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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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 탐사
샤라스델 방백 즈라탈은 경황이 없는 중에도 일단 딸이 무사하다는 사실에 안심했다. 하지만 그렇게 안심하고 채 몇 초도 지나지 않아, 자신과 딸이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상태임을 인식하고 당황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딸이야 앞서 자신이 말한 대로 아직 미숙하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자신은 위계는 좀 낮다 한들 오랜 세월 이 땅을 지배해온 노스페라투 가운데 한 명이다. 그런 자신이 이렇게 어이없이 명줄을 다른 이에게 맡기는 신세가 되다니, 누가 감히 지금의 상황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문제는 자신이 이렇게 어이없게 당한 이상, 지스크 대공가나 샤라스델 방백가의 입장이 실로 난처해졌다는 점이다. 가문의 소유지, 그것도 대공이 머무는 거처에서 일이 터진 대공가는 물론이고, 금지옥엽은 물론이고 가문의 주인마저 뻔히 보는 앞에서 납치를 당한 골이 되어 버린 방백 가문 역시 이대로 가만히 있기 어려워졌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상황에서 두 가문이 강경책으로 이 사태에 대응하기는 어렵다는 점.
지스크 대공가는 일단 저택 안에서 벌어진 사건은 차치하고서라도 대공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만약 지스크 대공에게 뭔가 문제가 생긴 것이 확인된다면, 노스페라투의 자리를 놓고 가문 내의 암투가 발생할 것은 당연지사. 일이 그렇게 될 경우 작위는 이번 일을 무사히 해결하는 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이 경우에는 온건책은 물론 강경책을 구사하려는 자 역시 나올 것이므로 상황은 좀 더 복잡하고 과격하게 돌아가게 되겠지만, 우선 전제조건은 지스크 대공의 안위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대공가는 함부로 움직이기 어렵다.
샤라스델 방백 가문은 말할 것도 없다. 가문의 주인은 물론이고 귀하디귀한 금지옥엽까지 잡혔으니 둘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이상 과격한 방법은 절대로 쓸 수 없다. 이 참에 둘을 치워버리고 가문을 꿀꺽하려는 생각을 떠올릴 자가 없으리라 말하지는 못해도, 완전히 세상 모두의 눈을 가릴 자신이 없는 이상 그런 터무니없는 일은 저지르기 힘들다.
게다가 상대는 무려 현직 노스페라투를 부하들이 하나 가득 몰려 있는 상황에서 납치해 버렸다. 그런 존재를 상대로 완벽한 승리를 장담하지 못하는 이상 그것이 사로잡힌 부녀를 구하기 위한 것이든, 반대로 위해를 입히기 위한 것이든 간에 과격한 방법을 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도 한 가문의 소유자이다 보니 샤라스델 방백 즈라탈은 자신의 처지를 깨닫기가 무섭게 일단 앞으로 벌어질 일들에 대한 경우의 수를 따져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지금의 상황이 외부 요인으로 타개될 만한 가능성은 그다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가능성 있는 방법이라면 궁지에 몰린 대공가와 방백가의 요인들이 이 사태를 ‘가장 오래된 자’에게 상주하는 것. 이 경우에도 결국 해결책은 피해를 감수하고 노스페라투들을 소집해 이 사건에 대응토록 하든가, ‘가장 오래된 자’ 본인이 직접 나서는 정도.
하지만 이 경우 현직 노스페라투를 단숨에 제압한 자와의 충돌이라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것은 자신처럼 애지중지하는 딸의 안위가 걸린 부모의 심경이 아니고서야, 많은 것을 가진 자들이 감수하기엔 너무나 큰 부담이다.
다시 말해, ‘가장 오래된 자’가 이 문제를 체제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판단하고 강제로 동원령을 내리는 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이상 노스페라투들은 스스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런 일이 생긴다면, 자칫 붙잡혀 버린 자신들의 희생을 전제로 일이 진행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기 힘들다. 그건 사로잡힌 두 부녀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이기도 하다.
답이 없다.
샤라스델 방백 즈라탈은 자신이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음을 제대로 인식했다.
-끄응… 끙…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잡힐 때 어디 다치기라도?
-그건 아니다만… 에휴…
즈라탈이 그렇게 끙끙거리며 앓는 소리를 내고, 혹시라도 그 소리가 심기를 거스를까 두려워 힐리에타가 숨죽인 목소리로 아버지의 상태를 살피는 동안에도, 형진은 비스듬히 선 채로 하늘을 가로질러 인간들의 도시로 향했다.
결국 내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고, 뒤이어 그곳에 자리잡은 거대한 도시의 풍광이 드러나자 그제서야 형진은 입을 열었다.
“이름.”
-샤라스델 방백 즈라탈입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상황파악을 위한 여유가 주어진 탓인지 즈라탈은 형진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빠릿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찌 보면 노스페라투 중에서도 낮은 위계에 속했으면서도 무려 대공가와의 혼사를 성사시킨 수완가다운 반응이다.
“너 말고, 저 도시.”
-…
-티마, 티마입니다.
하지만 기껏 자신을 낮추고 이름을 댄 것이 무색하게도 자신이 아니라 도시 이름을 물은 것이라는 말에 즈라탈은 잠시 허탈한 기분이 되어 버렸고,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힐리에타가 얼른 형진의 말에 답했다.
티마는 내해의 안쪽 깊숙이 자리 잡은 만에 세워진 도시다. 경계면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데다 해양성 기후까지 더해져서 상당히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물론 여기서 더 내려가면 생물이 살아가기 어려울 정도의 뜨거운 지역이 펼쳐지기 시작하지만, 이곳은 어쨌든 그런 건조지대 안쪽으로 깊숙이 파고든 형상의 내해 덕분에 그럭저럭 살만한 기후대가 형성된 셈이다.
아무래도 비가 많이 오는 탓인지 도시 내부의 수로 망이 꽤 잘 만들어져 있는 것이 특징이며, 또한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토사 붕괴가 일어나지 않도록 도시 내부에 많은 양의 가로수와 숲이 조성되어 있는 것도 형진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도시와 다른 점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이 살기엔 험악한 환경이라도 어쨌든 최대한 적응해서 살아보려고 노력한 흔적이 여기저기 담겨 있다고 해야 하나.
도시 바깥 역시도 조밀한 관계 수로망과 더불어 넓은 경작지가 형성되어 있다. 풀 한포기 찾아보기 힘들었던 을씨년스러운 밤의 영역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앞서의 한적했던 마을과는 달리, 도시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 북적이고 있었다. 사실상 낮의 영역에서 가장 번화하고 복잡한 도시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가만히 살펴보니, 도시는 몇 가지 구획으로 나뉘어 있었다.
앞서의 마을과 마찬가지로, 도시 자체는 해안가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내해 방향으로 작은 항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점. 풍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내해라는 지형적 특성상 바깥쪽 바다보다는 아무래도 그 영향이 덜한 탓이다.
도시는 커다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출입구는 상하좌우의 네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어느 쪽이 북쪽인지는 판단하기 어렵지만, 일단 내해 쪽을 남쪽이라고 가정했을 경우 남서쪽 방향에 도시의 지배자가 거주하는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궁성이 자리 잡고 있다.
성문으로부터 연결된 상하좌우의 대로가 만나는 교차점에는 커다란 광장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남쪽에 자리 잡은 또 하나의 광장과 더불어 시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 광장의 주변에는 다른 곳과는 비교되는 큰 규모의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흠…”
타나토스와 비교를 하자면 왕성 라야에 비견될 만한 수준. 하지만 지구와 비교하기는 어렵다. 하기야 그쪽은 인구 수천만의 메트로폴리스가 즐비한 곳이니 이런 곳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
“저건 뭐지?”
궁성으로 보이는 건물은 그렇다 치고, 광장 서쪽에 자리 잡은 거대한 건물이 뭔가 자꾸 눈에 밟힌다. 다른 수많은 건물들을 마치 내려다보는 듯한 형상이라서 더 그런지도 모르겠다.
힐리에타는 이곳에 와본 적이 없어서 대답을 하지 못했지만, 아버지인 즈라탈은 몇 번이고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사원입니다.
“사원?”
-네. ‘가장 오래된 자’를 모시는 곳이죠.
“흠…”
힐리에타가 말했던, 신에 가까운 자라는 수식어가 빈말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든다. 정말로 이곳을 지배하는 신이나 뭐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이를테면 파괴와 재생처럼 언데드의 영역에 손을 뻗어 타락해 버린.
형진이 사원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자, 즈라탈은 머뭇거리며 다른 건물들 역시 안내를 시작했다.
-그 옆에 있는 건물들은 관공서들입니다. 이 도시의 행정을 책임지는 곳이죠. 신전에서 궁성으로 통하는 길옆에는 오래된 자들의 저택과 대형 상가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오래된 자라고는 해도 물론 저희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미천한 자들이죠. 보통 노스페라투에 해당하는 자들이 이곳에 머물 때는 저쪽에 자리 잡은 궁성에서 쉬게 됩니다.
따로 묻지도 않았건만 즈라탈은 그렇게 나불나불 잘도 말을 이어갔다. 오죽하면 힐리에타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은 표정을 지을 정도다. 가문 내에서 보여주는 즈라탈의 모습은 엄격하기 이를 데 없는 강인한 가장의 그것이 전부였다. 그에 반해 지금의 그는 나름대로 사회생활 잘하는 공무원 같은 모습을 연상시킨다. 어쩐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새로운 일면을 발견한 것 같아서 힐리에타는 기분이 묘해지고 말았다.
-괜찮으시다면 궁성에 들러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런 번잡하고 시끄러운 곳보다는 그쪽이 훨씬 아늑하고…
“시끄러.”
-네.
마치 ‘가장 오래된 자’를 모시는 듯한 느낌으로 그렇게 성실하게 안내에 임했지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한 마디 뿐이다. 하지만 즈라탈은 그 목소리에 딱히 살의가 담겨 있지 않음을 인식했다. 역시 수많은 세월동안 노스페라투 가운데서도 최하위에 가까운 직위에 머물러 있었던 자답다.
형진은 일단 근처의 지붕 위에 내려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대부분은 조금 헐렁한, 통풍이 잘 될 것 같은 옷을 입고 있었지만 개중에는 다른 이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특이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있었다. 오래된 자는 아니어도 자신처럼 몸을 무언가로 감싸 인상착의가 드러나는 것을 막고 있는 사람도 눈에 띈다. 마치 아랍쪽 사람들 같다고 해야하나.
“저 자들은 뭐지?”
-아… 라트라 말씀이시군요. 주로 건조지대에서 살아가는 유목민들입니다. 저들이 살아가는 곳은 햇빛이 강한 곳이라 저렇게 천을 감아 몸을 보호하곤 하죠.
“특징은?”
-다소 폐쇄적인 문화를 지닌 이들입니다. 말수도 적은 편이고, 저렇게 도시에 들르는 이들은 자신들의 씨족에서 사용하기 위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온 자들입니다. 저들로 위장하고자 하신다면, 말보다는 손짓으로 대화를 이끌어 가시는 편이 이롭습니다.
“…”
즈라탈은 몇 마디 질문만으로도 형진이 저들로 위장하고자 한다는 사실을 바로 인지하고 그렇게 설명을 덧붙였다. 앞서 봤던 모습은 전위나 장비 같은 삼국지의 인물을 연상시키는 외모였는데, 설명을 하는 분위기는 어째 내시를 데려다 놓은 것 같은 느낌이다.
따지고 보면 형진도 사실 그리 다를 바가 없다. 그 역시 집에서는 한 나라의 왕이며 가장이지만, 공포와 죽음을 대할 때면 한없이 사근사근한 회사원의 모습으로 변해버리니까. 형진으로서는 어쩐지 가장으로서의 동질감마저 느껴질 정도다.
“너도 꽤 힘들게 살아왔나 보구나.”
-네, 뭐… 일단은.
-…
힐리에타는 어쩐지 두 남자 사이에서 자신만 소외된 것 같은 그런 분위기를 느꼈다. 자신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동질감이 두 남자로부터 전해진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렇게 좀 분위기가 부드러워지자, 형진은 즈라탈에게 마침내 자신이 지금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을 질문했다.
“‘가장 오래된 자’에 대한 것을 말해 보도록.”
-사실 저도 직접 모습을 뵌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언젠가 신이 되실 겁니다. 저희는 모두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어째서?”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이곳은 멸망해 버릴 테니까요. 사실 지금 이런 상태로 이 세계가 유지되고 있는 것도 결국은 그분 덕분입니다.
“흠…”
세계의 운명을 좌우하는데다, 언데드의 힘을 손에 넣어 불사의 상태가 되었다. 확실히 그 정도라면 보통 사람들에게 신으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형진은 잠시 그렇게 사람들의 모습을 좀 더 지켜보았다.
도시는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져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상인들, 그리고 장인들이 저마다 물건을 만들고 파는 모습은 물론이고, 하층민들이 자리 잡은 슬럼가 역시 도시 안에 몇 군데 존재했다. 앞서 대공가의 저택에서 보았던, 시종 역할을 하던 보랏빛 눈동자의 존재들이 이곳에서는 귀족으로서 군림하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즈라탈과 힐리에타는 그렇게 말없이 도시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기색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형진이 입을 열어 그 의도를 말한 것은 아니었지만, 두 부녀는 지금 이순간 그가 중대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게 잠시 도시의 모습을 바라보던 형진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정했다. 이 세계, 내가 갖겠다.”
형진은 그대로 도시를 향해 손을 뻗으며 그대로 움켜쥐었다. 마치 그 모든 것은 한 손에 잡아채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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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편째.
텨텨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