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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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인수
차야 메사라고 불리는 이 세계는, 어찌 보면 언데드의 힘을 어떻게 해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곳이라 할 수 있다.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인 지배층이 불사의 존재로 군림하며 그렇지 못한 필멸의 인간들을 지배하는 이 사회 구조는, 어찌 보면 귀족들에게 가장 이상적인 사회를 구현해 놓은 것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안정적인 사회가 건설되어 있다 할지라도,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였다는 사실만을 놓고 보면 형진의 입장에서는 역시 그대로 놔두기 어려운 점이 있다. 신들의 대리자로서, 언데드의 영역이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확산되는 것은 절대로 반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자’라는 존재 역시 마음에 걸린다. 아직 정확하게 정체를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가 파괴와 재생 같은 신이거나 할 경우에는 언젠가 저쪽 세계를 위협할 만한 강대한 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 다시 말해, 여기서 형진이 모른 척 이 세계를 외면하고 떠나게 되면 언젠가 그의 앞을 가로막을 강대한 적으로서 모습을 드러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몰랐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이미 알게 된 이상은 그대로 모른 척 놔두기 어렵다고나 할까.
그대로 놔둘 경우 생길 수 있는 리스크는 그렇다 쳐도, 이 세계는 또한 형진의 기반이 되기에 충분하다.
기본적으로 이 세계는 신정 일치의 수직적인 지배구조를 가진다. 이것은 매우 경직된 사회 구조지만, 바꿔 말하면 지배자를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이 모든 것을 단숨에 먹어치울 수 있다는 뜻도 된다.
형진은 바로 얼마 전에 반신이 되었다. 반신이란 신위를 가지지 못한 신. 즉, 존재 자체는 이미 신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신이 신다운 힘을 발휘하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어쩌면 그 자신의 능력보다도 거느린 인간의 숫자. 신도나 추종자가 없는 신은 요정보다도 못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나 타나토스는 이미 레드오션에 가깝다. 여러 신이 난립하고 있는 타나토스야 말할 것도 없고, 지구 역시 희망과 생명이나 공포와 죽음 같은 쟁쟁한 신들과 경쟁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당장 신위를 얻지 못해 변변히 전해줄 권능이 없는 형진의 입장에서 이건 상당히 불리한 요소일 수밖에 없다.
사실 형진이 왕성에 거주하는 식구들, 특히 아내들을 자신의 추종자로 끌어들이지 않고 있는 이유도 결국 그래서다. 하엘의 경우에는 파괴와 재생으로부터 떼어놓기 위한 수단으로 추종자를 만드는 과정을 거쳤지만, 다른 이들의 경우엔 기존에 모시고 있는 신들을 버리고 자신의 추종자로 만들었을 때의 이점이 전혀 없으니 일단은 그대로 현재의 신분을 유지하도록 놔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어떠한가. 이곳에서라면, 그런 것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경쟁자라고는 오직 ‘가장 오래된 자’ 하나 뿐이다. 하지만 이것 역시 지구나 타나토스에서 기존의 신들과 치러야 할 경쟁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가장 오래된 자’가 타락한 신일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즈라탈과 힐리에타가 누차에 걸쳐 언젠가 신이 될 자라고 언급하는 걸로 봐서는 제대로 된 신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지구에서도 강대한 권력을 손에 넣은 지배자가 스스로를 신이라고 호칭하는 예는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가장 오래된 자’는 언데드의 힘을 손에 넣어 불사를 이루고, 그것을 나누어 줄 수 도 있으니 다른 자들에게 신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만약 상대가 그저 입으로만 신의 이름을 논하는 그런 존재라면, 형진에게는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다.
형진은 이미 허세와 망상 같은 강대한 힘을 지닌 자를 패퇴시킨 전적이 있다. 행성을 물리치는 괴수인 티폰을 물리치기도 했다. 여러 신들에게 빨대를 꽂은 덕분에 신앙이라면 몰라도 공헌도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다.
과연 ‘가장 오래된 자’가 그런 형진에게 대항할 수 있을까. 아마도 그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만약 형진이 이 세계를 손에 넣고자 한다면, 그 지배 구조의 핵심을 이루는 오래된 자들을 어떻게든 처리해야만 한다. 그들이 여전히 언데드의 힘으로 영생을 얻고 있는 상태라면, 다른 신들이 보기에 형진 역시 언데드의 영역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것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좋을까.
형진은 자신의 손에 쥐어진 크고 작은 두 개의 불덩어리들을 바라보더니, 호두알을 굴리는 듯한 느낌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윽, 자, 잠깐… 이, 이러시면…
-으앗! 그, 그러지 말아요. 악! 어딜 만져요!
-고, 고의가 아니다. 일부러 그럴 리가 없잖아!
형진에 의해 강제로 서로의 근원을 부대끼게 된 두 부녀는 자신들의 처지도 잊고 그렇게 비명을 질렀다. 형진은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어 버렸다. 비록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여 이런 형태가 되긴 했어도 어쨌든 생명체로서의 자각이 있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손바닥 안에서 아우성치는 두 부녀의 모습을 보던 형진은 문득 이러한 형태가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것과 매우 닮았음을 깨달았다.
사념체. 그렇다. 이것은 엘리시온에서 사용되는 사념체와 매우 비슷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정도. 어쩌면 ‘가장 오래된 자’는 언데드의 힘을 이용해 생명체를 사념체와 같은 형태로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이른바 오래된 자를 활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전제되어야 할 사항이 있지만.
“나는 지금부터 너희에게 한 가지 실험을 하고자 한다. 누가 먼저 나서겠는가.”
장난치듯 손 안에서 불덩어리들을 굴리던 형진은 문득 진지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잠시 허둥대던 두 부녀는 그런 형진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험… 이라면 위험하지는 않습니까.
즈라탈의 말에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위험하다. 어쩌면 그대로 폭발하며 소멸할지도 모르지.”
-…
순간 두 부녀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에서다.
앞서 그는 분명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를 자신이 갖겠노라고.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 세계의 지배자들 입장에서는 선전포고나 마찬가지다. 이미 주인이 있고, 그 뜻을 받드는 지배자가 있는 마당에 그것을 갖겠다는 의미는, 바꿔 말하자면 빼앗겠다는 뜻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결국 ‘가장 오래된 자’나 그를 떠받드는 노스페라투, 그리고 그들의 밑에서 일하는 오래된 자 역시 어떻게든 처분의 대상이 되어 버리게 마련. 결국 지금 이 남자가 자신들에게 행하고자 하는 실험은 바로 처분을 위한 것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제가… 나서겠습니다.
먼저 나선 것은 역시 아버지 쪽인 즈라탈이었다. 하지만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힐리에타 역시 나섰다.
-아니에요. 이 일은… 역시 제가 나서는 편이 맞아요.
그러자 즈라탈은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말이냐. 안 돼. 넌 아직 젊다. 그러니 이런 일은 나이 먹은 내가 나서는 편이 맞아.
하지만 힐리에타도 이번만큼은 완강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전 아직 젊어요. 그리고 미숙하죠. 만약 아버지가 잘못 되고 저만 살아남는다고 생각해 보세요. 어리고 미숙한 제가 가문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가요? 그러니 여기선 제가 나서는 것이 맞아요.
나름 감동적인 광경이었지만, 형진은 이런 식으로 말싸움이 이어지는 걸 느긋하게 지켜볼 마음이 없었다.
“그럼 둘 다.”
-네?
-그, 그런 게 어딨어요!
“어딨긴. 여
지.”
형진은 심드렁하게 대꾸하고는 크고 작은 두 개의 불덩어리를 각각 양손에 하나씩 쥐고는 말했다.
“받아들여라. 저항하면 죽는다.”
두 부녀는 이 말을 저항하지 말라는 뜻의 위협으로 인식했다. 하지만 죽는다는 말은 단순한 위협의 의미가 아니었다. 정말로 죽게 된다는 뜻의 경고였던 것이다.
-컥!
-아악!
문득 형진의 몸으로부터 강렬한 회오리가 분출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놀라기도 전에 두 부녀가 지닌 존재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불덩어리에 새로운 힘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타오르는 불꽃과도 같은, 하지만 지금까지 자신들의 근원을 이루던 불꽃과는 정 반대 되는 힘이었다. 이전의 불꽃이 녹아내리는 용암과도 같은 진득한 힘이었다면, 지금 밀려드는 힘은 그야말로 온 세상을 태워버리고 말 것만 같은 그런 강렬한 불꽃이었다.
그제서야 두 부녀는 제대로 형진의 말을 알아들었다. 저항하면 죽는다는 말은,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될 수도 있다는 경고였음을 뼈저리게 깨달아 버린 것이다.
그들은 다급하게 새로운 힘에 대한 저항을 풀어 버렸다. 그 힘들이 자신들의 근원을 이루고 있던 힘들을 밀어내고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만약 두 힘 사이에서 아주 작은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바로 그 순간 자신들의 근원은 거대한 폭발에 휘말려 존재 자체가 티끌하나 남기지 못한 채 사라져 버릴 것임을 본능적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다.
불덩어리로부터 검은 빛의 연기가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온다. 그것은 얼핏 보기에 사기에 물들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근원에 내재되어 있던 사기들이 형진의 힘에 밀려나 허공 속으로 흩어지는 모습이었다.
이것 하나만으로도 형진은 확신할 수 있었다. ‘가장 오래된 자’의 힘이 자신에게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금 이순간 그는 확실하게 인식했다.
형진으로서도 이것은 매우 조심스러운 작업이었다. 하지만 그 절박함은 두 부녀보다는 아무래도 모자를 수밖에 없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이 도시에는 그들보다 미약한 힘을 지닌 오래된 자가 꽤 많이 존재했다. 실험의 대상 따위 이미 이 세계에는 차고 넘치는 것이다.
하지만 두 부녀의, 그야말로 살아남기 위한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형진도 어렵지 않게 자신이 행하고자 했던 일의 요령을 체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한계를 돌파한 라이언하트의 효능은 이 시점에서도 확실하게 적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요령을 파악하고 나니 그 다음은 쉬웠다. 요컨대, 언데드의 힘과 신으로서의 힘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지 않도록 부드럽게 밀어내는 것이 요점이었다. 물론 말이 쉽지, 작은 충격만으로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전부 날아가 버릴 수 있음을 고려하면 만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마침내 그 모든 일이 끝났을 때, 두 개의 불덩어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했다. 뚝뚝 떨어지는 용암 같은 느낌의 불덩어리가 아니가 밝게 타오르는 횃불 같은 느낌의 불덩어리로 변화하며 그 내부에 형진의 소유임을 의미하는 문장이 새겨진 것이다.
“멋지군.”
형진은 그렇게 말하며 양손에 쥐고 있던 불덩어리들을 놓아 주었다. 그러자 불덩어리들은 이내 도깨비불처럼 허공을 잠시 유영하더니, 각각 아리따운 아가씨와 건장한 전사의 모습으로 변화했다.
그들은 곧바로 형진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했다.
“부족하고 미천한 자가 신을… 뵙습니다.”
“신을 뵈어요.”
두 부녀는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 존재가 그들을 뛰어넘는 위계를 지닌 존재임을 인정했다. 자신들의 근원을 이루고 있던 힘들을 밀어내는 새로운 힘을 느끼고, 그 힘으로부터 새로운 존재로 거듭난 시점에서 이들은 형진의 존재를 명확하게 인식한 것이다.
“일어나라.”
형진의 말에 즈라탈과 힐리에타는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들은 감히 형진을 제대로 바라볼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을 이루고 있는 힘 자체가 형진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그들에게 있어 형진은 또한 어버이 같은 존재나 다름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물론 이들이 자신을 그렇게 호칭했다면 형진은 펄쩍 뛰었겠지만 말이다.
형진은 가만히 그들의 모습과 기세를 살폈다. 근원으로부터 사기가 사라진 탓인지 이전의 창백한 모습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힐리에타의 얼굴은 내리쬐는 햇빛에 비춰지며 반짝반짝 윤이 나고 있었고, 입술은 건강한 붉은 색을 띄고 있었다. 즈라탈의 얼굴 역시 마찬가지. 근원 안에 들어찬 신의 힘 때문인지, 그들의 모습은 얼핏 성스러운 느낌마저 풍길 정도다.
“어째 나보다도 더 신처럼 보이는군.”
“그, 그게…”
“송구스럽습니다.”
“됐다.”
즈라탈과 힐리에타는 얼른 형진에게 사죄하려 했지만, 형진은 손을 내저어 보이고는 말했다.
“솔직히 단번에 성공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많이 협조해줘서 별 탈 없이 끝났다. 너희들은 운이 참 좋아.”
“가, 감사합니다. 모두 은혜를 베풀어 주신 덕분입니다.”
“아부는 됐고. 어쨌든 한 가지는 해결이 되었으니, 이제 그 다음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겠지.”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새롭게 자신의 추종자가 된 두 부녀에게 물었다.
“‘가장 오래된 자’는 어디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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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