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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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변화
얼마 전에 마약 파동으로 인해 한 바탕 큰 소란을 겪었던 의학계는 다시 충격에 빠졌다. 의사라고 해서 게임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직업상 스트레스를 크게 받는 입장이다 보니 의외로 골수 유저들도 많았다. 그런 것을 차치하더라도, 게임 속 포션의 현실화라는 사건은 간단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하지만 장난이나 우스개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미라지 코어는 이미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라는 혁신적인 제품을 선보이면서 더 이상 게임 속의 일들이 꿈이 아님을 증명해 보인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임상 시험에 대한 의뢰서가 세계 각지에 도착했다.
임상 시험은 크게 사전 시험, 1상, 2상, 3상의 단계로 나누어진다. 사전 시험은 시험관 단계와 동물 시험의 단계로 나뉘는데, 동물 시험 역시 계란 등의 낮은 단계에서 쥐와 같은 복잡한 생물로 옮겨가게 된다. 영장류에 대한 시험이 금지된 현재는 0상이라고 해서 극소수의 인원에게 극단적으로 적은 양을 투여하는 단계도 존재한다.
통계적으로 인간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시작한 모든 약 가운데 10퍼센트 정도만이 최종 승인 되어 시판된다고 일컬어질 만큼 의약품 개발은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새로운 의약품이 개발되었다고 해도 곧바로 세간의 관심을 크게 불러일으키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가장 먼저 사전 시험 단계에 필요한 포션의 샘플 들이 세계 각국의 의학 연구소에 배달되었고, 연구자들은 이 샘플을 가지고 즉각적인 시험에 돌입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시험관 단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쥐와 같은 동물에게 행한 시험에서도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뤄낸 것이다. 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외상에 대해서는 길어도 2~3일 내에 완벽한 치유가 보장되며 다양한 질환으로부터의 강력한 치료 효과가 발견되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강력한 치유 효과가 암세포의 증식을 오히려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생겼지만, 그런 예상을 비웃듯이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에 대한 강력한 효과 또한 보고되기 시작했다.
어느 한 곳의 연구소에서만 성과를 내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이러한 식의 보고가 세계 각지에서 경쟁적으로 이루어지자 사람들의 기대감은 한껏 높아지기 시작했고, 곧이어 몇몇 국가들로부터 1상에 대한 허가가 나오자 임상 시험이 끝나는 것조차 기다리기 어려운 난치병 환자들이 마치 엑소더스를 방불케 하는 모습으로 해당 국가로 이동하는 상황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뭐가?”
“너무 포션의 농도를 희석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서요.”
하지만 사람들이 모르는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샘플로 내놓은 포션이 터무니 없이 옅은 농도로 희석된 종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형진은 프리츠의 그 말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원래의 물품을 내놓았다가는 그야말로 의학계가 전멸해 버릴지도 모르니까요.”
“하긴… 그런 면이 있긴 하죠.”
포션은 그 자체로 만병통치약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의학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타나토스만 봐도, 희망과 생명의 신전을 제외한 다른 어떤 형태의 의학적 교육이나 지식 같은 것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 아닌가.
“단순히 병을 고치는 것을 넘어서 인체에 대한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합니다. 사실 포션이 완벽한 만병통치약인 것도 아니니까요.”
“그렇습니까?”
“네. 유전자 레벨의 난치병 같은 것이 대표적이죠. 그 외에도 타나토스에서는 미처 확인되지 않은 다른 여러 가지 질병이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의학 연구가 멈추게 되면 이런 식으로 포션이 통하는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게 됩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 나중에는 수습 불가능한 사태로 번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는 법이고, 그런 일을 막기 위해서라도 의학에 대한 연구는 멈춰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결국 의사의 수는 현재에 비해 줄어들 수밖에 없겠지만. 형진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말을 멈추었다.
사실 의료 서비스는 인간의 목숨과 연관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질로 삼아 폭리를 취하려 드는 경우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의 의료 보험 같은 것으로서 간단한 치과 진료 한 번에 일이십 만원은 우습게 넘어가고, 발치나 신경치료, 때우기 같은 것을 병행할 경우 백만원대 돈이 나가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일인 경우도 있다.
하지만 상당히 묽게 희석시킨 탓에 그 효과가 떨어지는 포션일지라도, 그것이 민간에서 쉽게 구할 수 있을 정도로 퍼지게 된다면 이런 고가의 의료 서비스 대부분은 가격 경쟁에서 형편없이 밀려날 수밖에 없다. 누구라도 수백만 원씩 들여서 위험성이 높은 수술을 하는 것보다는 싸고 간편하며 몸에 칼을 댈 필요가 없는 포션을 선호하게 될 것은 틀림없는 일이니까.
물론 이런 부분은 의료계부터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고, 지금까지 큰 수익을 올려왔던 의료 재벌들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일이니 반발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아마도 개중에는 임상 시험 결과를 조작해서 포션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일으키려는 자들도 있을 터. 형진이 굳이 보안 유지 등을 내세워 몇몇 임상 시험 센터로 한정해서 샘플을 보내지 않고, 임상 시험 센터라는 간판을 단 곳 대부분에 대가 없이 샘플을 퍼뜨린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다. 부정적인 여론을 만들고자 해도 세계 전역에서 쏟아져 나오는 데이터에 매몰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버리는 작전이라고나 할까.
데이터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자, 예상대로 몇몇 의료 재벌들의 주가가 형편없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형진은 기회를 살피다가 적당한 기술력을 갖춘 연구소 몇 개를 요안나를 통해 사들였다. 자체적인 기술 인력과 설비를 갖춰서 포션에 의한 의료 혁명이 일어난 뒤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포션으로 인해 각국 정부를 비롯해서 사람들의 정신이 쏙 빠져 나간 틈에, 미라지 코어는 다시 한 번 사건을 일으켰다. 시상식에서 선보였던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의 예약 판매를 시작한 것이다.
판매 되는 품목은 크게 다섯 가지. 기본 품목인 호버 보드와 에어 슈즈, 그리고 그것을 응용한 수상작 가운데 근두운과 우산, 그리고 동물 인형의 세 가지 타입이다. 물론 이것은 기본 형태에 따른 분류이며, 각 품목마다 세세한 몇 개의 추가 디자인이 포함되어 있는 식이다.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만든 것은 다름 아닌 판매 정책이다. 미라지 코어는 이 모든 물품들을 엘리시온에서 사용하는 가상 화폐인 캐시로 판매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 같은 판매 정책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맙소사. 미라지 코어는 기축 통화의 자리마저 넘보는 건가.”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는 그렇다 쳐도, 포션마저 이런 식으로 판매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깨달았다. 이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세상이라는 것이 엘리시온이라는 게임을 중심으로 한 것이라는 사실을.
“호버 보드의 분석 결과는 나왔소?”
“네. 하지만…”
“하지만?”
“그들이 장담했던 대로, 이 기술을 복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분석한 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흉내조차 낼 수 없다고?”
“그렇습니다. 지금으로선 기반으로 삼은 기술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기 힘듭니다. 특허 신청이라도 했다면 모를까, 지금으로서는…”
“허…”
특허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 물건을 남이 함부로 배껴서 이득을 보지 못하도록 만들어 주는 권리라 할 수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국가 공인의 독점권이 되는 셈인데, 이렇게 독점권을 인정해 주는 대신, 반대급부로 기술의 공개를 요구하게 된다. 특허의 최종적인 목표는 결국 기술 향상으로 인한 발전의 촉진에 있는 것이므로, 경제적 이득을 보장하는 대신 기술을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과 같이 복제 자체가 불가능한 독점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을 경우, 개발자는 굳이 특허를 취득해 기술을 공개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사실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그 유례가 드물다. 기술이란 것이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 이상, 완성된 제품을 리버스 엔지니어링 등으로 분석하면 똑같이 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최소한 실마리 정도는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호버 보드는 물론이고, 포션 마저도 그런 식의 분석이 불가능했다. 세계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임상 시험 센터에 포션 샘플이 보내진 순간, 그곳의 기술진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이었을까. 당연하게도 과연 그들의 손에 들어온 이 물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진 것인지에 대한 연구였다. 하지만 그렇게 의욕적으로 달려든 이들 가운데 제대로 성과를 낸 곳은 아직 단 한 곳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라지 코어는 전 세계를 상대로 그들의 기술적 우위를 확연하게 드러내 보인 셈이다. 애초에 과학 기술이 아닌 다른 영역의 기술로 만들어진 제품이니 접근법 자체가 잘못된 일이었지만, 아직 그것을 눈치 챈 사람조차 없을 정도다.
“반독점법으로 엮을 방법은 없겠소?”
반독점법이란 특정 기업의 시장 독점을 규제하는 법률을 말한다. 넓게는 인수 합병등으로 시장 독점을 강화하는 행위부터 시작해서, 가격 담합 등을 통한 카르텔까지 모두 적용이 된다. 대표적인 반독점법은 바로 셔먼법으로서 대부분의 반독점법은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반독점법의 취지는 경쟁의 실종을 방지하고 대체제를 획득할 수 없는 상황을 막기 위한 것으로서 특정 개인이나 기업이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것을 방지하는데 있다.
대부분의 경우 이 법은 카르텔이나 트러스트 등의 행위를 처벌하는데 적용되지만, 이번처럼 기술 공개를 하지 않음으로서 의도적으로 독점적 지위 획득을 위해 노력했다고 판단될 경우에도 적용이 가능하다.
물론 이런 식으로 기술 혁신에 의한 독점적 지위마저 인정하지 않게 되면 일어나게 될 여러 가지 부정적인 문제 때문에 그것을 엄격하게 적용하지 않는 면이 있고, 실질적으로 미국의 경우에도 반독점면제라는 제도를 통해 공공의 이익에 반하지 않고 실질적으로 경쟁을 저해하지 않을 경우 반독점법의 적용을 면제 시켜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반독점면제라는 것이 사실상 독점을 허락하는 일이나 마찬가지기에 승인을 받기 어려운 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다시 말해, 현재 미라지 코어에 대해 반독점법을 적용해 제소할 수는 있다. 그러나 호버 보드 등은 지금 예약 판매를 시작한 물품처럼 상용화된 물품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흉내 내기 수준의 스타트업 같은 것이 이미 존재하고, 포션의 경우는 아직 시판조차 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상황에서 반독점법 같은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이고, 만약 정부가 그런 기색을 보였다가는 대번에 그런 식의 제재로부터 자유로운 다른 국가로 기업 자체가 이전해 버릴 가능성마저 있었다.
만약 그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정부는 무능을 스스로 증명해 버리는 셈이 되고 멀어진 민심의 이반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릴 것이다.
“아마도… 어렵지 않겠습니까?”
“음…”
정부 관계자들은 그제서야 어째서 이전에 해커에 의한 서버 장악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이하고서도 서버의 위치를 공개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서버의 위치라도 알면 그곳을 장악하는 방식으로라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미라지 코어라는 이 터무니없는 기업의 목줄을 죌 수 있었을 것이다.
“생산 공장의 위치도 파악하기 어려운 건가?”
“그렇습니다.”
“미치겠군. 미국의 정보기관이 몇 개인데 그것 하나 알아내지 못하는 거지?”
“죄송합니다.”
문제는 각계에서 밀려드는 수많은 압력들. 미국은 특히 이러한 압력 단체가 매우 활성화되어 있는 국가이고, 이들은 정부 사안에 대해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러한 압력 단체들로부터의 요구를 무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작정 그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도 없으니 정부로서는 그저 난감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렇게 미국 정부에서 고심하고 있을 때, 그 모든 문제의 시발점인 미라지 코어로부터 제안이 들어왔다.
그 제안의 이름은 다름 아닌, 에어 캐리어 건조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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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