곁들인 정식류의 메뉴도 존재했다.
형진은 각각의 메뉴를 구매해 하나씩 맛을 보았다.
“음… 이건 정말 훌륭하군요.”
다른 메뉴도 멋지지만 특히 안심의 겉을 햄과 버섯의 파테로 감싼 비프 웰링턴이 대박이었다. 과연 장인. 이쯤 되면 현실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요리사가 아닐까 싶다.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버프 효과를 얻기 위해 맛을 볼 틈도 없이 허겁지겁 먹기 바빠서 비프 웰링턴 같은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고 있었지만, 형진은 아예 한가롭게 외식을 나온 사람처럼 맛과 풍미를 천천히 즐기고 있었다. 여러모로 지금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랄까.
“이 버섯은 처음 맛 보는 것 같네요. 무슨 버섯이죠?”
“모렐입니다.”
들어 본 적이 없는 이름이다. 햄도 뭔가 특별한 것인 듯 한데, 아무래도 비법인 듯 싶어서 그것까지 캐묻기는 좀 뭐하다.
형진은 그런 식으로 가판을 돌며 그곳에 진열된 요리들을 살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곳에 온 요리사들은 게임 안에서도 꽤 유명한 인물들이었고, 그건 다시 말해 이번에 칸트라 제국의 수도 이슬라에서 열리는 요리 토너먼트에서 명장 타이틀을 걸고 맞붙을 라이벌이라는 뜻도 되기 때문이다. 요리 대결은 일반적인 전투와는 또 다르기 때문에 함부로 승부를 예단하기도 어렵고, 때문에 방심은 금물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형진이 그렇게 느긋하게 가판들을 돌고 있는 동안, 유저들은 착실하게 첫 번째 중간 보스의 공략을 이어갔다. 미리 사전에 정보를 알린 보람이 있는지, 딱히 어그로가 튀지도 않고 무난하게 공략을 성공시켰다.
“이동합니다!”
큰 피해 없이 첫 번째 중간 보스의 공략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공격대를 이끄는 수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큰 소리로 외쳤고, 유저들은 자기 몫의 룻을 획득하자 질서 정연하게 다음 장소로의 이동을 시작했다.
“대단한데.”
물론 각각의 공격 패턴에 대비를 마친 상태라는 점을 감안해도, 어제 그 난리 법석을 떨었던 것에 비하면 정말로 순조롭게 공략을 마친 셈이다. 물론 개중에는 그런 공격대의 통제를 무시하고 개인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긴 했지만, 대부분은 차분하고 질서정연하게 공략에 임하고 있었다.
두 번째 보스방에 도착하자, 공격대의 리더가 다시 앞으로 나서서 주의할 점을 설명하기 시작한다.
“이번 보스는 저항력 수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그렇게 설명이 이어지는 동안, 이번에도 역시나 생활러들이 가판을 열었다. 앞서의 전투에서 장비 내구도가 깎인 이들은 전투 전에 급히 정비를 시작했고, 저항력 수치를 맞추기 위한 버프와 도핑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두 번째 중간 보스는 데미지보다 연속된 상태 이상이 괴랄한 부류. 그렇게 충분한 준비를 마치고 공략을 시작하자 역시나 어제 그렇게 고생했던 것이 거짓말처럼 간단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연속된 두 번의 공략이 큰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끝나자, 이제는 딱히 개인행동을 하는 유저들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괜히 잘난 척 하다가 혼자만 고생하느니 적당히 묻어가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세 번째 보스는 딜 타이밍과 물러날 때를 잘 맞춰 주셔야 합니다. 저항은 독에 맞춰 주시고…”
역시나 공략 방법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이루어짐과 동시에 정비를 마친 공격대는 세 번째 중간 보스 역시 비교적 수월하게 제압할 수 있었다. 딜 타이밍과 빠지는 시기를 맞추지 못한 몇몇 유저들이 역시나 사망 전대 노릇을 하기는 했지만, 반 이상이 죽어 나갔던 어제의 상황과 비교하면 거의 무시해도 좋을 정도의 미미한 피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중간 보스들의 처리가 끝나고, 월드 보스가 등장하는 장소에 도착하자, 공격대의 리더가 다시 앞으로 나섰다.
“마지막 장소입니다. 이곳에서는 두 가지 보스가 출현합니다. 하나는 이전의 이벤트에서 등장한 적이 있었던…”
형진은 그렇게 가만히 한쪽에서 유저들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문득 어제와 다른 점을 또 하나 깨달았다.
“흠… 그러고 보니 수영복 입고 있는 사람이 없네.”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바로 그것이 달랐다.
레이드가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사실 별 문제가 없었다. 망상구현의 단장이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꼴인지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귀환 등의 방법으로 돌아간 시점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망상구현의 효과 범위에서 벗어남과 동시에 헐벗은 그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 버렸기 때문이다.
길드 하우스 같은 곳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그래도 나았다. 하지만 마을의 부활존 같은 곳으로 귀환한 사람들은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지는 순간 기겁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보면 오늘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이유는 바로 그것 때문인지도 몰랐다.
“쩝…”
어쩐지 여성 유저가 거의 안 보이더라니. 간간히 보이는 여성 유저들도 수영복은커녕 튼실하고 두터운 방어구로 몸을 칭칭 감고 있고, 전투가 끝나기가 무섭게 얼른 장비 수리부터 하는 치밀함을 보이고 있었다. 하긴 어제 그렇게 눈요기를 했으니 딱히 아쉬울 건 없지만.
월드 보스에 대한 것은 꽤 유명했기 때문에 간단하게 설명을 하고 넘어갔지만, 진 보스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자 사람들의 표정은 꽤나 진지해지기 시작했다.
“진 보스는… 따로 준비를 하시지 않은 유저분들은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희 공격대들도 현재로서는 공략 가능성을 그리 높게 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자 유저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어제 공략을 포기했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오늘도 그렇게 될 거라는 말씀이신가요?”
“어제 확인된 패턴에 대해서는 나름 대비를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우려하는 것은 어제 나온 패턴들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헐…”
“그래서 저는 오늘의 목표를 진 보스의 모든 패턴이 드러나도록 만드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만약 가능하다면 공략을 하고 싶기는 하지만요. 그 점을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벤트는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고, 그렇게 정보를 모으고 방법을 찾다보면 기간 내에 반드시 공략할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길게 보기로 한 건가. 어떤 의미에선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단지, 이벤트 던전이라는 곳이 기간 한정 코스튬을 구입해야 들어올 수 있는 곳임을 감안해야겠지만. 아마도 내일부터는 공격대를 제외한 일반 유저들의 참여는 눈에 띄게 줄 것이다. 일일이 공략 방법을 찾는데 끼기 보다는 공략 방법이 완전하게 갖춰져서 반드시 잡을 수 있을 때 참가하는 것이 그들로서는 이득이기 때문이다. 매번 코스튬을 사서 들어오기 보다는 공략이 완성된 시점에 참가해서 꿀을 빠는 쪽이 낫지 않겠는가.
형진은 공격대를 이끄는 리더들을 가만히 살폈다. 중구난방인 유저들을 이 정도로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이라면, 아마도 공포와 죽음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다.
어쨌든 그렇게 설명과 정비가 끝나자, 유저들은 공격대의 뒤를 따라 보스 방으로 입장을 시작했다.
[준비 됐으면 바로 시작하겠다.]헬륨 가스를 들이 마신 것 같은 공포와 죽음의 말이 이어짐과 동시에 월드 보스가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확실히 월드 보스는 월드 보스인가보다. 앞서 중간 보스들을 큰 피해 없이 물리쳤던 유저들이지만, 이번만큼은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고 있었다. 그나마 공략을 숙지하고 딜 타이밍과 빠질 때를 공격대의 리더들이 실시간으로 알려주고 있음에도 워낙 공격의 위력과 범위가 괴랄해서 미처 피하지 못하는 이들이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광역기입니다! 빠지세요!”
“텨텨텨텨텨텨!”
“비켜! 비키라고!”
역시나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도 문제였다. 빠질 타이밍에 인파에 밀려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의 욕설이 가득 울려퍼졌고, 그 와중에 통제가 꼬여 공격대 하나가 통째로 증발해 버리는 사태도 벌어졌지만, 그래도 역시 어제에 비해서는 큰 피해없이 마무리가 지어지고 있었다.
“슬슬 움직여 볼까.”
피가 거의 줄어가자 형진은 은신으로 모습을 감춘 채 천천히 다가가 한창 전투 중인 월드 보스의 목덜미 위로 내려앉은 다음 적절한 타이밍에 인스턴트 킬을 꽂았다.
그러자 월드 보스는 그대로 우뚝 멈추어 서더니 분수처럼 룻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여기요!”
“감사합니다.”
형진은 얼른 룻을 집어온 여신들에게 감사를 표한 다음, 슬쩍 몸을 날려 보스 방의 입구로 위치를 옮겼다. 공략이 끝나기가 무섭게 월드 보스 주위를 에워싸며 진형을 갖추기 시작하는 공격대의 모습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준비하십시오! 이제부터 진짜입니다!”
공격대 리더의 외침이 터지자 자기 몫의 룻을 챙긴 유저들 가운데 진 보스의 공략에 참여하기를 원치 않는 이들이 보스방 입구로 빠져 나왔다.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덤벼 봐야 방해만 될 뿐임을 인지하고 정예 공격대들이 싸울 장소를 마련해 주기 위해 미리 빠져 나오는 것이다.
일반적인 보스라면 이런 식의 대응은 이루어지지 않았겠지만, 어제 형진이 보여준 괴랄할 정도의 신속한 움직임을 고려하면 공연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어봐야 방해밖에 되지 않는다. 또한 이렇게 뒤로 물러나 있으면 필요할 때 증원 가능한 예비대로서의 역할도 할 수 있는 일.
“제법이네.”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슬며시 토글 기능으로 장비를 바꿔 입었다.
그렇게 피아간의 준비가 끝나자, 마침내 다시금 공지가 울려 퍼진다.
[준비를 많이 해왔나 보군. 그럼 어제와 마찬가지로 진 보스와 싸울 기회를 주겠다.]“옵니다!”
“준비!”
곧바로 사방이 어두워지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스포트 라이트가 어지럽게 사방을 비추다가 어느 한 점을 가리켰다. 바로 형진이 있는 장소를.
현란하게 비춰지던 스포트 라이트가 한 점을 가리키며 멈추자 사람들은 이게 뭔가 하는 표정을 짓다가, 이내 그 중심에 선 한 남자의 모습을 보았다.
“헉!”
“어째서!”
사람들은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부터 벌어질 진 보스라는 존재와 정예 공격대의 화려한 전투를 기대하며 음식을 챙겨들고 관전모드로 물러나 있는데, 그런 자신들의 한복판을 스포트 라이트가 가리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기대에 부응해서.”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진 보스의 상징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흑요호의 검은 꼬리를 날개처럼 확 펼쳐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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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째.
좀 늦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