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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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침묵
실제 운용에서 문제를 드러낸 무인기에 대한 개량도 다시 이루어졌다. 전열화학포 발사시 안정성과 명중률 확보 문제와 더불어 탄종을 단순 철갑탄에서 철갑소이탄으로 바꾼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투하에 사용되는 폭탄 역시 추진력이 없는 JDAM에서 우주에서의 사용을 상정한 간단한 추진 장치를 포함한 신형 폭탄으로 교체하는 안건도 올라왔지만, 시간이 부족한 관계로 당장 적용하는 것은 일단 미뤄두고 연구만 이어가도록 했다.
“티폰의 사체, 편의상 행성 티폰이라고 부르겠습니다. 행성 티폰의 위치에 대한 분석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 어디쯤이지?”
프리츠는 조금 난처한 기색을 보였다.
“그게… 적어도 지구에서 관측 가능한 위치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블랙박스는 물론이고, 채굴과 병행해서 새로운 관측 자료를 습득해 추가로 분석을 의뢰했지만, 현재까지 지구에서 확인된 천체는 관측되지 않았습니다.”
“인지 범위를 벗어났거나, 아예 다른 우주일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군.”
“그렇습니다.”
프리츠는 그렇게 말하고는 여기에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다.
“그리고, 추가 관측 자료를 통해 분석된 내용입니다만, 행성 티폰 주위에는 다른 천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없다고?”
“네. 적어도 1000AU 내에는 어떤 천체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맙소사.”
AU는 천문단위라는 단어의 약자로서 지구와 태양까지의 평균거리를 뜻한다. 즉, 티폰을 중심으로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1000배 이내에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라는 듯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진짜… 포식자였군.”
물론 우주라는 광대한 영역에서 1000AU는 별 것 아닌 거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하다못해 혜성과 같은 작은 얼음 천체 정도라도 존재해야 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런데,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명백하게 무언가 외적 요인이 개입하여 그 공간 안에 존재하던 무언가를 치워버렸다고 이해하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파편을 처리하려고 발버둥친 것이 사실은 헛짓이었다는 얘긴가.”
그 정도의 공간이 텅 비어 버린 상태로 존재한다면 파편이든 언데드든 조금 흩어지더라도 별 의미 없는 일이다. 우주는 너무나 광대해서 그런 먼지 조금 흩날린 것으로는 티조차 나지 않을 정도니까.
“어쨌든 언데드는 처리를 하는 것이 옳으니까요.”
“하긴.”
요안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니, 프리츠가 서류를 넘기며 다른 내용을 보고했다.
“위성 결계는 먼저 달에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달에?”
“네. 본래는 지표에 고정형 결계를 설치하려고 했지만, 소모되는 공헌도의 양에서 훨씬 경제적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나쁘지 않은 일이다. 어쨌든 실전에서 사용하기 전에 한 번이라도 더 테스트를 해보는 것이 좋다는 건 이전의 전투에서도 충분히 증명된 사실이니까.
“그런가. 그럼 설치는 언제쯤?”
“충분한 숫자의 위성이 완성되는 즉시 시행하려고 합니다.”
“허세와 망상께서 고생 좀 하시겠군.”
“행성 티폰에서 채굴한 자원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드는데 재미를 붙이신 모양입니다. 저희로선 좋은 일이지요.”
“훗.”
귀찮은 책임 같은 것에서 벗어나 자기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어서인지 허세와 망상은 요새 꽤 성격이 좋아졌다. 물론 지금 모습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마침내 달에 위성 결계를 설치하는 날이 다가왔다. 소요되는 위성의 수는 약 250개. 수직 방향에서 누르는 힘에 특히 안정적인 허니콤 구조로 결계를 배치한 것이 특징으로서 외부에서의 충격을 매우 안정적으로 방어할 수 있다.
작업용으로 건조한, 세 개의 긴 다리를 가진 문어 형태의 우주선들이 휴대용 위성 발사기를 다연장 미사일처럼 탑재한 채 달 궤도로 몰려가더니 적정 고도에서 우르르 쏟아놓기 시작한다. 얼핏 보기에는 마치 우주에 탁구공을 쏟아놓는 것 같은 모습이다.
작업용 우주선들이 위성 살포를 마치자, 엘리시온 내에 자리 잡은 통제 센터에서 위성들을 지정된 위치에 배치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전투 중에 설치하는 건 쉽지 않겠는데.”
간단히 생각해도 250개나 되는 위성을 살포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기존에 만들어진 5개들이 휴대용 위성 발사기를 50개나 한 번에 발사해야 한다는 뜻이니까. 게다가 휴대용 위성들이 고고도에서 위치를 잡는데 걸리는 시간만 대략 하루. 이래서는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써먹는 것 자체가 어렵다.
형진의 말에 작업을 총괄하고 있던 프리츠가 쓴웃음을 짓는다.
“휴대용 위성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인 것으로 보입니다. 숫자를 줄이려면 위성의 크기와 출력을 좀 더 높여야겠죠.”
“아니면… 아예 위성 배치를 위한 별도의 무언가를 만들던가 해야겠지.”
이를테면 지금 달 궤도에 위성을 살포한 작업용 우주선 같은 것으로. 우주선을 인벤토리에 넣고 다니긴 힘드니, 무인기에 다섯 개나 열 개 정도의 위성 발사기를 탑재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작업용 우주선 덕분에 위성의 배치는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모든 위성의 배치가 끝나자, 다시 한 번 통제 장치를 점검한 뒤 결계가 발동되었다.
각 위성들의 결계가 발동 되자 달은 잠시 격자 형태의 투명한 막으로 둘러싸이더니, 이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결계가 발동되었다고는 해도 일부러 가시광선을 반사시키거나 흡수하지 않는 이상 외적인 모습이 바뀌지는 않는 것이다.
형진의 곁을 지키고 있던 요안나가 문득 귀로 손을 가져가더니 가만히 형진에게 보고했다.
“각국 정부에서 미라지 코어로 문의가 들어오고 있어요.”
“뭘 하는 건지 궁금하다 이건가.”
“네.”
“테라포밍을 시작한 거라고 말해둬.”
“놀라서 뒤집어지겠군요.”
“최소한 티폰을 발견한 것보다는 덜 충격적이겠지.”
실질적인 테라포밍을 시작하려면 아직 한참 멀었지만, 달 전체를 외부의 적대적인 환경으로부터 보호하는 결계의 설치가 끝난 것은 첫 삽을 뜬 것으로 보기에 충분한 행위다. 물론 아직 며칠 더 결계를 운용해 보면서 문제점 같은 걸 고치고 안정성을 확인하는 일이 남았지만 그런 걸 세세하게 설명할 이유는 없다.
“지구에 저걸 설치하려면 얼마나 걸릴까.”
“단순 계산으로도 필요한 위성의 숫자가 16배가 넘어갑니다. 어디까지나 단순 계산이고 실제로는 좀 더 정확히 계산해 봐야겠습니다만.”
지구의 반지름은 달의 약 4배. 이것으로 계산하면 표면적은 16배가 된다. 물론 어디까지나 근사치이고 제대로 계산하면 반지름도 4배보다 작으니 필요한 위성의 수도 그만큼 적어지겠지만 대충 16배를 상정하고 준비를 해야 하는 건 틀림없는 일이다.
“250의 16배면 4000개인가.”
현재 인류가 운용중인 인공위성은 약 천 여개. 물론 지금까지 발사한 위성의 개수를 다 합치면 4000개 정도는 가볍게 넘는다. 그렇게 생각하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인류가 쏘아올린 모든 위성의 숫자를 합친 것 만큼을 단기간에 배치하면 그렇지 않아도 난리가 난 세계 각국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못 기대가 된다.
“준비만 해둬. 당장은 필요 없지만, 나중에 필요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까.”
“알겠습니다.”
행성 티폰의 지름은 달보다 조금 작은 수준. 굳이 비교를 하자면 목성의 위성 가운데 하나인 유로파와 비슷한 크기를 지니고 있다.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르는 또 다른 티폰의 규모가 그와 동일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어려우니 이것 역시 최소 지구 수준의 규모를 상정하고 준비를 하는 것이 옳다. 이런 상황이고 보니 여러모로 준비가 길어질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세계 각국에서는 난리가 났다. 본격적인 테라포밍이 진행되었음을 미라지 코어에서 확인해 주자 곧바로 우주 시대가 열릴 것처럼 난리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투자에 대한 문의가 쇄도하고 있어요.”
“얼어 죽을. 시킨 거나 잘 하라고 해.”
“그게… 생각처럼 쉽지가 않은가 봐요.”
형진이 우주 개발과 동시에 각국에 요구한 것은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난민이나 이재민들의 확실한 구호이다. 그냥 생색내기 식으로 가서 사진이나 찍고 오는 식이 아니라, 제대로 생활 환경을 개선하고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서 만성적인 빈곤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조치하도록 요구한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의 구제 사업보다는 가시적인 지분 참여 등을 문의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쪽이 더 익숙하기도 하고, 사업 투명성이나 신뢰성 같은 면에서도 문제가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알아서 하길 바라는 건 무리라 이건가.”
“한두 나라라면 몰라도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해당되는 얘기니까요.”
“쳇. 할 수 없군.”
결국 형진은 미라지 코어 산하에 사회 재단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국가들은 자체적으로 구제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재단에 기부를 함으로서 명시적인 지분을 획득하게 된다.
“이사장은… 희망과 생명님. 맡아 주시죠.”
“내가?”
“달리 누가 있겠습니까. 퍼주는 일이라면 역시 호구… 아니, 희망과 생명님 외에 따를 자가 없죠. 원래 세계적인 스타는 이미지 관리를 위해서도 이런 일도 좀 하고 그러는 겁니다.”
“너, 방금 호구라고 그랬지.”
“잘못 들으신 겁니다.”
“흥.”
“하시는 김에 쓸만한 사람은 사제로 삼으셔도 되고요. 교단 확장도 되고 이미지 관리도 되고, 얼쑤 좋구나.”
“놀고 있네.”
희망과 생명은 불퉁거리면서도 결국 이사장직을 수락했다. 그렇지 않아도 헐리웃의 여신으로 불리는 엘피스 리페 에스페란토가 미라지 코어 산하의 사회 재단 이사장에 취임하자, 다시 한 번 각국 언론들이 들썩거렸다.
“그러고 보면 이분이 실종되었던 기간이 묘하게 해킹 사건과 맞물려 있단 말이죠.”
“어, 그러고 보니 정말이네요.”
“게다가 복귀한 시점도 묘하게 들어맞고.”
“우연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말씀인가요.”
“우연이라기엔 뭔가 묘하게 들어맞지 않나요?”
그런 식으로 여러 가지 추측성 보도가 나오고 있는 와중에 여신은 당당하게 재단 이사장에 취임했고, 그 자리에서 재단의 이름을 희망과 생명으로 확정해 버렸다.
“희망과 생명이면… 그 진통제 대신 부르라던 신의 이름 아닌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긴 어렵고, 설마 어떤 중대한 이유가 있는 건?”
“그러고 보면 이번에 이사장에 취임한 에스페란토님의 이름에서 희망과 생명이라는 뜻을 찾을 수 있습니다. 엘피스는 그리스어로 희망, 리페는 라이프를 다르게 읽은 것으로 볼 수 있죠.”
“자기 이름을 따서 지었다는 건가요? 미라지 코어의 산하 재단인데?”
“뭐… 그분이라면 그럴 수도 있지 않을까요? 원래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이라. 나쁘게 말하면 천방지축이라고 해야 하나.”
“하긴, 그분이 좀 그렇긴 하죠.”
형진은 그렇게 난리가 난 언론들을 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아예 스스로 여신이라고 광고하고 다니시지 그래요?”
어딘가의 무당과 비교되거나 하면 곤란한데 말이지.
“흥. 교단 확장 하라고 한 건 어디의 누구?”
“그거야… 어휴, 알았습니다. 그냥 편한 대로 하세요.”
어쨌든 그렇게 지구에 사는 사람들의 시선을 이런 저런 방향으로 분산시켜 놓은 상황에서, 형진은 두 번째 탐사의 준비에 계속해서 박차를 가했다.
문제가 되었던 여러 가지 문제를 속속들이 해결하고, 마침내 두 번째 탐사의 때가 되었다.
“준비 완료 되었습니다.”
“좋아.”
제단에 사기의 주입이 시작되자, 이전과 마찬가지로 제단으로부터 통로가 형성되며 새로운 존재가 모습을 드러낸다.
“작네?”
검은 망토 같은 뒤집어 쓴 창백한 인간의 형상. 양식은 꽤 다르지만 정성들여 수를 놓은 것으로 보이는 고급스런 복장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여긴…”
이성을 지닌 언데드는 처음이라 조금 신기하긴 했지만, 통로가 개방되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으니 낭비할 틈이 없다.
형진은 더 이상 말을 나눌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곧바로 달려들었다.
“감히!”
딱 봐도 좋은 의도로는 보이지 않는 느낌으로 달려드는 형진의 모습에 손을 들어 방어하려는 자세를 취했지만, 미처 그 손이 다 들려지기도 전에 무언가가 번뜩이며 놈의 가슴을 꿰뚫어 버린다.
“어? 어어?”
그리고, 뭐가 공격했는지조차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놈은 그대로 죽음을 맞이했다.
[인스턴트 킬! ‘노스페라투’가 죽었습니다!] [영혼포식! ‘체력 흡수’ 효과가 발동합니다!]형진은 영혼포식자를 회수하고는 곧바로 고정된 통로를 향해 뛰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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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