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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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재편
“푸헙!”
고된 연습 중에 잠시 휴식을 취하며 ‘하늘’호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휴대폰을 통해 보고 있던 아름이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세 여신의 모습에 음료수를 뿜어 버리고 말았다.
“언니! 이게 뭐야!”
“미, 미안. 아니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것 좀 봐!”
“응? 이, 이건? 대박!”
놀란 것은 두 자매만이 아니었다.
“헐? 데뷔? 그것도 이렇게 전 세계 동시 중계로?”
“하하… 역시 여신님들은 뭔가 스케일이 다르네. 아차, 녹화. 녹화.”
요리 대회의 설욕을 위해 열심히 연습 중이던 수빈과 승희도 게임 내 동영상 서비스로 뉴스를 시청하다가 여신들의 라이브를 목격했다. 어차피 엘리시온 측에서 나중에 동영상을 따로 배포하겠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수빈은 요리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나름대로 동영상 편집 기술도 익힌 터라 벌써부터 팬영상을 만들 계획을 머리 속으로 떠올리고 있었다
쿵짝거리는 귀여운 비트가 이어지다가 마침내 노래가 시작된다.
-정말이지, 날씨가 왜 이런지 몰라.
도입부는 보호와 균형이 맡았다. 특유의 귀여운 분위기로 뾰로통한 표정을 지은 채 그렇게 투덜거리듯 노래를 부르자 지켜보던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풋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처럼 예쁘게 하고 나와도
그 다음은 꽃과 바람의 차례. 특유의 몽롱하고 색정적인 느낌으로 살짝 윙크하며 그렇게 가사를 이어가자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마저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을 느껴버린다.
-이렇게 우중충 해서야 명랑한 기분이 나질 않잖아
다소 자신없고 침울한 분위기의 황혼과 망각이 앞으로 그렇게 자신 없는 목소리로 노래하자 자신도 모르게 안타까운 표정이 되어 버린다.
그리고 잠시 암전이 이루어지듯 음악이 멈추더니, 갑자기 여신들이 앞으로 뛰쳐 나오며 소리친다.
-에잇! 노래할테닷!
뒤이어 폭죽이 터짐과 동시에 절로 어깨가 들썩 거리는 흥겨운 리듬이 이어진다.
-예술이야! 이건 정말 예술이야!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신이야!
-원래 이쁜 걸 어떻게 해! 누가 나 좀 말려줘!
“푸핫!”
거울에 몸을 비춰보는 듯한 동작과 함께 그렇게 공주병 걸린 듯한 내용의 노래가 이어지자 사람들은 다시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보통 이런 식의 말을 현실에서 누군가가 꺼낸다면 뭐 하는 짓이냐고 핀잔을 주겠지만, 이 여신들은 그런 말을 입에 담아도 그저 천진하고 귀엽게만 느껴지는 그런 특별한 매력의 소유자들이었다.
-예쁘고 천진난만한 모습에 모두 취해
-지렁이도 꿈틀거리며 경련을 하네
-누군가는 원시시대 미스 크로마뇽이라지만
-어쩔거야! 내가 예쁘다는데!
“아하하하!”
“킥킥. 미스 크로마뇽. 하하하하!”
솔직히 여신들은 미스 크로마뇽이 뭔 뜻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웃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그저 기쁠 뿐이다.
사람들의 웃음 소리와 함께 주위에서 요정 백댄서들이 나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더니 다시 한 번 후렴구가 이어진다.
-예술이야! 이건 정말 예술이야!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신이야!
-원래 이쁜 걸 어떻게 해! 누가 나 좀 말려줘!
이쯤 되자 이런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는 아이들도 후렴구를 그렇게 따라 부르고 있었다. 천진난만한 노래 가사에 귀여운 율동까지 이어지니 상당한 중독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렇게 한 차례 흥을 돋우는 노래가 끝을 맺자, 열심히 춤추고 노래하던 보호와 균형이 앞으로 팀의 리더로서 앞으로 나서며 모두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방금 전에 보여주었던 공연을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훌륭한 음악성 같은 걸 논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그녀들의 공연은 죽음의 천사라는 이름 앞에 위축되었던 사람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무방비 상태로 풀어놓을 수 있을 만큼, 귀엽고 즐거운 느낌이었다.
게다가 형진은 사람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한 가지 비책을 숨겨 두었다. 바로 ‘이슬’호를 비롯한 범선들의 돛이 바로 그것이다.
이 돛들은 전투시에 주변의 적에게 마법이 잘 먹히도록 만드는 디버프 효과를 부여하는 장비들이지만, 그 원리를 따지고 들어가면 결국은 바드들의 스킬과 맥이 닿아 있다. 바꿔 말하자면, 이 돛들은 그 자체로 음성이나 노래를 통해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효과를 부여하기 위한 마법 도구인 셈이다.
형진은 이 돛의 기능을 활용해, 여신들의 노래를 듣는 이들에게 미약하게나마 균형의 권능이 전달되도록 만들었다. 다시 말해, 그녀들의 노래를 듣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피로가 회복되고 신체에 활력이 샘솟는 효과를 얻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은 직접적으로 여신이나 추종자들에게 권능을 부여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미약한 효과지만, 현존하는 그 어떤 약용 물질로도 구현하기 힘든 ‘권능’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첫 번째 노래가 끝나고 잠시 휴식을 취한 세 여신은 새로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앞서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앞서의 노래가 귀여움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노래라면, 이번에 그녀들이 부르기 시작한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절로 눈을 감고 마음 속에 떠오르는 어떤 기억을 더듬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도입부는 보호와 균형으로부터 시작했다.
-고향처럼 푸근한 너를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 켠이 따뜻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워즈워스의 수선화처럼 가슴 깊이 아로새겨진 나의 이상향
천천히 이어지는 음색은 방금 전에 그렇게 발랄하고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었던 당사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조용하고 차분한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기분이랄까.
-미소 가득한 너를 떠올릴 때마다
-안개가 걷히는 것처럼 온세상이 환해지는 이유는 무얼까
-해바라기처럼 언제나 바라보게 되는 나의 태양
뒤이은 꽃과 바람의 노래를 이어가자 사람들은 마치 그녀에게 고백을 받아버린 것 같은 기분마저 느끼며 살짝 얼굴을 붉혔다. 정말이지, 꽃과 바람의 매력은 너무나 치명적이어서, 일단 한번 눈이 마주치면 아무리 굳은 마음의 소유자라도 흐물흐물 녹아버리게 만드는 효과가 있었다.
-사월의 어느날, 이렇게 너에게 시를 보낸다
-랑데부 홈런 같이 장쾌한 얘기는 처음부터 내겐 무리였나봐
-해연히 놀랄 네 모습이 조금은 두려워지지만, 그래도 용기 내어 말하고 싶어
어쩐지 처연한 느낌 가득한 황혼과 망각의 노래는 그렇게 끓어오른 감정들을 다독이며 가라앉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세 여신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속삭였다.
-고마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간주가 흐른다. 사람들은 앞서 그렇게 깨방정스러운 춤과 노래를 선보였던 그녀들이 맞나 싶은 느낌으로, 차라리 경건하기까지 한 기분을 느끼며 계속해서 이어질 그녀들의 노래를 기다렸고, 한 번 더 같은 느낌으로 2절이 이어지자 조용히 눈을 감고 그 노래를 감상했다.
이것도 좋다. 앞서와는 다른 느낌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이는 느낌이다. 후크송 같이 떠들썩한 노래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이거라면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노래가 끝나고 다시 한 번 여신들이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자, 문득 꼬마 하나가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외쳤다.
“앵콜!”
그러자 주위의 아이들도 웃으며 그 외침을 따라 하기 시작했고,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어른들 역시 한 목소리로 앵콜을 외치기 시작했다.
여신들은 그렇게 자신들을 향해 외치는 사람들의 모습에 다시 한번 감사의 뜻을 표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기… 그런데… 앵콜이 뭐죠?”
황혼과 망각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묻자 사람들은 크게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한 번 더 노래해 달라는 뜻이에요!”
“아하. 그런 거였군요.”
여신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한 번 더 노래할게요!”
“여신앓이! 다함께 불러요!”
노래 제목이 여신앓이였나. 노래 내용을 봐서는 여신병을 앓는 귀여운 소녀들의 얘기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여신들의 모습에 자신도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현상을 지칭하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그녀들의 이미지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각인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는 노래다.
그녀들의 노래는 죽음의 천사로 인해 경직되었던 마음을 충분하게 녹여내었고, 들으면 들을수록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에 사람들은 마치 세뇌라도 된 것처럼 그 노래들을 흥얼거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들의 몸은 그 리듬을 흥얼거리는 순간 조건반사처럼 당시의 생리현상을 구현해내기 시작했고, 미약하긴 해도 효과는 분명히 있었다.
이를테면 그것은 새로운 세상으로부터 전해진 기도문과 같은 효과를 지니고 있는 셈이었다. 노래가사를 떠올리고 그 가락을 흥얼거리는 것만으로도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그런 놀라운 효과를 지닌 기도문인 셈이다.
반응은 실로 놀라웠다.
사람들은 미처 여신들의 노래가 지닌 효과를 명확하게 인식하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공포와 죽음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그녀들의 모습과 노래가 영혼에 각인되었다. 잠시 전까지만 해도 죽음의 천사라는 이름에 두려움을 느끼던 사람들의 마음은 새롭게 그 자리를 비집고 들어온 여신들의 모습에 점령되어 버렸다.
곧바로 각국의 인터넷에 이 놀라운 데뷔 라이브에 대한 내용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게 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들이 미처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공연이 끝나고 그녀들이 모습을 감추고 난 뒤에야 깨달아 버린 것이다.
아는 것이라고는 단 하나. 처음 불렀던 귀엽고 앙증맞은 노래의 제목이 여신앓이라는 점 하나 뿐이었다.
곧바로 여신앓이라는 단어가 전세계의 미디어를 점령했다. 문자 그대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여신앓이에 휘말려 버린 것이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미라지 코어에 문의를 넣었다. 그룹명은 무엇인지. 그녀들의 이름은 무엇인지. 노래 제목은 무엇인지. 정식으로 음반이나 음원이 발매되는 것은 언제인지. 떠올릴 수 있는 모든 질문을 모아 퍼부어댔다.
미라지 코어에서는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이런 회신을 각 언론사에 보냈다.
“각 멤버의 이름은 보호와 균형, 꽃과 바람, 황혼과 망각입니다.”
“특설 홈페이지에서 팬클럽을 모집중입니다.”
“차후 활동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다만 음원의 경우엔 근 시일 내에 뮤직비디오와 함께 엘리시온 내에서 공개할 예정입니다. 많은 성원 부탁드립니다.”
언론들은 곧바로 이 내용들을 대서특필했고, 사람들은 일반적으로는 생각하기 힘든 기이한 그녀들의 이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뒤이어 사람들은 그녀들의 이름이 공포와 죽음이라는 새로운 신의 이름과 비슷한 형태임을 이해했다.
“설마… 진짜 여신?”
“하하… 설마… 아무리 그래도 진짜 신이 아이돌 데뷔라니… 그건 좀…”
“역시 그건… 좀 그렇지?”
한가닥 의구심이 남긴 해지만, 사람들은 좀 특이한 예명이구나 하는 식으로 이해하고 넘어갔다. 공포와 죽음이라는 신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런 느낌으로 지은 예명이 아닐까 하는 식으로. 물론 개중에는 미라지 코어와 죽음의 천사가 지닌 연관성을 들어 정말로 여신일지도 모른다며 입에 거품을 무는 사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굳이 그것을 파고들고자 하지 않았다. 무의식중에 그것이 함부로 파고들어도 좋은 일이 아님을 이해한 것이다.
어쨌든 데뷔 라이브가 전 세계로 퍼져 나가자 팬클럽의 수는 순식간에 기하급수에 가까운 추세로 폭증하기 시작했다. 물론 추종자로서의 팬클럽과는 다른 개념이긴 하지만, 어쨌든 여신들에게 있어 이 팬클럽에 가입한 채 그녀들의 노래를 흥얼거리는 사람은 그 자체로 훌륭한 신앙의 공급원인 것도 사실이었다.
“우와아아! 시, 신앙이 차오르고 있어!”
“엄청나요. 이 정도로 엄청난 신앙은 난생 처음이에요!”
“세상에… 어, 어쩌죠?”
여신들은 공연 한 번에 지금까지 모았던 신앙의 몇 배, 몇십 배에 달하는 신앙이 모여들자 어쩔 줄 몰라했다.
형진은 그런 여신들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시작이라구요?”
놀란 표정을 짓는 여신들을 향해 형진은 씩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네. 신으로서 제대로 힘을 발휘하자면, 신앙만이 아니라 공헌도도 필요하지요. 이제는 음반 발매를 통해 그것을 모을 차례입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