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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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침묵
저주 같은 것이 담겼을 수도 있기 때문에, 현실이 아닌 엘리시온에서 아이템을 꺼내 보기로 했다. 티폰이라는 존재 자체가 워낙 범상치 않다보니 룻을 확인하는 것조차도 이렇게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혹시 몰라서 결계를 비롯해 안전을 위한 여러 가지 수단을 강구하고 나서야 비로소 인벤토리에 담겨져 있는 룻을 확인했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꺼내 보니 부정형의 희끄무레한 것이 손에 잡힌다. 마치 해파리를 물에서 건져 놓은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손에 느껴지는 감각조차도 차가운 것이 정말 영락없다.
뭔가 꺼림칙한 느낌이긴 했지만 어쨌든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아이템정보
명칭 : 영혼포식자
등급 : 신화
사용제한 : 반신 이상 신격 보유자.
설명 : 우주적인 최상위 포식자 티폰의 힘이 담겨진 정수.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형태가 변화하며 무기로 사용가능하다. 모든 효과는 의지의 영향을 받는다. 영혼을 포식할 경우 사용자는 무작위로 특별한 효과를 얻는다. 습득시 귀속. 사용할 때마다 일정량의 공헌도가 소모된다.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에 비례해 효과 또한 증폭된다.
효과 : 공격력, 명중률 증폭. 공격 성공시 확률적으로 공포, 혼란, 경직 또는 침묵. 즉사 성공시 영혼 포식.
강화시 효과 : 의지 증가. 확률적으로 위압 효과 증폭.
“헉!”
하지만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외형과는 달리, 확인된 정보는 실로 놀라웠다. 무려 신화 등급. 게다가 사용제한은 반신 이상의 신격 보유자. 그야말로 신들을 위한 무기인 셈이다.
설명 부분을 꼼꼼하게 읽어 봤지만 특별히 저주 같은 항목은 눈에 띄지 않는다. 일단 살짝 안심하고는 이 흐물거리는 형태부터 변형을 시켜 보기로 했다.
손에 쥐고 공헌도를 주입하자 흐물거리던 모양은 반투명한 경질의 단검 형태로 변화한다. 차갑게 냉기가 흐르는 그 투명한 모양은 흡사 얼음을 조각해서 만든 단검을 연상시킨다. 투명도가 높고 빛을 반사하는 정도가 낮아서 암살용의 무기로는 최적이라는 느낌이다.
이번에는 다른 형태를 연상해 보았다. 그러자 주먹을 감싸는 권갑의 형태로 자연스럽게 변화한다. 마치 손에 시리도록 투명한 오러가 맺힌 형상이랄까. 이것도 꽤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소매 안에 감추어진 팔찌 형태로 바꾸어 보았다. 딱히 무기의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는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전신을 감싸는 갑옷의 형태로 바꾸어 보았는데 제법 많은 공헌도가 소모되긴 했지만 큰 문제없이 변형이 되었다.
“혹시 이것도 될까.”
형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영혼포식자의 형상을 다시 바꾸어 보았다. 그러자 권총 형태의 투명한 무기가 손에 쥐어진다. 모양은 제법 그럴 듯 하다. 혹시나 해서 방 안에 놓여진 화병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자 소리도 없이 산산조각이 나버린다.
“와우.”
계속해서 이것저것 모습을 변형시켜 확인해 보았다. 그 결과 몇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한 번의 공격에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은 무기의 크기에 따라 1에 10 정도. 작은 형태를 취할수록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이 줄어들지만 크기를 키워도 최대 10을 넘지 않는다. 단, 크기가 커지거나 형태가 복잡한 무기일수록 변형에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이 엄청나게 늘어난다는 단점이 있다. 활이나 총 같은 원거리 무기의 경우 사용시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이 훨씬 크다. 일반적인 냉병기 형태의 거의 네 배 이상이 소모된다.
추가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과 위력은 기본적으로 비례 관계인 듯 보이지만, 일반적인 정비례라기보다는 로그함수 그래프처럼 추가되는 공헌도의 양이 일정 이상을 넘어서면 상승폭이 둔화되는 느낌이다.
“훌륭해.”
쓸 때마다 공헌도를 소모하는 것이 꼭 돈 먹는 하마 같기는 하지만, 흑요호의 힘을 쓸 수 없게 된 지금의 상태에선 최상의 무기를 획득한 것이나 다름없다. 보통 때는 일반적인 단검을 쓰다가 티폰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적을 상대로 쓰면 되는 일이니까.
게다가 놀랍게도 이 무기는 다른 강대한 장비들과는 달리 강화도 가능하다. 강화시 효과가 단순히 공격력 증가가 아닌 의지 추가인 점도 마음에 든다. 영혼포식자의 성능은 기본적으로 의지 수치에 따라 그 효과가 결정되므로, 단순히 공격력이나 명중률을 증폭하는 걸 넘어 장비의 효과 전체가 강화되기 때문이다.
곧바로 강화석을 꺼내 강화를 시도한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영혼포식자’의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강화가 실패한다면 아이템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응?”
하지만 보기 좋게 처음부터 실패해 버린다. 게다가 딱 한번 실패했는데도 대번에 내구도가 한계에 달했다는 메시지가 떠버린다.
“등급이 높은 값을 한다 이건가.”
형진은 입맛을 다시며 공헌도 상점에서 내구도 복구 아이템을 구입해서 복구를 실행한 다음 다시 강화를 시도했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영혼포식자’의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강화가 실패한다면 아이템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실패. 이거 어째 예감이 좋지 않다.
하긴 사용할 때마다 기본으로 공헌도를 잡아먹는 녀석이다. 강화가 가능하긴 해도 쉽게 성공하긴 어렵다는 뜻인가.
보통의 가난뱅이 신이라면 벌써부터 손이 벌벌 떨리기 시작했겠지만, 형진은 코웃음을 치며 다시 한 번 복구를 하고 강화를 시도했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영혼포식자’의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강화가 실패한다면 아이템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물론 또 실패. 이쯤 되니 오기가 생기기 시작한다.
“오랜 만에 강적을 만났군. 하지만 네가 날 이길 수 있을까? 큭큭큭.”
말은 그렇게 해도 어째 살짝 열이 뻗친 것 같은 느낌이다. 뭐든 안 될 때는 적당히 좀 쉬었다 하고 그래야 하는 법이지만, 이미 살짝 열이 뻗치기 시작한 형진은 누가 이기나 보겠다는 듯이 공헌도를 있는 대로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이른바 빡강이 시작된 것이다.
일곱 번째 까지만 해도 그럭저럭 이성이 남아 있는 듯 보였다. 하지만 여덟 번째를 넘어 아홉 번째 실패가 이어지자 형진의 이마에 힘줄이 뽈록 뽈록 튀어 나오기 시작한다. 혈압이 높아지고 눈이 충혈되기 시작한다.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호흡이 가빠온다. 자칫하면 그대로 폭발해 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던 바로 그 순간.
[축하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1 영혼포식자’를 획득했습니다.]“헉…”
무려 열두 번의 시도 끝에 마침내 +1을 띄웠다. 무슨 +1 무기 띄우는 것이 10강 띄우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것 같은 느낌이다.
단검 형태로 변화시킨 영혼포식자를 손에 쥐어 보았다.
“…”
하지만 딱히 뭔가 달라진 기분을 느끼기 힘들다. 역시나 돈 먹는 하마. 이거 강화 한 번 제대로 하려면 그야말로 공헌도가 억수로 깨질 것 같은 느낌이다.
형진은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강화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아니면 잠시 멈췄다가 나중에 다시 시도를 할 것인가.
어떻게 보면 이 순간이 무모한 도전에서 벗어날 유일한 기회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진은 무슨 자신감에서였는지 강행 돌파를 마음먹었다.
물론 결과야 뻔하다.
[강화를 시도합니다.] [안타깝습니다! 강화에 실패했습니다!] [‘영혼포식자’의 내구도가 한계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강화가 실패한다면 아이템이 파괴될 수도 있습니다!]“큭큭큭…”
당연히 이번에도 실패. 형진은 자신이 왜 웃는 건지도 모른 채 큭큭거리는 웃음을 흘리며 계속해서 강화를 시도했고, 마침내 20번째 시도에서 비로소 +2강에 성공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앞서 +1강을 성공한 뒤부터 다시 시도한 횟수가 20번째라는 얘기다.
이쯤 되면 슬슬 질릴 법도 한데, 형진은 이를 악물로 누가 이기나 해보자는 식으로 계속해서 강화를 이어갔다.
+3강은 25번째 시도 끝에 성공. +4강은 17번째 시도 끝에 성공. +5강은 38번의 시도 끝에 성공.
“…”
겨우 +5강을 만들었을 뿐인데 공헌도를 도대체 얼마나 쓴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이 정도 비용이면 +10강 아이템을 몇 개나 만들고도 남았을 텐데.
하지만 무려 신화 등급의 아이템이다. 엘리시온 내에는 물론이고 우주 전체를 뒤져도 찾기 어려운 그런 물품이 아닌가. 티폰 같은 녀석을 다시 만난다고 가정했을 때를 대비해서라도 충분히 강화를 해둘 필요가 있다.
물론 어차피 인스턴트 킬만 내면 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고 누가 옆에서 반문해줬다면 이런 결심은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기야 이미 눈이 돌아가 버린 상황인데 그런 조언이 귀에 들어오기나 할까 싶긴 하지만.
형진은 강화를 계속했다.
+6강은 놀랍게도 7번의 시도 만에 성공했다. 머리털이 짜릿하게 곤두서는 그 쾌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7강을 시도했지만 이게 웬 일. 무려 44번을 시도한 끝에 간신히 성공해 버렸다.
“큭큭큭… 그래, 누가 이기나 해보자.”
꼬맹이 여신들이 만약 이 모습을 봤다면 겁에 질려 울며 도망갔을지도 모를 정도로 잔뜩 혈안이 된 채 형진은 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옥 같은 강화를 이어갔다.
+8강은 63번이 걸렸다. +9강은 무려 102번. 이쯤 되자 미친 듯이 반복적으로 강화를 시도하던 형진도 슬슬 질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10강을 바로 코앞에 두고 그대로 물러서자니 역시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형진은 다시 한 번 악마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말았다.
물론 마의 고지답게 강화 성공 메시지는 좀처럼 뜨지 않았다. 나중에는 거의 몇 번을 시도했는지조차 잊을 정도로 그렇게 강화 시도를 이어가다가 문득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낌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데,
[축하합니다! 강화에 성공했습니다!] [‘+10 영혼포식자’를 획득했습니다.]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강화 성공 메시지가 나타났다.
“어?”
잠시 멍한 표정으로 메시지를 바라보던 형진은 마침내 +10강이 성공한 것을 확인하고는 기뻐 날뛰기 시작했다.
“으하하하하하! 성공이다! 드디어 성공이다!”
“헉! 오, 오빠?”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길드 하우스에 인기척이 들려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확인해 보려 했던 카트린은 갑자기 괴성을 지르며 방안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형진의 모습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그런 카트린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크루그는 화들짝 놀하는 카트린의 반응에 뭔일인가 싶어 고개를 내밀고 방 안을 들여다 보고는 이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 어째 형은 갈수록 철이 없어지는 것 같아. 카트린. 너는 저러면 안 된다.”
“응.”
두 남매가 그러거나 말거나 잠시 성공의 기쁨에 발광하던 형진은 +10강 영혼포식자를 손에 쥔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처음에도 시린 얼음 조각 같은 투명함을 지니고 있었던 녀석이지만, +10강이 되고 나자 제대로 잘 살피지 않으면 알아보기도 어려울 정도의 투명함을 지니게 되었다. 게다가 형태나 길이가 자유자재로 변화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대일 대결에서는 거의 상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치명적이고 흉악한 무기가 되어 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게 하루를 강화로 날려버린 다음 날. 형진은 허세와 망상으로부터 샘플로 채취해온 티폰의 사체를 분석한 내용을 전해 받았다.
“꽤 훌륭해.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영기와 생명, 그리고 행성의 자원들을 집어 삼킨 탓인지 마법 재료로서 더할 나위 없을 정도야. 이 녀석의 사체, 사라지지 않았다고 그랬지?”
“네.”
“가져와. 이거라면 기존에 만들었던 마법 물품의 효율이 최소 150퍼센트는 상승할 거야. 그래. 이 녀석으로 배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애들용으로 만든 범선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전함 말이야.”
“하하… 뭐, 일단 알겠습니다.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죠.”
워낙 압도적인 덩치를 가진 녀석이라 한꺼번에 옮겨오는 건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황혼의 성물을 놈의 사체 위에 설치해서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로 했다. 통째로 옮길 것 없이 필요한 만큼 잘라다 쓰면 되는 일이니까.
프리츠 역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지고 그를 찾아왔다.
“위성을 결계 형성에 사용하자고?”
“네. 개개의 위성을 격자형으로 배치해서 대규모의 물체를 감싸는 결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입니다.”
티폰을 처치하고 나서 하루를 꼬박 뒤처리에 써야만 했던 걸 생각하면 이건 꽤 솔깃한 얘기다. 게다가 이런 식으로 위성을 여러 개 모아 필요한 면적의 결계를 형성하는 기술은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꽤 여러 가지로 활용이 가능하다.
“좋아. 한번 만들어 봐.”
“감사합니다.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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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슬금슬금 (도망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