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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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준비
인스턴트 킬이 확정되자, 거대한 거인의 몸은 마치 풍화되는 듯한 느낌으로 서서히 사라져 가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인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몸을 지닌 존재의 목덜미를 잡아 뽑아내는 것도 모자라서 단숨에 죽여 버리다니. 타나토스에서 그 자체로 악몽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평가되는 집행자들로서도, 그가 지닌 힘은 너무나 독보적이라 놀라움을 감출 수 없을 정도다.
“엄청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하지만 그렇게 놀라고 있을 수 있는 것도 잠시 뿐이었다. 어김없이 또다른 진동이 울려 퍼지며 망각의 대지가 새로운 적의 출현을 예고하기 시작한 탓이다.
“이래서는 끝이 없겠는데.”
그렇게 투덜거리면서도 땅에 떨어진 아이템을 집어 인벤토리에 넣는 것을 잊지 않는다.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으니 일단 뒤로 물러나면서 형진은 공포와 죽음에게 물었다.
[아직 원인은 파악되지 않은 겁니까?]공포와 죽음은 바로 답했다.
[짐작 가는 부분은 있지만 아직 확인중이다.]짐작이라면 형진도 어느 정도 가는 부분이 있긴 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아마도 타나토스의 역사를 통틀어 봤을 때 유례를 찾기 힘든 사태일 것이다. 인과율을 뒤트는 신의 개입이 없다면, 큰 결과가 일어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큰 원인이 존재해야 한다.
그렇다면 최근에 일어난 여러 가지 사건 가운데, 현재 상황의 원인에 어울리는 큰 사건이 존재하는가.
있다.
그것도 형진 본인이 유발한 아주 큰 사건이.
“역시 그게 문제였나.”
형진은 혀를 차며 새롭게 등장하는 존재를 바라보았다.
파츠츠츠츠…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전조가 먼저 발생했다. 마치 액체 질소라도 부은 것처럼 빠르게 대지를 침식하는 강렬한 한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냉기다!”
“물러나!”
냉기의 침식에 놀란 집행자들이 물러나는 순간, 그것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왕관 같은 형상의 투구를 눌러쓴, 불타는 그림자와 같은 형상의 갑주와 무기를 든 기사의 형상.
“특급 냉기 저항 비약 있는 사람!”
“망할. 그런 걸 싸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을 리 없잖아!”
“지금이라도 의뢰로 주문을 넣어!”
강력한 냉기 때문에 접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라 집행자들은 일단 냉기의 범위 바깥에서 원거리 공격을 가하는 것을 선택했다. 형진도 일단 물러서며 드러난 약점이 있는지 확인해 보았지만, 기이하게도 이 녀석 역시 약점이 시야에 잡히지 않고 있었다.
“설마, 이놈도 본체가 아니라는 건가.”
형진은 이전에 엘리시온에서 상대했던 아크리치의 일을 떠올렸다. 당시 그가 아크리치인 줄 알고 공격해서 없앴던 것은 일종의 미끼에 불과했고, 본체는 따로 있었다. 이를테면 심해 속에서 발광체를 이용해 먹이를 유혹하는 초롱아귀 같은 방식인 셈인데, 지금 눈앞에서 모습을 드러낸 그림자 기사 역시 그런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본체가 숨어 있다면 끌어내면 그만. 형진은 다시 한 번 적을 향해 흑요호를 돌진시켰다.
앞서와 마찬가지로 단숨에 물어 본체를 끌어내고자 했던 흑요호지만,
카캉!
이빨을 들어 내고 덤벼드는 순간 그림자 기사는 무기를 뽑아들고는 그것에 저항했다.
“빠르다!”
반응 속도가 놀랍다. 이미 라이언하트를 발동하고 있는 형진의 눈에도 놈이 휘두르는 무기가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다.
저런 속도로 냉기를 뿜어내며 접근하면, 제 아무리 강력한 힘을 지닌 집행자라 해도 감당하기 어렵다. 비약이나 다른 수단으로 냉기 저항을 맞추지 않은 이상, 접근하는 것만으로 동작이 느려지고 최악의 경우 그대로 얼음 동상이 되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
다른 집행자들이 있어서 일단은 쓰지 않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골치 아픈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 이상 아껴두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형진은 더 망설이지 않고 품에서 작은 크기의 성물 여러 개를 꺼내 주위에 흩어 놓았다. 그러자 곧바로 주위 공간에 보호와 균형의 성역이 발동했다.
성역이 발동한 것을 확인하자, 형진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흑요호와 난투를 벌이고 있는 적을 향해 뛰어 들었다.
“위험… 어라?”
“성역? 이거… 신전에 있는 그거랑 같은 건가?”
“그렇다면!”
머뭇거리며 냉기 범위 밖에서 원거리 공격만 하고 있던 집행자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던 냉기가 더 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형진의 뒤를 따라 일제히 적에게 달려들었다.
“정말 엄청난 속도로군.”
하지만 극상의 수준에 올라선 라이언하트는 제대로 눈에 보이지도 않는 놈의 모습 속에서 다음 움직임을 예측했고,
푸화악!
형진의 손을 통해 터져 나온 용오름이 놈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묶어 놓는 순간,
콰득!
흑요호의 거대한 입이 그대로 놈의 몸을 물어 버렸다.
“뽑아내!”
기합 소리와 같은 형진의 외침과 함께 흑요호의 목이 젖혀지자, 지금까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고 있던 놈에게서 끔찍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크아아아악!
놈의 본체는 살갗이 벗겨진 형상의 두개골이었는데, 대기 중에 그 모습이 노출되는 순간 고통스런 비명을 질러대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것을 사방으로 흩뿌리기 시작한다. 성역의 효과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긴 하지만, 저걸 뒤집어쓰는 건 아무래도 몸에 별로 좋지 않을 것 같다.
“우랴아아아!”
하지만 형진의 그런 판단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었다.
힐 데 마그는 본체가 드러나기가 무섭게 불꽃에 휩싸인 거대한 망치를 등고 놈의 머리통을 내리 찍었다.
공격이 적중하는 순간 뼈가 으스러지는 소름끼치는 소음과 함께 놈은 더욱더 발광하듯 주위를 뒹굴며 무언가를 뿜어내기 시작한다. 놈이 터뜨리는 괴성은 본래 밴시의 외침과도 비슷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데다, 체액 또한 도시 하나를 멸절시키기에 충분한 역병의 저주를 담고 있었다. 만약 성역의 효과가 없었다면 본체가 드러난 순간 이곳에 집결한 집행자들은 낭패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힐 데 마그의 타격이 성공하자 뒤이어 다른 집행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들며 놈의 몸을 자르고 부수기 시작했다. 덕분에 놈이 뿜어내는 체액을 잔뜩 뒤집어 쓴 몰골이 되었지만, 그들의 노력 덕분에 목구멍 깊숙이 숨겨져 있던 놈의 약점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합!”
순식간에 거리를 좁히며 달려든 형진의 손에 놈의 약점은 단숨에 꿰뚫렸고,
[인스턴트 킬! ‘통곡의 왕’이 죽었습니다!]메시지와 함께 놈의 형체와 놈이 쏟아낸 체액은 검은 불꽃에 휩싸여 사라져 갔다.
“젠장… 이거 어째 점점 더 일이 고약해지는 것 같은데.”
“그러게.”
이제는 집행자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의 그 녀석은 형진이 없는 상황이었다면 자신들만의 힘으로는 절대로 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망자의 대지는 진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왕 다음에는… 뭐가 나오려는 걸까.”
그래도 일단 성역을 깔아뒀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떠올리기 무섭게, 공포와 죽음의 다급한 목소리가 전해져 왔다.
[큰일이다. 망자의 대지가 수용 가능한 사기의 양을 넘어 버릴 거야!] “네? 그럼?”[타나토스 각지에서 지금 이곳과 같은 현상이 일어나게 돼.] “맙소사!”
방금 전에 처리한 통곡의 왕 같은 것이 나타나면 아무리 지부장급 집행자가 대기중이라도 감당하기 어렵다.
형진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자, 그의 주위에 모여있던 집행자들은 일이 심상치 않게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일단… 네 도움이 필요하다.] “말씀하십시오.”[우선 주민들을 근처의 희망과 생명 신전으로 소개해야 한다.] “이차 피해를 막는다는 말씀이시군요. 알겠습니다.”
방금 전에 성역을 통해 통곡의 왕이 지닌 능력을 무력화시켰던 것처럼, 언데드의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주민들을 우선 신전의 성역 범위로 대피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희망과 생명의 신전 사제들을 움직이는 일은 공포와 죽음이나 그의 추종자들인 집행자들이 할 수 없는 일. 대리자인 그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렇게 주민들을 대피시킨다 해도, 이런 식으로 계속해서 언데드가 출몰하게 된다면 그것은 전대미문의 대재앙으로 번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살린다 해도, 땅 자체가 오염되어 버릴 가능성 또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형진은 우선 공포와 죽음의 부탁을 받아들여 회합장을 통해 희망과 생명의 사제를 소집한 다음, 현재 타나토스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를 알리고 주민들을 신전 안에 자리잡은 보호와 균형의 성역으로 대피시키도록 지시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움직이겠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은 급히 신전 주변의 도시와 마을로 뛰쳐나가 이 사태를 알리고 대피를 독려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신전과 인접하지 않은 마을이나 도시들이 바로 그러한 경우다.
급한 대로 우선 형진은 다른 아바타를 동원해 그렇게 고립된 마을과 도시 인근에 성물을 살포하여 안전 지대를 만드는 일을 진행하는 한편, 하마란에게도 이 사실을 전했다. 신뢰와 헌신의 수호자들에게도 도움을 받기 위해서다.
“알겠습니다. 언데드의 척결은 수호자에게도 숭고한 의무. 바로 이 사실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고마워.”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수호자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형진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집행자든 수호자든 기본적으로 소수 정예에 가까운 조직들이기 때문에 대륙 전체에서 페스타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 역시나 수적 열세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방법이… 방법이 필요해.”
잠시 고민하던 형진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원인 규명과 대책 마련에 부심하던 공포와 죽음은 바로 그의 말에 답했다.
[어떻게?]형진은 자신이 모시는 신에게 이렇게 제안했다.
[엘리시온의 유저들에게 퀘스트를 발동하는 겁니다.] [엘리시온? 거짓된 천국 말인가?] [그렇습니다.]과거 이벤트 퀘스트 때에도 느꼈던 일이지만, 엘리시온 유저들도 단합된 상태에서는 상당한 전투력을 발휘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들은 게임에 접속한 상태에서라면 아바타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인명 손실에 대한 우려에서 자유롭다. 언데드 상대로 이것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큰 이점이다.
게임에 접속한 상태로 타나토스에 진입하는 것은, 이미 왕성 라이언하트에서 열렸던 대관식에서 신입 길드원들을 대상으로 시험해 본 일. 그들에게 퀘스트를 발동해 끌어올 수 있다면, 숫적 열세 정도는 단숨에 뒤집는 것이 가능하다.
공포와 죽음은 형진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고는 바로 회답했다.
[알았다. 바로 조치하도록 하지.]대답과 동시에 공포와 죽음은 엘리시온을 조작하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유저들은 갑작스럽게 울려 퍼진 공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공지사항] -안녕하세요.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이상향, 엘리시온입니다.
저희 엘리시온은 이번 ‘하늘’호의 성공적인 항해를 축하하는 의미에서, 지금까지 성원해 주신 여러분들을 위한 깜짝 이벤트를 준비했습니다.
방법은 간단합니다. 가까운 마을에 설치된 이벤트 포탈을 사용하시면, 이벤트 퀘스트가 부여됩니다. 이벤트 퀘스트를 수행하면, 풍성한 보상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려요!
갑작스런 공지였지만, 그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유저들은 눈에서 빛을 번쩍 발했다.
“응? 이벤트?”
“이벤트라면 당연히 해야지!”
“가자!”
사냥하던 유저들은 급히 인벤토리에서 지니고 있던 호버 보드나 에어 슈즈 같은 것을 착용한 뒤 가까운 마을로 이동했다. 마을에 있던 유저들은 볼 것도 없이 전투 준비를 마치고는 이벤트 포탈로 진입했다.
하지만 그들은 미처 몰랐다. 자신들이 그렇게 당도한 장소가, 사실은 또 다른 현실이라는 사실을. 그들에게 타나토스는 그저 새로운 이벤트가 열리는 게임의 일부분일 뿐이었다.
고립된 마을에 성물을 살포해서 임시로 안전지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던 형진의 눈에도 오래지 않아 엘리시온으로부터 건너온 유저들의 모습이 보였다.
원래는 좀 더 천천히 시도하려고 했던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대로 페스타에 휘말려 타나토스가 멸망하게 놔둘 수는 없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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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