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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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인수
즈라탈과 힐리에타는 흠칫 놀라고 말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미 예정된 수순이나 다름없다. 자신들의 몸에서 사기를 몰아내고 신의 힘을 밀어 넣어 사실상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게 만든 시점에서, 이미 싸움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힐리에타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지만 비록 위계가 낮다 한들 노스페라투의 하나인 즈라탈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가장 오래된 자’는 빙벽 너머에 존재하는 오래된 자의 성전, 루코 키마에 머물고 있습니다.”
“흠.”
지명을 들어도 형진으로서는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위성으로부터 들어온 지형 정보를 통해 대략의 위치를 확인하는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하늘을 향하도록 손을 뻗는다. 그러자 손바닥 위에 거대한 구체의 모습이 나타난다. 환상으로 만들어낸, 그들이 딛고 서 있는 행성 차야 메사의 입체 영상이다.
“대충 어느 정도 위치인지 손으로 짚어봐.”
“네?”
고개를 수그리고 있다 보니 형진이 벌인 일을 알아채지 못하던 즈라탈은 자신의 눈앞에 기이한 형상의 구체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라버렸다.
“어… 그러니까, 이게…”
하지만 즈라탈은 당황해 버렸다. 그가 비록 노스페라투의 자리에 있다 한들, 행성 전체를 조망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고작해야 자신이 맡은 지역의 지도를 같은 것을 살펴본 것이 고작이다.
형진을 혀를 차며 영상을 회전시켜 그들이 거쳐온 곳을 일러주었다.
“이곳이 처음의 저택. 그리고 이곳이 아까의 마을. 그리고 이곳이 현재 우리가 있는 도시다. 알아볼 수 있겠나?”
“그, 그게… 자, 잠시만 시간을…”
아무래도 머리가 굳은 탓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평면적으로만 생각했던 지형을 입체적으로 보는 것에 적응을 못한 탓인지 즈라탈은 버벅거리기만 할뿐 좀처럼 대답하지 못했다. 그런 그라탈의 모습을 보고 형진의 표정에 슬슬 짜증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보다 못한 힐리에타가 나섰다.
“그러니까. 여기가 대공의 저택이라면… 여기가 아마도 샤라스델 성일 것 같아요.”
“아… 그렇구나.”
“샤라스델 성에서 루코 키마에 어떻게 가면 되죠?”
“루코 키마 인근의, 말로 일주일 거리 내에서는 공간 이동이 허락되지 않아. 그래서 일단 성전이 위치한 산맥의 초입에 위치한 관문인 르가프란까지만 이동을 하게 되지. 르가프란의 위치는 샤라스델에서 산맥 방향으로… 이쯤이겠군. 두 개의 산이 마주 보고 선 것 같은 지형. 맞아. 여기가 르가프란이야.”
힐리에타의 도움 덕분인지 즈라탈은 간신히 성전 루코 키마에 가기 전에 들려야 하는 관문 르가프란의 위치를 찾아낼 수 있었다.
형진은 확인하기 쉽도록 해당 영역의 지형도를 확대시켜 주었다. 그러자 마치 그곳 상공에서 내려다 보는 듯한 모습이 즈라탈과 힐리에타의 눈앞에 나타난다.
“맞아. 아니, 맞습니다. 이곳이 관문 르가프란입니다. 이곳에서 이쪽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계단이 나타나고, 여기 이 협곡 사이의 길을 따라 이쪽으로 가면… 여기, 이곳이 바로 성전 루코 키마입니다.”
눈에 익은 지형이 나타나자 그제서야 즈라탈은 반색하며 올라가는 길이나 경로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르가프란과 루코 키마라는 지명을 자신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한글로 지형도에 기입했다.
“공간을 넘는 네 능력, 지금도 쓸 수 있겠나.”
“그건…”
즈라탈은 질문과는 별개로, 형진이 정말로 단숨에 끝장을 내기로 마음먹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잔뜩 긴장하며 대답했다.
“앞서 제가 사용했던 능력은 사기를 기반으로 한 것이라… 가능할지는 바로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시다시피 공간을 다루는 기술은 사소한 차이가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기에…”
근원을 채운 힘의 성질 자체가 바뀌었다. 보통 이 정도를 사소한 차이라고 말하지는 못한다. 게다가 형진은 즈라탈의 말을 듣자 앞서 보았던 공간을 다루는 기술이 사기를 통해 언데드가 불려 나오는 현상에 기반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럼, 다른 방법을 써야 겠군.”
입체 영상을 다시 자신의 앞에 끌어와 루코 키마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위성을 확인하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망설임 없이 경계선을 여는 황혼의 권능을 발휘했다.
보통 황혼의 권능을 통해 거리를 단축하는 일은, 이미 가본 장소이거나 인지 범위 안의 장소에만 사용할 수 있다. 단, 여기에도 예외가 있다. 황혼의 성물이 설치된 곳이라면, 가보지 않은 곳이라도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번에 새로 위성에 추가된 기능은 바로 황혼의 결계를 발동하는 것이다. 이 기능을 발현하기 위해 위성에는 황혼과 망각의 힘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성물이 부속으로 결합되었는데, 비록 소형화되기는 했어도 엄연히 성물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황혼의 권능을 사용할 때의 입구나 출구 역할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위성이 위치하는 장소. 일반적인 인간은 접근하기 힘든 궤도 상에 위성이 자리잡고 있는 탓에 이것을 사용할 수 있는 존재는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형진이라든가, 또는 형진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따라와.”
“네.”
따라오라고 하길래 뭔가 불안한 기분에도 쭐래쭐래 따라 들어갔던 두 부녀는 이내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기겁을 하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오래된 자들은 하늘을 나는 것이 가능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들이 살던 행성의 모습이 까마득하게 내려다보이는 위성 궤도에 올라갈 생각은 해본 적조차 없었다. 하늘의 위쪽은 태양이나 달, 또는 그들이 살고 있는 차야 메사의 다섯 자매들이 노니는 곳이지 지상의 존재가 갈 만한 곳이 아니라는 전승 때문이다.
“흐억!”
“힉!”
기겁을 하며 사이좋게 서로를 얼싸 안은 두 부녀의 모습을 흘깃 바라본 형진은 호버 보드에 자리 잡은 채 다시 말했다.
“잘 따라와.”
아까와는 달리, 잘이라는 단어가 앞에 붙었다. 왜 그런지는 형진이 출발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치 지면을 향해 떨어져 내리는 느낌으로 그가 쏜살같이 날아 내려가기 시작한 탓이다.
“어, 어쩌죠?”
“따라… 가야겠지?”
어째서 서로에게 던진 말의 끝이 의문 부호인지는 본인들조차도 알 수 없었지만, 두 부녀는 부들부들 떨면서 급히 형진의 뒤를 따라 비행이라기보다는 활강에 가까운 모습으로 지면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했다.
거의 자유 낙하 이상의 속도로 하강을 하다보니 바로 공기의 저항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대기가 짙어짐에 따라 마찰로 인한 열이 두 부녀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다.
“히이이익!”
“으아악!”
형진은 앞서서 강하를 하다가 뒤쪽에서 전해지는 꺼림칙한 기분에 고개를 돌렸고, 이내 벌겋게 달궈진 모습으로 자신을 따른 부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오래된 존재들이니 그 정도지, 보통의 인간이라면 이미 정신을 잃었으리라.
혀를 차며 속도를 조금 늦췄다. 그리고 그들의 전면을 감싸듯 가로 막았다. 그러자 그의 몸 주위에 둘러쳐진 황혼의 결계가 두 부녀까지 함께 보호하기 시작한다.
“몸을 보호하는 기술 같은 건 없는 건가?”
“그게…”
오래된 자들은 굳이 그런 걸 갖춰야 할 필요가 없다. 근원에 직접 타격이 가해지지 않는 한 그들은 기본적으로 불사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존재가 담긴 근원은 다른 이들로선 위치를 확인하기조차 어렵고, 그것에 정확하게 타격을 입히는 건 더 어려운 일이다. 일부러 맞아주려고 해도 성공하기 힘들 정도로.
게다가 그렇게 공격을 맞아도 아무런 의미없다는 듯한 모습이야 말로 일반적인 인간들에게 오래된 자에 대한 공포를 각인시키는 좋은 방법이었다. 말로만 불사니 뭐니 하는게 아니라, 칼을 맞고 화살에 꿰뚫려도 고통조차 느끼지 않는 모습을 통해 불사체임을 과시하는 것이다.
때문에 형진이 단숨에 그들의 근원을 낚아챘을 때, 그들은 그만큼 크게 놀라고 또한 미리 대비하지 못한 압박과 충격에 굴복해 정신을 잃어 버려야만 했다. 아마 이것은 즈라탈이나 힐레에타가 아닌 다른 오래된 자라도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조금 속도를 낮춰 내려가자 마침내 오래된 자들의 성전 루코 키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이런 식으로 하늘 위에서 본 적이 없어서 처음에는 미처 눈치 채지 못했지만, 시시각각 다가오는 지상의 모습에는 아무리 입체적인 지각 능력이 부족한 즈라탈이라 해도 바로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응?”
앞장 서서 내려가던 형진은 무언가 황혼의 결계에 닿는 느낌에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성전 안팎에서 종소리 같은 것이 울려 퍼지더니 그곳을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자들이 새카맣게 그들 앞에 몰려나오기 시작한다.
“오래된 자들인가?”
자신들을 향해 날아드는 존재들을 바라보며 형진이 묻자, 즈라탈은 얼른 대답했다.
“아닙니다. 저들은 ‘가장 오래된 자’를 모시는 인형들입니다.”
“인형?”
“그렇습니다. 저희들과는 달리 저들에게는 근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인형이라고 부른 것이죠. 오직 ‘가장 오래된 자’를 위해서만 존재하는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부숴도 상관없다는 뜻이군.”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영혼포식자를 꺼냈다. 하지만 지금 성전 루코 키마 주위는 빛이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암흑과도 같은 곳이었고, 그런 곳에서 투명한 형상을 지닌 영혼포식자를 식별할 수 있는 존재는 그리 많지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영혼포식자는 이내 권총의 형상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의 손가락이 움직임과 동시에 선두에서 달려들던 ‘인형’이 퍽 하는 소리를 내며 한줌 재로 변해 사라져 버린다.
“…”
즈라탈은 놀라 입이 떡 벌어졌고, 힐리에타는 젠다브가 죽었을 때의 일이 떠올라 두려움에 떨었다. 그들의 눈에는 형진의 손가락이 적을 가리킬 때마다 그들이 스스로 소멸하는 것처럼 보였다. 행성을 먹어치우는 괴물 티폰으로부터 만들어진 무기인 영혼포식자의 존재는 물론이고, 형진이 지닌 인스턴트 킬 능력 또한 알지 못하니, 영락없이 손가락질에 죽어버리는 광경으로만 보인다.
퍽! 퍽!
영혼포식자는 기본적으로 사용할 때마다 공헌도를 먹는 무기이고, 원거리 공격을 가할 때는 냉병기 타입으로 활용할 때보다 네 배 더 많이 소모된다. 하지만 이런 잡몹들 상대로 일일이 격투를 벌이는 것도 귀찮은 일이라 형진은 아낌없이 영혼포식자를 활용해 보이는 족족 적을 소멸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렇게 인스턴트 킬을 내는 것 까지는 좋았는데, 적이 소멸하면서 떨어진 룻이 이곳저곳으로 마구 흩어져 떨어지기 시작한 탓이다. 꼬맹이 여신들을 대동한 채 사냥하는 버릇이 들어서 버린 탓이지만, 이곳에는 룻을 대신 집어줄 그녀들이 없었다.
“끙…”
어차피 신격이 없는 이들에게는 보이지 않으니 누가 집어가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나중에 다시 찾아서 집어올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차라리 이 행성에 자리 잡고 있는 언데드들을 깨끗이 처리한 다음 꼬맹이 여신들을 불러올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어쨌든, 성전을 지키기 위해 날아들었던 ‘인형’들은 모조리 형진의 손에 소멸되었다. 형진은 더 이상 덤비는 자가 없는 것을 확인하자 그제서야 입구로 보이는 장소로 천천히 내려앉았다.
꿀꺽.
수많은 ‘인형’들을 손가락질만으로 단숨에 쓰러뜨리는 형진의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던 즈라탈과 힐레이타는 뒤늦게서야 입이 바짝 말라 있는 것을 느끼고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이쪽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나?”
“네. 하지만 아마도 수문장이 지키고 있을…”
하지만 즈라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체구를 지닌 존재 하나가 잿가루로 변해 스르르 사라져 버린다.
“뭐라고?”
“아, 아닙니다. 아무것도.”
수문장을 단숨에 해치운 형진은 어두운 통로 안으로 들어갔다. 성전이 위치한 곳 자체가 빛이 거의 닿지 않는 밤의 영역 한복판인데다, 다시 횃불 하나 피워두지 않은 지하로 통로가 나있다 보니 그 안은 그야말로 칠흑과도 같은 공간이었다. 그러나 형진은 생명체라면 자연스럽게 두려움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그 공간 안으로 서슴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퍽! 퍼퍽!
그 와중에도 통로에 숨어 있던 적들을 단숨에 소멸시키면서.
그렇게 한참을 걸어 내려가던 형진은 마침내 자신이 거대한 지하 광장의 입구에 도달한 것을 확인했다.
“즈라탈! 네가 감히 존귀한 존재를 배반한 것이냐!”
그때 누군가가 벼락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외치는 것이 들려왔다. 형진은 고개를 슬쩍 돌려 즈라탈에게 물었다.
“누구야?”
“최초의 노스페라투, 렐그낙입니다. ‘가장 오래된 자’의 최측근 심복이죠.”
“그래?”
둘이 그렇게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본 렐그낙은 분노 가득한 음성을 터뜨리며 형진을 향해 거대한 창을 휘두르며 곧장 달려들었다. 하지만 형진은 힐끗 바라보더니 순간 모습을 감추었다 정면에 나타나면서 그의 창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
싹둑!
“어?”
천 번 두드린 강철조차 단숨에 꿰뚫어 버리는 자신의 창이 단숨에 반토막이 나자 렐그낙은 화들짝 놀랐다. 위험을 느끼고 급히 몸을 피하려 하였으나, 마치 허깨비와 같이 스르르 따라붙은 형진의 손이 단숨에 그의 근원을 움켜쥐어 버린다.
저항이고 뭐고 할 틈도 없다. 형진이 움직인 시점에서 이미 일이 이렇게 될 거라 예상했던 즈라탈은 허탈한 표정으로 자신의 상급자 가운데 하나가 무력화되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커헉!”
렐그낙은 느닷없이 자신의 근원을 움켜쥔 형진의 손을 보며 기절할 듯이 놀랐다. 하지만 최초의 노스페라투답게 즈라탈처럼 곧바로 기절하거나 하지 않고 어떻게든 형진을 떨쳐 내고자 몸부림을 치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이 채 팔과 다리로 전달되기도 전에, 그는 자신의 근원으로 생경하기 이를데 없는 힘이 밀려드는 것을 느껴야만 했다.
“저항하지 마라. 죽는다.”
렐그낙에게 형진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렇게 진심어린 충고를 던져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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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