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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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1. 인생은 한 방
하엘은 형진의 추종자가 된 이후로 한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메이드 일에 열중했다. 지금처럼 꿔다 놓은 보리자루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조금 더 적극적으로 메이드 일에 임하게 된 것이다.
물론 그것은 그녀가 메이드로서의 자신을 자각했다든가 숨겨져 있던 메이드 본능을 각성했다든가 하는 식의 이유 때문은 아니다. 그냥 우두커니 서있는 상태에서는 볼 수 없는, 왕성 라이언하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 더 깊이 훔쳐보기 위한 발버둥이었던 것이다.
“빠아!”
“어이쿠! 우리 공주님. 아빠가 보고 싶었어요? 우부부부부!”
“꺄하하하하!”
그 중에서도 가장 하엘이 눈 여겨 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미엘이 낳은 공주님들이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 작고 귀여운 공주님들은 어찌보면 그녀가 맞이하게 될 미래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흑요호에게 있어 출산이란 인간 여성들처럼 목숨을 건 도전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두렵지 않은 건 아니다. 어쨌든 자신의 몸을 통해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는 과정이 미지의 영역에 속하는 것은 마찬가지니까.
미엘의 말대로 어차피 한번은 거쳐 가야 하는 일이니 눈 딱 감고 저질러 버리는 것이 어떨까.
실제로 미엘은 다른 어떤 흑요호보다도 빠르게 출산의 과정을 거쳤다. 그것도 무려 일곱이나 되는 아이를 한꺼번에 낳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흑요호가 아이를 성공적으로 출산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을 족히 수십 배는 단축해낸 그녀의 전례만 보더라도, 이것은 분명 하엘에게 다시 없는 기회가 분명했다.
게다가 그 대상자는 이미 반신에 올라섰고, 차후 신위를 얻어 영광된 자리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이미 왕의 지위에 올랐으며, 신들의 신뢰도 두텁다. 실로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있을까 싶을 정도의 위치라고나 할까. 배경만 놓고 보더라도 아이를 낳고 기르기에 더할 나위 없는 조건을 갖추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역시 고민이 된다. 그럴 수밖에 없다. 다른 조건이야 어찌 되었든, 지금까지 하엘에게 있어 형진은 언니를 빼앗아간 파렴치범 정도로 밖에 인식해 본 적이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애정은커녕 질투와 미움의 대상이라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런 남자와 아이를 만드는 일이 과연 쉬운 결정이겠는가.
결국 그렇게 고민만 하며 하루 이틀 헛되이 시간만 보내던 어느 날.
다시금 미엘이 찾아와 그녀에게 말했다.
“슬슬 결정을 내려줬으면 해.”
“…”
하엘은 조금 원망 섞인 목소리로 미엘에게 질문했다.
“역시… 언데드 영역으로의 원정 때문인가요?”
“맞아.”
“하지만 지금 제가 그와 맺어진다 한들 도움이 되겠어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 그와 떨어지지 못하겠지만, 그 대신 흑요호의 모습은 자유자재로 취할 수 있을 테니 문제없어.”
“그렇군요.”
하엘은 쓴웃음을 지으며 푸념처럼 대꾸했다.
“결국… 언니는 저보다 그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로군요.”
“…”
사실 이제 와서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다. 재회한 뒤로부터 미엘은 계속 일관적으로 같은 태도를 취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삼 그런 미엘의 태도가 사무치는 건 왜일까.
하엘은 아무런 대답이 없는 미엘을 잠시 노려보다가 마침내 무언가를 결심하고는 이렇게 선언했다.
“좋아요. 결정했어요.”
“어떻게?”
“언니가 원하는 대로, 그 남자의 아이를 낳겠어요.”
“…”
“대신 조건이 있어요.”
“말해봐.”
“그와 동침할 때 언니가 함께 해주었으면 해요.”
“…”
듣기에 따라서는 남자와 치루는 첫날밤이 두려우니 미엘을 동석시키는 것으로 그러한 불안을 떨쳐 버리겠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하엘이 뿜어내는 감정은 아무리 봐도 그런 조금은 순수한 감정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나에게 질투라도 유발해 보고 싶은 거니?”
자신이 형진과 동침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지금까지 보여왔던 미엘의 무관심에 대한 복수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싶어 그렇게 말했지만, 하엘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언니가 저에게 그 남자와의 관계를 권하지도 않았겠죠.”
“그럼?”
“솔직히 말해서 그 남자는 싫어요. 그러니 언니가 제 상대를 해주셔야겠어요. 아이를 가지는 것과는 별개로.”
“…”
이건 또 무슨 해괴한 제안이란 말인가.
요컨대 하엘은 미엘을 잠자리에 끌어들여 그녀와 관계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싶다는 얘기다. 물론 그런 식으로는 잉태가 될 리 없으니 실질적으로 관계를 맺는 것은 형진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방법만 잘 생각한다면 그의 얼굴을 보지 않고 미엘과 동침하는 듯한 분위기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유아나 제랄딘이 이런 제안을 들었다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펄쩍 뛰었으리라. 다른 문화권에서 태어나 살아온 요안나 역시 당황했을 것이고, 다른 과거를 지닌 아란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였으리라.
하지만 미엘은 그리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히려 담담하게 그런 하엘의 말에 반문할 뿐이었다.
“그래? 그것이 너의 조건이란 말이지?”
“…”
이게 아닌데. 내가 원한 것은 이게 아닌데.
순간 하엘은 자신이 뭔가 크게 착각했음을 깨달았다. 하긴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인지도 몰랐다. 미엘이 형진에게 지닌 감정은 여느 일반적인 여성들의 그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어떻게 보면 미엘은 이제까지 형진과 함께 한 반려들 가운데 성에 대해 가장 개방적인 태도를 지키고 있었다. 다른 여자들과 함께 동침하는 것도 크게 개의치 않았으며, 자신과 형진이 관계하는 모습을 다른 이에게 보여주는 것 역시 그리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흑요호는 인간과는 달리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생물인 만큼, 성이나 도덕에 대한 관념 또한 인간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미엘이 다른 인간들과 같은 형태의 관념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 하엘이 이상한 쪽이다. 인간을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감정에 물들어 버린 하엘 쪽이 일반적인 흑요호의 사고 방식과 동떨어져 있는 것이니까.
“좋아. 그렇다면 굳이 더 시간을 끌 필요는 없겠지. 준비는 빨리 끝나는 편이 좋을 테니까. 자, 가자.”
“네? 그, 그게…”
하엘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미엘은 그녀의 손목을 움켜 잡고는 그대로 형진에게로 향했다.
“지금?”
“네. 지금.”
당황스럽기는 형진도 마찬가지다. 물론 하엘에 대한 일은 언제고 그렇게 되리라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진행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한 탓이다.
“가급적 빨리 끝내는 편이 좋으니 시간 끌 여유가 없어요.”
“그거야… 그렇지만.”
미엘이 이렇게 막무가내였나 싶은 생각마저 떠오른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니 그녀가 이렇게 조금은 강압적인 태도까지 보이며 재촉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조만간 형진은 언데드 영역으로의 원정을 시작하게 된다. 다른 보통의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 만큼, 그는 혼자 힘으로 이 일을 처리하려 할 것이다. 그때,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은 필요할 때 불러내어 무기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미엘 자신 정도.
하지만 그녀 역시 살아있는 생명인 이상 언제까지고 그 역할을 만족스럽게 수행할 수 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자신과 버금가는 또 다른 무기를 그의 손에 쥐어 줄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면 어떨까.
미엘이 다소 조급하고 강압적인 태도마저 보이며 이렇게 하엘과의 관계를 독촉하는 데는 결국 그런 이유가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인간이라면 쉽게 떠올리기도 어렵고 실천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지만 말이다.
“알았어. 그럼… 일단 자리를 옮길까.”
“네.”
형진은 미엘과 하엘을 데리고 비어 있는 별궁 가운데 한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엘로서는 이제 빼도 박도 못하고 일을 치러야만 하는 상황에 처해 버렸다. 한순간 욱해서 미엘이 차마 받아들이기 어려울 조건을 건다는게 오히려 자기 발목에 쇠고랑을 채우는 채우는 결과가 되어 버린 탓이다.
“잠시만요. 준비를 좀 하고 올게요.”
“그래.”
미엘은 형진을 남겨둔 채 하엘을 데리고 욕실로 간 뒤 다짜고짜 그녀의 옷을 벗겼다.
“어, 언니.”
“왜?”
“…”
저항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순식간에 하엘은 미엘 앞에서 벌거숭이가 되어 버렸다. 사실 인간의 의복 따위 거추장스럽기 짝이 없는 물건이라고 생각하던 그녀였지만, 막상 이렇게 미엘 앞에서 벗은 몸을 보이니 부끄러움을 감추기 어렵다.
하지만 미엘은 하엘이 그러거나 말거나 곧바로 자신 역시 옷을 벗은 뒤 그녀의 몸을 정성스럽게 씻기기 시작했다.
“…”
부끄럽다. 부끄러워서 미칠 것만 같다. 미엘의 손이 자신의 살결에 닿을 때마다 하엘은 흠칫 흠칫 몸을 떨었다. 피부와 피부가 닿을 때마다 솜털에서 일어난 정전기가 신경을 타고 흘러들어와 척추를 거쳐 머리 속에서 터져 버린다. 지금껏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그 모든 경험으로 인해, 하엘은 숨이 가빠지고 피가 머리로 쏠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렇게 몸을 씻기는 일이 끝나자 미엘은 자신과 하엘의 몸에 묻은 물기를 마법으로 날려버린 뒤, 그녀를 데리고 침대로 들어갔다.
“…”
형진은 가운을 걸친 채 닮은 꼴의 두 흑요호가 침실로 들어오는 광경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진.”
“응?”
“잠시만… 지켜봐 줄래요. 하엘의 조건을 만족시켜 줘야만 해서요.”
“알았어.”
구체적으로 그 조건이 무엇인지는 묻지 않았다. 그저 흑요호 사이에 뭔가 치러야 할 관습 같은 것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렸을 뿐이다.
미엘은 그대로 하엘을 침대로 데리고 가서 눕혔다. 그리고 바로 누운 하엘의 몸 위에 올라앉았다.
“…”
하엘은 와들와들 떨며 자신의 몸 위에 올라앉은 미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전과는 다르게 조금 차갑기까지 한 시선. 하지만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이렇게 피부를 맞대고 침대 위에 누운 채 그녀를 올려다보는 지금의 상황만으로도 하엘은 이미 심장이 터질 것만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스륵.
문득 미엘이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더니, 가만히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하엘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가까워질수록 확 하고 풍겨오는 미엘의 체향만으로도 이미 정신이 혼미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부드럽고 촉촉한 입술이 자신의 입술에 와닿는 순간 하엘은 다시금 자신이 처한 그 모든 상황을 잊어 버렸다.
그것은 변혁이었다. 촉촉한 입술이 맞닿는 순간 하엘의 사고는 완전히 정지해 버렸다. 하지만 미엘의 행동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입술을 비집고 무언가가 밀려들어오기 시작한다. 끈적하고 달콤한 혀. 하엘은 전신을 바르르 떨다가, 이내 손을 들어 자신의 몸 위에 걸터 앉은 미엘의 몸을 부둥켜 안았다.
“…”
이게 무슨.
형진은 가만히 의자에 앉아 두 흑요호 사이에 치러질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다가 이내 뜨악한 표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물론 그도 이 두 흑요호가 자매 같은 사이라고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눈앞에서 이런 짓을 벌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미엘은 형진이 놀란 눈으로 지켜보거나 말거나, 하엘의 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그녀의 몸을 달구는 데 여념이 없었다.
정신없이 헐떡이며 키스에 몰두하고 있는 하엘의 몸을 그녀가 어루만진다. 가슴의 부드러운 융기를 손으로 쓰다듬고, 꼬리들 역시 각기 움직이며 마치 간질이는 듯한 느낌으로 하엘의 몸 위를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퐁 하는 소리와 함께 미엘의 꼬리들이 분신으로 모습을 바꾸더니 형진에게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하엘의 몸에 가차 없이 키스를 퍼부어 댄다.
“놀랐어요?”
“조금. 어떻게 된 일이지?”
“별 일 아니에요.”
미엘의 분신 가운데 하나가 가만히 다가와 속삭이더니 무릎을 꿇고는 그의 몸을 자극하기 시작한다. 눈앞에서 펼쳐지는 자극적인 모습들과, 완숙하기 이를 데 없는 그녀의 혀놀림에 형진의 육체는 금새 우람한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마침내 그의 준비가 끝나자, 미엘은 조용히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 이제 당신 차례에요.”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